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 vs unbroken 영화
A true story : 덕수 vs 루이스 !



이 두 영화은 인생 그리고 견딤을 생각하게 한다. 역사속에서 아픔과 상처를 안은채 한 사람의 인생을 그리고 있다.
함흥에 살던 이북 실향민 덕수의 인생
토랜스에 살던 이탈리아 이민자 루이스(Louis Zamperini)

덕수는 말한다.
" 아부지 힘이듭니다. 산다는게 힘이듭니다
...아부지 내 많이 힘들었습니다. "

한사람의 생애는 영광스럽다
특히 고난과 고통을 지나오면 더더욱

국제시장 영화 감독의 아버지 이름이 덕수란다. 자기 아버지와 이 시대의 아버지를 위해 만들었단다.

루이스에게 말했다.
"A lifetime of glory is worth a moment of pain."

모든 인생은 어느 누구가 평가할수 없는 존경할만한 가치가 있는 삶이다.
죽지 않고 살아서 그 삶이 인생이 되었다면
그리고 누군가의 인생을 위해 희생과 수고가 있었다면 충분히 박수받아 마땅하다.

더욱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앞에 섰을때
잘했다 칭찬받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인생을 바라보며

오늘의 덕수와 루이스의 견딤을 응원하자!

왠지 아부지가 보고 싶다.
수영시장에서 장사하던 우리 아부지 !

​[인터스텔라]


우주 / 인간 / 종말 / 시간 / 함께함 / 약속 

사랑 / 시공간 / 초월 / 메시지 / 거짓말 

/ 헛된 희망 / 그들 과 나 / 웜홀 / 블랙홀 / 중력 

우주속에 만난 그들 / 나 

머피의 법칙 / 일어날게 일어나는 것

세상을 어떻게 구할지

세상을 떠날거야 

알수 없는 부르심 / 자식들을 위해 우주으로 가게 

지키수 없는 약속은 하지 말고 

그들이 나를 선택했어 


Coming back? When?


시간을 비디기, 여기 한시간이 지구의 7년

시간의 상대성.  사랑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인류란 함께하는 것이다

시공간을 초월해서 

사랑이란 이름으로 

우주속에 실체는 무엇인가 ? 나를 이끄는 그들 과 나 ?

지구를 떠나는 여행 과 모험 



그래비티 ] 

함께함 / 중력의 감동 / 외로움 

떠도는 인생 / 홈타운 


영화 <엑소더스: 신들과 왕들>은 구약성서의 출애굽기를 바탕으로 만든 종교적 대서사극이자 <글래디에이터>, <프로메테우스> 등의 대작으로 전세계 영화 팬들을 열광시킨 리들리 스콧 감독의 스펙터클한 시대극으로, 400년간 억압받던 노예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는 ‘모세’를 소재로 하여 구약성서에서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사건으로 일컬어지는 출애굽을 소개하는 영화입니다.


엑소더스" 소감 =김기현 교수=

좋았던 점
1. 모세의 정체성 혼란: 성서는 모세가 어머니와 누이의 손에서 길러졌기에 어려서부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이해가 있었고, 그래서 동족을 위한 테러와 살상도 감행한 것으로 그린다. 반면 이 영화는 성인이 된 다음에 자신이 히브리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방황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2. 모세가 절대적 신의 맹목적 대리인이 아니라는 것. 나중에 십계명을 돌판에 새기면서 신의 현현으로 등장한 소년과 대화에서 나오듯이 저항하고, 반대하고 그러면서도 깊은 교제를 나눈다. 나중에 보겠지만 이 점이 람세스와 차이이기도 하다.

3. 모세는 애굽의 사람들이 받는 고통에 대한 연민어린 모습을 보인다.

차이점
4. 물론 이 점에서 람세스와 차이를 보인다. 람세스는 오로지 자신의 아들의 안녕만 걱정한다. 반면 모세는 애굽인으로 자랐기에 그들과 예전의 조국인 애굽이 멸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히브리인과 애굽인 사이에서 고뇌한다.

5. 두 사람의 차이점 하나 더. 위의 것과 비슷한데, 모세는 고민하지만 람세스는 그다지 고민하지 않는다. 파라오는 인간이 아니라 신으로 숭배받는 처지라서 그랬겠지만, 모세는 방황한다.

6. 또 하나의 다른 점은 모세는 누군가 대화를 하고 상의를 한다. 하나님과도 그리고 자기 자신과도, 그리고 동족들과도. 그러나 람세스는 그 누구와도 의논하거나 경청하지 않는다. 히브리 노예를 착취는 도둑같은 총독의 말은 깊이 귀담아 듣는다.

아쉬운 점
6. 갈등이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파라오 주변에 그러니까 제국의 체제 내부의 온건파가 있어서 어느 정도 파라오와의 긴장이 있어야 하는데, 오로지 람세스 혼자만 보인다.
이것은 모세도 마찬가지다. 홍해를 건널 때에, 그리고 홍해를 건넌 후에 눈의

아들 여호수와와의 대화에서 앞으로의 험난한 내부 투쟁을 암시하지만, 이 영화 자체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밋밋하다.

7. 애굽의 열가지 재앙은 제국에 대한 심판이다. 무려 400년 동안, 약자이자 소수자인 히브리인들을 무한 착취하는 비인간적 체제에 대한 종말이다. 그러니까 출애굽기는 한편으로 제국의 종언, 곧 제국은 어떻게 스스로 자멸하는가를, 다른 한편으로 제국의 바깥에서 제국의 실존과 삶의 양식과는 전혀 다른 사회를 형성하는 이야기이다.
그런 점에서 감독이 지나치게 모세스 vs. 람세스의 대결구도로만 끌고 간다.
연초에 시끌했던 <노아>에 비해 철학적이고 진지한 고민이 잘 안 보인다.

8. 내년 연초의 <매일성경>의 본문이 출애굽기이다. 수년 전에 출애굽기와 민수기, 신명기를 읽으며 모세가 너무 불쌍해서 울었던 적이 있다. 그의 삶이 너무 아름다워서, 너무 서러워서 울었다. 그때는 내 이야기인 듯 싶어 감동을 받았으나 최근에는 내가 얼마나 모세왁 같지 않은지, 모세와 얼마나 먼지를 보면서 힘들다.

가장 기억나는 대사는 이것이다. 출렁이는 파도 너머 끝없이 펼쳐진 홍해 앞에서 모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생각한 내가 아니었습니다."(기억에 의지해서 정확하지 않다.)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제너럴(장군)도 아니고 민족 해방자나 구원자도 아니라는 것, 신 앞에서 너무나 무기력하고 무력한 보잘것없는 존재로 자기 자신을 낮출 때에, 그리고 자신이 그간 의지했던 '검'을 내버렸을 때에 홍해가 갈라지기 시작한다.
나는 그렇게 괜찮은 사람도 아니고,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머리로 아는데 몸은 알지 못한다.

9. 영화를 마치고 나오면서 모세의 엎드림이 생각났다. 모세는 위기에 처하면 엎드렸는데, 나는 고개를 쳐들고 눈을 부라리고 소리를 지른다. 모세처럼 되고 싶은데, 모세처럼 낮아지고 싶지 않은 나. 아직까지 아니 언제까지 광야에 머물러 있을 참인지. 애굽으로 돌아가야하고, 가난안으로 가야하는데...


< Exodus 관전 포인트 그리고 영화에 대한 생각  >

오늘 아내와 아들이랑 같이 EXODUS 영화를 보고 왔다.

이 영화를 보고 온 이들의 반응은 2가지로 나뉜다.

어떤 이들은 성경의 스토리과 오리지널 텍스트에 익숙한 이들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성경 네러티브와 사건이 얼마나 정확히 일치하는가?를 찾는다.

어떤 이들은 성경의 이야기를 영화화 할때 갖는 영화적 상상력과 작가의 의도를 살핀다. 영화속에서 차이점을 찾고 그 차이점을 만든 감독과 작가의 의도를 생각한다.

이 영화를 보고 온 그리스도인 중에 실망스럽다. 이상하다. 뭔가 수상하다? 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성경의 스토리가 그대로 영화속에 구현되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아마도 자신이 갖고 있는 성경적인 지식을 이 영화속에 대입해보려는 시도를 영화를 보는 내내 했을 것이고. 자신이 아는 성경의 스토리와 다르기에 충격과 이상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본 사람중에 신선하다. 새로운 관점이다. 뭔가 상상이 있다? 라고 느끼는 사람은 이 영화를 성경이야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성경기록영화가 아니라 영화적 상상력으로 풀어쓴 성경이야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나타나있지 않는 이야기를 작가와 감독의 영화적 상상력과 사건의 개연성으로 재구성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경의 이야기와 다소 이상한 차이를 발견하고 그것을 영화적인 안목으로 이해하고 넘어 간다.

나는 이영화를 후자의 관점에서 보았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성경과 다를수 있다.
다르다면 왜? 다르게 만들었을까?
그것을 주목해서 보았다.

이 영화의 감독은 <리틀리 스콧>감독은 대서사 전문 헐리우드 감독이다. 우리가 잘아는 <에어리언/글레디에이터/프로메테이우스>와 같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급 대작들을 만든 감독이다.

분명이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이다.
비록 성경의 인물과 사건 그리고 스토리라는 영화적 모티브를 가져왔지만 이 영화가 주고자한 분명한 의도는 < 신의 존재와 믿음을 주는 복음 >을 설명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상업적이며 흥미와 흥행이라는 목적과 방향을 갖고 만들어진 영화이다. 철저하게 헐리우드 영화적 요소와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 영화를 보고 온 성도들중에는 이런 영화를 통해서 잘못된 신앙과 성경이야기가 전달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현하거나 이 영화를 본 우리 자녀들에게 오해를 불러올 소지가 있다라고 말한다. 어느 측면에서는 이해도 되고 공감도 되는 부분도 있지만... 그러나 조금 과한 면이 있다.

다시 말하고 싶은 나의 의도는 영화는 영화이 뿐이며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가져야할 태도는 차이를 찾아내는 < 분별력 >과 차이속에서 의도된 <의도성>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이것이 대중문화속에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할 안경과 같은 세계관이며 문화관이다.
보지 않고 알수 없다. 보아야 알수 있다.

그리고 뭔가 달라서 실망이야 그래서 싫어!가 아니라. 달라서 그것을 바르게 해석하고 분석해 내야한다. 그것이 이시대에 <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을 정복해야하는 우리의 문화명령> 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보고서 은혜를 받고 싶어서 이 영화를 보러가지 않는다. 만약 은혜를 받고 자 영화를 선택한다면 차라리 기독교서점에서 판매하는 십계나, 모세이야기 성경기록 영화를 보는 편이 낫다. 


그러나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성경의 스토리 그대로를 담아 놓아다고 했다고 해서 우리가 은혜를 받거나 신앙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에 본 < son of God >은 정말 지루했다. 너무 영화적 요소가 없는 기록영화였다.

나도 어릴적 여름 성경학교때면 매번 보아왔던 영화가 성경기록영화이다. 그러나 단한번도 그것을 통해서 신앙성장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잘못된 선입관과 고정된 이미지만 갖게 되었을 뿐이다. 분명 유익한 점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 남은 성경기록영화의 이미지는 지루함, 재미없음 그 자체였다. 그런면에서 큰 돈을 들여 지루한 성경의 이야기를 스펙타클하게 만들어준 헐리우드에 다소 고마운?마음이 든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볼때 가져야하는 우선된 관전포인트는 " 성경이냐 아니냐 ?의 시선을 잠시 내려놓는것이다. 그리고 그냥 영화적 상상력이라는 이해력으로 보아야한다 "는 것이다.

그리고 그속에서 표현되어 있는 작가와 감독의 의도성을 살펴보아야한다. 바로 이것을 < 전지적 작가의 관점> 이라고 말한다.

1의도 > 신이라고 불리우는 람세스 와 신으로 부름받은 모세의 대조와 대립
2의도 > 모세는 유배당한것인가? 도망간것인가?
3의도 > 왜? 야웨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가?
4의도 > 모세는 하나님의 종인가? 아니면 영웅인가?
5의도 > 신을 왜? 어린아이로 묘사하는가?
6의도 > 왜 모세는 지팡이가 아니라 ? 칼을 차고 있는가?
7의도 > 사랑받는 모세와 그렇지 못한 상처속에 있는 람세스인가?
8의도 > 십계명은 모세가 새긴것인가? 하나님이 세겨주신것인가?

이 영화에서 작가와 감독은 성경기록영화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 인간중심적 이해 >로 모든 스토리를 전개해 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신적이고 신화적 요소보다는 모세의 인간적인 영웅을 부각 시키고자 애를 쓰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 인간 모세 / 영웅 모세 >가 등장한다. 주인공 모세 영웅만들기에 하나님은 조연으로 출연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의 이야기와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성경에서 출애굽기에 나오는 구속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시다. 모세는 하나님이 쓰시는 막대기에 불과한 조연이요 소품일 뿐이다.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이것을 강조하면 재미가 없고 흥행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주연과 조연을 바꿔버렸다.

바로 이점에 이영화에서 우리가 찾아내야할 문제점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구속의 스토리를 세상적인 흥미의 스토로 바꿔 버리고 

하나님을 주인공의 자리에서 조연의 자리로 바꿔 버리는 것.. 

바로 이것인 이 영화가 위험하다고 느끼는 우리의 공통된 생각일것입니다. 


그런점에서 볼때 이 영화에 모세의 역할을 맡은 < 크리스챤 베일 >은 베트맨 역을 하던 사람이었다. 베트맨이 모세가 된샘이다.

그것이 헐리우드가 만들어내는 영웅이야기이다.
헐리우드 영화는 영웅이야기를 많이 만들어 낸다.
히어로가 나와야 흥행이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글레디에이터나 에어리언에는 악과 싸우는 영웅이 등장한다. 이 영화감독은 모세라는 하나님의 종과 구속의 역사를 연출한것이 아니라 모세라는 히어로를 만들어 낸것이다. 

올해 초에 나온 성경의 모티브를 가지고 만든 헐리우드 영화 < 노아 >도 역시 많은 논란이 많은 영화였다. 분별력이 있는 사람들은 그 영화를 보고서 좋은 것만 취사 선택했다. 영화를 영화로 본것이다. 

영화를 영화로 보지 말고.. 진리의 왜곡을 주의하라 ! 는 말에 많은 부분에 공감한다. 특히 성경의 이야기를 소재로한 영화는 더욱 그런 요소가 많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입장이다. 

그것이 불편하면 이런 영화는 애초에 보지 말아야한다. 봐서는 안되는 빨간딱지 영화이다. 그리고 누구에도 이 영화를 보라고서는 안된다고 말해야한다. 

모두다 샛빨간 거짓말이기 때문에.. 거짓을 가장하고 진리를 왜곡하기에...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슨 영화를 봐야 합니까? 

무슨 영화를 보라고 말할수 있나요? 

그리고 이 영화 말고 더 심한 진리의 왜곡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를 본적은 없나요? 그러한 영적 노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요? 

우리는 어쩔수 없이 대중문화의 파도위에 떠다닌다.. 그것이 현실이다. 

오래전에 < 기독교 문화관 >을 공부하면서 

리처드 니버의 < 문화의 변혁자 그리스도 >라는 책을 읽었다. 그책에서 

리차드 니버는 그의 대표작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다섯 가지 유형의 문화관을 제시하였다. 

1) '문화에 대립하는 그리스도'는 문화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배타적인 태도를 가리킨다. 이런 태도를 가진 이들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사회 관습이 무엇이든 지간에 그리스도와 적대 관계에 있다고 본다. 그는 2세기의 교부 터툴리안과 톨스토이에서 그 전형을 본다. 

터툴리안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문화의 타락한 오락, 학문, 정치에서 탈출하도록 권면하였다. 한편 톨스토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산상보훈의 말씀대로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니버에 의하면 이러한 반문화적인 유형의 삶은 그 자체 내에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인간은 언제나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2) '문화의 그리스도'는 첫 번째 유형과 정반대되는 것이다. 이 유형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와 문화 사이에 근본적인 일치와 연속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도는 위대한 교육자요 문화의 영웅이시다. 

토마스 제퍼슨은 그리스도를 완전한 도덕 교육가로 보았고, 쉴라이에르마허는 그리스도를 모든 종교와 문화의 완성자로 보았다. 이 관점은 신학의 본질과 그 문화적 표현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3) '문화 위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와 문화를 다 긍정한다. 그러나 둘 사이에 간격이 있다고 본다. 이 관점에서는 그리스도가 로고스와 주님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높은 층에 두고 문화를 낮은 층에 둔다. 이러한 생각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에서 나타났고 후에 토마스 아퀴나스에게서 나타났다. 

4) '역설 관계에 있는 그리스도와 문화'는 그리스도와 문화의 관계를 화해할 수 없는 양자간의 끊임없는 싸움으로 이해한다.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요 문화는 문화다. 니버는 이런 유형의 대표자가 사도 바울과 루터 그리고 키에르케고르 등이라고 말한다. 

5) '문화의 변혁자인 그리스도'. 이 유형의 대표자는 어거스틴, 칼빈, 존 웨슬리 등이다. 이 입장에 의하면 세계는 구속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인간 문화의 문제는 변혁의 문제이다. 세계는 배격되어서도 안되고 소홀히 여겨져도 안된다. 따라서 이 유형에서 주장된 그리스도는 죽음과 죄에 예속되어 있는 인간을 구속하시는 것뿐 아니라 문화 속에서 사는 인간 생활을 계속적으로 성화시키고 변혁시키시는 분으로 이해된다.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하는 영화와 같은 문화를 가져야할 시선과 관점은 < 변혁적인 세계관과 안목 >이다. 영화를 영화를 보되 변혁적인 시각으로 영화를 분별하고 분석하고 평가할수 있어야한다. 


그런점에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되는 관전 포인트이다.

어떤 이들인 성경을 소재로한 영화가 가장 위험한 점이라고 말한다. 

나도 그 말에 대해서 동의한다. 

그렇다면.. 이런 영화는 보지 말아야 한다. 권하지도 말아야한다. 

진리를 왜곡했고 왜곡된 진리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시대가 얼마나 진리를 왜곡하는지를 분명 알아야한다. 

그러나 비단 하나님의 진리을 왜곡하고 잘못된 메시지를 심어지주는 것이 이 영화 뿐이겠는가?

우리는 이미 이 영화가 헐리우드에서 만들어 졌다는 것만으로도 불편한 마음이 있다. 그리고 이미 그러한 불편한 안경으로 이 영화를 본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서 더 불편하다. 이것이 현실인가? 오늘 이게 문제야로 끝난다.. 

그 다음이 없다. 안좋아 보지마.. 물들어.. 끝 

그런데. 이 영화 말고도 아무 생각없이 보는 영화과 드라마들이 많다. 그것들을 어떻게 받아 들이고 분별하고 사용해야 할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켄 가이어는  직업의 창, 예술의 창, 광야의 창, 영화의 창, 추억의 창, 글쓰기의 창, 성경의 창, 눈물의 창, 자연의 창 등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소개하고 있다.

중세의 교부와 신학자들이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발견해냈듯이, 근세의 문학가와 역사가들이 파란만장한 인생과 인류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읽어냈듯이, 오늘날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TV와 영화, CF 등 대중매체로 재생산된 이미지와 문화상품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과 메시지를 담은 '하나님의 코드'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영화는 오늘날의 시대를 가장 잘 반영하는 시대적인 종합예술로서 오늘날 대다수 사람들의 꿈과 욕구, 삶의 고민을 가장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예수님이 당대의 사람들에게 말씀을 선포할 때 그 시대의 '보통' 사람을 위해 '평상어'와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예화(이야기)'를 사용한 것처럼, 영화는 오늘날 대중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예수님의 대중적 언어'이며 '현대화된 예화(이야기)'이다. 즉, 오늘날 영화 속에는 '예수님의 메시지'와 '바이블 코드'가 담겨 있다.

켄가이어의 < 영화 묵상 > 이라는 책에는 다양한 영화속에서 예수님의 메시지를 찾았다고 말한다. 이 책에 대한 평가로 ... 

영화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전형적인 생각은 화면 자체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켄 가이어는 그것을 뛰어넘어 훨씬 중요한 것, 즉 이야기의 의미를 보게 해준다. 나는 예술인이자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자신과 및 자녀들이 극장에서 접하는 화면에 대해 걱정하는-에게 중요한 충고라 생각한다.(찰스 B. 슬로컴(Charles B. Slocum) | 미국 작가 협회 전략 기획팀 서부 지부장 | 장로 교회[USA교단] 장로)

[영화 묵상]은 하나님이 현대 매체를 통해 어떻게 우리에게 말씀하실 수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실감케 해줄 놀라운 책이다.(마이클 워런(Michael Warren) | 워너브라더스 텔레비전 책임 프로듀서 )

"켄 가이어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교회의 사방 벽과 신구약 성경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우리에게 듣는 귀와 보는 눈만 있다면 하나님은 영화의 잊지 못할 사연들과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켄 가이어는 교회가 생각을 넓히고 판단을 멈추어야 한다고 말한다.…어두운 극장에서도 하나님은 여태껏 늘 사용해 오신 방식, 즉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강력하게 말씀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 낸시 스태퍼드(Nancy Stafford) | 배우 겸 작가 )

중요한 책이다. 오랜 세월 그리스도인들은 영화와 영화 만드는 사람들을 온갖 부정적 태도와 감정으로 대해 왔다. 켄 가이어는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와 분별로 대항한다. 그는 모든 진리가 하나님의 진리이며..... 할리우드에서 나오는 진리도 예외가 아님을 보여준다. (콜먼 럭(Coleman Luck) | 작가/책임 프로듀서 |〈이퀄라이저〉,〈가브리엘의 불>)

켄 가이어의 책을 통해서 나는 영화에 대한 시각이 많이 바뀌었다. 그리고 영화속에서 그리스도를 묵상하고 그리스도를 찾을수 있다는 조금은 열린 관점을 얻게 되었다. 

나는 엑소더스 영화에 시작에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을 잊어 버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잊지 않았다. "

우리에게 남은것은 하나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그분의 진리의 말씀과 세상의 문화들속에서 그 진리의 말씀으로 변혁할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은 사람에게 들어가는 것 말고,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하셨다. 













나의 아내는 나의 인형인가? 나의 로버트인가?


내 아내에 대한 재미있는 상상력 


바비인형같은 아내.. 그녀의 정체는 무엇인가?














당신의 딸들이 결혼대상자로 이런 사람들을 대리고 온다면 허락할수 있을까요?


프랑스의 다문화의 현실을 아주 잘 비꼬고 아주 잘 반영하고 있는 영화 


4명의 사위들과 장인 장모가 펼치는 웃기며 웃지 못할 이야기.. 


다문화 가족의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 























만약 당신이 90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면 ...

그 시간동안 무엇을 할것인가?


감동적이고 가족적인 영화에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했던 로빈윌리암스.. 그의 선한 웃음 뒤편에 우울함과 분노를 갖고 있었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 앵그리스트 맨 >의 영화를 보면.. 

그의 삶의 아픔부분을 옅볼수 있다. 


사람안에 있는 분노를 어떻게 처리해야하는지...




























요즈음 장안의 화제가 바로 < 명량 > 영화이다.

1500만의 흥행으로 소위 대박영화가 되었다

이순신 장군이라는 역사적 민족적 영웅을 그린 영화 이다. 

특히 난세 일수록 사람들은 영웅을 그리워한다. 

그러한 점에서 이 영화는 정말 좋은 타이밍에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상품이든 영화든 시대상황과 사람들의 심리상황에 맞아질때 소위 < 대박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 

미국에 사는 나에게 한국을 그리며 사는 삶의 환경과 멀리서 한국의 안타까운 상황을 지켜보는 것으로 답답함을 느낄때에..

미국영화관에서 한국영화 명랑이 상영된다는 소식에 달려 갔다. 

처음 기대했던 것보다는 너무 억지로 반전을 만들려고 한듯한 과도한 영화적 상상력이 웃습기도하고 어색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최민식과 류승룡의 눈빛 연기에 조금은 후한 점수를 줄수 있었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이고 의도적인 장면이 이순신과 그의 아들과의 대화에서 나온다

아들이 이순신에게 묻는다. 

" 아버지 왜 싸우십니까 ? "

이순신 왈 : 의리다. 장수는 군왕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충이다. 그 충은 백성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또 다른 장면에서 아들이 이순신에게 묻는다. 

" 아버님 이제 우리에게는 구선(거북선)이 없습니다. 이제 병사들에게 독버섯처럼 퍼진 두려움이 문제입니다. 이 두려움을 어떻게 하실것인지요? "

이순신왈 : 나는 이 두려움을 이용할것이다. 아군이나 적군이나 모두다 두려움이 있다. 그러난 우리는 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수 만있다면 가능하다

나는 이 두 대사에서 짧은 묵상을 할수 있었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것.. 

그것이 무엇일까? 

"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하는 그 찬양이 생각난다. 


매일의 삶은 그 두려움과의 일전을 벌리는 두려움과의 전쟁이다. 

그 두려움을 용기로 그리고 기도로 바꿀수만 있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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