말씀이 나를 붙잡아요!(코스타 저녁설교 -1)

2014년 7월 2일 오전 6:06

우리는 그리스도의 능력이다!. 

고린도 후서4;7절. 2014/07/02. 시카고 코스타.


고통스러운 삶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읽게 하셨어요. 삶이 힘들때 하나님 말씀이 얼마나 순전지를 깨달았어요. 이전에는 제가 원하는 것들을 많이 넣었지요. 그 래서 순도가 낮았어요. 그냥 어떻게 보면 내 말이어요. 내 말을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서 했어요. 그러나 고통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했어요. 


1. 말씀이 나를 붙잡아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립보2;13절). 여기에 소원이 나오면 사람들은 다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삽입해요. 저에게는 아내가 일어나는 것이죠. 

그러나 이 구절 앞 구절에서 그 소원이 뭔지 알려줘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시는 기쁜 뜻, 우리 마음에 주시는 소원은 구원의 완성을 향한 갈망이죠. 구원의 완성!.

제가 얼마나 소원 소망이라는 단어를 집착하며 살폈는지 보셔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니라"(로마서5;3-4). 

여기에 환란을 다 견디고 이루어지는 소망이 뭘까요. 로마서는 우리에게 원수였던 우리가 십자가로 말미암아 화목함을 얻은 것처럼 하나님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구약성경도 마찬가지여요. 믿음의 명문가문이라고 하면 아브라함을 들어요. 저는 아무리 봐도 아브라함이 믿음의 명문가문으로 형통이라는 것을 찾지 못하겠어요. 아브라함은 불임의 아내를 만나서 자식 얻는데 몇년 걸렸어요. 25년!. 너무 길지 않아요. 이삭은 결혼해서 몇년 20년. 이런 불임의 명문 가문이네요. 손자얻는데 25년 20년 걸리면 며느리 쫓아낼 시어머니들 많아요. "너 때문에 우리집 대가 끊어졌다"며. 

야곱은 속이는 사람이어요, 속은 사람이어요. 뭘 그렇게 속였어요. 팥죽은 거래를 잘하거지요. 형이 멍청한 것이죠. 아버지에게 축복받을 때 형의 이름을 받았지요. 그리고 라반을 속였어요, 속았어요. 속았지요. 11명의 자식들에게 속았어요, 속였어요. 속았어요. 그러면 야곱은 속은 사람이어요, 속인 사람이어요. 속이고 속은 사람이죠. 속은 것이 더 많지요. 

다윗이 고백하지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119;72).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붙잡아 주었어요.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혼잡게 하지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읽어세요. 그러면 하나님은 말씀으로 날 붙잡아 주셨어요. 삶을 붙잡으려고 하지마세요. 말씀을 붙잡아요.




네가 주라!(코스타저녁설교-2)....나머지는 나중에 올려요

2014년 7월 2일 오전 6:08

2. "네가 주라"


저의 삶을 보면 아내가 건강할 때보다 아내가 아플 때 가장 풍성한 삶을 살고 있어요.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얼마나 많은지. 넘쳐나요. 그러나 동시에 주라고도 하셔요. 나도 어려운데. 


저는 이사를 해야했어요. 8천만원에 40만원 월세 아파트로요. 돈 5천이 모자랐어요. 어느 형제가 오더니만 "간사님, 뭘 도와드릴까요?"라요 말해요. 

저도 물었지요. "너는 누군데 나를 도우려고 하냐". 형제가 자기 아버지 소개를 해요 . 한해 매출이 천억대에 이르는 제약회사를 운영하다고.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응, 가게가 좀 되나보네". 

"간사님, 그것은 가게라고 하지 않고 기업이라고 해요. 아 기업!.

이사를 하려는데 돈이 3천 모자란다. 그때 저는 5천이 모자랐습니다. 형제가 그자리에서 3천만원 수표 세장을 주는 거여요. 제가 필요한 돈은 5천이어요. 3천만원을 받았을 때 감사가 먼저 나왔을 까요, 아쉬움이 먼저였을까요?. 


이사를 하고 2년을 살았어요. 주인이 전화를 했어요. "목사님, 시세가로 받아야겠습니다". 두려웠습니다. 아내가 한방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사를 가면 안되요. 아이들 친구도 지금 사는 곳에 다 있어서요.

"얼만데요". 2억5천이요. 

제가 준비는 해보겠지만 2억5천은 안됩니다 라고 정직하게 대답을 드렸어요. 열심히 빚을 내고 준비했습니다. 1억6천을 마련했습니다. 

"저 주인어른, 1억6천밖에 안됩니다". 

"그래요, 목사님. 그냥 1억6천에 계약해요" 

"나머지는요". 없는데 어떡해요. 


2년전에 제가 결심을 했습니다. 이 사랑의 빚을 갚기로. 오래된 아파트를 리모델링해줘야겠다. 우리 성도들이 저를 바보라고 했습니다. "세입자가 왜 리모델링을 하냐"고. 제가 웃으면 말했습니다. 그분이 나에게 10년동안 후원한 액수가 얼마냐. 

작년 크리스마스 때 집을 다 수리했습니다. 싱크대만 남겨두고, 주인을 초청해서 크리스마스 축하파티를 열었습니다. 불신자들과 신자들서 몇몇 불러서.

지난달 실직자가 된 청년이 한명왔어요. 뭐 준비하려고 하니?. 10월에 취직시험이요. 그동안 뭘 먹고 사냐?. .... 

한달 생활비가 얼마니. 30만원이요. 그러면 내가 그때까지 30만원을 주마. 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길 바란다. 이 청년은 매주 이틀을 우리 자녀들을 돌봐줘요. 참 감사하지요. 

힘들 때 하나님은 저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붙여주셨어요. 그게 사랑이지요.





십자가 능력, 보배(코스타강의 -2)

2014년 7월 3일 오전 6:49

2. 말씀이 나를 붙잡아요!


고통스러운 삶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읽게 하셨어요. 삶이 힘들때 하나님 말씀이 얼마나 순전지를 깨달았어요. 이전에는 제가 원하는 것들을 많이 넣었지요. 그 래서 순도가 낮았어요. 그냥 어떻게 보면 내 말이어요. 내 말을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서 했어요. 그러나 고통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했어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립보2;13절). 여기에 소원이 나오면 사람들은 다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삽입해요. 저에게는 아내가 일어나는 것이죠. 

그러나 이 구절 앞 구절에서 그 소원이 뭔지 알려줘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시는 기쁜 뜻, 우리 마음에 주시는 소원은 구원의 완성을 향한 갈망이죠. 구원의 완성!.

제가 얼마나 소원 소망이라는 단어를 집착하며 살폈는지 보셔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니라"(로마서5;3-4). 

여기에 환란을 다 견디고 이루어지는 소망이 뭘까요. 로마서는 우리에게 원수였던 우리가 십자가로 말미암아 화목함을 얻은 것처럼 하나님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도 그중에 하나여요.

"우리가 이 보배를 질 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힌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4;7)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붙잡아 주었어요. 질그릇이 보배를 담아요, 보배가 질그릇을 담아요. 보배를 담은 것은 질그릇이지만 우리가 보배를 지키는 것이 아니어요. 보배가 중심이어요. 

하나님은 말씀으로 날 붙잡아 주셨어요. 삶을 붙잡으려고 하지마세요. 말씀을 붙잡아요.





십자가 능력, 보배(-3. 코스타 강의)

2014년 7월 3일 오전 6:50

난 너에게 아들줬다!.(Did not spare my son)


2013년 사순절 때, 십자가를 묵상하다가 이렇게 탄식을 했다. "나 너무 힘들어요. 좀 상황을 바꾸어줘요. 낫게 하시든지, 아니면 데려가든지". 

이런 곤란한 질문을 하면 하나님을 대답을 안하시더라. 우리가 어려운 질문을 하면 하나님은 침묵하는 경향이 있으시더라구요. 그러나 그날은 제가 말씀좀 해봐요 이렇게 소리쳤어요. 정말 말씀하시더라구요. 말씀을 생각나게 해요. 


그런데 느닷없이 마음속에서 로마서 8;31-39절 본문이 떠올랐어요. 특히 롬8;32절에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느냐". 이본문이 떠올랐어요. 속으로 참 하나님 싱겁다는 생각을 했어요. 힘들다는데 아들줬다 이게 답이 되요. 나 힘들다고 말하는데 나는 아들 줬다는 대화가 뜽금없잖아요. 

셋째날 아침이었어요. 출근해서 어제의 기도를 계속하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어요. "너 아들까지 준 사람에게 뭘 더 달라는 거냐"라는 내적인 음성이 들리더라구요. 내가 너를 사랑해서 내 아들까지 줬는데 너 나에게 또 달라고. 

그래서 그 본문을 읽었어요. 그리고는 놀랐어요. 아들과 함께 받을 것이 환란과, 곤고와 핍박과 기근과 박해와 적신이나 위험까지도 들어 있어요. 이런 것이 찾아와도 그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데요. 좋은 상황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아주 나쁜 상황을 언급하고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야기 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가장 귀한 선물을 첫번째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첫번째 선물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이것보다 더 귀한 선물은 없습니다. 그제서야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요. 제게 힘없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어요. "아들 줬는데 뭘 더 달라는거야".


아들이 귀해요. 아들이!. 그러나 삶에서 아들보다 더 귀한 것을 찾는 우리들이어요. 십자가 보다 더 귀한 것이 우상이지요. 여러분의 꿈보다 아들이 귀해요.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잘 드러냈습니다. 확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너무 자주 하나님의 사랑을 기도응답으로 확정합니다. 이런 잘못된 기준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합니다. 

기도응답은 될수 도 있고 안될 수도 있어요.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정하는 기준은 아닙니다. 그것은 가변적인 사랑이지요. 


불변의 사랑은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전,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아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4. 너, 나만 사랑해라(You shoud only love me)


아내를 돌보던 어느날 "하나님, 내 꿈의 끝이 여기여요. 아내만 돌보다가 끝나는 인생인가요". 엉엉 울었어요. 하염없이 울었어요. 아빠는 절대 아이들 앞에서 안울어요. 몰래 울지요. 그러니 제가 묻는 "내 꿈이 여기가 끝이냐"는 질문은 피를 토하는 격문이지요. 며칠 뒤에 차를 몰고 아내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이 물었어요. 


"너, 나보다 더 사랑하는 꿈이 뭐냐?".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꿈이 있냐?". 하나님이 가끔 하시는 질문은 너무도 당혹스러워서 대답을 못해요. 저게에 큰 충격을 주었어요. 


"없는데요". 이제는 내가 침묵할 차례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한참을 울고 있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너 나만 사랑해". 

나는 인생이 얽울해서 꿈 이야기 하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사랑만 해라! 고 하셨어요. 

"병년아, 너만 너의 인생에 대하여 꿈을 꾸는 것이 아니란다. 나도 너에게 꿈을 꾼단다. 단, 내 꿈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준단다".


그제서야 이 말씀이 열렸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자의 특징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어요. 사랑하는 자에게 그렇다는 것이죠. 


사랑이 고난을 이기게 하고 고난속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지요. 고난은 이해할 수 업슨 불합리함이지만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있어요. 우리의 삶은 그분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사랑의 고백으로 일상을 바라보세요. 너무 멀리 보려고 하지 마셔요. 보이지도 않아요. 너무 큰 꿈을 꾸려고 하지마셔요. 큰 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셔요. 그러면 하나님이 꿈을 주셔요. 


아이들에게 꿈을 가르치세요. 하나님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세요?. 저희 가정과 교회는 매일 성경으로 묵상을 해요. 그날의 매일성경 묵상적용점이 가정, 교회, 나라의 지도자 이름을 적고 기도제목을 적으시요 였어요. 

우리 아들이 가정-우리아빠-잘하고 있다, 교회-김병년목사-잘하고 있다, 우리나라-박근혜대통령-기도가 많이 필요하다. 얼마나 경건합니까?.


어느 토요일 아침이어요. 일어나라고 하니가. 아들만 일어나요. 

"아빠, 우리집에는 왜 남자만 일을해?. 가슴아픈 질문이지요. 

"그래, 우리 도망갈까". 

엄마는?. 아들이 심각하게 물어요. 

"버릴 수있는거야". 


쓸데없는 소리하지마요. 엄마의 남편은 아빠고, 아빠의 아내는 엄마예요. 죽을 때까지 엄마돌봐요. 

아들이 부부가 무엇인지알고 있어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요.




십자가 능력, 보배(-4. 코스타 강의)

2014년 7월 3일 오전 6:51

'내가 수치를 당하리라' (에스겔24:16).


에스겔이 말씀을 받는 날 하나님이 말씀하셔요. "에스겔아, 너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번 쳐서 빼앗으리리 너는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말며 죽은 자를 위하셔 슬퍼하지 말고 조용히 탄식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지 말고 사람이 초상집에서 먹는 음식물을 먹지 말라".

말씀을 전하고 돌아오니 아내가 죽어요. 하나님이 말씀하셔요. 초상집을 만들지 말라.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설명하십니다. 왜 초상집을 만들지 말라는지. 


저도 물었어요. 왜요. 

병년아 너 아내가 아파서 아프지?. 네라고 저는 대답을 드렸어요. 

그러면 내 아내는 누구냐?. 예, 하나님의 아내요. 교회지요. 

그러면 아내로부터 버림받은 나를 위해서 울어주는 사람은 없냐?. 


"내 성소는 너희 세력의 영광이요 너희 눈의 기쁨이요 너희 마음에 아낌이 되거니와 내가 더럽힐 것이며 너희의 버려둔 자녀를 같에 엎드러지게 할지라".(겔24;21).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히며, 하나님이 자기의 자녀들을 버려둘 것이라고 하셨다. 한마디로 수치를 당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5년째 공영방송 어느 프로그램에서 출연을 요청받고 있어요. 저와 같은 사람을 초청해줘서 고맙지요. "왜 저를 불러요". 담당피디가 교체될 때마다 묻지요. 그러면 동일한 대답을 들어요. "한국교회가 어렵고, 큰 교회들이 어쩌고 저쩌고....". 일단은 큰 교회도 큰교회지만 작은 교회도 마찬가지이지요. 마지막으로 담당피디들이 하는 말이 있어요. "한국교회의 이미지를 조그 바꿀 수 있습니다"고 하셔요. 

그러면 저의 답은 이것입니다. 교회의 이미지로 방송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인의 변화된 삶으로 바뀝니다. 제가 출연하면 저의 이름이 유명해지고, 제가 쓴 책이 조금 더 나가고, 우리교회로 떠돌아다니는 성도들 몇몇이 오겠지요. 그게 끝이랍니다. 

저의 대답은 동일합니다. 왜 제가 거절하는 줄 아셔요. "지금은 수치를 당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부흥을 부르짖을 때가 아니고 자기 눈을 찌르고 자기 자녀들을 더럽히는 하나님의 자기 수치를 견딜 때입니다. 

지금은 능력의 하나님이 아니라 수치의 복음을 들고 서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어느날 하나님이 이 수치를 다 거두어주시는 날, 우리는 웃을 것입니다. 교회의 삶도, 가정의 삶도 거룩함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에게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함이라". 우리가 주인공이 아니어요. 그분, 십자가가 주인공, 능력이어요. 


사랑하세요. 그러나 주인이 되지는 마세요. 

가족을 사랑하세요. 그러나 주인은 되지 마셔요. 

세상을 사랑하셔요. 그러나 주인 노릇하지 마세요.

교회를 사랑하세요. 그러나 주인노릇하진 마셔요.




코스타 강의안(고통) 김병연 목사 강의안 


선택식 강의 - 바람불어도 좋아!.(고통중과 함께 사는 법) 

2014/07/02,03. 시카고 코스타

본문 : 시편78;38-39


"오직 하나님은 긍휼이시므로 죄악을 덮어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쏟아내지 아니하셨으니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 


제가 맡은 강의는 의미가 너무 강렬해서 감당하기 어려워요. 


[고통과 함께 사는 법]. 


너무 주제가 선명해서 강의 들어오고 싶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래도 많이 들어오셨네요. 실제는 저는 제 자신이 병에 걸린 것이 아니고 아내가 병에 걸렸기 때문에 엄격하게 말해서 제가 환자와 살고는 있지만 제 자신의 고통이 아닐 수 있어요. 본인이 겪는 고통과 고통을 겪는 사람을 돌보는 것 사이는 다르지요. 환자를 돌보다 보니 어느새 10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내가 견딘것이 아니고 시간이 나를 이곳까지 데려왔다. 


그래서 난 고난이 축복이다는 말을 싫어한다. 이런 말들이 고난 받기 전에는 그러려러니 했지만 실상 고통에 들어가니 정말 싫었다. 누가 고통을 축복이라고 할까요? 고통을 위장된 축복이라고 하면 아픔은 사라져요. 축복을 받기 위해서 고통을 참으시겠어요. 다시 말하지만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 


오죽했으면 인생을 생로병사라고 했을까. 인생자체가 늙고, 병들고, 죽음이라고 했다. 이런 과정 자체를 사람들은 고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들이 다 겪는 일들이니까.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걸리지 않은 병에 걸리고, 사고를 당하고, 아픔을 겪는 것을 고난이라고 한다. 인생의 과정 자체가 연약함인데 병들지 않을 수 있을까. 감당할만한 질병은 호들갑을 떨지 않으면서 고칠수 없는 암을 만나면 엄청난 좌절을 겪는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 있을까. 바람은 늘 분다. 공기의 흐름인 바람이 늘불지만 사람들은 이 바람을 인생의 고통, 불현듯 찾아오는 고난을 바람이 분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을 바람이라고 한다. 바람이 늘 불듯이 하나님의 임재가 끊어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바람이 보이지 않듯이 하나님도 보이지 않게 역사하신다. 성경은 하나님의 임재를 바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래서 인생에 부는 고통의 바람은 싫지만 그 고난의 바람을 타고 오시는 하나님은 좋다고 표현한 말이다. 


A.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선생님의 시에서 따온 표현이다. 

흔들리며 피는 꽃이다.

 인생을 꽃을 피우기 위해서 다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어야 한다. 

여러분은 하나의 꽃입니다. 이 꽃은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고 바람에 꺾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상해도 꽃은 피는 것이죠. 


제가 너무 낭만적으로 아픔에 대하여 접근하고 있지요. 그러나 실상은 아니어요. 저의 삶을 봐도 마찬가지여요. 아내는 두번에 걸쳐서 큰 고통을 겪고 있어요. 한번은 뇌경색으로 쓰러졌고요. 두번째는 화상을 입어서 다리를 잃었어요. 


1) 내일이 닫힐 때 - 다이어리/느림/미래에서 오늘로.


아내가 아프고 난 후에 제 삶의 가장 큰 변화는 다이어리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정이 필요없었다. 언제나 똑 같은 일들로 가득찼으니까. 일정을 세울 필요가 없다!. 

삶이 느려졌다. 혼자서 빨리가던 길도, 이제는 천천히 아내를 생각하며 가야했다. 환자를 태우고 달릴 수 있는 일상은 없다. 내 삶의 무게중심을 뒤로 당겼다. 

일정도, 속도도 없으니 당연히 삶의 시제가 현재로 옮겨왔다. 이전에는 미래를 위해서 준비하던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아내를 돌보는 것이 대부분이다. 오늘을 사는 것이 삶이 되었다. 


2) 가시에 꽃이 핀다 - 사고의 전환/하나님이 가시다


고난은 생각하게 만든다. 환자는 다 신학자가 된다고 했다. 생각하게 된다. 고난은 삶을 보는 눈을 아주 근원부터 따지게 만든다. 왜?라는 질문을 달고 산다. 질병의 원인과 과정을 따진다. 습관적으로 남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생각하며 따진다. 

가시와 장미꽃은 한몸이다. 사람들은 이 둘을 분리하려고 한다. 불가능하다. 삶을 보는 눈이 열렸다. 하나님이 만들었다. 붙여 두셨다. 과정으로 이해를 해야 한다. 

시지어 하나님이 인생을 찌르시는 분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꽃만 주시지도 않고 가시도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삶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3) 상한 갈대처럼 - 약해짐/슬픈 일상/


뇌경색을 입고 4년, 그리고 다시 화상을 입었다. 다리를 잃었다. 존재의 모습은 자꾸 일그러지고 상해서 깨진다. 아내의 체형이 변했다. 도저히 보기 어렵다. 

그러나 살아있다. 숨쉰다. 호습이 생명이다. 몸이 아니다. 약하고 부셔지기 쉬운 몸이 아니라 생명은 호흡을 통하여 수명을 잇는다. 능력을구할 일들이 없다. 환자도, 의사도 약을 먹이라고 권면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보호자들의 판단으로 거부하였다. 


연약함을 수용하면 눈물, 슬픔이 찾아온다. 슬픔은 도저히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일들속에서는 잘 안 나타난다. 약함은 인간이 수용하는 방법이 눈물이다. 아무것고 할 수 없는 적막감이 몰려온다. 


도종환 선생님은 이 시를 다 같이 읽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B. 천천히 함께 걷는 길


아픔이 제게 준 가장 큰 변화는 인간에 대한 이해이다. 고통을 통하여 나의 숨은 인격이 드러났다. 나의 분노, 외로움, ...등 은밀한 것들을 드러나게 하였다. 


4) 나도 인간입니다-성적인 유혹/친밀함에 대한 욕구


목회자에게 금기사항이 있다. 성적인 유혹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사람일거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목사님은 그렇게 해주지 않기를 바란다. 유혹 자체를 인정하지만 그 유혹에 걸려넘어지지 말기를 바란다. 


부부의 그리움은 성적인 연합이다. 성적인 연합은 부부만 누릴 수 있다. 수없이 잦은 자위행위를 하며 지나간다. 이 시간동안 나는 나를 이해하였다. 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정죄라는 것을. 

그러나 이 욕구가 바로 나를 새롭게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하였다. 친밀함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졌다. 


5) 좀 울게 내버려다오- 감사라는 폭력/자연스러움/ 


자원하지 않는, 아픔이 끝나지 않은 사람에게 감사는 폭력이다. 감사를 함으로 하나님을 조종하려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다. 그것도 비교해서 감사한다. 비교할 때 나보다 못한 사람하고 비교해서 감사한다. 이런 감사는 다 조건적인 감사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울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소연하게 하고, 불평하고, 하소연 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이것을 거세하는 신앙은 믿음이 아니라 인간성을 파괴하는 괴물이다. 

난 아직도 사건자체를 감사하지는 못한다. 사건이 주는 의미는 감사한다. 


6) 돈없어도 살아요-간병비/공급하심/나눔


아내를 간병하면서 들어간 돈은 무려 3억 5천만원이 넘었다. 하나님은 매달 채워주셨다. 그러나 최근에 경제사정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10년동안 채워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여기까지 아내를 돌볼 수 있었다. 

간병비를 잘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환자를 돌보는데 가장 안정되어야 하는 것은 집이다. 그러나 나는 집이 가장 불안정하다. 전세금 이자내기도 바쁘다. 

나에게 필요를 채워주시지만 하나님은 동시에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돕게 하게 하신다. 우리의 인생은 마치 파이프와 같다. 은혜를 흘려보내는 통로이다. 이동침대를 교환하게 하였다. 도서비를 후원하게 하였다.


C. 그날까지 


7) 임마누엘-항상 함께 하심/아내의 언어를 배움


질병속에 가장 어려운 것은 함께 머무는 것이다. 변화지 않는 상황을 견디는 것이다. 사실 아내를 돌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아내와 함께 있는 것이다. 아내가 움직이지 못하기에 움직이는 남편이 곁에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건강한 욕심많은 남편이 그자리에 머무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아내를 움직이기로 했다. 아내를 데리고 커피숍에 간다. 아내의 친구를 만나러 간다. 대학교 때 가르쳐준 선생님들을 만나러 간다. 아내와 함께 할 수 있는 장비를 만들고 공간을 만들었다. 이렇게 하자 아내는 환자에서 관계를 맺는 인간이 되었다. 아내의 언어를 배운 것이다. 


8)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언약/죽음에 대한 그리움/신실하게 진실하게


삶은 언약이다. 하나님과 언약이고 배우자와 언약이고 교회와 언약이다. 이 언약을 결혼할 때는 잘 몰랐다. 그러나 여기에 엘리자베스 악트마이어 가 쓴 언약의 의미가 있다. 


나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당신과 함께할 것입니다. 당신이 내일 소경이 된다고 할찌라도 나는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당신이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서로 싸우며 화낼 때가 있지만 금방화해 하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아무러 희망이 없는 것 같을 때, 당신을 이해하고 관계를 정상으로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결혼생활이 지루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을 때, 관계를 개선할 수 있음을 믿고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는 말씀이 주는 고달픔이 싫었다. 성적인 면에서도 순결하고 정서적인 면에서 순결하도록 요구하였다. 


9) 하나님의 전능-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전능/십자가의 능력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당할 때 사실은 하나님의 성품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 '없는 것도 있게 만드시는 하나님'. 소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믿음 때문에 더 고통을 당한다. 하나님이 고쳐주시면 되는데 안고치신다. 능력있는 분이 치료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고통 가운데로 임하신다는 것이다. 십자가가 그것이다. 내게 있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전능하심은 만물을 만드시는 창조의 순간과 만물을 회복시키는 마지막 부활의 날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내가 사는 동안의 전능하심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능력의 의미에서 전능하심이 아니고 십자가 사랑의 전능하심이다. 고통당하는 죄인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죽으시는 사랑의 전능이다. 고치지 않아도 이 사랑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D. 끝내는 말(Concluding Remark)


고통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품는 것이 삶이다. 품는다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일상을 살아간다. 이 일상의 삶에 가장 잘 적응하는 사람들은 어른들이 아니고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지금을 살아가는 지혜자들이다. 어른들은 간병을 걱정할 때 아이들은 엄마의 침대로 장난감 놀리듯이 논다. 


고통중에 생명이 있다. 아픔을 느끼는 것도 생명이 있어서다. 고통을 통해서 생명의 질김을, 삶의 고단함을, 그리고 현재의 중요함을 깨닫는다




낯선길에선 익숙한 느낌 (신용환)

사람중에는 가보지 않은 길을 만드는 사람이 있고 

익숙한 길로 가길원하는 사람이 있다.


가보지 않은 길을 만드는 사람은 길이 없는 길을 길이 되게 하는데 필요한 사람이고 익숙한 길을 가는 사람은 만드러진길을 길스럽게?다지는 일에 필요한 사람이다


나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만들기를 즐긴다. 

하지만 아내는 익숙한 길을 가는 것을 즐긴다.


나는 오늘 아내와 가보지 않은 낯선 길에 가서 좋았다고... 아낸 익숙한 남편과 가보지 않은 길을 익숙한 느낌으로 갈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


함께함이 낯선 길을 익숙하게 만든다.


익숙한 길도 원래는 낯선 길이었고
길을 만드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만든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길에서 익숙함을 경험한다









KBS 대하드라마 < 정도전 > 50부작이 끝이 났다. 

종종 대하드라마 사극을 즐겨본다. 

드라마를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사극은 재미있다. 


우리 아버지도 사극을 좋아하셨는데 나도 어느 순간부터 

사극이 좋아졌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나 보다. 

이제는 동물의 왕국도 좋아 질려나 ...


처음 1부부터 오늘 50부까지 매주 마다 즐겨 <정도전>드라마를 보았다. 

잠시 세월호 사건으로 몇주 방영이 안되었지만...


고려의 멸망과 조선개국의 인물들을 들여다는 보는 것이 참 좋았다. 


◇ 정통사극 부활 이끌어…최고 시청률 19.8%

KBS '정도전'…600년전 정치판 오늘과 오버랩되며 인기

긴장감 넘치는 대본·연기자들의 호연 

어우러지며 정통사극 부활 이끌어



이 드라마를 보면서 몇가지 나에게 주었던 생각을 정리해보면 

이 드라마에서 < 정도전 >이라는 인물을 재평가를 하고 있다



오늘 <정도전>마지막 50부 아주 인상적인 대사를 남겼다. 

이방원은 "그대의 불순한 사상이 다시는 여기에 퍼지지 않게 할 것이오. 시신도 찾지 못하게 할 것이오"라고 말했고 정도전은 "손바닥으로 하늘이 가려진다 하더냐"라고 대응했다.

이어 이방원은 "손바닥 말고 다른 것으로 가릴 것이오. 포은 정몽주 말이오. 조선은 앞으로 포은을 숭상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너는 간신의 상징이 돼서 영원히 저주받게 될 것이니 당신이 만든 나라에서 영원히 편히 쉬지 못할 것이오"라고 말했다.

정도전은 허탈하게 황망한 웃음을 지으며 시조를 읊었다. 그는 "30년 긴 세월, 고난 속에 쌓아놓은 성. 정자 술 한 잔에 그만 허사가 되었구나"라면서 "방원아 기억하거라. 이땅에 백성이 살아있는 한 민본의 대업은 계속될 것이다"라고 마지막 말을 전했다. 이방원은 "그럼 잘 가시오"라며 정도전을 베었다.


죽음을 맞은 정도전에 정몽주가 나타난다. 

" 보은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 " 그래 자낸 할 만큼 하였네.. 이제 가세 ! "





1/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개국을 보여주었다. 

   아이들과 같이 보면서 한국의 역사의 변화를 알려줄수 있었다. 


2/ 이인임&하륜-최영&정몽주-이성계&정도전 그리고 이방원&하륜 으로 이어지는 권력의 변화를 통해서 시대마다 난세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옅볼수 있었다.특히 이인임과 정도전의 대결, 정몽주와 정도전의 대결, 이방원과 정도전의 대결과 같은 갈등구조는 새로운 변화의 시작점이 되었다. 


3/ 변방 동북면의 촌뜩기였던 이성계 곁에 있는 혁명가 정도전과 고려의 충신으로 기억되어 끝까지 의리?를 지켰던 정몽주는 역사가 기록하고 있는 인물의 두얼굴을 보여주었다. 두 친구의 우정과 갈등을 묘사하고 있다. 


4/ 이 드라마에서 갈등구조마다 등장했던 의미심장한 < 명대사들>은 오늘 이 시대의 리더십이 무엇인가?를 반영하고 있다

임금이 되려는 자의 자격은 무엇인가? 시대는 어떤 사람을 원하는가? 라는 이 질문에 이 드라마 작가는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던것 같다. 


5/ 기억나는 명대사는 " 사람은 부모를 닮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닮는다 "는 말과 " 임금은 듣고 참고 품는 것이다 "는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되어 있다. 


정도전이 이방원앞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마지막 50부에서 정도전과 이방원의 마지막 대사에서 


정도전 왈 : 대업은 니가 망친것이 아니라 내가 망친것이다. "


이방원 왈 : 삼봉대감 한가지 제안을 하겠소이다. 혹 지금이라고 이사람의 신하가 될 의양이 없으시오... 그대의 요동정벌 사병혁파 숭유억불 경농일치   민본 충농 민생  그 밖의 모든 것은 받아들이겠소 그러나 그대의 회괴망칙한 제상정치만을 포기하시오...  신하가 나라가 다스린다는 말은 버리시오 


정도전왈 :  " 제임금은 이씨가 물려 받았지만 제상은 능력만 있다는 성씨에 구애받지 않은다.. 이 나라이 모든 성씨를 합쳐서 뭐라고 하는 줄 아느냐 ? 바로 백성이다. 왕은 하늘이 내리지만 제상은 백성이 낸다. 제상이 다스리는 나라보다 왕이 다스리는 나라보다 백성에게 더 가깝고 더 이롭고 안전하다. 나라의 주인은 백성이다.


이방원 왈 : 그대가 생각하는 임금은 뭐요 ?


정도전 왈  : 임금은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 ... 이것이 너의 신하가 될수 없는 이유이다. 



6/ 이북사투리를 쓰는 이성계로 현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는 포인트이다. 그리고 자기 동생이였던 " 이지란"에게 왕인 이성계가 신하인 동생에게 " 나에게 성님(형님)이 라고 불러보라 "는 말에 이성계의 인간미가 느꼈진다.



7/ 고려의 불교의 세계관을 끝내고 유교의 세계관을 나라에 심으려하는 정도전의 노력을 옅볼수 있다한양 설계와 경복궁의 이름들에서 이 정도전의 노력을 볼수있다. 성문의 이름, 길거리의 이름, 궁의 이름들이 바로 이러한 유교의 정신을 담고 있다고 한다. 치밀하는 정도전의 노력이 한양의 설계에서 드러나고 있다는 놀라운 일이다. 


8/ 마지막 50부에 나오는 이방원의 왕자의 난의 장면과 오열하는 이성계의 모습은 아무리 조선을 세우는 영웅 이성계라도 가정을 다스리는데는 실패한 < 슬픈 아버지 >의 모습을 본다. 


    "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를 해도 "수신제가(修身齊家)를 못하면 끝이다. 

     조선왕조는 이러하는 슬픈 가족사를 만들고 있다. 

     나라를 세우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가정을 세우는 것이다. 

     나라의 대업보다 가정의 소업을 돌아보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왕의 자리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자리인지를 그 자라를 탐하는 이방원에게 말하고 있다. " 저 자리가 지옥 불구덩이 같은 자리다 " 

왕의 인간적인 고뇌와 고충을 옅보게 해주었다. 


이인임도 대사에서 " 자네는 용상을 탐하지 말게 자네에게 용상은 지옥이 될것이니 말일세 "....


작가의 대사의 재구성이 의도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대사들이다...



9/ 아마도 내 예상에 KBS 연말 연기 대상에서 남우주연상은 <정도전>역을 연기했던 조재현이 받을 것이고 이미 백상대상은 받은 것으로 알지만... 연기대상은 <이성계>역을 맡았던 <유동근>이 될것이다

그동안 대하드라마의 주연들이 상을 많이 받았던 전례에 따라서 


10/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문은 < 이성계>역을 받았던 <유동근>이 

왜? 목에 수건을 두르고 연기를 했느냐 ? 하는 것이다. 

건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역시 < 유동근>은 현대극보다는 사극이 더 잘 어울리는 연기자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 리더 >를 생각해본다. 

그리고 내가 사역하고 있는 사역의 현장 그리고 목회를 그려본다. 


예수의 복음이라는 대업을 이루며 예수 사명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예수의 메신저로써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목사의 소명과 사명을 비추어 본다. 

하나님이 부르시고 사용하시는 목사는 누구인가?

이 시대가 필요로 하고 이 시대의 성도들에 필요한 

목사가 누구인가?를 생각한다.








 

[ 요한계시록 바로 이해하기 ] - 이필찬 교수 초청 -

2014년 6월 17일(화) 아름다운교회 

LA 동부지역 교역자 협의회 








 제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은 2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먼저 제 강의과 책을 읽고 오시는 분이있고 아무 생각없이 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의 분들은 놀랍게 충격을 받습니다. 


원래는 월요일 화요일할 계획이었는데 오늘 하루만 강의하기로 했습니다. 

제한된 시간이기에 중요한것만 집어서 살펴보고 다루길 원합니다 

<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 원리를 중심으로 살펴 보려합니다 >




[ 영적 전투의 현장 ] 


먼저 < 요한 계시록 12장 >을 살펴보는데요. 12장은 요한계시록의 단면입니다. 


12장은 긴장감을 갖고 있는 본문이다.


1절-6절 : 등장인물(여인,용,그리고 여인이 나은 아이) / 적대관계(용과 아이)

7절-12절 : 용(+그의 추종자들)과 미가엘(+ 그이 추종자들) / 용과 미가엘 

13절-17절 : 용과 여자 / 용과 여자 


계속등장하는 용을 중심으로 파트너가 바꾸면 긴장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9절에 용은 < 사탄, 마귀, 옛뱀 >으로 해석해주고 있다. 특히 옛뱀은 에덴동산을 떠올리게 하고 에덴의 상황을 생각하게 한다. 

사탄을 등장시킴으로 적대적 관계 상황 긴장을 만든다. 이것을 영적전투라고 말한다. 

굉장이 우리의 직면한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12장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매일의 삶에 대한 것을 전달해주고 있다. 


[ 1-6절을 살펴보면 ] ============


  1. 여자에 대하여(1-2절)
  • 이적 (표적) : 어떤 사건이나 사실을 보여주길 위한 것이다. 
  • 여자 : 머리에 별이 12개 / 몸에는 해 / 발아래 달 ( 여자의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이미지를 관찰 )
  • 요한계시록의 언어는 그림언어이다. 
  • 해를 입는다는 것 :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시적인 표현이다. 
  • 이 여자의 의미를 알려면 구약의 도움을 받아야한다. 창세기 37장 9-10절에 요셉의 꿈을 통해서 알수 있다. 해(요셉) 달(요셉의 어머니) 형제들(요셉의 형제들) / 여자는 구약의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 해와 달 그리고 12별의 패키지는 바로 계시록과 창세기에 등장하고 있다. 서로 평행적 관계가 되고 있다. 
  • 2. 아들에 대하여 (5절) : 시2:9 / 시2:7 말씀에 대한 인용이다.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 / 아들은 예수님 / 이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마태복음 1장의 족보이다. 


[사66:7-8절의 해석의 중요성]

  • 여자가 아들을 낳았다 의미 : 사 66:7-8의 관계, 남자를 낳았으니 / 에르켄 후온아르센 (계12:5) 70인역을 보면 <에르켄 아르센 > 으로 바꾼 것은 < 아들 남자를 낳았다. >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 sonship의 의미를 갖고 있다. 
  • 시온은 여성이기에 <여자>의 의미를 갖고 있다. 여자가 남자를 낳는데 고통없이 낳았다. 하나님의 주도적인 역사를 보고 있다 
  • 하나님이 <민족을 순식간에 채울 것이다.?>... 그다음에 < 그러나 >가 아니라 <왜냐하면>으로 이해해야한다. 이사야는 메시야의 탄생을 말하고 있다. 문장이 의문문인데 이사야가 비전을 보고 확신을 갖고 말하고 있다. < 왜냐하면 시온이 아이들을 낳게 될 것이다. > 이러한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 종말에 임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를 채울 하나님의 백성 그리고 그 나라를 가져올 메시아를 말하고 있다. 
  • 메시아의 탄생 : 하나님 나라의 도래 + 하나님의 백성의 채워짐을 의미한다. 
  • <에테켄 휘온 아르센 >이라는 이 3단어로 구약의 성취를 말하고 있다. 

  • 2. 용에 대하여 (3-4절)
  • 용이 하는 일은 여자가 아이를 출산하면 삼키려고 기다리고 있다. 용이 여인의 출산을 방해한다.
  • 용의 모습 : 머리 일곱 , 뿔 10개 , 일곱 왕관...
  • 바로 이모습을 보고 이상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이 10개 나라가 바로 EU공동체를 가르친다. 
  • Historicizing interpretation (역사적인 사실과 연관시켜 해석하는방식) , 이러한 이미지를 역사적인 현상으로 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확실한 것은 구약적인 배경을 찾아가는 것이다. 역사나 현실의 상황보다 우선 보아야할 것이 바로 구약이다. 
  • 왜? 사탄을 용이라 했을까? 동양적 사고에서 용은 긍정적이다. 성경과 문화를 구분을 할 필요하가 있다. 절에 가서 땅밝기하는 사람들... <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대적했던 존재에 대한 이미지 >이다. 
  • 용의 구약적 용례 : 주께서 바다를 가르시고 용들을 깨뜨리셨다.(홍해사건-애굽의 군사들) / 애굽광 바로 = 큰악어라 (용)이라 / 구약에서 용하면 누구를 가르치느냐하면 애굽의 바로왕과 병사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바로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했던 애굽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이것인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 구약에서 구원사건은 바로 출애굽이고 신약에서 구원사건은 사탄에서 해방을 생각하고 있다. 바로 구약의 애굽을 용이라고 했던 이미지를 가지고 설명하는 것은 아주 훌륭한 방식이다. 
  • < 4마리 짐승  >: 넷째 짐승의 뿔이 10개, 셋째짐승 머리 4개이다. 
  • 열 개의 뿔 : 넷째 짐승의 뿔의 개수 / 입곱 머리 : 네 짐승이 머리의 수의 합 
  • 다른 짐승은 뿔이 없다. 뿔이 10개인것만 언급한 것이다. 다니엘 7장의 언급을 확인한 것이다. 
  • 머리는 당연히 있고, 뿔은 없을수도 있다. 나머지는 없지만 네 번째만 뿔이 10개이다. 
  • 그당시의 독자들은 < 다니엘서>를 즐겨 읽었다. 다니엘서 7장의 네 번째 짐승은 <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대적하는 존재 >를 의미한다. 4마리 짐승을 연상시킴으로 ... 
  • 바로 사탄의 의미를 강조한다. <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다. 
  • 사단이 예수님의 탄생을 방해하는 일이 있었다. 헤롯의 시대가 바로 그런 시대였다. 
  • 성탄절을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시즌을 보내지 말고 영적 전쟁의 현장으로 다시금 바꿔보고 세속적인 성탄의 분위기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영적 축하보다 영적 각성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3. 아들에 대하여(5절)

  1. 여자(이스라엘) 아들(예수님) ;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 ... 탄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다. 
  2.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서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다. 
  3. 예수님의 승천 : 요한계시록에서 <하늘>이라는 주제는 굉장히 중요하게 등장한다. 예수님의 탄생은 종말적 성취를 만들어 냈고 예수님의 승천을 통해서 완선을 의미했다. 예수님의 승천(예수님의 대관식)이다. 
  4. 사건의 결말(6절) :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




[ 요한계시록의 1260일 ] 

  1. 여자(교회)가 승천부터 < 1260일 >동안 광야에서 양육을 받는다.
  2.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을 보내심으로 우리와 함께하신다. 
  3. 여자? 예수님 탄생이전의 여자는 < 구약의 이스라엘 > / 예수님 탄생이후의 여자는 < 교회공동체 >
  4. 구약의 이스라엘이 신약의 교회로 성취된다. 영적인 이스라엘이며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 바로 교회이다. 

<백투예루살렘 >: 혈통적 예루살렘의 회복을 주장하는데 이것이 잘못되었다. 

  • 구약의 이스라엘은 샘플이고 그림자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어떻게 다루시는가? 예수님의 탄생으로 드디어 실체가 왔다. 
  1. 언제까지 ? 바로 재림때까지 이다. 
  2. 1260일은 ? 문자적인 의미가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이다. 여자와 아들과 같은 맥락에서 상징적 의미르로 이해해야한다. 
  3. 왜? 1260일이라는 숫자로 표현했을까? 구약의 말씀을 살펴보아야한다. 

[ 한때 두때 반때 ] ( 계7:25 단12:7 )

  • 3년반을 의미한다. 바로 1260일이다. 
  • 이 기간과 관련하여 2가지 컨셉을 본다. 1) 성도의 고난을 의미한다. 2) 종말을 본다. 이모든 일이 끝나리라 
  • 승천부터 재밀까지 1260일로 하여 이 기간이 종말이고 성도는 고난을 받는다. 
  • 요한계시록의 1260일은 종말이다. 초림은 종말의 시작이고 재림은 종말의 완성이다. 
  • 이 기간동안 성도들과 교회들은 < 광야 >에 머문다.
  • 광야? 하나님의 양육을 의미한다. 바로 출애굽 1세대를 생각나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의 삶의 정황과 교회의 삶의 정황과 연결시키고 있다. 
  •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요한계시록은 자체내에 가이드라인을 주고 있다. 그 원리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서 종말이 왔고 사단이 방해했지만 예수님의 승천을 통해서 종말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여자인 교회는 광야에서 양육을 보낸다.



요한계시록 1장 7절 에 <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 에 대한 오해와 이해 

  •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 현재형이다. 미래형이다. 아니다. 결론적으로 < 승천 >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 헬라어 현재형 : 현재, 미래를 나타낼 때 현재형을 쓰고 그리고 과거를 말할 때 현재형으로 말한다. 에오리스틱 현재형(역사적현재형)으로 이해한다. 헬라어에 미래형으로 되어있지 않다. 
  • 미래형이면 <재림>이고 과거형이면 <승천>이다. 사도행전에 예수님께서 구름타고 올라가신다. 현재형은 <성령님>이 오심을 의미하는데.. 2가지 가능성이 제일 많다. < 재림과 승천 >이 가능성이 많다. 
  • 오시리라 : 오고 있다. 미완료 과거 / 헬라어에서 현장성을 드러내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다. 
  • 2가지의 구약의 배경을 사용함 ( 계 1:7절과 구약의 비교 )
  • 단 7:13 : 구름타고 / 70인역에 보면 < 볼찌어다 >가 들어 있다. 구약을 사용할 때 맛소라와 70인역을 사용해서 구약을 이해하고 있다. / < 나아와 > = 오시리라 
  • 슥 12:10 : < 그를 위하여 >을 < 그를 인하여 >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 구약의 스가랴의 말씀이 반영되고 있다. 스가랴 <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 >이 계시록 < 각인의 눈, 땅에 모든 족속 > 이것은 구약이 신약으로 넘어올 때 유니버셜해진다. 신약은 구약의 제한된 대상을 뛰어 넘는다. 


  • 본문을 이해할 때 구약을 배경으로 이해해야한다. 
  1. 인자같은 이 ? 예수님에게 적용되고 이스라엘 백성을 가르치는 말이다. 단 7장 13절에 보면 < 내가 또 밤 환상중에 보니 인자같은 이가 ... > 다니엘서의 성도들은 < 이스라엘 >이다. 하나님이 인자같은 이가 나라와 권세를얻는 것을 보여주고 이방나라에서 회복시켜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니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권세와 나라를 회복시켜주겠다고 약속하신다. 하나님의 주권이 그 가운데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가? 1-6장은 네러티브와 7장이후부터는 환상을 통해서 <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회복시키는 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다니엘서가 후대전승으로 이어지면서 < 메시아적 전승 >으로 이어지고 있다. 
  2. 인자같은 이를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으로 적용하고 있다. 
  3. 이 구약의 배경을 보니 < 하늘로 가는 것으로 > 알수 있다. 바로 승천을 볼 수 있다. 
  4. 이것은 예수님의 승천은 대관식이다. 예수님은 왕으로 오셨지만 이땅에서 왕으로 대접받기를 거절하셨다. 그러나 승천하심으로 다시금 왕으로써 왕권을 온 만방에 선포하셨다. 예수님은 왕으로 등극하셨다. 나라와 권세를 얻으신 것이다. 
  5. 예수님의 승천 사건은 바로 예수님의 대관식이다. 
  6. 바로 이것은 요한계시록을 예수님의 승천중심으로 읽도록 하는 관점을 제공해준다. 


[ 구름타고 오시리라 ]는 것을 예수님의 승천으로 이해한다. 예수님의 재림의 이야기가 계시록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지상사역에 대해서 집중하고 있음을 기억해야한다. 

재림중심적인 신앙이 만든 폐해가 예수님 중심적 신앙의 이해를 방해할수 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이지 적그리스도의 계시가 아니다. 

요한계시록으로 이 당신의 성도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느냐?에 대해서 도전하고 있는 말씀이다. 오늘날에도 적용을 통해서 그것을 찾아 볼수 있다. 


요한계시록에 짐승이 있다면 한국교회안에는 < 괴물 > 있다. 

우리는 한국교회안에 있는 < 괴물 >을 보아야 한다. 


요한계시록의 선명성이 사라지도록 주변의 것으로 방해를 받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왜곡된 해석으로 교회들의 각성보다는 쓸데없는 두려움과 집착을 하게 만든다. 


재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재림은 예수님의 사역의 완성이다. 그러나 그것 중심으로만 계시록을 읽게 된다면 그 본질을 놓치게 된다. 


재림은 계시록 19장에 < 백마타고 오신다 >는 의미로 나타납니다. 

승천은 < 구름타고 오신다 >는 의미로 나타난다.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신약적인 작업을 한다. 사실을 가지고 신학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마가가 구름이 많지도 않은 팔레스타인에 그가 다니엘서의 내용을 기억하고 가져오는 작업을 한것이라고 할수 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을 읽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요한계시록 1장 3절 ]에 대한 이해 

  • 이 예언의 말씀 :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 왜냐하면 ) 때가 가까움이라 ... 
  • 읽는자들 / 듣고 그 가운데 기록하는 것을 지키는 자들 (서로 연결되어 있다. 복수로 되어있다.)
  • 요한계시록에서 듣고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계시록은 지키도록 주신 말씀이다. 황제를 숭배하지 않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도록한다. 


요한계시록은 <호기심>이 아니라 < 듣고 지키는 것>에 대해서 집중해있다.

우리는 예수님이 언제 재림하느냐?에 대해서 관심이 크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오늘 현재의 삶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에 집중한다. 


  • 예언 :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의 의미는 그것이 이상을 의미한다. 
  • 선지자들의 말씀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예언이 들어가 있다. 
  • 선지자들의 예언 : 창조주 + 구속주 이시다. 이 메시지가 출발점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 심판 + 회복 >에 대한 메시지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요한계시록을 <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집 >으로 비슷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믿는 분들의 잘못이 크다. 요한계시록은 <예언집>이 아니라 <말씀>입니다. 


[ 때가 가깝다 ] : 때가 온것일까? 안온것일까? 성경은 동양적인 사고가 있다. 때가 왔다는 의미이다. 

때가 찼고 =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 (막 1:15) : 평행법으로 사용되었다. 


복음 : 이사야에서 <복음들고 산을 넘는자들의 발>은 바벨론에서 해방을 의미했다. 바로 복음의 원조이다. 바벨론의 해방과 죄로 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해방의 때가 왔다.


  1.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 언제 오느냐 ? >에 대해서 우리가 논의할 문제가아니다. 
  2. < 언제 오느냐 ? > 보다 중요한 것은 < 예수님의 초림을 통해서 그 통치를 받으며 사느냐 ? >가 중요하다. < 오느냐 ? >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 왔는 것만이라도 잘 챙기자 > 
  1. 종말이 왔다는 것과 말씀의 순종이 복이 될까요?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실존을 경험하게 한다. 

하나님 나라가 이땅에 와있어요.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실존을 경험케한다. 

  1. 복이란 ? 아브라함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에덴으로 거슬러 간다. 복을 주신다. 
  2. 하나님 나라 = 하나님의 통치 = 하나님의 통치자 
  3. 종말은? 에덴의 회복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타락했다고 그 구속의 역사를 중단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성취를 계속하십니다.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신다. 

어떤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는가? 바로 < 순종 >하는 자에게 일어난다. 

이 시대에 종말의 때에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는데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일어났다. 


누구든지 < 그리스도안에 > 있으면 < 새로운 피조물 >

< 그리도안에 > : 새 창조 환경 / < 새로운 피조물 > : 새 창조의 결과 

이것이 종말적인 사건이다. 

교회는 하나의 창문이다. 이 창문은 작으냐 크냐의 문제가 아니라. 깨끗함의 문제이다. 




[ 요한계시록 4장 ] - 요한의 하늘 여행 : 보좌에 계신 하나님 - 

  • 계시록에서 하늘은 < 예수님의 승천 >과 관련한다. 구약에서 하늘은 인간이 범접하기 힘든 공간이다. 
  • <하나님이 하늘에 거니셨다. > : 페리파테오 ( 생활하다 ) / 하나님이 에덴에서 거니셨다. 하나님이 에덴에서 생활하셨다. 에덴이 거처를 닫고 하나님은 하늘에 거처하셨다. 구약의 백성들에게 하늘은 높고 높은 곳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늘을 갖고 오시고 하늘과 땅에 있는 것이 유니티트 되도록 하셨다. 
  • 우리가 이땅에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 예수님의 승천의 사건은 우리의 삶에 엄청난 삶의 변화를 가져왔다. 
  •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올바로 이해하고 의식화 하시는 것이 중요하다. 
  • 우리에게는 지식이 중요하고 삶이 변화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도 올바른 지식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계속 기억하고 되새기는 것이 중요하다. 
  • 1-3장 (서론) 4-16장(본론) 17-22장(결론) 
  • 4장은 본론의 도입이다. 
  • 성경에 < 하늘이라 곳은 어떤 곳인가 >
  • 하나님은 뜻을 정하시고 ... 주기도문에서 <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 
  •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그 뜻을 정하고 이땅에서 실행하신다. 
  • 놀랍게도 4장부터 < 기도 >가 많이 나온다. 
  • 하나님의 뜻을 정하시고 < 성도의 기도 >를 사용하신다. 창조때 그렇게 우리의 인간을 하나니의 형상으로 지으심으로 결속시키셨다. 
  • 하나님의 형상 : 모양뿐만아니라 성품이 있다. 하나님의 속성을 주셨다. 하나님의 속성은 자유롭게 스스로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만드셨다. 바로 그것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 선악과 >이다. 
  • 선악과 : 인간을 존귀하게 여기느냐 ?에 대한 하나님의 사람의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다른 피조물을 특별하게 대우하신다. 
  • 바로 이런 것을 신학적으로 언약적인 관계로 이해한다.
  • 기도는 회복된 인간으로서 마땅한 창조명령이다. 기도는 응답의 문제가 아니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 4장과 5장은 하나님에 대한 소개이다. 
  • 요한은 하늘을 소개하면서 가장 보고 싶어하는 것은 < 보좌 >였다. 보좌는 통치이다. 
  • 하늘의 의미를 전달하고 싶은데 그 것은 < 보좌 >을 드러낸다. 
  • 요한계시록과 주기도문의 연결을 이해한다. 
  • 하늘의 계신 우리 아버지 하면 우리는 멀게 느껴진다. 하늘은 < 통치 하시는 하나님 >을 의미한다. 하늘은 공간적인 이해가 아니라 심리적 이해가 필요하다. 
  • 승천은 공식적인 세레모니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나타나셨다. 


  • < 마침내 들어가는 하나님 나라 > 톰라이트 ( 강추 ) 

바울이 < 나타난다 >라는 말을 많이 썼다. 구름타고 오는 것이 아니다. 부활하셨을 때 예수님은 이미 하늘의 영역에 들어가신 것이다. 

하늘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공간이 아니다. 


[ 하늘/ 보좌에 대한 비전 ] (2b-3절)

  • 보라에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놓여져 있고 ) 
  • 앉으신 이의 모양에 벽옥과 홍보석 같고 : 앉으신 이가 그 보임에 있어서 벽옥과 홍보석 같고 
  •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 무지개(하나님의 신실성) 
  • 보석 ? :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모티브, 에덴동산과 성전에 자주 등장한다. 


[ 24장로 ] (4절)

  • 24보좌 / 24장로 
  • 흰옷을 입음 : 천사들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에게 적용된다. 계 19장 8절에 <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 = 흰옷 >을 의미한다. 
  • 면류관을 쓰고 있다. 
  • 24? 12+12 / 12라는 숫자를 떠올린다. 약속의 구약의 백성 + 성취로써의 신약의 백성 
  • 보좌에 계신 하나님의 신분과 동질성을 갖고 있다.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하나님과 같은 존재처럼 되길 원하셨다. 

창세기 6장에 < 타락한 인간의 형상 >이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보좌앞에서 하나님의 통치에 동참하는 자들이다. 

이러한 일이 예수님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엡 2장 5-6절에 < 바울이 말하고 있다. > :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 구름타고 오시는 이 ]가 바로 여기서 < 예수님의 승천 >을 의미한다. 


[ 번개/음성/뇌성과 일곱영 ](5절) 

  •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갖고 있다. 
  • 구약 배경 : 시 18:7-14 

진동하고 .. 뇌성을 ... 번개로... : 심판을 나타내고 있다. 시내산에서 등장했던 것을 시편에서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패턴을 5절에 나타나고 있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심판이 하늘에서 결정이 된다. 

  • 번개/소리/천둥의 변화와 존재 위치 : 공통점 7번째 일어난다. 

< 인 / 나팔 / 대접 > 7번째가 같은 현상으로 끝난다. 이것들의 관계가 

이 관계가 < 인 - 나팔 - 대접 > 이런 관계인가? 21번의 이야기가 아니라 7번 한번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관계는 똑같은 기간을 3번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기간이다. 


  • 예수님의 사역을 한번에 설명할수 없기에 복음서가 필요하듯이 종말에 대해서도 같은 사건을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 
  • 심판에 대한 정황이 있고 심판의 대상이다. 
  • 심판에 대해서 문자적으로 이해하지 말아야한다. 구약적인 배경을 갖고 이해해야한다. 
  •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고엘 사상 : 기업무를자, 피의 복수, 형사취수제 이것은 < 에덴적 모티브 >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이 땅의 주인이고 인간의 주인 이시다. < 땅과 사람 >에 대한 것이 훼손이 일어난다. 이것이 원래대로의 원칙대로 돌이키는 것이 < 고엘 > 사상이다. 
  • 나는 너의 구속자이다. < 나는 너의 고엘 이다 > 바로 출애굽기 6장에 나온다. 여기에 피의 복수가 나온다. 애굽의 장자가 죽었다. 가나안땅의 원래주인은 하나님인데 그땅에 가나안족속들이 차지하기에 <고엘>로서 심판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의 심판의 메시지로 연결되어 있다. 
  • 계시록 11장 < 땅을 망하게 하는자 > : 망하게 하다 더럽히다. / 하나님의 백성을 노예처럼 취급을 받고 버림을 받게하셨다. 하나님이 이땅을 새롭게할 때 이들에 대한 심판이 필연적이다. 

[ 네 생물 ](6b-8절)

  • < 사자/송아지/사람/독수리 >의 공통점 : 대표성이다. 모든 피조물을 대표한다. 
  • 왜? 4개인가 ? 사방에서 온다. 이것은 우주적인 숫자이다. 팔방미인(방은 방향이다. 사방팔방의 의미, 모든 것이다. ) 모든 것을 포함하는 우주적인 것이다. 사람이 숫자이다. 
  • 이 4생물이 어디를 대표하나 ? 하늘에 있다. 이 피조물은 하늘에 만들어 졌다. 
  • 피조물이 보이지 않는 하늘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언제가는 하나님의 의해서 새롭게 된다는 2가지 의미를 갖고 있다. 
  • 이것은 < 플라톤의 이데아 > 사상과 비슷하다. 플라톤의 자기의 사고로 만물의 근원을 이해했다. 만물의 근원이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플라톤은 이 세상은 악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 성경은 원래 선했지만 악해서 선하게 변하게 될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격적인 하나님에 의해서 선하게 창조되었다고 생각해야한다. 
  • 피조물은 원래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대로 새롭게 될 것이다. 
  • 히브리서 11장 <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에 의해서 새롭게 될 것이다. > 
  • 우리에게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은 것에 의해 말미암는다는 것을 아는 지식이 축복이다. 
  • 8절-9절 :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찬양과 예배 
  • 10절-11절 : 면류관을 보좌앞에 던지며( 개역개정 - 드리다 ) / 헬(발로) / 고대 근동의 문화배경은 정복당한 왕이 정복한 왕에게 면류관을 던졌다. 주권이양이다. < 면류관 가지고 주앞에 던지세 > / 공손하게 드린다는 것이 아니라. 던지는 것이 맞다.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다. 
  • 주께서 만물을 지우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어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 섭리 / 하나님은 창조하시고 간섭하신다. 
  • 4장의 주제 <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신다 > / 하나님 만이 통치자 이시다. 이 세상을 하늘의 관점에서 보아야한다. 
  • 바로 이점에 요한이 강조하는 것이다. 




[ 5장의 주제 : 누가 책의 인을 뗄것인가? ]

  • 보좌에 앉으신 이 ( 하나님 ) / 오른손 ( 하나님은 오른손잡이다? / 왜? 오른손일까? 하나님을 주권을 의미한다. 보좌와 오른손은 하나님의 통치 주권을 의미한다. ) 
  • 책 ( 두루마리 보다 책이 좋다 ) 
  •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 책은 인이 떼어져야하고 그 인을 뗄사람이 중요하다. 
  • 책의 인을 뗄자가 없어서 내가 크게 울었다. : 책이 인이 떼어져야한다는 필요성을 독자들에게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다. 
  • 책의 인을 뗀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 역시 구약을 살펴보아야 한다. 

단 8장 17절-19절 / 26절 : 끝에 관한 것이다... 그 이상을 간수하라. ( 적어야 간수할수 있다.)

단 12장 4절 / 9절 :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이말은 마지막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하라. ( 기록을 해서 항아리에 봉하고 간수하라 ) 


이 말은 물리적으로 간수하고 봉함하라. 의미는 아닐 것이다. 마지막때까지 라는 말에서 알수 있듯 ... 마지막때에 오픈된다고 말하고 있다. 


다니엘서에서 < 하나님의 말씀 > + < 환상 > = 하나님의 나라 

다니엘서 2장 44절에서 < 느브갓네살 왕의 꿈을 통해서 보여진 하나님 나라 >를 말한다. 

 

< 누가 하나님의 나라를 도래케할것인가 > 


5절 :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 예수님 )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세상이 보면 예수님은 철저하게 패배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로 이기셨다. 


6절 : 보좌/네생물/장로들 (하늘의 정황) 어린양 일찍(이미) 죽음을 당한 것 같더라(죽음을 당한 어린양과 같은 모습) / 

  • 사자와 어린양이 양립할수 없는 존재가 예수님이라는 한 인격속에 존재하고 있다. 구약적인 이미지대로가 아니라 죽음을 당한 어린양으로 오셨음을 의미한다. 
  • 예수님의 십자가가 예수님의 승리의 원인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가능하게 되었다. 
  •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의 탄생으로 오게 되었고.. 여기에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루게 되었다,
  • 왜 ? 탄생이 아니고 죽음인가 ? 이겼기에 십자가의 죽음이다. 
  • 이 패턴이 로마의 압제에서 순수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삶의 패턴을 제공해준다. 
  • 로마 제국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예수님처럼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유대인 역사에 < 마카비 왕조 >는 처음 동기는 좋았다. 그러나 후에는 순수성을 잃어 버리다. 


십자가를 통해 쟁취된 승리가 진정한 승리이다. 이점에서 주된 쟁점은 < 누가 책의 인을 떼기에 합당한가? > 예수님이 바로 그 분이시다. 


9-10절 : 새노래를 노래하다. 


  • 새노래 : 옛노래가 있기에 새노래다. 옛노래는 모세의 노래이다. 홍해 건널 때... 요한계시록 15장에서 < 모세의 노래 / 어린양의 노래 > ... 유리 바다를 어떤 바다를 비교합니까? 홍해바다 ... 
  • 성도들이 하늘에서 유리바다에서 어린양의 노래를 불른다. 
  • 홍해바다의 노래가 옛노래이다. 
  • 이것이 일종의 예배의 형태이다. 요한 계시록에서 < 예배란 무엇인가 ? >의 정의를 얻을수 있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우리의 마땅한 반응이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것에 대한 것에 대한 우리의 마땅한 반응이다. 
  • 매일 매일 승리하는 삶을 살고 예배는 구원에 대한 감사를 드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교회는 문제는 실패하고 와서 드리는 예배가 되었다. 교회는 승리에 대한 노래가 울려 퍼져야한다. 교회는 실패한 우리들이 위로를 받고 싶어한다. 우리는 일상의 삶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치열한 싸움을 싸워야한다. 
  • 오늘의 교회는 죄에 대한 고백보다 승리에 대한 고백이 되어야한다. 


2장-3장에 < 칭찬과 책망 > 나온다. 예수님께서 일곱교회를 어떻게 다루시는가를 보아야한다. 좋은 교회는 빌라델피아이고 나쁜 교회는 라오디게아이다. 칭찬이 먼저나옵니까? 책망이 먼저 나옵니까? 칭찬이 먼저 나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태도는 바로 칭찬부터 먼저이다. 

구약에서는 다르다. 책망부터 나온다. 신약은 다른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은혜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바꿔가야한다. 

  • 새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고 : 고엘사상이다. 노예상태였다는 것 알수 있다. 사서(헬 아고라조) 70인역 (뉴트로) / 구속하다는 말의 원래는 뉴트로인데 ... 아고라조라는 말을 썼는데.. 그당시에 상업적인 용어이다. 그당시에 노예를 사고 팔때에 사용했던 용어였다. 
  • 이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시대의 노예상태였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 출애굽의 애굽의 노예와 로마시대의 노예상태 그리고 죄의 노예상태에 있는 것이 서로 연결된다. 

< 왕같은 제사장의 신분 >은 원래 아담에 부여했던 신분이었다. 

  •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 바로 아담적 신분을 회복시키셨다. 
  •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 
  • 지금 신분의 회복이 일어났다. 이것은 십자가의 사건의 결과이다. 구체적으로 나라와 제사장의 신분을 갖게 되었다. 왕노릇하게 되었다. 
  • 이 논리는 왕노릇의 경험은 미래적인 경험이 아니라 현재적이 경험이다. 
  • 헬라어에서 미래형은 < 반복된 현재 >를 말할 때... 사용한다. < 의지 미래 > 




[ 요한계시록 6장 ]


5장 : 누가 책의 인을 뗄거인가? 어린양

      책의 인을 뗀다는 의미 ? 종말의 도래 하나님의 도래 ( 구약 : 구원 과 심판 ) 

      구원(이스라엘) 심판(이방나라) 


두루마리가 있는데 7개의 인이 다 떼어져야 열리는 것 같은데.. 하나 인이 떼도 열려진다. 

심판은 종말의 도래의 결과이다. 

요한 계시록은 표현에 있어서 직관적이고 분석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 


6장 ; 심판과 구원에 대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두 개의 축이 < 성도들의 기도 >와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 땅끝의 의미가 무엇인가 ] : 땅끝까지 갈려고 한다. 선교사님들이 여전히 고민중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중에 임했다. 종말이 왔지만 아직 완성이 안됐고 (실현된 종말 아직 완성은 안된 종말) / 하나님의 통치는 시작되었지만 통치는 완성이 안되었다. 


[ 너희가 본 모습 그대로 오것이다 ]는 의미 : 바로 왕의 모습 그대로 오신다. 


이스라엘과 교회가 무엇인가?

백투예루살렘이 무엇인가 ? ( 성경해석학 교재로 사용하면 좋겠다. ) - 이필찬교수-




[ 요한계시록 19장 - 20장 ]에 대해서 - 최후의 심판 -

  • 요한계시록의 결론 부분이다. 
  • 4장-16장 <본론>- 4~5장 / 6-16장 
  • 7장-22장 결론 

17장-19장 : 바벨론 / 19장-20장 : 두짐승 용 ; 요한계시록의 악의 축이다.


  • 바벨론(로마제국) / 첫째 짐승(로마황제) / 둘째 짐승(제사장) 
  • 용(사탄) : 이 악의 시스템을 배후에 조정해서 교회를 멸절시키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 13장 4절 <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 : 로마제국의 황제가 얼마나 포악하느냐 ?를 말하고 있다. 
  • 쿼바디스에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있다. 
  • 이것이 요한계시록의 악의 세력의 판도이다. 
  • 이것이 요한이 살고 있는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 하나님이 말씀을 주실때는 말씀을 주시는 환경속에서 주신다. 
  • 이러한 악의 세력의 피의 심판을 받는다. 겉으로는 이런 악의 세력에 지배를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이 악의 세력의 구체적인 대상들을 멸절 시킴으로써 이루어가신다. 이것이 바로 고엘 < 피의 복수 >이다. 


21장에 바로 < 새하늘과 새땅 >이 나온다. 


[ 최후의 심판 / 20장 ]


1-3절 / 4-6절 /7-10절  


[ 1-3절 ]에서 < 용의 심판 > 

[ 4-6절 ]에서 < 성도들의 왕노릇 >

[ 7-10절 ]에서 < 용의 영원한 심판 ]


이 심판이 언제 일어나는가?에 관심이 있다. 이것은 먼저 상징적인 묘사이다. 

  • 하늘오신 천사 

- 용=옛뱀-마귀요 사탄 

  • 용을 무저갱에 넣고 / 용을 결박하는데 큰 쇠사슬로 / 인봉하고 자물쇠로 잠근다. 
  • 이 내용을 문자적으로 이해해야 합니까.? 상징적으로 이해해야합니까?
  • 무저갱에 갖힌 대상이 < 용 >이다. 사탄을 상징하는 용이다. 
  • 사탄은 무저갱에 결박하는 것이 가능하다. 4번에 걸쳐서 사탄은 심판을 받는다. 
  • 두 번의 심판을 당했다. 
  • 사탄이 심판을 받은 것을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연결될수 있는 시점은 <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 / 초림, 재림 어디에 연결할수 있을가 > 이 것이 문제이다.
  • 이것은 상징적인 묘사이기에 < 사탄이 심판받은 것에 대한 강조 >이다. 현재 사탄이 활동하고 있음에도 사탄에게 주어진 심판의 정황을 설명하고 있다. 
  •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이 사단에게 치명적인 결가를 만들어 내었다. 
  • 사탄은 죄에 대한 권세를 빼면 아무 능력도 할수 없다. 그것으로 인간을 다루고 있다.


마 12: 29 말씀에 < 결박하지... 결박한 후에야 > 

사람이 먼저 강하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집을 늑탈하리라.

  • 강한자 : 사탄 / 사람 : 예수님 
  • 예수님을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 내는 것... 
  •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서 사탄은 이미 결박을 당했습니다. 


[ 천년동안 ] : 초림부타 재림까지의 상징적 숫자이다. 


  • 천년은 영원한 수 / 완전한 수 이다. 사탄의 심판을 영원성과 완전성을 말하고 있다. 
  • 천년 = 영원성 + 완전성 


7절 : 천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곡과 마곡 : 구약의 전쟁의 그림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다. 

구약에서 악의 심판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썼던 심판이다. 사단은 지금도 심판을 받았지만 마지막에도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4-6절 < 용에 대한 심판 > 


  • 내가 보좌들을 보니 ( 24장로 ) 
  • a ;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 
  • b ;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서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 a와 b를 같은 것을 볼수 있고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 
  • 헬 <카이>라는 말은 both a and b 라고 볼수 있다. 
  • 동격이든 아니든 < 성도들은 순교적 정신을 가진 공동체 >이다. 
  • 교회 공동체는 < 순교적 정신을 가진 공동체 >이다. 황제숭배를 거부하면 죽게 되어 있다. 그래서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 
  • 요한 계시록에서 교회의 모습은 가장 교회가 존재할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설정해서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교회의 본질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초림부터 재림까지 천년까지 < 사단은 무저갱에 결박되어 있다. >

교회는 이러한 천년왕국에 왕노릇하는 교회이어야한다. 


사탄은 현재 결박되어 있고.. 사탄에 의해서 부리는 짐승은 노예상태이다. 이것이 요한이 갖는 세계관이다. 성도가 왕노릇하기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이다. 


서정주 시인 < 왜? 견디지 못하고 변절했는가 ? > : 일본제국이 영원히 갈거라고 생각했다. 


휴거 갈 날만 기다리고 있고 < 적극적인 하나님 나라의 통치 >를 경험하는 것을 집중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 이미 우리는 첫째 부활을 경험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경험했다. 첫째부활은 영적이 부활이고 둘째부활은 몸의 부활이다. 
  • 첫째사망은 육의 심판 둘째 사망은 영원한 심판이다. 

계시록 20장 3절의 만국은 8절에서 곡과 마곡으로 설명되고 있다. 문자 그대로의 만국이 아니라 이 스토리에서의 만국이다. 





[ 천년설에 대해서 ]

무천년설 = 현천년설 (이필찬교수의 견해) 

초림 - 재림 : 천년왕국 / 사탄의 결박, 성도들의 왕노릇 

재림 이후 : 새하늘과 새땅 


  • 전천년설 : 천년왕국 전에 재림이 있다. 재림이후에 천년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문자그대로 천년이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전쟁이 일어나는데 물리적인 전쟁이 일어난다. 이 시대는 사단이 활동하고 있기에 1-3절을 이해할수 없고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전천년설은 다른 신약성경에서 하나도 지지하고 있지 않다. 


  • 전천년설은 성경적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다. 구약의 다윗의 왕국의 회복을 문자적으로 믿은 맥락에서 천년왕국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 이 시대는 임시적인 기간이다. 진짜중요한 것은 재림이후에 천년왕국 / 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1940년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것을 본다. / 그래서 이스라엘 선교를 해야한다. / 각처에 흩어진 유대인들을 이스라엘로 보낸다. )


[ 후천년설 ] : 초림과 재림사이에 어느 시점에 천년왕국에 일어난다. 천년왕국 후에 재림이다. 이것이 인기가 있었던 것은 대각성때에 인기가 있었다. 사람들이 각성되면서 이러다가 천년왕국이 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 요한계시록 ]에서 요한은 < 얼마나 이 세상이 녹녹치 않다고 말한다. >

성도가 당하는 고난에 대해 이해하는 것을 분명하게 말한다. 

요한계시록에서 교회의 정체성은 복합적인 것이 있다. 


[ 음행 / 음녀 / 가증한 것 ] :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대표하는 것. 

                            하나님의 권세를 넘보려는 모든 교만, 


신천지는 바벨론을 교회라고 본다. 요한 계시록의 모든 악의 세력은 기성교회이다. 

         신천지는 자기와 적으로 본다. 


[ 우주적 심판의 언어 ] : 별이 떨어지고... 파괴되고... 선지자들이 ... 하나님을 대적했던 이방 세력에게 주어지고 있다. 이것을 종말적인 결과로 사용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교회에 대하여 두가지 그림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승리하는 교회고 다른 하나는 전투하는 교회이다. 

이 두 그림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고 본래는 하나다.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HOW THE MIGHT FALL)

짐 콜린스(JIM COLLINS) | 김영사



세 계적 석학이자 경영의 구루. 그는 글로벌 베스트셀러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를 출간한 지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처참히 무너지고 소멸하는 '위대한 기업'들을 보고 큰 충격에 사로잡혔다. 


강하고 위대한 기업들은 왜 몰락하는가, 몰락을 미리 감지하고 피할 방법은 없을까,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맞기까지 기업은 어떻게 무너져 가는 걸까, 어떻게 하면 몰락의 길에서 벗어나 모든 걸 되돌릴 수 있을까?


이후 짐 콜린스는 연구팀과 함께 6,000년에 해당하는 기업역사를 5년에 걸쳐 철저히 조사, 분석하여 오늘날 기업에게 꼭 필요한 가이드라인과 해법을 밝혀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핵심인 '몰락의 5단계'이다. 몰락은 대개 스스로 자초한 것이며 회복 역시 스스로 이뤄낼 수 있다. 그러므로 몰락은 피할 수 있다. 몰락의 징조 또한 조기에 감지할 수 있다. 무엇보다 5단계까지 완전히 떨어지지 않은 이상 몰락은 되돌릴 수 있다. 4단계까지 추락했다가 부활해 이전보다 더욱 강한 회사로 거듭나기도 한다. 이 책은 이런 과정을 겪은 기업을 치밀하게 추적, 분석하여 몰락을 피하는 통찰력을 제시하고 비극적 운명을 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짐 콜린스는 1958년 미국 콜로라도에서 태어나 스탠퍼드 대학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HP와 매킨지에서 근무했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의 저자이자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의 공저자. 현재 콜로라도 주 볼더의 '매니지먼트랩Management Lab' 경영연구소에서 실천적 경영원리를 개발하며 〈포천〉,〈비지니스위크〉,〈이코노미스트〉,〈USA투데이〉,〈하버드비지니스리뷰〉등에 글을 발표하고 있다.


위에 나오는 대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베스트셀러의 저자이고, 이 책은 그의 후속작이라고 볼 수 있겠다.


https://medium.com (갈무리함)




서문 위대한 기업도 언제든 쓰러질 수 있다.


조용히 다가오는 파멸의 전조


몰락으로 향하는 정점 | 그 모든 변화와 혁신에도 불구하고...


몰락의 5단계


6,000년의 기업 역사는 말한다 | 강한 기업이 몰락하는 5단계 틀 

어두운 여행, 출구는 있는가


1단계 : 성공으로부터 자만심이 생겨나는 단계


자만의 폐혜 | 성공 원인에 대한 착각


2단계 : 원칙 없이 더 많은 욕심을 내는 단계


현실 안주보다 무서운 과다한 욕심 | 성장에 대한 과도한 집착 

팩커드 법칙의 위반 | 원만하지 못한 권력 승계의 문제


3단계 : 위험과 위기 가능성을 부정하는 단계


증거를 확인한 뒤 큰 투자를 단행한 사례 | 수면 아래의 위험 감수 

위험을 부정하는 문화


4단계 : 구원을 찾아 헤매는 단계


진정한 묘안 | 공포와 절망


5단계 : 유명무실해지거나 생명이 끝나는 단계


생존을 위한 투쟁을 포기한 사례 | 대안이 없는 지경까지 내몰린 사례 | 죽음을 받아들일 것인가, 희망을 놓지 않을 것인가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하는 이유


불타는 승강장에서 살아남은 기업들 | 포기란 없다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 (최은수 (매일경제) 요약)


위대한 기업도 장담할 수 없다


미국을 대표하던 158년 역사의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는 2008년 9월 15일 끝내 파산하고 말았다. 이 충격으로 세계는 전대미문의 경제위기에 휩싸였다. 미국 번영의 상징이었던 메릴린치는 끝내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팔렸고 만신창이가 된 패니메이와 프레디 맥은 구제금융을 수혈 받아야 했다.


잘 나가던 기업, 한 때 위대한 기업의 명성을 얻었던 기업들이 왜 이처럼 맥없이 무너지는 것일까.『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 』의 저자 짐 콜린스가 그의 최신작『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How the mighty fall) 』에서 이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세계적 경영의 구루로 추앙받고 있는 짐 콜린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업이라고 칭찬했던 11개 기업 가운데 8곳이 망하는 것을 보고 그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강하고 위대한 기업들이 왜 몰락하는지, 몰락을 미리 감지하고 피할 방법은 없는 지에 대해 5년에 걸쳐 연구를 거듭했다. 무려 연구팀과 6000년에 해당하는 기업 역사를 조사, 분석했다. 그 결과는 단 하나였다. 성공도, 실패도 모두 기업 스스로 자초한 것이며 회복도 기업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기업은 몰락의 징조를 어떻게 감지하고 미리 발견해 최악의 사태를 막을 것인가. 짐 콜린스는 ‘몰락의 5단계’를 알라고 조언한다.






몰락 1단계: 성공이 가져다 주는 자만심에 도취한다

 성공의 요인을 살펴보면 운과 기회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경우가 많은데, 그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자기 능력과 장점을 과대평가하는 기업은 자만하게 된다.



기업들은 왜 몰락의 징조를 알아차리지 못할까. 그것은 세계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지구상 최강국일 때, 업계 최고의 기업이 됐을 때,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됐을 때, 바로 그 힘과 성공 때문에 자신이 이미 쇠퇴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기업은 성공에 도취해 거만해지고 진정한 성공의 근본 원인을 잊어버린다. 운과 기회가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자기 능력만을 믿고 자만에 빠진다. 모토롤라는 1990년대 중반, 단 10년 만에 연 매출이 50억 달러에서 270억 달러로 급증했다. 모토롤라 경영진은 자만해지기 시작했고 1995년 초소형 휴대전화 단발기 ‘스타텍’을 만들어 판매사들에게 단독 전시 공간을 만들어 팔 것을 요구했다. 판매사들은 반발했고 시장점유율은 오만함 때문에 50%에서 4년 만에 17%로 추락했다. 95년 이후 주가는 10년 만에 반토막이 났다. 1단계 징조를 어떻게 알아차릴 것인가. 콜린스는 성공이 영원할 것으로 믿거나 성공을 가져다 준 창의적인 열정을 잃어버리는 지를 간파하라고 조언한다.


몰락 2단계: 원칙 없이 더 많은 욕심을 낸다

- 성공한 기업이 안주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지나친 욕심으로 더 큰 규모,더 높은 성장 등으로 도를 넘는 것은 더 큰 화를 자초한다.


1950년대 후반, 이름 없는 작은 회사 하나가 ‘소도시와 시골에 기반을 둔 대형할인점’을 시작했다. 경영자는 직원들과 함께 성장하는 기업정신을 만들어 소도시 상점들을 섬멸하며 급성장했다. 급기야 강적 K-마트와 정면대결을 하게 됐다. 1970년부터 15년간 이 회사의 주식은 무려 6000배나 올랐다. 이 회사가 어디일까. 월마트가 아니라 에임스 할인점이란 곳이다. 월마트 보다 4년 앞서 시장에 진출해 미국 북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20년간 멈추지 않은 성장을 거듭했다. 그런데 2002년 파산하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성공을 거둔 이 회사는 1988년 1년 안에 회사 규모를 2배로 늘린다는 목표로 자이레 백화점을 사들이는 결정을 내렸다. 자이레 인수로 매출은 배가 늘었지만 30년간 구축해온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룻밤 사이에 농촌지역 할인점에서 도시지역의 유력한 유통업체로 탈바꿈했고, 에임스를 위대한 기업으로 만들었던 저가 전략을 버려야 했다. 원칙없이 진행시킨 과도한 성장욕이 회사를 망하게 했던 것이다. 몰락한 기업의 2단계 징조는 이처럼 회사가 원칙 없이 지속 불가능한 성장을 추구한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핵심 요직에 적임자를 배치하지 않아 인재를 떠나게 하거나 CEO의 권력승계를 잘못해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몰락 3단계: 위험과 위기가능성을 부정한다


- 내부에 경고 신호가 증가하지만, 외부 성과가 여전히 견고하기 때문에 걱정되는 징후를 일시적이라거나 사이클에 따른 것으로 치부하고 날려버린다.


모토롤라의 2세대 CEO 로버트 캘빈은 1991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전화 연결을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목표로 ‘이리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를 위해 저궤도 위성시스템 초기 모델에 돈을 투자했다. 1996년 5억3700만 달러를 투자했고 7억5000만 달러의 채무 보증을 섰다. 이 같은 금액은 모토롤라의 1996년 전체 수익을 넘는 거액이었다.


하지만 이리듐 전화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전화 단말기가 거의 벽돌 크기인데다, 위성과 직접 교신할 수 있는 야외에서만 통화가 가능했다. 단말기 가격만 3000달러, 통화료는 분당 3~7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모토롤라는 위기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이 사이 일반 휴대전화의 서비스망이 지구촌 전역을 커버하며 이리듐의 매력을 떨어뜨렸다. 그럼에도 모토롤라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이 결과 1999년 모토롤라는 20억 달러의 적자를 냈다.


이처럼 몰락의 3단계에 기업들은 실증적인 증거 없이 과감한 목표를 세우고 투자한다. 모호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투자를 결정하고 부정적인 징조를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리더들은 실패의 책임을 외부 탓으로 돌리거나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돌파하려 한다.


몰락 4단계: 구원을 찾아 헤맨다

- 이때 흔히 등장하는 '구원투수'들은 비전과 카리스마가 있고 과감하지만 입증되지 않은 전략, 드라마틱한 문화적 변혁, 판을 뒤집을 합병 등 사태를 한 방에 해결할 묘안을 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극약 처방은 초기에는 긍정적인 변화를 내는 듯 보이지만 지속되지 못한다.


기업 몰락의 4단계는 기업들이 돌파구를 찾아 헤매는 단계다. 한때 오프셋 인쇄의 선두주자였던 어드레서그래프는 제록스가 자동 복사기를 내놓자 공포에 휩싸인다. 공포에 질린 어드레서그래프는 3년간 23개의 신제품을 쏟아내며 대응했다. 혁신적인 외부 CEO를 영입하기 위해 12년간 네 명의 CEO를 교체했다. 이런저런 전략을 채택했다가 바꾸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이로 인해 1981년 지난 50년간 쌓아온 누적수익을 단 1년 만에 몽땅 날려버렸다. 어드레서그래프는 어떻게 대처해야 했을까. 핵심 사업의 모멘텀을 지켜낼 수 있어야 했다. 지금도 분량이 많은 고품질 인쇄 작업은 주로 오프셋 인쇄의 영역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몰락하기 시작한 회사는 묘안을 찾아 나선다. 입증되지 않은 기술에 크게 배팅하고 실험되지 않은 전략에 기대를 건다. 자신들을 구제해줄 CEO를 찾고 구원을 약속하는 컨설턴트를 고용한다. 이런 것들이 4단계 몰락의 징조들이다. 이 단계에서 기업들은 공포에 젖어 초조하게 행동하고 급진적인 해결책을 찾는 경향이 있다.


몰락 5단계: 생명이 끝난다


기업들은 대부분 이 5단계를 차례로 거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단계를 건너뛰기도 한다.

각 단계에 머무는 기간도 수년 혹은 수십 년으로 천차만별이다. 또한 각 단계가 겹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게 어찌 기업들에만 국한된 이야기겠는가?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 老子 -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성공의 경험이라는 아이러니...

20세기 중반 제니스는 미국 기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공 스토리 중 하나였다. 1945년 괴짜 경영자 유진 맥도널드는 제니스를 라디오와 흑백 텔레비전 분야의 독보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제니스는 원칙없이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2단계에 진입한다. 컬러 텔레비전 부문 1등을 목표로 설정했고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생산시설을 늘렸다. 이 결과 부채비율이 100%로 증가했다. 수익성이 악화됐지만 이 회사는 일본의 무역관행, 노사 불안정, 미국의 불경기 등 다른 요인으로 원인을 돌렸다. 위기를 부정하는 3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단번에 이런저런 기회를 잡기 위해 제니스는 구원자를 찾아 4단계로 접어들었다. VCR, 비디오디스크, 가정용 보안카메라, 개인용 컴퓨터 등의 시장에 뛰어들었다. ‘기업계의 선지자’로 일컬어지는 제리 펄먼을 CEO로 영입했다. 펄먼은 데이터시스템 투자로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그렇지만 텔레비전 사업이 계속 적자를 내면서 현금이 고갈되어 파산했다.


몰락하더라도 부활할 수 있다


짐 콜린스는 위대한 국가나 위대한 기업은 몰락하더라도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강조하고 있다. 위대한 조직과 성공적인 조직의 차이는 단순히 어려움을 겪느냐, 겪지 않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 혹은 재난을 당한 뒤 다시 되살아나고 이전 보다 더 강해질 수 있느냐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짐 콜린스는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전술을 바꿀지라도 핵심 목표를 절대 포기해서는 안되며 스스로 미래를 창조해나가는 원칙을 버려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이 책은 위대한 기업의 몰락과 부활을 이야기하고 있다.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 위기에 처한 기업의 임원들에게 새로운 통찰력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경영자나 조직의 리더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다.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 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지은이 : 도종환



1연

모두가 좌절할 때 말없이 담을 오르는 담쟁이

2연

모두가 절망할 때 서두르지 않고 나아가는 담쟁이

3연

손에 손을 잡고 절망을 푸르게 뒤덮는 담쟁이

4연

모두가 포기할 때 잎들을 이끌고 결국 벽을 넘는 담쟁이

 주제 : 현실의 고난을 이겨내는 극복 의지 / 절망과 모순의 극복 의지 / 절망을 극복하는 담쟁이의 의지와 생명력

 특징 : '담쟁이'가 벽을 넘어가는 과정을 통사 구조의 반복을 통해 점층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담쟁이의 모습을 담담한 어조로 서술하는 화자의 목소리, 의인화 기법 사용, 일상적인 소재를 비유의 대상으로 활용하여 주제를 전달함, 단호한 서술어의 사용으로 굳은 의지를 표현함.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담쟁이'라는 자연물을 통해 절망적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이 고난과 한계를 반드시 극복해 내고 만다는 의지를 노래한 작품이다. 또한, '담쟁이'가 벽을 넘어가는 과정을 통사 구조의 반복을 통해 점층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담쟁이 덩굴이 담벼락을 타고 무성히 번져 결국 담을 넘는 모습을 통해 부정적 현실의 벽 앞에서 쉽게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는 사람들에게 교훈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으로 중국의 고사 성어 '우공이산'과 관련시켜 감상하면 좋을 것이다.



사람이 최고의 자산이다.

귀인과 은인도 있지만 

악인과 천인도 있다.

"관계"는  "관심" 을 먹고 자란다.


"관계"는 한번 형성되면 영원히 지속되는 

"자동시계"가 아니라,


수시로 애정과  "관심" 으로 보살펴 주지 않으면, 

멈춰 서버리는 "수동시계"다.


"관심"이 없어지면  "관계"는"경계"로 바뀐다.

"관심"은 애정을 먹고 "관계"를 만들지만 

무관심은 "경계"에서 벽을 만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뜻한 정이 소통되는 인간관계! 

서로 기대며 평생동안 함께 갈 사람은 

그냥 만나지는게 아니다.


그래서 마음을 주고 받는 

"정"이 우러나는 

관계야 말로 진짜 관계라고 말할수있다.


나윤선 - 그리고 별이 되다  -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말하는 것(speaking)이 아니라. 

대화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듣든지(Listen)아니면 침묵(Silent)가 먼저이다.





 ‘listen’과 ‘silent’는 깊은 관련이 있다.


여기에 중요한 교훈이 있다.

‘listen’과 ‘silent’는 정확히 똑같은 여섯 글자를 사용한 단어다.


가장좋은 대화수단은 말하기보다 침묵하고 들어야 할 때이기도 하다.






요즘 한국에서 < 의리 >라는 말이 유행이다.


한 연예인이 요즘 < 의리 >라는 소리를 외치며.. 

<의리>없는 시대와 사람들을 풍자하고 있다



이 연예인은 옛날부터 < 의리파 > 연예인으로

 <의리>하면 <김보성>할만큼사람들에게 <의리>로 각인 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뭐라도 하나를 꾸준히 일관성있게 .. 아니 의리있게 하면 

이렇게 예상치 못한 대박?이 나는 구나 ! 하는 생각을 해본다. 


종종 나도 농담처럼 이런 말을 하곤 했다


< 성경은 우리에게 "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 말씀합니다. 

 그것 만큼이나 중요한것은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의리라 "라는 말입니다. > 라고 웃스게 소리를 하곤했다. 


사랑보다는 더 마음에 와닿는 말이 < 의리 >다. 

이 < 의리 >는 <마땅한 도리>이다.


의리(義理)는 사람 혹은 사람관계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이다


그리스도인이 지켜내야할 의리는 무엇일까?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외치고 붙들어야할 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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