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dical Study Guide 1

래디컬 스타디 가이드

Read John 6:53-58 (6:53-58)

[6:53-58]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6: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Chapter 1: Someone Worth Losing Everything For

모든 걸 다 포기하고 따를 만한 분

1. Jesus focus was not on the masses, but only on the few who believed Him when he said radical things. How does that differ from our focus?

예수님은, 급진적인 메세지를 말씀하실 때, 다수의 무리들에게 집중하지 않으시고, 그분을 믿는 소수에게 집중하셨습니다. 이러한 점은 우리들의 초점과 어떻게 다릅니까?

 

2. Platt asks himself two questions that we should also be asking ourselves. What are some of your concerns? What thoughts and fears do you have in response to your answers?

저자는 자기 자신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우리 자신들에게도 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당신의 관심이 어떤 것입니까 ? 당신이 생각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당신의 대답에 대한 반응 안에 있습니까??

1질문 / Was I going to believe Jesus? - Even though He said radical things that drove the crowds away “예수님을 믿을 것인가?” - 교인들이 다 도망갈 만큼 과격한 말씀을 하셔도 군말 없이 받아들일 것인가?

 

 

2질문 / Was I going to obey Jesus? His fear was that he would walk away content to settle for less than radical obedience to Him.

예수님께 순종할 것인가?” - 저자는 개인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상황이 가장 겁난다고 말했습니다.

 

3. Page 7. Platt says that we have replaced radical faith with what is comfortable. What ways have we done this?

23. 저자는 우리가 신앙의 급진적인 믿음을 안락한 것들로 대체해버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방법들로 그렇게 하였습니까?

 

Read Luke 9:57- 62

누가복음 9:57-62을 읽으십시오.

1. Discuss what the cost is for each one. What does this say about how we are to follow Christ. What are some examples you face regarding the cost to follow Him?

각각의 희생에 대해서 토론하십시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어떠한 경우들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에 수반되는 희생과 부딪히게 됩니까?

 

2. Give up everything you have, carry a cross, and hate your family. How is this in contrast to the message being presented today? What does this look like in your own life?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포기하고, 십자가를 지고, 당신의 가족을 미워하십시오. 이 메세지는 오늘날 선포되는 메세지와 어떻게 다릅니까? 이것은 당신 자신의 삶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3. If someone was to ask you the question How do I inherit eternal life, what would be your response?

만약 누군가가 당신에게 내가 어떻게 하면 영원한 삶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까?” 라고 질문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4. Page 13. Platt discusses how we rationalize Jesus. “What Jesus really meant was..” How have you finished that sentence before?

30. 저자는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합리화하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당신은 예전에 어떤방식으로 사실 예수님이 진짜로 의미한것은...” 과 같은 문장을 만들었습니까?

 

5. Do we follow the middle-class American Jesus in our own church?

우리는 교회 안에서 중산층의 기호에 딱 들어맞는 예수님을 따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6. Platt said on Page 14 that the cost of discipleship was great, but the cost of non discipleship is greater. How is this true?

저자는 31쪽에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막대한 값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 값이 아무리 크다 한들 제자가 되기를 거부하는데 따르는 대가에 비하면 새 발의 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사실이 되나요?

 

7 . Do we really believe that Jesus is so good and so satisfying and so rewarding that we will leave all we have, all we own, and all we are in order to find our fullness in Him?

우리는 우리가 가진, 우리가 소유한, 우리를 규정하는 모든 것들을 버릴 수 있을 만큼, 예수님은 좋으신 분이시며, 만족하게 하시는 분이시며, 보상하시는 분이시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까?

8 .Do we believe Him enough to obey and follow Him wherever He leads, even when the crowds in our culture, and maybe in our churches turn the other way?

예수님이 우리를 어디로 이끄시든지 그분을 따르고 순종할 만큼 우리는 그분을 믿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문화 안에서 그리고 심지어는 우리들의 교회들안에서 무리들은 다른 방향으로 돌아설지라도요?

 

 

9. The American dream is dominated by self-advancement, self-esteem, and self sufficiency, by individualism, materialism, and universalism. How does that differ from what Jesus has called us to?

아메리칸드림은 자가 발전와 자존감과 자기만족 그리고 개인주의와 물질주의와 보편주의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과 어떻게 다릅니까?

 

 

10. Closing out Chapter 1 Platt said there is a commitment to believe and obey. Believe what Jesus has said, and obey what we have heard. The Gospel requires more than reflection it requires response. What is your response?

1장을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믿고 순종하겠다는 결단에 대한 서약이 우리에게 남아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것을 믿고, 우리가 들을 것에 순종해야합니다. 복음은 단지 성찰하는 것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합니다. 복음은 응답을 요구합니다. 당신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11. Summarize Chapter 1 in your own words

1장의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요약하십시오.





Chapter 2: Too Hungry For Words

복음은 당신의 전부를 원한다

Page 26. Platt says “God’s Word is enough for millions of believers who gather in house churches, African jungles, rain forests, etc. Then he poses a very important question.

저자는 가정교회들과 아프리카정글과 열대림속에서 모이는 수백만명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한가지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Is it enough for you?” What if you took away the music, the chairs, the programs, and the big screens? Would His Word still be enough?

당신도 하나님의 말씀 하나만으로 충분하십니까?” 만약 교회 음악과 의자들과 교회 프로그램들과 큰 화면들을 모두 없애버리면 어떻습니까? 여전히 그분의 말씀만으로도 충분하십니까?

 

Page 29. Platt mentions how we have distorted the image of God in our culture. How often do we tend to focus on 1 or 2 attributes of God only? Do we minimize His other attributes? Why?

저자는 우리가 어떻게 우리들의 문화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왜곡시켜왔는지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하나님의 한두가지 성품에만 집중하려고 합니까? 우리는 그분의 다른 성품들을 축소시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왜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Name or list different attributes of God

하나님의 다양한 여러가지 성품들을 나열하십시오.

Page 31. Platt says that everything in all creation responds in obedience to the Creator, until we get to you and me. He says we have the audacity to look God in the face and say “No”. Why is obedience so hard for us? Have you ever found yourself arguing with God over something He was speaking to you? Maybe praying for a friend, or an apology?

저자는 우리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창조물들은 창조주에 순종으로 응답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면전에 대고 아니요라고 말하는 뻔뻔스러운 대담함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순종은 우리에게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까?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시고자하는 무언가로 인해 하나님과 논쟁을 벌이고 있는 자기자신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까? 친구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나 사과하라는 것과 비슷한 것이지 않았습니까?

Read through the paragraph on page 32 beginning with ” Note the contrast”. How do you respond?

32쪽의 “”으로 시작하는 문단을 읽으십시오. 어떻게 응답하십니까?

Page 34. Platt discusses our understanding of who God is. He states that our understanding of God affects our understanding of Christ and why we need him. How do you see God? Is He a loving Father? Forgiving? Angry? Think about your answer. Why do you see Him that way?

저자는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왜 우리가 그분이 필요한지에 대해 영향을 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Pages 36+37. Quite simply how do you respond to the Gospel?

당신은 복음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What does it look like in your own life to be hungry after God’s Word?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박함은 어떤 모습입니까



 

Chapter 3: Beginning At the End of Ourselves

를 버리는 데서 시작하라

Page 45. The Name of Jesus had the power to cause the blind to see, the lame to walk, and the dead to rise. The question is whether we truly trust in His power?

예수님의 이름은 눈먼자로 하여금 보게 하고 앉은뱅이가 걷게하고 죽은 자를 일으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그분의 능력을 진정으로 신뢰하고 있습니까?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the American dream and the Gospel of Jesus Christ?

어메리칸드림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간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Page 46. The Gospel beckons us to die to ourselves and to believe in God and to trust in His power. If you haven’t examined your life at this point, take some time to pray about and decide what it means to die to self.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을 믿으며 그분의 권능에 의지하라고 주문하고 있습니다. 만약 지금까지 당신의 인생을 진단해보지 않았다면, 시간을 내어 기도하며 자기 자신에 대해서 죽은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결론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What are some goals that you have set in life? Why are these things important to you? Are these personal goals? Biblical? Does the end result of achieving these goals bring people closer to Christ or push them away?

당신에 인생에 세워둔 목표들이 무엇입니까? 왜 이것들은 당신에게 중요합니까? 이것들은 개인적인 목표들입니까? 성경적입니까? 이 목표들을 성취하는 결과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가까이 나아오게 합니까 아니면 오히려 밀어내게 합니까?

 

Read Joshua 6:3-6:5.

여호수아 6:3-5을 읽으십시오.

What would your response be? What would be the response of others that you told this to?

당신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이것을 말해준 다른이들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When you make a decision how much time have you spent praying about that decision before going ahead with it?

당신이 결정을 할때, 그것을 실행하기에 앞서 그 결정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도하는데 보내십니까?

Read the middle paragraph on page 50. What does this look like in your own church?

 

50쪽의 중간 문단을 읽으십시오. 당신의 교회에서 이것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How much of your own resources do you find yourself relying on?

당신이 가진 얼마나 많은 것들에 당신 스스로가 의지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십니까?

 

Page 60. Would you say that your life is marked right now by desperation for the Spirit of God? Would you say that the church you are a part of is characterized by this sense of desperation?

90. 당신은 하나님의 영을 간절히 구하는 삶을 살고 있으십니까? 당신이 출석하는 교회에서 그런 절박함을 찾아 볼 수 있습니까?





Chapter 4: The Great Why of God

하나님의 원대한 목표

Chapter Four starts out with an uncomfortable but necessary question. On Page 64 Platt asks us these questions:

4장은 불편하지만 필요한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How many of us are embracing the comforts of suburban American while we turn a deaf ear to inner cities in need of the Gospel?

복음이 들어가야 할 소외된 지역의 현실을 외면하고 더 안락한 환경을 가꾸고 누리는 데 골몰하는 거짓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How many of us are so settled in the US that we have never once given serious thought to the possibility that God may call us to live in another country?

현재의 상황에 안주해서 하나님이 제3세계에 가서 살라고 명령하실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단 한 번도 심각하게 고려해 보지 않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How often are we willing to write a check to a ministry or to someone else with our motivations being that we don’t want to go there ourselves?

그리고 얼마나 자주 자신이 갈 필요 없는 조건이 열악한 나라에서 나 대신 사역하는 선교사들에게 즐거이 후원금을 보내고 있습니까?

Read Matthew 28:16-20

마태복음 28:16-20을 읽으십시오.

Do you view this command to be something for ‘radical missionaries’ only?

당신은 이 구절을 급진적인 선교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까?

How have you been living out the command of Christ to “Go therefore, and make disciples”?

당신은 그러므로 가서 제자를 삼으라고 하는 예수님의 명령을 삶속에서 실천해오고 있습니까?

 

Read Daniel 3

다니엘 3장을 읽으십시오.

Why would God let these 3 Hebrew men be thrown into a fiery furnace?

왜 하나님은 이 세 히브리인을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지게 하셨습니까?

Is this how God’ treats those who risk everything for Him?

이것이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을 감수한 사람들을 대하는 하나님의 방식입니까?

How does this make you feel about the next time you are faced with taking a stand for God.

이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한 믿음의 길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어떠한 것을 느끼게 합니까?

If you were to summarize the message of Christianity what would you say?

기독교의 메세지를 요약한다면,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Page 73. How do you respond to the statement “I am not called”. How do you view your life in light of the Gospel?

107. “나는 부르심을 받지 않았다는 말에 어떻게 응답합니까? 복음의 관점에서 당신의 삶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Do you often struggle with your “calling”? Do you understand that God has called you and gifted you for a global purpose?

당신의 부르심에 대해서 자주 고민하십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전 지구적 목적을 위하여 부르시고 은사를 주셨다는 것을 아십니까?

Page 75. Platt asks a very deep question: “What about the needs here?”

Have you ever asked this question before? Statements such as “God has given me a heart for my hometown” What are your thoughts on his statement that most of us aren’t very concerned about the needs around us, sharing the gospel with others, feeding the hungry, helping the sick, strengthening the church, etc. What are some of the things keeping us from this? Have we ever stopped to consider why we don’t do more of these things?

110. 저자는 매우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가까운 곳에도 가난한 이가 허다하다?

이전에 이러한 것에 대해 질문을 해본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나에게 내가 사는 곳에 대한 마을 주셨다.” 저자는 대다수 크리스도인들은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주린 이들을 먹이고, 몸이 아픈 이들을 돕고, 도움이 절실한 곳에서 사역하는 교회에 힘을 실어 주는 것등의 일에 그다지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당신은 이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것들과 동떨어지게 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왜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더 하려고 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고민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Page 83. What if you were to spend all of your life for the sake of all of God’s glory in all of the world? What might this look like in your life to be radically abandoned to Christ?

119. 만약 당신이 당신의 전 인생을 온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한다면 어떻습니까? 그리스도께 당신의 전 생애를 급진적으로 바친다는 것은 어떠한 모습일것 같습니까?

Page 70. What version of Christianity do you see?

103-106. 당신은 어떤 모습의 기독교를 보고 있습니까?




Chapter 5: The Multiplying Community

세상 속에 뛰어들어 제자 삼는 공동체

Why not? “왜 안돼?”

Platt’s friend asks a question that we don’t usually ask ourselves. “I am going to impact the world.” was his statement. He said “I’m going to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저자의 친구가 우리가 종종 우리자신에게는 하지 않는 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나는 세상에 영향을 끼칠거야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나는 온 민족들 가운데 제자들을 삼을 거야.”

Have you ever talked yourself out of doing something that you knew you were supposed to do? Perhaps something as simple as praying for someone, going to an altar call during service, sharing truth instead of sugar-coating things.

당신은 당신이 해야하는 무언가를 하는 것에 대해 자기 자신에게 질문해 본적이 있습니까? 아마도 그것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라든지, 앞에 나가서 기도를 하는 것이든지, 진리를 전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Most of us spend more time making excuses not to do things, instead of asking “Why not?” Ask yourself this question. What are your answers?

우리들 대부분은 왜 안되?”라는 질문을 하기보다는 하면 안된다라는 핑계를 만드는데 더욱 많은 시간을 소비합니다. 당신의 답은 무엇인가요?

Page 87. The Next Step How do we make God’s glory known to all nations? What does this look like in our day to day lives?

126. 어떻게 우리는 모든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까? 이것은 우리의 매일의 삶속에서 어떻게 나타납니까?

Read through the Next step.

125-127(그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을 읽으십시오.

Discuss how you would have handled the next step in your group discussion time.

목장안에서 당신은 어떻게 위의 내용을 다룰지에 대해서 나누십시오.

Read through Any and Every follower of Christ on Page 90.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모두다” (129-133)를 읽으십시오.

Think about the people in your church that are currently doing this. What do you see is different about their lives, their focus?

현재 교회안에서 이것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의 삶에 어떠한 다른점이 있습니까? 그들의 초점은 어디에 있습니까?

Page 92. In your own words what does it mean to go and make disciples? Do your actions line up with your words?

132. 당신의 말로 가서 제자를 삼으라는 것의 뜻이 무엇입니까? 당신의 행동들이 당신의 말과 일치합니까?

Discuss the discipleship model in your church. Is it effective? Does it exist? What is the focus of your discipleship? On page 95 Platt discusses the very touchy subject (for many churches) about tracts.

당신의 교회에 제자훈련에 대해서 토론해보십시오. 효과적입니까? 제자훈련이 존재합니까? 제자훈련의 중점이 무엇입니까? 135쪽에서 저자는 (많은 교회들에게) 매우 민감한 전도지에 대한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How do you respond to what he says about the way these situations were handled? How effective has this plan been in your experience? What is the difference in handing out tracts and what Platt mentions here?

당신은 이러한 상황들이 다루어지는 방법에 대해서 저자가 말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이 계획은 당신의 경험 비추어보았을 때, 얼마나 효과적입니까? 전도지를 나누어주는 것과 이 글에서 저자가 언급한것과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Page 98. Being a part of a community of faith involves being exposed to the life of Christ in others. Does the thought of going out into the world scare you? Does it make you uncomfortable?

139. 신앙공동체의 식구가 된다는 것은 곧 다른 이들 가운데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볼 줄 알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세상가운데로 나아간다는 생각이 당신을 두렵게 합니까? 당신을 불편하게 합니까?

Just as we are identified with Christ we now share life in Christ with one another. So to whom can you deliberately, intentionally, and sacrifically show the life of Christ in this way?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된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다른 이들과 삶을 공유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이러한 방법대로 누구에게 의도적으로 그리고 희생적으로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타낼 수 있습니까?

Discussing discipleship What would be the most effective way for a new follower of Christ to learn to pray?

새신자가 기도를 배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Would you sign them up for a one hour a week class on prayer?

일주일에 한번 있는 기도세미나에 그들을 등록시키시겠습니까?

Or invite them personally into your quiet time with God to teach them how to pray?

아니면 개인적으로 당신의 QT시간에 그들을 초대해서 기도하는 것을 가르치시겠습니까?

What would be the most effective way to teach a new follower of Christ to learn how to study the Bible?

새신자에게 어떻게 성경을 공부하는지에 대해 가르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Do you take notes during the sermons on Sunday morning?

주일 아침 설교 시간에 설교노트를 작성하십니까?

Have you ever referred back to those notes, or do you just file them away? (or throw them away)

그 설교노트를 다시 열어 볼때가 있었습니까? 아니면 그냥 쌓아두고만 있습니까

Ask yourself this question and discuss with the group: How can I listen to His Word, so that I am equipped to teach this Word to others?

당신 자신에게 질문하고 목장안에서 나누십시오.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 준비되기위해, 어떻게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까?

 


Chapter 6: How Much is Enough?

가난한 자들이 필요로 하는 만큼 나눠 주라

Read Hebrews 4:12

Page 108. Platt talks about blind spots. He said that Good intentions, regular worship, and even study of the Bible do not prevent blindness in us. Part of our sinful nature instinctively chooses to see what we want to see and ignore what we want to ignore.

150. 저자는 사각지대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그는 아무리 선한 마음을 가지고 예배에 참석하며 성경 공부까지 열심히 한다 해도 영적인 사각지대가 생기는 것을 막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죄로 물든 인간의 본성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무시하고 싶은 것은 무시하게 만듭니다.

Think back to a time when this may have happened to you. How did God reveal to you what you had unknowingly overlooked? How did it affect your life from that point on?

이전에 이러한 모습이 당신에게 있었는지 돌아보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에게 어떻게 자신도 모르게 넘어갔던 일들을 드러내십니까? 그것은 이후에 당신의 삶에서 어떠한 영향을 끼쳤습니까?

How often do you think about the poor?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해서 얼마나 자주 생각하십니까?

Read James 4:17

야고보서 4:17을 읽으십시오.

Page 110. Platt says that “If there is no sign of caring for the poor in our lives, then there is reason to at least question whether Christ is in our hearts.” Platt introduces a scenario about a man who claims to have Christ in his heart but willfully engages in sexual activity knowing what Scripture says about this sin. “He disobeys Christ persistently with no sign of remorse, contrition or conviction. So is he really a Christian?” How would you answer this question?

153. 저자는 가난한 이들을 돌아볼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면 내면에 그리스도가 계신지 여부를 스스로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성경은 이것을 죄라고 하는 것을 알면서도 완고하게 간음죄를 저지르면서 여전히 그리스도가 자신의 마음에 있다고 주장하는 한 남자의 예를 들었습니다.

Do you know people who are knowingly and willfully engaging in sin, even after they have knowledge of the truth, who claim to be a Christian?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며, 진리를 이미 알고 있는데도, 고의적으로 그리고 의지적으로 죄를 범하는 사람들을 아십니까?

Page 111. Is materialism a blind spot in American Christianity today? Is it your blind spot? Read Luke 16:19-31

154. 오늘날 미국 기독교에 있어서 사각지대는 물질주의입니까? 그것은 당신의 사각지대입니까?

누가복음 16:19-31을 읽으십시오.

Is caring for the poor a serious matter to God?

하나님께 있어서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일입니까?

 

What was God’s response for those who neglected the poor? Why is the rich man in hell?

Who do you identity with more? The rich man or Lazarus?

가난한 이들을 소홀히 하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무엇입니까? 왜 부자는 지옥에 있습니까?

당신자신을 누구와 더욱 동일시하십니까? 부자입니까? 나사로입니까?

Page 117. Why would obedience to Christ lead to this man losing his possessions? What were the disciples having to learn by this teaching of Jesus?

161. “왜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은 이 청년으로 하여금 그의 재산을 버리게 하는 것인가?” 제자들은 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무엇을 배웠습니까?

Isn’t the hidden assumption among many Christians in our culture that if we follow God, things will go well for us materially?

많은 그리스도인이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면 우리가 물질적으로 잘 될것이라고 잠재적으로 추측하고 있는 것이 우리 문화안에 있지는 않습니까?

Looking back so far in this study, has there been anything that Platt has brought to light that you have disagreed with? Why?

지금까지 이 책을 공부하면서, 저자가 도전하는 내용들 중에 동의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Page 118. The prosperity Gospel is flourishing right now, especially here in the US. How would you respond to this woman’s question who is stricken in poverty “Does this mean we do not have enough faith?” What message is the church conveying to the world with this type of Gospel of prosperity?

162-163. 번영복음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특히 이곳 미국에서). 가난속에 있는 이 여성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이렇게 사는 것은 우리의 신앙이 부족하기 때문인가요?” 이러한 번영복음으로 교회는 세상에 어떤 메세지를 전하고 있습니까?

Read page 120. Platt offers 2 views of the scripture interpretation of Mark 10, where Jesus tells the man to sell everything he had and give to the poor. Which argument presented do you see yourself siding with most often?

164-167. 저자는 예수님이 부자 청년에게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시는 마가복음 10장을 해석하는 2가지 관점을 제시합니다. 당신은 어떤 관점에서 이 본문을 보십니까?

“That Jesus did not command all His followers to sell all their possessions gives comfort only to the kind of people to whom He would issue that command.” Are you willing to ask God if he wants you to sell everything you have and give the money to the poor? Are you willing to ask and wait for an answer instead of providing one of our own or justifying our ideas of why he would never tell us to do this?

예수님은 때때로자신이 가진 것을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 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여러분과 내게도 똑같은 요구를 하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당신은 어떠합니까? 정말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줄 마음이 있습니까? 그것이 주님의 뜻인지 서슴없이 묻고 그 대답을 기다려 볼 의향이 있습니까? 핑계를 대며 합리화하거나 절대 그렇게 응답하실리가 없다고 속단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십니까?

Page 121. Are we looking to Jesus for total leadership in our lives, even if that means going against everything our culture and maybe even our church family might tell us to do?

167. 풍요로운 삶을 지향하는 현대 문화를 따르는 신앙의 동료들이 가는 길과 비록 다르다 할지라도 예수님이 당신의 삶 전체의 주관자가 되어 주시길 요청하고자 하십니까?

Page 123. Do you believe that when you have to stand before God, that He will ever tell you “I wish that you had kept more for yourself?”

당신이 하나님이 앞에서 서야할 때, “좀 더 남겨 두지 그랬니?”라고 말씀하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Page 125. What do you want/seek in life? Is it more stuff? Do you have the basic necessities of your life provided for? Do you want more? Do you want a bigger house or a nicer car or nicer clothes?

172. 삶에서 무엇을 원하고 추구하십니까? 더 갖는 것입니까? 당신의 삶을 위한 기본적인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까? 더 가지고 싶으십니까? 더 큰 집이나 더 좋은 차나 더 좋은 옷을 원하십니까?

Page 127. Have you ever considered operating under the idea that God has given us excess, not so we could have more, but so that we could give more?

174. 하나님은 우리가 더 갖기보다는 더 주기위하여 여분의 것을 주신것이라는 제정관안에서 소비를 고려해보신적이 있으십니까?

Page 128. Read through Platt’s discussion about a lifestyle cap. Have you ever considered doing something like this? Why or why not? What is your motive or reason?

174. 저자의 라이프 스타일의 자물쇠에 대한 토론에 대해서 읽으십시오. 이러한 것을 해보고자 하신 적이 있습니까? 왜 그러셨습니까? 혹은 왜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당신의 동기와 이유가 무엇입니까?

Page 129. What can we spare or what will it take? What’s your response? What would happen if we stopped asking how much we could spare and starting asking how much it was going to take?

176. “남은 것을 주느냐, 필요한 것을 주느냐.” 당신의 응답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따로 얼마나 떼어놓을 수 있는지 질문하기를 멈추고 그들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질문하기 시작한다면 무슨일이 일어나겠습니까?

 


Chapter 7: There Is No Plan B

다른 길은 없다! 당신이 나서라

Universalism. (보편주의)

Page 142. Platt says that while some Christians have rejected universalism intellectually, that practically they may end up leading universalistic lives. They claim Christ is necessary for salvation, yet they live their Christianity in silence, as if people around them in the world will indeed be ok in the end without Christ.

192. 저자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지성적으로는 보편주의를 배격하지만 실재로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서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주변에 있는 이들이 예수님을 만나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홀로 자신의 신앙을 지켜 갈 뿐입니다.

Discuss this with your group.

What are some of the obstacles the church faces with this task?

목장안에서 이것을 나누십시오.

교회는 이 과제에 대해 어떠한 장애물들에 직면합니까?

What are some of the obstacles that you come up against personally? Then discuss ways that you can help overcome those obstacles.

당신이 개인적으로 부딫히는 장애물들은 무엇이 있습니까?

그러한 장애물들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들이 무엇이 있는지 나누십시오.

Read Romans 1:18-20.

로마서 1:18-20을 읽으십시오.

What are some ways that God has made it plain to them?

어떤 방법들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명백하게 드러내셨습니까?

Starting on Page 144-145 read through Truth: 2. According to scripture, how do you answer the question “They were doing the best they had with the knowledge they had. Isn’t that good enough?”

195.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을 거부한다를 읽으십시오. 성경에 따르면, 당신은 그들은 나름대로 가진 지식을 총동원해서 최선을 다한 겁니다. 그만하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라고 하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Based on that answer what does this mean for those who might be worshiping a “Sun God” or a “moon goddess?”

앞의 질문에 대한 당신의 응답에 기초하면, 태양신이나 달의 여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Page 146. What happens to the innocent guy in the middle of Africa who dies without ever hearing the Gospel?

197-198. 아프리카 밀림 한복판에 살면서 복음을 들어보지도 못한 채 죽은 죄 없는 영혼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Page 148. “We want people to be ok when they haven’t had the opportunity to hear the gospel” But think about the logic of this conclusion. Based on this knowledge how should that change our focus?

199. “복음에 노출되지 않은 이들에게 별문제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러나 이 결론의 논리 구조에 대해서 생각해보십시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한다면, 우리의 초점은 어디에 맞춰져야 합니까?

Page 151. How would you have responded to Lauren’s question? What would you have said to her?

202. 로렌의 질문에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그녀에게 어떻게 말해주겠습니까?

Page 152. Platt begins to second-guess himself and even doubt what he believes. Have you ever done this? Have you ever examined why you believe what it is that you believe?

203. 저자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가 믿고 있는 것에 대해 의심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당신도 이러한 경험이 있습니까? 당신은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을 왜 믿고 있는지 점검해본 적이 있습니까?

 

What are the reasons behind what you believe?

Do you just believe what you were raised to believe?

당신이 믿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믿으라고 들어왔기 때문에 그저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Have you ever considered searching the truth out for yourself?

스스로 진리를 찾는 일에 깊이 몰두해본 적이 있습니까?

Page 153. Many people conclude “I don’t know how, but surely God will make a way for these millions of people to get to heaven even if they haven’t heard about Jesus.”

205-206. 많은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분명 복음을 듣지 못한 수십억 인구를 살리실 방도를 따로 마련해 두셨을 거야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How would you respond to explaining to someone that all roads do not lead to heaven? Have you ever considered that we are one of the ways people will get to hear about Jesus?

누군가에게 모든길이 다 천국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바로 우리 자신들이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들을 수 있는 방법들 중 하나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Thinking back over the last couple of weeks, how many times outside of church and your friends at church have you mentioned the name Jesus?

지난 2주간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교회밖에서나 교회안에서 사람들에게 몇번이나 예수님의 이름을 언급했었습니까?

Page 156. In the diagram where is the breakdown?

208. 도표 속에서 흐름이 끊어질 만한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Page 159. “The injustice lies in Christians who possess the gospel and refuse to give their lives to making it known among those who haven’t heard.” Do you think this statement is fair? How do you answer the question “What is God’s will for my life?”

ThequestionisnotCanwefindGod’s will, but will we obey it.

213. “정당하지 못한 쪽은 오히려 복음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그 기쁜 소식을 널리 알리는 데 삶을 바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다.” 이 진술이 정당하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하나님은 내 삶에 어떤 뜻을 가지고 계실까?” 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사실 우리가 해야할 질문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라고 물을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을까?” 라고 질문해야 합니다.





Chapter 8: Living When Dying Is Gain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Page 162. Do we believe the reward found in Jesus is worth the risk of following Him?

216. 예수님 안에 발견하는 상급이 과연 목숨을 걸고 좇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까?

Page 164. “The safest place to be is in the center of God’s will.” Have you ever thought the following? If it’s dangerous, God must not be in it. If it’s risky, if it’s unsafe, if it’s costly, it must not be God’s will. What if these factors are actually the criteria by which we determine something is God’s will?

219.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그분의 뜻을 따르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위험한 곳이라면 하나님이 절대 보내시지 않을 거야. 위태롭고 불안하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그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지.’ 하지만 그런 요소들이 하나님의 뜻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How would that change things in your life?

그것은 당신의 삶을 어떻게 바꾸겠습니까?

Page 165. Read the story about the missionary couple. Would you be willing for your family to be that first missionary couple? Would you be willing to be killed and cannibalized so that those who come after you would see people come to Christ?

219-220. 선교사부부의 이야기를 읽으십시오. 당신의 가족이라면 서슴없이 첫 번째 선교사 내외와 같은 길을 갈수 있으시겠습니까? 기꺼이 잡혀서 살해되고 토막 나서 후속 선교사가 온 부족이 회심하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도록 터를 닦을 수 있으시겠습니까?

Page 167. Have you ever thought “If we would all just become like Jesus, the world would love us?” What does the reality of Scripture say about that kind of statement? How hard is it for you to come to the reality of the truth of what Scripture says in regards to this?

222. “만약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면 세상은 다 우리를 좋아할 것이다라고 생각을 해보신적이 있으십니까? 성경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어떠한 현실을 증거하고 있습니까? 이러한 것에 대하여 성경이 말씀하는 진리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습니까?

Page 170. Discuss with your group the mission and purpose of the SS Church and the SS United States. Page 172. How is it possible for sheep going into the middle of wolves not to be afraid?

224-227. SS 교회와 SS 미국 호의 사명과 목적에 대해서 함께 토론하십시오. 228. 어떻게 양이 늑대 무리 가운데 들어가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Page 174. God knows every detail of our lives, and when we step out in faith to follow Him, He will show us that our greatest security is not found in the comforts we can manufacture in this world, but in the faithful provision of the only One who knows our needs and the only One who is able to meet our needs in every way. What comforts have we manufactured? What worldly provisions do we seek?

하나님은 우리 삶을 세밀하게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믿음으로 그분을 따를 때, 주님은 우리의 가장 큰 안전은 세상속에서 우리가 제작한 안락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모든 방법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의 신실하신 공급하심 속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어떠한 안락함을 제작해 왔습니까? 우리는 어떤 세상적인 방법의 공급을 구합니까?

Discuss with your group starting on page 179 Life is Radical When Death is Reward. Discuss with the group your concerns and fears about this. Be honest with yourself and your group.

236쪽부터 있는 죽음이 상급이 되는 순간, 삶은 급진적이 된다를 토론하십시오. 이것의 대한 당신의 걱정과 두려움을 함께 나누십시오. 당신 자신에게 솔직하게, 교우들에게 진솔하게 나누십시오.

Page 181. When we consider the promises of Christ, risking everything we are and everything we have for His sake is no longer a matter of sacrifice. It’s just common sense. Reflecting back on what God has shown you in this study how can you apply this truth in your life?

238. “그리스도의 약속에 비추어 보면, 주님을 위해 나의 소유와 존재를 거는 것은 더 이상 희생이 아니다. 도리어 상식에 가깝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 책을 공부하는 동안 깨닫게 하신 것들을 되돌아보며, 당신의 삶속에서 어떻게 이 진리들을 적용하시겠습니까?

 

 

 

 

 





래디컬 RADICAL David Plat




[ 래디컬 책 저자 소개 ]


이비드 플렛 목사 : 앨라바마 주 버밍엄에 소재한 브룩힐즈 교회의 담임목사로 조지아 대학을 졸업후 뉴올리언스 침례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2006년부터 담임하고 있는 브룩힐즈 교회는 매주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열방을 뒤흔드는 공동체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4천여명의 성도들이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 자세한 교회 비전은 홈페이지를 참조하라. www.fadicalexperiment.org

 

래디컬의 저자인 데이비드 플랫(David Platt)은 미국 알라바마 주에 위치한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다. 그는 한때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는 자원이 많다고 생각했다. 똑똑한 인텔리 성도들과 돈과 조직과 건물이 있으니 교회가 제대로 헌신되면 세계복음화를 위해 정말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를 깨달았다고 한다.

 

바로 그 교회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 래디컬 >책을 통해서 전하고 있고 자신의 교회에서 소위 <래디컬실험과 모험>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전하고 있다.

 



[ 래디컬 책을 읽으므로 얻는 유익 ]


이 래디컬 책을 읽으므로 GSC 공동체가 왜? 존재하는가?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제자가 되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시금 도전받고 쉽지않은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 는 명령과 나를 따를 수 있는가?”라고 하는 질문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야할지를 고민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 래디컬 질문 Radical Question ]

 

1 질문 / 내가 믿는 예수는 모든 것 다 포기하고 따를 만한 분인가?

 

 

2 질문 /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3 질문 / ‘ 세상의 것에 대한 사랑을 버리라’ ‘ 주님을 따르라 는 이 예수님의 말씀에 당신에 무엇을 의미하는가?

 

 

 

 


 

 

Chapter 01

모든 걸 다 포기하고 따를 만한 분

 

도입질문 :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 버린다 ]는 것은 무슨 뜻인가?

믿음은 절대적인 [ 헌신 ]을 요구한다

누가복음 9장 후반부에는 제자가 되겠다며 예수님을 찾아온 세사람이 등장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애써 만류하시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셨다. 그들을 만류하시면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

 

노숙자가 되어라, 아버지의 장례는 죽은 이들에게 맡겨라. 가족과 작별 인사조차 나누지 마라.” 이 본문을 주제로 처음 메시지를 들은 것은 신학교에서 설교학을 가르쳤던 짐 섀딕스(Jim Shaddix)교수를 통해서였다. 그분이 어느 집회의 설교에서 이 본문으로 설교하면서 오늘 밤, 저는 여러분을 뜯어말려서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게 만들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라고 외쳤다. 그는 누가복음 9장의 말씀을 정확하게 옮겨 가며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어려움을 달게 받는 자리임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좇고 싶은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초청했는데 수많은 이들이 강단 앞으로 나왔다. 좋은 걸 배웠으니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어느 청소년 모임에서 수많은 학생들 앞에서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초청했다. 섀딕스 교수님보다 훨씬 깔끔하고 훌륭하게 전했다고 자부하지만 강단 근처엔 개미 새끼 하나 볼 수 없었고, 보다 못한 집회 관계자가 그만하면 됐으니 어서 끝내라고 신호를 보냈다. 기이한 경험이었다.

 

주님을 따르려면

예수님의 삶 곳곳에서 누가복음 9장과 비슷한 사건들을 찾아 볼 수 있다. (14:26, 27, 14:33, 10:17)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겉보기에는 짤막하고 단순한 말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삶을 뒤흔드는 급진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다. 주님은 안락한 환경과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상황을 완전히 포기할 것을 요구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제자의 길을 중심으로 삶의 판을 완전히 새로 짜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제자들은 저마다 세워놓았던 계획과 꿈을 접고 그 자리에 그리스도의 계획과 비전을 새로 깔아야 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본문을 대하면서 이 가르침은 다른 뜻이 있을 거야. 이 말씀의 속뜻은...”라고 어떤 식으로든 합리화시킬 방도를 찾아 헤매게 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예수는 잘사는 국가, 중산층의 기호에 딱 들어맞는 멋진 예수, 물질주의에 대해 거부감이 없고 돈을 포기해야 한다는 요구 따위는 죽었다 깨어나도 하지 않는 예수다. 수지타산을 정확하게 맞추며 위태로운 극단을 다 피하기를 바라는 예수다. 세속적인 욕망과 야심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안락한 삶과 번영을 가져다주는 예수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당면한 가장 큰 위험은 예배당에 모여 두 손을 높이 들고 찬양하지만 실제로는 성경속의 예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경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문화는 하면 된다고 가르친다. 제임스 애덤스가 1931년 처음 사용한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이란 말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듯 보인다. 큰 목표를 추구할 자유는 오히려 높이 평가되고 확실하게 보장해 주어야 할 덕목이다. 그러나 아메리칸 드림의 이면에는 인간의 가장 큰 자산은 재능이라는 위험한 추정이 깔려있다. 이는 복음의 우선순위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복음은 자신을 죽이고 하나님을 믿으며 그분의 권능에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곧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독자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할 능력이 전혀 없는 존재임을 복음을 통해 직면하게 하시기 때문이다.(15:5)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메리칸 드림을 좇는 과정에서 빠지기 십상인 교묘하고도 치명적인 함정이다. 제힘으로 목표를 달성하게 되면 누구든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기 쉽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인간의 존재와 능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복음과 아메리칸 드림은 명확하고도 결정적으로 충돌한다. 아메리칸 드림과는 정반대로, 하나님은 실제로 자신의 무능력함을 자랑하는 자들을 기뻐하신다. 일부러 그분은 하나님의 도우심 외에는 기댈 것이 없는 막다른 상황으로 이끌어 가시기도 한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그분의 거룩한 이름이 높이 드러나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에게 매달리고 있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 교회 운영계획과 전략, 수단과 방법들을 생산하는 시스템은 걱정이다. 이는 인간의 능력을 강조하고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대한 맹목적인 우리의 반응이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목회자, 열심히 일하는 참모들, 상황 판단이 빠른 원로들과 이상적인 사고를 하는 성도들이 힘을 합쳐 이끌고 있는 오늘날의 교회를 보라. 멋진 퍼포먼스와 군중을 사로잡을 만한 스타 같은 설교자, 기량이 뛰어난 찬양팀과 밴드, 찾아오는 군중들을 수용할 만한 공간, 어느 각도에서 봐도 매력적이고 환상적인 예배당, 한번 오면 떠나지 않게 붙잡아 두는 최상급, 최고급 프로그램들을 마련하는데 우리는 몰두하고 있다. 오늘날 성장하고 역동적이며 성공적인 교회들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요소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나는 개인적으로 지금 이끌고 있는 교회가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그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카맣게 모른 채 여러 활동들을 매끄럽게, 효과적으로, 더 나아가 아주 성공적으로 전개할까봐 겁이 난다. 하나님의 권능을 간절히 기다리는 자세가 빠진, 주님의 권세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사은품정도인 교회가 될까봐 겁이 난다. 우리는 쉽게 우리 자신을 속일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들로 말이다. 그것이 두렵다.




 

Chapter 02

당신의 삶을 완전히 바꿀 래디컬 실험

 

영혼구원과 복음전하는 일마저도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물론 물질로 돕는 일은 귀하지만 고통 중에 있는 이웃들과 선교지를 돕는 가장 좋은 길은 기회 있을 때마다 그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데이빗 플랫은 그의 책 래티컬(Radical)’에서 그리스도인들이 1년 단위로 도전해야할 5가지목록을 아래와 같이 제시합니다.

 

1) To pray for the entire world(전 세계를 위해 기도하라)

2) To read through the entire Word(말씀 전체를 샅샅이 읽으라)

3) To commit our lives to multiplying community

(복음적인 지역 교회에 헌신하라)

4) To sacrifice our money for a specific purpose

(의미 있는 곳에 쓰기 위해 재정을 헌신하라)

5) To give our time in another context radical experiment

(당신을 필요로 하는 낯선 곳에 가서 섬기라)




[ 목장에서 래디컬 책 읽고 나누는 순서 ]


10월 첫주 [ 래디컬 목장 교재 1 ] (~p15)

 

1. 모든 걸 다 포기하고 따를 만한 분

- 예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10월 셋째주 [ 래디컬 목장 교재 2 ] (~p93)

2. 복음은 당신의 전부를 원한다

- 복음의 진리와 아름다움에 눈뜨는 길

 

3. ‘를 버리는 데서 시작하라

- 하나님의 권능에 의지하는 마음가짐의 중요성

 

4. 하나님의 원대한 목표

-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의 목적, 태초부터 지금까지

# 주일예배 / 특별 새벽기도회 말씀 나누기

 

11월 첫주 [ 래디컬 목장 교재 3 ] (~p191)

 

5. 세상 속에 뛰어들어 제자 삼는 공동체

-모두가 힘을 모아 하나님의 원대한 목적을 이루어 가는 길

 

6. 가난한 자들이 필요로 하는 만큼 나눠 주라

-배부른 몇 나라, 그리고 굶주린 나머지 세계

7. 다른 길은 없다! 당신이 나서라

-가는 게 어째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가?

 

11월 셋째주 [ 래디컬 목장 교재 4 ] (~p241)

 

8.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래디컬한 삶에 따르는 위험과 상급

 

9. 당신의 삶을 완전히 바꿀 래디컬 실험

- 삶을 뒤엎는 365





함께 읽어 보기

Chapter 2 복음은 당신의 전부를 원한다.

복음의 진리와 아름다움에 눈뜨는 길

 

자아가 왕좌에 앉아 통치하는 문화 속에 하는 현대인들은 자신이 만들어 낸 가설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복음을 왜곡하고, 축소하며, 조작하는 위험천만한 성향을 보이고, 어디까지가 복음이고, 어디까지가 성경이 가르치는 원래의 복음인지 모호해 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긍정적인 사고의 힘'Blending된 성경의 메시지는 인간의 욕망과 멋진 인생, 풀리지 않는 인생을 풀 수 있는 도구로 전략되고,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내 삶을 바로 잡아(내 욕망의 소원대로) 주리라고 믿는 것이다.

 

복음은 인간 존재와 소유 전체를 하나님의 실존 앞에 내려놓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몰아간다. 복음에 담긴 하나님에 대한 계시에는 힘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열정을 회복하고 그분을 알고 체험하는 것이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Chapter 3 ''를 버리는 데서 시작하라

하나님의 권능에 의지하는 마음가짐의 중요성

물질적 번영을 추구하는 현대에 예수님의 부르심과 복음의 핵심은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통해서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위험스러운 가정 가운데 하나는 '인간의 가장 큰 자산은 재능'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자신을 믿고 의지해서 무언가를 이루어 간다는 사고의 개념에 따라가게 한다.

그러나 복음은 자신을 죽이고 하나님을 믿으며 그분의 권능에 의지하라고 주문한다.

복음이 지향하는 것은 하나님을 높이는데 있다.

아메리칸 드림의 목표는 인간을 으뜸으로 여기는 것이지만 복음이 지향하는 것은 하나님을 높이는데 있다.

 

내가 연약할수록 도드라지는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은 실제로 자신의 무능력함을 자랑하는 자들을 기뻐하신다. 그래서 때론 우리를 기댈 것이 없는 막다를 상황으로 이끌어 가시기도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공략했던 방법처럼 괴상하고, 이해할 수 방법을 통해서 일하신다. 그 이유는 절박하게 주님의 권능을 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시고, 그 뒤에 필요를 채워주심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신 역사를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백성들 가운데서 이런 역사가 일어나도록 설계하셨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인물들에게 권능을 주셔서 복음이 전파되게 하는 일... 하나님의 권능은 인간의 힘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위대하다.

우리가 간구해야 하는 것은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성령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해 주시는 것이다. 교회는 성령 하나님의 권능가운데 힘입어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이다.





Chapter 4 하나님의 원대한 목표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의 목적, 태초부터 지금까지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의 원대한 목적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하나님의 복을 누리도록,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이 그분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게 하신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 땅을 정복하고 만물을 다시리라" 인간의 존재이유는 복잡한 것이 아닌 은혜를 누리고 그분의 영광을 널리 펼치는 것이.

 

* 예수님은 ''만을 사랑하신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셨지만, 그 축복은 아브라함 혼자가 아닌 온 열방이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기독교는 저마다 자신이 받은 은혜를 찬양하는데 바쁘다. 은혜를 주신 선물의 목적은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은 간과해 버린다. 그래서 그 결과는 '자기중심적인 기독교'이다. 공동체적인 것 보다 나 개인적인 축복과 사랑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 보다 내가 더 많은 축복과 은혜가 삶속에 있어야 한다. 이것이 현기독교의 주소이다. 그러나 결코 이것은 성경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목적을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셨.

 

* 세상 가치와 맞서 싸우라

거룩한 목적이 성취되는 것을 가로막는 비 복음적인 견해들을 던져 버려야 한다. 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기 위해 세상 뭇 민족들 속에서 일생을 드린다는 것이 자신에게 무엇을 뜻하는지 곱씹어 보아야 한다.



 [ 래디컬 질문 Radical Question ]

 

1 질문 / 요한복음 17장에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수 있는 예수님의 소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떻게 예수님의 소원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2 질문 / 당신은 제자 삼는 그리스도인입니까?

박제된 그리스도인입니까?

 

 

 

 

 

3 질문 / 돈을 쓰는 방식은 영적인 현주소를 가늠하는 바로 미터입니다. 당신의 돈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아직도 10억 명이 넘는 극심한 빈곤에 죽어가는 사람들이다. 당신에게 나눔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4 질문 / 오늘 세계 인구 가운데 45억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더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 가운데 10억은 아예 복음을 들어 본적조차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인 당신은 이 사실에 이떻게 생각하는가?

 

 

 


Chapter 5 세상 속에 뛰어들어 제자 삼는 공동체


모두가 힘을 모아 하나님의 원대한 목적을 이루어 가는 길

 

예수님께서 세상을 바꾸시는 방법은 제자를 삼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사는 곳이나 능력, 교육 정도, 연봉 따위와 상관없이 그리스도인 하나하나를 향해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다. 그것이 곧 세상을 바꾸는 방법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주님의 방법은 대형이나 다수를 향하지 않으셨고, 소수를 중심으로 하셨다. 거대한 혁명이 아니라 몇몇 사람들을 선택하는데 초점을 두는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 삼는 방법은 12명이었고, 그 제자들을 위해 공생애를 사셨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제자를 삼는 데는 특별한 훈련이나 비범한 능력이 필요하지 않다. 목회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탁월한 전달력이나 놀라운 사고를 가진 자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제자 삼는 일이 프로그램이 되면 안 될 것이다. 삶이 되어야 한다.

한 사람 한사람을 세워 각자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대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키워 내는 데 있다. 제자 삼는 일은 프로그램이나 이벤트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이다. 복음을 전하며 생명을 나누는 것이 제자화의 핵심이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공유하는 것, 이를 위한 가르침이 있어야 하고, 세례를 받게 해야 한다.





Chapter 6 가난한 자들이 필요로 하는 만큼 나눠주라

배부른 몇 나라, 그리고 굶주린 나머지 세계

 

주일마다 모여 예배를 드리고 일주일 내내 경건하게 성경을 읽는 선량한 교인들지만, 실제로 흑인 남자와 여자, 아이들을 재산으로 취급하는 만행.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하나님 말씀을 시종일관 남용 또는 악용한다.

 

10억 명이 넘는 극심한 빈곤 생태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하루 품 삵이 2달러 미만. 하루에 26천명의 아이들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부족함이 아닌 더 많은 만족을 채우기 위해서 현실을 외면해 왔다. 상대는 한없이 가난할 뿐만 아니라 아무런 힘이 없어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상태에 있다. 벼랑 끝에 몰린 이들은 세상에 엄연히 존재한다.

물질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에 배워야 한다. 자신의 재정 관리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앎을 삶과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수백억을 들여 교회를 건축하는 일보다, 그 돈으로 수천 명을 살릴 수 있다면 더 귀한 일임을 알아야 한다. 가치추구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

가난한 이들에게 무언가를 베풀고자 할 때 자신이 쓰고 남은 것을 주는가? 그들이 필요한 것을 채워 주는가? 그 기준을 생각해야 한다.



 

Chapter 7 다른 길은 없다! 당신이 나서라

가는 게 어째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가?

오늘 우리의 신앙의 문제는 신앙은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믿음은 진리고 다른 이의 신앙은 거짓이라는 주장이야말로 용서 받지 못할 죄가 된다. 따라서 각자가 믿고 싶은 것을 조용히 믿으면서 다른 이의 신앙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다. 현대 기독교 신앙 역시 이런 사조에 물들어 있다.

오늘날 세계 인구 가운데 45억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더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 가운데 10억은 아예 복음을 들어 본적조차 없다는 것이다. 이들이 죽게 되면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생기게 될까? 개인적으로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그리스도를 좇는 이들이 답해야 할 가장 시급한 질문이라고 확신한다.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7가지 진리가 있다.

1) 모든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다.

2)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을 거부한다.

3)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다.

4)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거부한 까닭에 정죄를 받는다.

5) 하나님은 죄인들을 위해 구원의 길을 여셨다.

6)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없으며 아무도 하나님께 나올 수 없다.

7) 주님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다.

 

지옥에 들어갈 운명에 처한 이들이 십억 명이 넘는데 어떻게 세상의 성공 신화를 좇으며 시간을 낭비하겠는가? 이곳에 편안히 앉아서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하길 원하십니까?”라고 묻는 것은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모든 민족들, 특히 예수님의 이름을 들어 본적조차 없는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삶을 바치는 것이다


 


[ 래디컬 질문 Radical Question ]

 

1 질문 / 마태복음 10장에 나오는 제자가 되는 삶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제자가 되는 것은 어떤 위험부담, 위험지대가 존재하는가?

 

 

 

2 질문 / 당신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망설임 없이 순종할 마음이 있는가? 주님을 닮고 싶은가? 변두리의 빈민가든, 길건너 이웃이든, 전염병이 창궐한 아프리카의 외딴 마을이든, 중동의 적대적인 국가든 목숨을 내놓고 도움이 절실한 곳, 위험부담이 큰 곳을 찾아갈 용기가 있는가?

 

 

 

 

3 질문 / 당신의 삶을 완전히 바꿀 래디컬 실험 5가지을 대할 때 당신은 어떤 도전과 결심을 갖게 되는가? 무엇을 가장 먼저 시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4 질문 / 래디컬 책과 목장 나눔을 통해서 당신의 삶과 가정 그리고 교회에 어떤 유익이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Chapter 8 죽은 것도 유익함이라

래디컬한 삶에 따르는 위험과 상급

주님은 당신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세상이 주는 안전과 안정, 그리고 만족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다. 그러나 그 길을 다 간 뒤에 결국 세상이 줄 수 없는 엄청난 상급을 받게 된다고 가르치셨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긴다. 주님이 주시는 상급이 과연 목숨을 걸고 좇을 만한 가치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10장을 보면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면서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 감수해야 할 위험을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 위험한 곳을 가라. 배신당하고 미움과 박해를 받으라. ’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분명한 명령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절박한 온갖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는 두렵고 부담스러운 명령을 내리신 뒤에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겠다는 엄청난 약속을 주셨다. 주님은 세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 두려워하지 말라 ”(:26.28.31)

복음의 가장 큰 상급은 하나님 자신이다. 목숨을 내놓고 주님을 따라가면 주님의 임재 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만족을 맛보게 된다. 우리의 안전의 근원은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임재이다. 그래서 우리가 주를 위해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우리의 죽음이 상급이 되는 것을 느끼는 그 순간이 바로 급진적이 되는 삶이다.

그리스도께 철저하게 순종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어쩌면 위험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호화유람선을 타고 순적하게 항해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을 각오하고 수송선에 올라 거친 파도를 헤치며 나가는 작업니다. 안락함도 건강도 부요함도 세상적인 출세도 없다. 온전한 순종하다 보면 그 모든 것을 다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침내는 예수님 안에서 모두 보상 받게 될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포기하는 것 그 이상을 갚아 주신다.



Chapter 9 당신의 삶을 완전히 바꿀 래디컬 실험

삶을 뒤엎는 365일 필수인가?

진정한 성공은 철저한 희생을 통해서 만 가능하다. 궁극적인 마족은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중시하는데서 얻을 수 있다. 인생의 목적은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와 문화를 초월한다. 삶의 의미는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발견되면, 참 기쁨은 물질주의가 아니라 너그러이 베푸는 마음 가짐에서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진리는 보편주의가 아닌 그리스 도안에서 발견된다. 결국 알고경험하고 즐기는 모든 것을 희생하고서라도 붙잡을 가치가 있는 것은 예수님뿐이다.

 데이빗 플랫은 그의 책 래티컬 실험(Radical Experiment )’에서 그리스도인들이 1년 단위로 도전해야할 5가지목록을 아래와 같이 제시합니다.

1) To pray for the entire world

전 세계를 위해 기도하라

2) To read through the entire Word

말씀 전체를 샅샅이 읽으라

3) To commit our lives to multiplying community

복음적인 지역 교회에 헌신하라

4) To sacrifice our money for a specific purpose

의미 있는 곳에 쓰기 위해 재정을 헌신하라

5) To give our time in another context radical experiment

당신을 필요로 하는 낯선 곳에 가서 섬기라

 

 




상처입은 치유자 (핸리 나우웬)

주님은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앉아 계시고 한 번에 하나씩 그분의 상처를 싸매며 자신이 필요하게 될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도록 부름 받았습니. 그것은 자신의 상처를 먼저 돌보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준비되는 것입니다우리는 상처 입은 사역자이자 치유하는 사역자입니다.





우리가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부름 받았다는 것을 알 때조차도 치유가 오늘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기란 여전히 어렵습니다. 우리의 상처가 지나칠 정도로 눈에 띄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외로움과 고립이 우리 일상의 너무나도 커다란 부분이 되어 버렸습니다그래서 우리는 비참함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내고 정의와 평화를 가져다 줄 해방자를 간절히 찾습니다그러나 해방자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앉아 계시며우리의 상처가 소망의 표적이고오늘이 해방의 날임을 선언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주님은 오십니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 내년이 아니라 올해, 우리의 모든 비참함이 다 지나가고 난 뒤가 아니라 그 한가운데로,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이곳으로 주님은 오십니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을 직면하여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 이르시기를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 맛사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말지어다 그때에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며 나를 탐지하고 나의 행사를 보았도다.”(시 95:7-9)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사셨던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삶을 진실하게 사셨듯이 우리도 우리의 삶을 진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면 그리스도인이 되는 방법이나 형식은 다양합니다사역자는 이러한 진실의 추구를 가능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2년 후, 10년 후 또는 20년 후 우리가 어떤 모습일지 알지 못합니다그러나 인간이 고통받고 있으며, 그 고통을 나눌 때 우리가 전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압니다. 역자의 부르심은 자신의 많은 손님들에게 이 전진에 대한 신뢰감을 주는 것입니다그 신뢰감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려는 열망이 점점 커지며인간과 세상의 완전한 해방이 앞으로 오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상처야 잘가 / 신상언 지음

1) 상처에 날개를 달다

2) 쓰러진 영혼을 일으키다





오직 생명이신 하나님만이 우리를 치유하신다. 내면의 상처를 치유 받는 제일 좋은 방법은 직면이다. 직면은 수술과 같다. 치유와 회복이란 스스로를 가두어두던 벽을 무너뜨리는 과정이다. 벽이 무너진 다음에야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의 생명력을 받아 마시게 되어야 온전한 치유와 회복이 일어난다. 예수그리스도는 말씀으로 우리를 회복시키신다. 말씀 속에서 생명을 얻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다. 치유는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이다.


수술은 제가 하지만 치료는 주님이 하십니다.

상처는 죄로 인한 사랑의 결핍현상이고 욕망은 악으로부터 나오는 죄의 뿌리이며 대체물은 상한 감정을 죄로 유혹하는 물질이나 행위이다. 이 죄와 상처를 주님 앞에서 다루지 않으면 하나님 인식이 안될뿐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방해한다. 그것 때문에 벽을 쌓게 되기 쉽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력을 공급 받아 살기위해서는 상처 치유를 위한 직면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죄로부터의 용서와 상처로부터의 치유가 일어나면 먼저 자신의 부패함과 무능의 삶을 회개하게 됩니다. 그 용서의 근원은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입니다.


상처란? 죄와 사랑의 결핍에서 비롯된다.

상처를 통해서 ? 벽을 쌓고 살아간다.

상처의 치유 ?

    직면(성령과 말씀) 그리고 인정하고 고백하고 선포하기

    주님은 나의 좋은 의사 그리고 생명과 사랑을 공급받기

상처를 다루는 교회와 우리의 역할 ?

    주님은 의사이고 교회는 병원이며 우리는 간호사이다.


교회는 영혼의 응급실이며 재활훈련기관이다.

교회는 고통으로 얼룩진 영혼들이 찾아오는 곳입니다. 교회가 병원의 역할을 잘 해낸다면 무조건 등록부터 강요하는게 아니라 자연스런 건강 진단과 함께 혹 병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겠지요. 그래서 예배가 끝나면 환자의 상태에 맞게 응급실, 수술실, 내과, 안과, 치과등으로 흩어지게 해야 합니다. 주님은 병든 자를 나무라지 않으셨고 병을 고쳐달라고 오는 영혼들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치유는 주님의 사랑의 표시였다.


상처란? 죄와 사랑의 결핍에서 비롯된다.

상처를 통해서 ? 벽을 쌓고 살아간다.

상처의 치유 ?

직면(성령과 말씀) 그리고 인정하고 고백하고 선포하기

주님은 나의 좋은 의사 그리고 생명과 사랑을 공급받기

상처를 다루는 교회와 우리의 역할 ?

주님은 의사이고 교회는 병원이며 우리는 간호사이다.


교회는 영혼의 응급실이며 재활훈련기관이다.

 교회는 고통으로 얼룩진 영혼들이 찾아오는 곳입니다. 교회가 병원의 역할을 잘 해낸다면 무조건 등록부터 강요하는게 아니라 자연스런 건강 진단과 함께 혹 병을 갖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겠지요. 그래서 예배가 끝나면 환자의 상태에 맞게 응급실, 수술실, 내과, 안과, 치과등으로 흩어지게 해야 합니다. 주님은 병든 자를 나무라지 않으셨고 병을 고쳐달라고 오는 영혼들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치유는 주님의 사랑의 표시였다.


[ 마음 전쟁 선언문 ]

오늘도 내 마음은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 전쟁은 매일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전쟁이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믿음의 승리의 노래를 듣기를 원하신다.

마음의 전쟁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매일의 치열한 싸움이다. 그때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의 승리를 보기 원하신다.


내가 지금 마음전쟁과 훈련 속에 있음을 알아야한다. 영적 전쟁은 우리의 삶의 소중한 영역에 있는 작은 틈에서 발생한다. 내가 충분히 잘하지 못하는 영역 믿음이 부족하여 내 실수가 고여 있던 삶의 부분에서 일어난다. 틈이 있던 삶의 소중한 영역들이 전쟁을 통해 빛 가운데 다루어지게 된다. 결국은 믿음을 통해 확고한 승리로 삶을 강하고 청결하게 만드는 것이다. 믿음이 아니면 결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틈이 공격의 통로가 된다. 예수님을 향한 신뢰가 약해지는 것이 전쟁의 출발이다. 전쟁은 사소하게 일어나서 본질을 잃어버리게 할수 있다. 믿음이 없는 것은 진지가 없이 적과 싸우는 과 같다. 원수의 공격은 어두움 속에서 날아오는 주먹이다. 어차피 공격을 피할수 없다면 밝고 가야 한다. 나의 믿음이 약한 곳에서 끊임없는 전쟁이 일어난다. 전쟁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한다. 위로부터 부어지는 평강으로 마음을 지키라.

가난한 마음에서 나오는 믿음 ( 가나안 여인 ) :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시니 그분께 마음대로 하실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라면 나에 대한 주인의 결정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나에게 허락된 것을 하겠다는 겸손한 믿음이 예수님을 감동시켰다.


믿음위에 있는 소원 : 믿음을 방해하는 것 중 하나는 나의 잘못된 기대이다. 내가 원하는 방법과 시간과 결과에 대한 기대이다. 이런 기대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쉽게 믿음을 버리고 원망하고 화를 낸다. 내가 원하는 상황에 믿음을 두면 일을 그르친다. 상황이 나의 믿음을 결정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상황이 아니라 상황을 주관하는 예수님을 신뢰하고 믿어야 한다. 혹 믿음이 없어지고 마음이 어려우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상황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고 내면을 강하게 해야 한다.






 



이 책의 핵심 주제 : 용서

용서가 왜? 중요한가?

용서는 매우 어렵지만 대단히 중요한 우리 영혼에 대한 소명이다.

어린 시절의 권위자(부모)에게 학대, 방치, 유기, 과잉보호등으로 깊은 정서적 상처의 짐을 지게 된 많은 어른아이들(정서적예속상태) ”의 이야기를 다룬다.

우리가 용서라고 부르는 힘안에서 이해하기 어렵고 고통스러운 은혜을 따라 변화되어야 한다.

용서는 믿음의 힘과 회복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심리치유/영적회복)

 

레슬리 빌과 아버지 이야기 ( 권위자의 관계 )

 

용서의 과정 / 상처 치유의 과정

덮어두지 않기 (직면/바라봄)

용서의 길 걷기 (회복/치유/아버지품으로)

하나님의 용서 경험하기(기억/자유/변화)

Dr. Jill 용서하기 실천방법

 

성경속 이야기 : 성경적인 적용과 해석

도망치는 요나이야기

치유하는 선한사마리아인 이야기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품 / 탕감받은 종

용서받고 부름받은 베드로

상처입은 치유자 요셉


부모용서하기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용서하고 싶지 않다 VS 용서하라.

지금 우리에게 용서 가 필요하다.

상처받고 상처주고..영향받고 영향을 끼치고.. 흘려오고 흘러가고..

우울증-분노-불안

우리는 매일밤 우리에게 상처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과

자신을 함께 가두고 문을 걸어 잠근다. -로드니클랩-

용서의 여정 :

불안하게 요동하는 당신의 기억을 잔잔히 가라앉히기 위해

부당하게 당한 일들을 이제 그만 잊기 위해

굳게 잠기 마음의 자물쇠를 열고 자유로이 걷기위해

선대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을 선대하기 위해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아무리 끔직한 죄를 지은 부모라도, 그 부모를 용서하지 않은 자가

번영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헨리 클라우드)

 

덮어두지 않기 (직면/바라봄)

Chapter 1. 우리는 번번이 도망친다.

그래. 과거는 아플수 있어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네가 그 과거로부터

도망필수도 있고 배울수도 있다는 거야 라이언킹/원숭이 라피키-

 

도피 & 도망 : 8000킬로미터 쯤이면 과거의 상처로부터

자주 과거와 마주하는 그날

우리는 모두 과거의 아픈 기억으로부터 도망친다. 도망자 ( 모세 )

그러나 때로는 우리는 미래로부터 도망친다. 미래의 어떤 상황을 상상하기 싫을 때 ( 요나 )

우리의 모세와 요나이야기

말하고 대면하기 : 말의 힘, 망각(반복.거짓,상실) VS 대면(진실&자유)

상처를 나누며 관계형성하기

현재와 연결짓기 : 과거의 상처는 현재의 방아쇠(에너지/촉매)

 

Chapter 2. 용기 내어 회상하고 고백하기

레슬리와 아버지 관계 :

버려진 마음, 굶주린 마음, 상실감, 두려움, 거절감, 분노

자복 : 하나님이 내게 하시는 말씀과 동일하게 고백하는것

 

(79:8) 우리 조상들의 죄악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긍휼로 우리를 속히 영접하소서 우리가 매우 가련하게 되었나이다

[26:39-42]

(26:39) 너희 남은 자가 너희의 원수들의 땅에서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쇠잔하며 그 조상의 죄로 말미암아 그 조상 같이 쇠잔하리라

(26:40) 그들이 나를 거스른 잘못으로 자기의 죄악과 그들의 조상의 죄악을 자복하고 또 그들이 내게 대항하므로

(26:41) 나도 그들에게 대항하여 내가 그들을 그들의 원수들의 땅으로 끌어 갔음을 깨닫고 그 할례 받지 아니한 그들의 마음이 낮아져서 그들의 죄악의 형벌을 기쁘게 받으면

(26:42)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기억하고 그 땅을 기억하리라

 

[ Dr. Jill 용서하기 실천방법 ]

사건을 객관적으로 [ 바라보기 ]

하나님께 온전히 [ 맡기기 ]

아픔을 진실 되게 [ 고백하기]

용서의 길 걷기 (회복/치유/아버지 품으로)

Chapter 3. 용서의 길 걷기

내가 다른 사람의 고통에 눈뜨게 되다니

어떻게 이런 행운을 차지하게 된 것일까? - 페마 쇼드롱 -

우리안에 있는 < 요나 신드룸 > : 거부-도피-거짓자백

우리안에 있는 < 다시스 트라우마 > : 회피-진실거부

부모의 삶과 인생 들여다 보기 : 할머니의 편애, 할아버지의 실망

우리는 강도만난 여행자 일수 있다.

당신이 선한 사마리아인이 돼라. < 상처입은 치유자 >

강도만나 나의 부모를 용기있게 바라보는 것부터.... 나도 내 부모도 다 같은 나약한 인간이다.

우리 부모역시 그들의 부모로부터 상처를 받을수 있다. 그리고 나도 부모로서 나의 자녀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 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23:34)

Chapter 4. 용서하지 않는 나의 복수

약한 인간은 절대 용서하지 못한다.

용서는 강한 인간의 특질이다.(마하트마 간디)

 

모르는 척 상관없이 지나가는 이유?

가난에 대한 분노. 아버지에 대한 분노

용서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일종의 복수이다. : 자업자득, 인과응보

자신이 받은 은혜를 망각해버리고 은혜를 나누고 싶지 않다.

요나는 니느웨의 모든 백성들보다 박넝쿨을 더 아꼈다.

증오와 분노의 노예 : 용서받지 못한자 < 복수극 : 복수는 나의 것>

분노하되 복수하기 않기 용서를 선택하기 용서의 다리 놓기

 

Chapter 5. 용서의 참 아버지를 만났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용서받았기에

나도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다 - C. S. Lewis -

 

어느 아버지 이야기 / 기다리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누구인가? 하나님께서 잃었다가 다시 찾은 자녀, 용서받은 자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이다.

당신이 이미 하나님의 용서의 품에 안겼든지 아직 안기지 않았든지 하나님은 당신을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의 용서의 품에 안겨라.

당신은 하나님께 몇 번 용서 받은 사람인가?

당신은 하나님께 얼마나 빚진 사람인가?

주님의 <다 이루었다> : 완전히 지불됨

 

[6:14-15]

(6:14)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6: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우리의 용서와 하나님의 용서와 상관관계 (6:12):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를 받을 때 용서하는 사람들이 된다. 그리고 우리가 용서할 때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용서하신뒤 그에게 임무를 주셨다.

 

내 양을 먹이라(21:17)

 

용서받은 자에게 주어지는 특권이며

상처입은 치유자의 능력이다.

(119:32) 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면

내가 주의 계명들의 길로 달려가리이다

 

[ Dr. Jill 용서하기 실천방법 ]

과거를 뛰어넘는 삶 살기

대화 치료를 통해 이해의 폭넓히기

하나님이 이끄시는 용서의 길로 가기

 

Chapter 6. 부모님을 공경할 때 일어나는 치유

긍휼을 행하지 않는 자에게는 긍휼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야고보서 213)

 

부모라는 이름만으로 충분하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다

우리 부모가 우리를 얼마나 잘 양육했느냐 하는 문제를 초월한다. 우리는 그들이 갖는 부모라는 신분 그 자체로 그들을 공경할 의무를 지니기 때문이다.

공경은 느낌이 아니라 타인의 유익을 위한 행위에 기초하는 명령이다.

자격있는 부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 Dr. Jill 용서하기 실천방법 ]

관계 보호하기

우리가 할수 있는 것 찾아내고 배우기

완전하신 하나님을 붙잡기

 

하나님의 용서 경험하기

Chapter 7. 죽기 전에 한번은 용서를 할 순간이 온다.

아직 부모가 살아 있다면 지금은 사랑할 시간

진실을 말하고 용서와 화해를 청할 시간 / 기회 / 만남 / 대화

필요의 사랑(Need-Love)에서 선물의 사랑(Gift-LOVE)으로

알지 못할 때에도 용서하신 분 (23:34)

용서 = 우생순

불효자는 웁니다. 기호는 모두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용서의 사람이 될 차례

 

Chapter 8. 용서하고 진실하게 기억하라.

우리에게 남겨진 일 / 과거를 기억해야 할 의무

다르게 묻기 : 어떻게? ? 일어났는가?

그리스도인이 쉽게 하는 착각

잘못된 행복에 대한 이해, 기대, 실망

믿은 것들에 대한 그릇된 이해 래리크랩 -

삶을 살면 형통할 것이다 티모스 켈러-

누군가? 탓으로 돌리는 잘못

고통은 사람들의 삶에 늘 존재한다.

고통은 기쁨으로 향하는 기나긴 여정에서 꼭 걸어야할 만큼의 필요한 거리이다 래리 크랩 -

용서! 과거의 고통을 바꾸어 놓다. 다른 사람을 축복하다.

바울이 삶에도 고난이 흠뻑 스며들어 있었다.

 

(고후 2:10) 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고후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통속에 강하다. ! 용서는 기억을 요구한다.

과거를 진실하게 이야기하고 과거를 새롭게 기억하다.

과거를 잘 기억하기

용서할 기회를 찾기

Chapter 9. 용서하는 자유, 사랑하는 자유

어린시절이라는 나라와 부모에 대한 실망의 사막을 지나는 여행

마음 들여 다보기, 하나님의 용서의 마음 알, 용서의 필요성 깨닫기

요셉의 이야기(용서하는 삶의 변화) : 요셉에게 찾아온 기회 용서의 길을 걷기 자신의 삶뿐만아니라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만들기

참되게 심판하실 분에게 권리 양도하기

내가 재판관이 되기 않기 더 큰 진실 깨닫기

 

(50: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용서가 우리를 사랑으로 이끌다

용서는 우리에게서 시작되어 먼저 우리를 변화시킨다.

나의 용서가 나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다.

주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를 우리가 무엇으로 보답할꼬 !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것을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겠다고 매일 매일 결단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용서의 렌즈로 바라보기

축복하는 기쁨을 찾기 : 저주하기보다는 축복하기로

용서와 자비의 습관

성내지 않기

불쾌감이나 욕하지 않기

하나님의 용서의 메아리


우리가 아프게한 사람들의 죄를 사해주신 하나님의 용서를 온전히 우리 자신의 용서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게 될 것이다. 오늘 우리는 그날을 소망하면서 용서한다

축복의 말, 축복의 시간 : 바꿔서 흘려 보내기

사랑과 용서의 멍에를 메라

우리가 사랑과 용서안에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 그 멍에를 자진해서 어깨에 짊어질 때 비로소 그 사랑과 용서의 멍에가 얼마나 가벼운지 그 자비의 습관이 얼마나 온당한지 알게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용서의 강력한 영향력과 우리를 높이 들어 올리고 강하게 하시는 용서의 힘을 느끼게 될 것이다. ”

 

[ Dr. Jill 용서하기 실천방법 ]

용서할 시간 갖기

진실하게 말하기

기꺼이 받아들이기

 

말씀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 이사야 4318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고린도후서 516,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7

 

기도

나의 억울함 그리고 어두운 과거를 내려놓고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어둠 속에 계속 머물려는 마음에서 벗어나길 원합니다. 주님, 아픔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적용과 결단

어두움에서 빛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이제는 용기내어 과거와 직면해보세요.

 

말콤 글래드웰의 책 3가지 책 소개 

1/ 티핑 포인트 : 대박에는 어느 순간의 계기가 반드시 있다. 


[ 티핑포인트 더 쉽게 이해하기 / 심리학 엿보기 ]

쉽고 재미난 심리학이야기 에서 퍼옴 

Tipping point. 한국말로 직역하면 '튀어오르는 지점'입니다.

그 전까지는 어느 정도의 경향성만 나타내던 것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특정 경향성을 나타내는 것이 '티핑포인트'입니다. 

이해를 위해 우리가 아는 개념을 빌어 설명하자면, 생물학적 표현 중 유사한 표현으로 '역치'가 있습니다. 

역치란, 생물이 외부환경의 변화, 즉 자극에 대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를 가리킵니다. 한 생물체 안에서 특정 미약한 자극에 대해 자극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다가 '역치'를 넘는 세기의 자극이 온 순간부터 자극이라고 인식하듯이, 사회라는 유기체 안에서 '티핑포인트'이후 갑자기 폭발적으로 변화하는 극적인 순간이 오는 것입니다.


말콤 글래드웰은 모든 것이 한꺼번에 갑자기 변화하고 전염되는 극적인 순간을 가리켜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라고 언급하였습니다. 평형적으로 균형을 이루던 상태에서 티핑 포인트를 넘어 특정 변화가 폭발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말콤 글래드웰의 책 '티핑포인트'에서는 티핑포인트의 예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습니다.

1970년대 미국 북동부에서는 특정지역의 전체인구 중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이주해온 비율이 20%를 넘게 되면 남아있던 거의 모든 백인들이 단체로 이주를 시도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던 뉴욕시의 폭력적인 범죄가 갑자기 급감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1994년-95년 사이, 제품시장에서의 영향력을 잃어가던 허시파피의 폭발적인 급주문 쇄도, 그리고 1980년대와 90년대 팩스와 휴대폰 사용이 엄청난 비율로 급증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최근 2009년-2010년 사이 아이폰 출시 이후, 휴대폰 중 스마트폰의 점유율이 높아진 것 또한 티핑포인트의 예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티핑포인트는 어떤 법칙에 의해 나타나는 것일까요? 말콤 글래드웰의 '티핑포인트'에서는 그 법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ㄱ. 소수의 법칙
- 작은 것이 큰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 이는 80/20법칙을 통해 설명될 수 있습니다. 특정 소수의 인물 20%들이 전체 사건의 80%를 일으키거나 좌지우지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범죄자의 20%가 전체 범죄의 80%를 일으키며, 운전자의 20%가 전체 교통관련 사고의 80%를 일으키게 됩니다. 즉, 특정 사람들은 다수에게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말콤 글래드웰은 이러한 특정 사람들을 가리켜 '커넥터', '메이븐', '세일즈맨'으로 지칭합니다. 
- 커넥터는 우리와 세계를 맺어주는 중심인물로서 친구와 지인을 만드는 예외적인 재능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메이븐은 지식을 축적한 인물로 많은 정보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의 결정을 도와주고자 하는 동기가 부여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세일즈맨은 감정이 풍부하고 상대방의 감정에 반응함으로써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는데 능한 사람들입니다.

ㄴ. 고착성 요소
- 특정 메시지의 영향력 정도를 의미합니다.

ㄷ. 상황의 특수성
- 특정 영향력을 지닌 메시지가 어떤 메신저에 의해 전달되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 1964년 제노비즈 살인사건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강도에게 쫓기던 한 여성이 30분동안 3번의 공격을 받는 동안에 이를 목격한 38명의 목격자는 누구도 신고하지 않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 사건입니다.


말콤 글래드웰의 위와 같은 설명은 생소해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써놓은 것입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보다 쉬우면서도 익숙한 단어로 정리해볼까요? 정답은 message, messanger, surrounding입니다. 이제 아하- 하고 감이 오시나요? 고착성 요소는 message로, 소수의 법칙은 messenger로, 상황의 특수성은 surroundings으로 대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메시지 자체의 특성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의 특성, 그리고 이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특성은 티핑포인트를 유도하기도, 지연시키기도 합니다.

보다 자세히 설명하면, 
messenger는 다수에게 신체적(외모), 정신적(지적 능력), 경제적(권위, power)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매력적인 소수의 인물들에 의해 이러한 변화가 이끌어진다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message는 메시지 자체가 갖고 있는 power가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변화를 주도하게 된다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마

지막으로 surroundings는 말 그대로 그 때의 상황에 따라 변화의 크기나 폭, 방향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티핑포인트로의 전환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정답은, 위의 세가지 요인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첫째, message를 수정하는 것입니다. 정보 자체의 영향력을 변화시키기란 어렵습니다. 하지만 정보를 제시하는 방법을 조금 수정함으로써 그 정보의 고착성을 엄청나게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둘째, messenger에게 접근하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소수의 인물들을 찾아내어 그들에게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적인 전염의 과정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셋째, surroundings를 조정하는 것입니다. 집단의 크기를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사상을 수용하는데 극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위의 세 요인을 변화시키는 것은 개인 인생에서의 티핑포인트(뜻은 다르지만 유사하게 터닝포인트, 혹은 전환점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합니다)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시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 1만시간의 법칙 (아웃라이어)
990년대 스웨덴 출신의 심리학자 안데르스 에릭손 교수는 ‘1만시간의 법칙’을 들고 나왔다. 천재가 아니더라도 1만 시간의 꾸준한 노력이 있다면 탁월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 법칙은 2008년 말콤 글래드웰의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를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글래드웰은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으로 기회와 노력을 꼽았다. 좋은 기회를 만나 꾸준한 노력으로 성공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1만시간은 하루도 빠짐없이 3시간씩 연습한다고 했을 때 10년이 걸리는 시간이다.

1만시간의 법칙을 증명하려는 미국 한 젊은이의 도전이 화제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사는 전직 사진가인 존 맥롤린(32)은 형편없는 골프 실력으로 인해 여자친구에게 무시당하자 직장을 때려 치우고 골프에 뛰어들었다. 1만시간의 법칙이 맞다면 자신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선수가 될 수 있다는 오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6년 후 PGA 투어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하루 6시간, 주 6회 연습’이라는 1만시간의 법칙을 실행했다. 주변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퍼팅훈련만 5개월을 한 후 피칭웨지를 손에 잡는 방식의 체계적인 교습을 받았다. 그리고 2년만인 지난달 30일 아마추어 골퍼의 꿈이라는 70대 타수인 79타를 기록했다. 지금까지의 훈련 시간은 2764시간. 훈련 과정을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자 도전에 공감해 20∼30달러씩 후원하는 팬들까지 생겼다.

전세계에 수천만 명의 아마추어 골퍼가 있지만 PGA 투어 선수는 200명에 불과할 정도로 골프 세계는 어느 분야보다 탁월한 경지에 오르기 힘든 분야다. 그만큼 4년 후 맥롤린의 꿈이 현실이 될지도 미지수다. 그렇지만 그의 도전은 무모함보다는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이런 저런 이유로 현실에 안주해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꾸준함이 천재를 이긴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증명해 주는 결과를 기대해 본다. 
(광주일보 무등고에서 발췌)







1만 시간의 법칙 ?에 대한 새로운 반론 

JTBC 뉴스는 "미국 미시간 주립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력이 실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다지 높지 않다"고 보도했다.

"노력이 미치는 영향은 게임이 26%, 음악이 21%, 스포츠는 18%로 나타났습니다. 흥미로운 건 공부인데요, 노력이 차지하는 비율은 겨우 4%. 결국 선천적 재능이 훨씬 중요하다고 합니다. 환경이나 나이 역시 중요한 요소라고 꼽았는데요. 이 결과 때문에 혹시 노력하는 사람이 줄어들지는 않겠죠?" 7월 17일 JTBC 뉴스

좀 더 자세한 기사는 중앙일보의 보도를 참고하자. 중앙 일보는 "1만 시간의 법칙 틀렸다"는 기사에서 아래와 같이 보도했다.

"잭 햄브릭 미시간주립대 교수 연구팀은 노력과 선천적 재능의 관계를 조사한 88개 논문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지금까지 진행된 이 분야 연구 중 가장 광범위한 것이다. 연구 결과 학술 분야에서 노력한 시간이 실력의 차이를 결정짓는 비율은 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음악·스포츠·체스 등의 분야는 실력의 차이에서 차지하는 노력 시간의 비중이 20~25%였다. 어떤 분야든 선천적 재능이 없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대가가 될 수 있는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결론이다. 햄브릭 교수는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이 필수적이지만 선천적 재능과 비교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는 것만큼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7월 17일 중앙일보 하선영 기자

물론 이건 하나의 새로운 학설일 따름이니, 온전히 믿어 의심치 않을 필요는 없다. 그렇게 믿자.( 허핑턴 포스트 에서 퍼옴 )


"1만시간 훈련한다고 누구나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될 수는 없다."

`스포츠 유전자(The Sports Gene)`의 저자인 데이비드 엡스타인은 인터뷰 내내 `1만시간의 법칙`이란 허상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매일경제신문과 두 차례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 1만시간의 법칙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그의 주장은 간단하다. 누구나 동일한 노력을 쏟아부어서 최고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자질`이 있는 인물이라면 짧은 시간에도 전문가가 될 수 있고 아니라면 더 오랜 기간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각자의 자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맞는 훈련을 실시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한국에선 `김연아의 법칙`으로 더 잘 알려진 1만시간의 법칙은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1만시간 이상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맬컴 글래드웰이 자신의 책 `아웃라이어`에서 주장했다. 

미국 스포츠 전문잡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에서 기자로 일하며 많은 운동선수를 지켜본 그는 "1만시간의 법칙이 깨지는 상황은 스포츠를 넘어 다른 분야에서도 쉽게 발견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프로퍼블리카`라는 매체로 자리를 옮겼다. 엡스타인은 "내가 만나온 전문가들에게선 1만시간의 법칙이 통용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2004년 아테네올림픽 높이뛰기에서 금메달을 딴 스웨덴 선수 스테판 홀름으로 예를 들었다.

어려서부터 전문 운동선수로서 교육과 훈련을 거친 그는 2만시간 이상을 훈련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2007년 오사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그는 높이뛰기를 한 지 8개월밖에 안 된 바하마의 도널드 토머스 선수에게 패하고 말았다.

홀름이 토머스에게 패한 이유로 엡스타인은 "남보다 빠르게 배울 수 있는 유전자의 힘 면에서 홀름이 토머스에게 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전자가 중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마치 `어떤 분야든 천성적으로 잘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식으로 들린다. 그러나 그는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식의 결정론적인 관점은 적절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유전자가 좋으면 노력 없이도 천재가 될 수 있고, 유전자가 나쁘면 아무리 노력해도 둔재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그는 "각자에게 맞는 훈련이 필요하지만 다들 1만시간이라는 숫자에 매몰돼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내가 만나본 스포츠 감독들 중에는 실제로 1만시간의 법칙에 맞춰 훈련 계획을 세운 사례도 있었다"고 전했다. 

인구수로는 전 세계 65위(1700만여 명)에 불과한 네덜란드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5위인 이유 역시 "12세 때부터 개인에게 맞춘 훈련이 체계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엡스타인은 1만시간의 법칙이 `통계의 왜곡`에서 발생했다고 평가했다. 1만시간의 법칙은 엘리트 바이올린 연주자를 대상으로 산출한 `평균치`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엡스타인은 이를 농구로 예를 들어 설명했다. 그는 "전체 인구를 대상으로 비교하면 큰 키와 득점력은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하지만 이를 미국프로농구(NBA) 선수들로만 제한할 경우 정반대 결과가 나온다"고 설명했다. 연구 대상을 초엘리트로 제한하면 결과가 왜곡될 수 있고 이것이 글래드웰 연구의 한계란 얘기다.

`과연 교육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1만시간에 매달리기보다는 최소의 시간으로 전문가가 될 수 있는 분야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개개인의 자질을 찾아내고 이에 맞는 교육법을 찾아내는 게 지도자의 역할이란 얘기다. 엡스타인의 책이 출판된 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글래드웰과의 논쟁도 뜨거워지고 있다. `스포츠 유전자` 출간 이후 글래드웰은 "스포츠 분야에 1만시간의 법칙을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해명했다. 글래드웰은 "체스 같은 지적 활동 분야에서는 유전적 재능이란 존재하지 않고, 수천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이 있다"며 이런 분야에서만 1만시간의 법칙이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엡스타인은 "1만시간 이상 투자해 체스 마스터가 된 사람과 3000시간 만에 체스 마스터가 된 사람의 차이는 유전적 재능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고 재반박했다. (매일 경제 퍼옴)


3/ 다윗과 골리앗 
왜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수 있었는가?에 대한 전략 분석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에서 다윗은 일반적으로 약자로 간주됩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분명한 강점이 있었습니다. 그는 민첩했으며, 상대에게 접근하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는 치명적인 무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돌팔매는 충분한 실력을 갖춘다면 칼을 가진 상대를 총으로 제압하는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이유는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고 있던 주먹싸움이라는 싸움의 규칙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말콤 글래드웰의 신작 “다윗과 골리앗”은 이 이야기의 새로운 해석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는 “강해보인다고 해서 강한 것은 아니며, 약해보인다고 해서 약한 것은 아니다”고 주장합니다. 약팀도 새로운 전략을 사용해 강팀을 이길 수 있습니다. 부유한 집의 아이들은 때로 남을 잘 배려하지 못하며, 학급의 인원이 더 작아진다고 해서 학생들의 성적이 반드시 향상되는 것은 아닙니다.

4/ 그 외의 책들..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HOW THE MIGHT FALL)

짐 콜린스(JIM COLLINS) | 김영사



세 계적 석학이자 경영의 구루. 그는 글로벌 베스트셀러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를 출간한 지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처참히 무너지고 소멸하는 '위대한 기업'들을 보고 큰 충격에 사로잡혔다. 


강하고 위대한 기업들은 왜 몰락하는가, 몰락을 미리 감지하고 피할 방법은 없을까,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맞기까지 기업은 어떻게 무너져 가는 걸까, 어떻게 하면 몰락의 길에서 벗어나 모든 걸 되돌릴 수 있을까?


이후 짐 콜린스는 연구팀과 함께 6,000년에 해당하는 기업역사를 5년에 걸쳐 철저히 조사, 분석하여 오늘날 기업에게 꼭 필요한 가이드라인과 해법을 밝혀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핵심인 '몰락의 5단계'이다. 몰락은 대개 스스로 자초한 것이며 회복 역시 스스로 이뤄낼 수 있다. 그러므로 몰락은 피할 수 있다. 몰락의 징조 또한 조기에 감지할 수 있다. 무엇보다 5단계까지 완전히 떨어지지 않은 이상 몰락은 되돌릴 수 있다. 4단계까지 추락했다가 부활해 이전보다 더욱 강한 회사로 거듭나기도 한다. 이 책은 이런 과정을 겪은 기업을 치밀하게 추적, 분석하여 몰락을 피하는 통찰력을 제시하고 비극적 운명을 피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짐 콜린스는 1958년 미국 콜로라도에서 태어나 스탠퍼드 대학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HP와 매킨지에서 근무했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의 저자이자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의 공저자. 현재 콜로라도 주 볼더의 '매니지먼트랩Management Lab' 경영연구소에서 실천적 경영원리를 개발하며 〈포천〉,〈비지니스위크〉,〈이코노미스트〉,〈USA투데이〉,〈하버드비지니스리뷰〉등에 글을 발표하고 있다.


위에 나오는 대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베스트셀러의 저자이고, 이 책은 그의 후속작이라고 볼 수 있겠다.


https://medium.com (갈무리함)




서문 위대한 기업도 언제든 쓰러질 수 있다.


조용히 다가오는 파멸의 전조


몰락으로 향하는 정점 | 그 모든 변화와 혁신에도 불구하고...


몰락의 5단계


6,000년의 기업 역사는 말한다 | 강한 기업이 몰락하는 5단계 틀 

어두운 여행, 출구는 있는가


1단계 : 성공으로부터 자만심이 생겨나는 단계


자만의 폐혜 | 성공 원인에 대한 착각


2단계 : 원칙 없이 더 많은 욕심을 내는 단계


현실 안주보다 무서운 과다한 욕심 | 성장에 대한 과도한 집착 

팩커드 법칙의 위반 | 원만하지 못한 권력 승계의 문제


3단계 : 위험과 위기 가능성을 부정하는 단계


증거를 확인한 뒤 큰 투자를 단행한 사례 | 수면 아래의 위험 감수 

위험을 부정하는 문화


4단계 : 구원을 찾아 헤매는 단계


진정한 묘안 | 공포와 절망


5단계 : 유명무실해지거나 생명이 끝나는 단계


생존을 위한 투쟁을 포기한 사례 | 대안이 없는 지경까지 내몰린 사례 | 죽음을 받아들일 것인가, 희망을 놓지 않을 것인가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하는 이유


불타는 승강장에서 살아남은 기업들 | 포기란 없다




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 (최은수 (매일경제) 요약)


위대한 기업도 장담할 수 없다


미국을 대표하던 158년 역사의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는 2008년 9월 15일 끝내 파산하고 말았다. 이 충격으로 세계는 전대미문의 경제위기에 휩싸였다. 미국 번영의 상징이었던 메릴린치는 끝내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 팔렸고 만신창이가 된 패니메이와 프레디 맥은 구제금융을 수혈 받아야 했다.


잘 나가던 기업, 한 때 위대한 기업의 명성을 얻었던 기업들이 왜 이처럼 맥없이 무너지는 것일까.『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 』의 저자 짐 콜린스가 그의 최신작『위대한 기업은 다 어디로 갔을까(How the mighty fall) 』에서 이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세계적 경영의 구루로 추앙받고 있는 짐 콜린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업이라고 칭찬했던 11개 기업 가운데 8곳이 망하는 것을 보고 그는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강하고 위대한 기업들이 왜 몰락하는지, 몰락을 미리 감지하고 피할 방법은 없는 지에 대해 5년에 걸쳐 연구를 거듭했다. 무려 연구팀과 6000년에 해당하는 기업 역사를 조사, 분석했다. 그 결과는 단 하나였다. 성공도, 실패도 모두 기업 스스로 자초한 것이며 회복도 기업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기업은 몰락의 징조를 어떻게 감지하고 미리 발견해 최악의 사태를 막을 것인가. 짐 콜린스는 ‘몰락의 5단계’를 알라고 조언한다.






몰락 1단계: 성공이 가져다 주는 자만심에 도취한다

 성공의 요인을 살펴보면 운과 기회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경우가 많은데, 그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자기 능력과 장점을 과대평가하는 기업은 자만하게 된다.



기업들은 왜 몰락의 징조를 알아차리지 못할까. 그것은 세계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지구상 최강국일 때, 업계 최고의 기업이 됐을 때,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됐을 때, 바로 그 힘과 성공 때문에 자신이 이미 쇠퇴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위대한 기업은 성공에 도취해 거만해지고 진정한 성공의 근본 원인을 잊어버린다. 운과 기회가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자기 능력만을 믿고 자만에 빠진다. 모토롤라는 1990년대 중반, 단 10년 만에 연 매출이 50억 달러에서 270억 달러로 급증했다. 모토롤라 경영진은 자만해지기 시작했고 1995년 초소형 휴대전화 단발기 ‘스타텍’을 만들어 판매사들에게 단독 전시 공간을 만들어 팔 것을 요구했다. 판매사들은 반발했고 시장점유율은 오만함 때문에 50%에서 4년 만에 17%로 추락했다. 95년 이후 주가는 10년 만에 반토막이 났다. 1단계 징조를 어떻게 알아차릴 것인가. 콜린스는 성공이 영원할 것으로 믿거나 성공을 가져다 준 창의적인 열정을 잃어버리는 지를 간파하라고 조언한다.


몰락 2단계: 원칙 없이 더 많은 욕심을 낸다

- 성공한 기업이 안주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지나친 욕심으로 더 큰 규모,더 높은 성장 등으로 도를 넘는 것은 더 큰 화를 자초한다.


1950년대 후반, 이름 없는 작은 회사 하나가 ‘소도시와 시골에 기반을 둔 대형할인점’을 시작했다. 경영자는 직원들과 함께 성장하는 기업정신을 만들어 소도시 상점들을 섬멸하며 급성장했다. 급기야 강적 K-마트와 정면대결을 하게 됐다. 1970년부터 15년간 이 회사의 주식은 무려 6000배나 올랐다. 이 회사가 어디일까. 월마트가 아니라 에임스 할인점이란 곳이다. 월마트 보다 4년 앞서 시장에 진출해 미국 북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20년간 멈추지 않은 성장을 거듭했다. 그런데 2002년 파산하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성공을 거둔 이 회사는 1988년 1년 안에 회사 규모를 2배로 늘린다는 목표로 자이레 백화점을 사들이는 결정을 내렸다. 자이레 인수로 매출은 배가 늘었지만 30년간 구축해온 정체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룻밤 사이에 농촌지역 할인점에서 도시지역의 유력한 유통업체로 탈바꿈했고, 에임스를 위대한 기업으로 만들었던 저가 전략을 버려야 했다. 원칙없이 진행시킨 과도한 성장욕이 회사를 망하게 했던 것이다. 몰락한 기업의 2단계 징조는 이처럼 회사가 원칙 없이 지속 불가능한 성장을 추구한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핵심 요직에 적임자를 배치하지 않아 인재를 떠나게 하거나 CEO의 권력승계를 잘못해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몰락 3단계: 위험과 위기가능성을 부정한다


- 내부에 경고 신호가 증가하지만, 외부 성과가 여전히 견고하기 때문에 걱정되는 징후를 일시적이라거나 사이클에 따른 것으로 치부하고 날려버린다.


모토롤라의 2세대 CEO 로버트 캘빈은 1991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전화 연결을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목표로 ‘이리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를 위해 저궤도 위성시스템 초기 모델에 돈을 투자했다. 1996년 5억3700만 달러를 투자했고 7억5000만 달러의 채무 보증을 섰다. 이 같은 금액은 모토롤라의 1996년 전체 수익을 넘는 거액이었다.


하지만 이리듐 전화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전화 단말기가 거의 벽돌 크기인데다, 위성과 직접 교신할 수 있는 야외에서만 통화가 가능했다. 단말기 가격만 3000달러, 통화료는 분당 3~7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모토롤라는 위기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특히 이 사이 일반 휴대전화의 서비스망이 지구촌 전역을 커버하며 이리듐의 매력을 떨어뜨렸다. 그럼에도 모토롤라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이 결과 1999년 모토롤라는 20억 달러의 적자를 냈다.


이처럼 몰락의 3단계에 기업들은 실증적인 증거 없이 과감한 목표를 세우고 투자한다. 모호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투자를 결정하고 부정적인 징조를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리더들은 실패의 책임을 외부 탓으로 돌리거나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돌파하려 한다.


몰락 4단계: 구원을 찾아 헤맨다

- 이때 흔히 등장하는 '구원투수'들은 비전과 카리스마가 있고 과감하지만 입증되지 않은 전략, 드라마틱한 문화적 변혁, 판을 뒤집을 합병 등 사태를 한 방에 해결할 묘안을 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극약 처방은 초기에는 긍정적인 변화를 내는 듯 보이지만 지속되지 못한다.


기업 몰락의 4단계는 기업들이 돌파구를 찾아 헤매는 단계다. 한때 오프셋 인쇄의 선두주자였던 어드레서그래프는 제록스가 자동 복사기를 내놓자 공포에 휩싸인다. 공포에 질린 어드레서그래프는 3년간 23개의 신제품을 쏟아내며 대응했다. 혁신적인 외부 CEO를 영입하기 위해 12년간 네 명의 CEO를 교체했다. 이런저런 전략을 채택했다가 바꾸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이로 인해 1981년 지난 50년간 쌓아온 누적수익을 단 1년 만에 몽땅 날려버렸다. 어드레서그래프는 어떻게 대처해야 했을까. 핵심 사업의 모멘텀을 지켜낼 수 있어야 했다. 지금도 분량이 많은 고품질 인쇄 작업은 주로 오프셋 인쇄의 영역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몰락하기 시작한 회사는 묘안을 찾아 나선다. 입증되지 않은 기술에 크게 배팅하고 실험되지 않은 전략에 기대를 건다. 자신들을 구제해줄 CEO를 찾고 구원을 약속하는 컨설턴트를 고용한다. 이런 것들이 4단계 몰락의 징조들이다. 이 단계에서 기업들은 공포에 젖어 초조하게 행동하고 급진적인 해결책을 찾는 경향이 있다.


몰락 5단계: 생명이 끝난다


기업들은 대부분 이 5단계를 차례로 거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단계를 건너뛰기도 한다.

각 단계에 머무는 기간도 수년 혹은 수십 년으로 천차만별이다. 또한 각 단계가 겹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게 어찌 기업들에만 국한된 이야기겠는가?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 - 老子 -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성공의 경험이라는 아이러니...

20세기 중반 제니스는 미국 기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공 스토리 중 하나였다. 1945년 괴짜 경영자 유진 맥도널드는 제니스를 라디오와 흑백 텔레비전 분야의 독보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제니스는 원칙없이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2단계에 진입한다. 컬러 텔레비전 부문 1등을 목표로 설정했고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생산시설을 늘렸다. 이 결과 부채비율이 100%로 증가했다. 수익성이 악화됐지만 이 회사는 일본의 무역관행, 노사 불안정, 미국의 불경기 등 다른 요인으로 원인을 돌렸다. 위기를 부정하는 3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단번에 이런저런 기회를 잡기 위해 제니스는 구원자를 찾아 4단계로 접어들었다. VCR, 비디오디스크, 가정용 보안카메라, 개인용 컴퓨터 등의 시장에 뛰어들었다. ‘기업계의 선지자’로 일컬어지는 제리 펄먼을 CEO로 영입했다. 펄먼은 데이터시스템 투자로 상당한 성공을 거뒀다. 그렇지만 텔레비전 사업이 계속 적자를 내면서 현금이 고갈되어 파산했다.


몰락하더라도 부활할 수 있다


짐 콜린스는 위대한 국가나 위대한 기업은 몰락하더라도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강조하고 있다. 위대한 조직과 성공적인 조직의 차이는 단순히 어려움을 겪느냐, 겪지 않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 혹은 재난을 당한 뒤 다시 되살아나고 이전 보다 더 강해질 수 있느냐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짐 콜린스는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전술을 바꿀지라도 핵심 목표를 절대 포기해서는 안되며 스스로 미래를 창조해나가는 원칙을 버려서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이 책은 위대한 기업의 몰락과 부활을 이야기하고 있다.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 위기에 처한 기업의 임원들에게 새로운 통찰력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경영자나 조직의 리더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다.






<미안하다>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정호승의 1997년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에 수록.) 


  많은 우여곡절끝에 끝내는 헤어지게된 연인들의 이야기처럼 읽히는 정호승의 연시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 고난이,  고난이 끝나는 곳에 길이, 길이 끝나는 곳에 고난이 있고 다시 고난이 끝나는 곳에서 울고 있는 너.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는 고백은 현실적인 벽에 가로 막힌 젊음이 자신의 무능을 탓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 어려움에 처해 있는 많은 젊음들의 아픈 마음과 이시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기에 가슴에 먹먹한 울림을 주고 있다. 절절히 공감되는 시다.

  경제적인 문제로 집안의 반대가 이어지고 , 헤쳐나가려고 하지만 많은 고난이 기다리고 있고, 그런 것들에 지쳐버린 여자. 그런 여자를 사랑하지만 능력이 없어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남자. 나처럼 능력 없는 남자라, 이런 내가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뭐 이런 스토리가 떠오른다. 간단하고 쉬우면서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정호승의 

 “일상의 쉬운 언어로 현실의 이야기를 시로 쓰고자 한다.는 평소의 소신처럼 쉬운 말로 인간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그려내곤 한다. 이에 1976년에는 김명인 · 김승희 · 김창완 등과 함께 반시(反詩)를 결성해 쉬운 시를 쓰려 노력하기도 했다.

나는 한번도 그 시대에 앞장서 본 적이 없었다. 어떤 평론가는 당신은 이쪽도 저쪽도 아니라고 말했지만, 이분법이 극단적으로 횡횡하던 시절에 나는 시인이 행동하는 것은 시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만 해도 서정적인 시적 장치는 고운 눈으로 봐주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서정이 빠져 버렸다면 지금까지 누가 내 시를 읽겠는가.

한편 정호승의 몇몇 시는 양희은이나 안치환  가수들에 의해 노래로 창작되어 음반으로 출시되기도 했다. 시편 〈부치지 않은 편지〉(백창우 작곡)는 가수 김광석의 유작앨범에 수록되었다.


“그대 죽어 별이 되지 않아도 좋다./ 푸른 강이 없어도 물은 흐르고/ 밤하늘은 없어도/ 별은 뜨나니/ 그대 죽어 별빛으로 빛나지 않아도 좋다.… …”


〈이별노래〉는 최종혁 작곡으로 이동원이 불러 대중에 널리 알려졌다.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 아직 늦지 않으리.… …”


개인적 서정을 쉽고 간명한 시어와 인상적인 이미지에 담아냈다는 평으로, 소월 미당을 거쳐 90년대 이후 가장 폭넓은 대중적 지지를 받은 시인으로 꼽혔다. 민중들의 삶에 대한 깊고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표출해 왔으며 관찰의 성실함과 성찰의 진지함으로 민중들의 애환과 시대의 문제를 시 속에 형상화 하였다.


http://ko.wikipedia.org/ 에서 갈무리함 











Coffee break 과 Tea time의 차이를 아시나요?


커피를 마시는 이유는 <충전과 각성>의 의미가 있다. 

티를 마시는 이유는 <쉼과 여유>의 의미가 있다.


여러분은 커피브레이크를 원하는가? 아니면 티타임을 원하는가?


Coffee break을 갖는 것은 " 열심히 일을 계속하기 위해 갖는 일종의 휴식시간" 이다. 


Tea time을 "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이제 쉼을 얻기 위한 시간 "이다.

< http://theuranus.tistory.com/ >퍼옴

사이토 다카시 < 세계사를 움직이는 5가지 힘 > 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즐겨 먹는 기호품속에 담겨있는 우리의 욕망을 묘사한다. 

그  첫 번째 테마인 욕망이라는 테마에서는 스타벅스와 세계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해나간다. 


세계의 대표적인 음료 문화, 커피와 차(茶)에 관한 이야기다. 세계 역사에서 커피와 녹차, 홍차 등의 차(茶)는 어떤 역할을 했으며, 이러한 문화는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이 문화를 퍼뜨리기 위해서 어떠한 마케팅 기법을 펼쳤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커피는 이슬람의 수피교도들이 커피를 마시는 습관에서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커피의 각성효과가 명상에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럽에 커피를 들여오면서 상인들이 커피에 대한 욕구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 


커피의 효능에 대해서 설명하고, 커피를 시음해보게 하는 마케팅 기법을 사용해서 말이다. 


커피와 차의 차이에 대해서 재미있는 것이 있다. 영어에서 커피 타임을 "Coffee break"이라고 표현하고, 티타임은 "Tea time"이라고 표현한다는 것, 커피는 일을 하다 잠깐 쉴 때 마시는 것이 문화 속에 담겨있어서 그렇다나...



커피의 자극은 인간의 한계와 나태함을 극복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도를 넘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한다"는 것이 서양문화, 특히 근대화의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칠 줄 모르는' 지속성의 기본요소이자 근간이 됩니다. -p.22

커피 문화권에서는 뭔가 일의 피치를 올리고 싶을 때 커피를 마시는 편인데, 차 문화권 사람들은 한숨 돌리며 쉬고 싶을 때 차를 마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커피 마시는 시간은 'Coffee Time' 대신 'Coffee Break'라고 하는 데 반해 차 마시는 시간을 'Tea Break'가 아닌 'Tea Time'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p.33

커피가 인류사에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삶은 깨어있는 시간이 길어지지 않았을까. 


커피 이전의 음료 문화는 차와 알코올이었다. 차도 각성작용이 있지만, 커피보다는 약하며 알코올은 느슨하고 말랑한 음료다


커피가 세계사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다른 요소들과 함께 융합을 일으키는 역할을 한 건 분명할 듯하다. 그렇게 대항해시대, 커피의 전파, 프로테스탄티즘, 산업혁명 등의 혼합작용으로 서양의 모더니즘-근대화는 가속화한다.


또다른 재미있는 책 < 기호품의 역사 >가 있다.  



▼기호품의 역사 볼프강 쉬벨부쉬 지음/한마당 펴냄▼


‘설탕과 권력’의 저자인 인류학자 시드니 민츠의 말대로 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단지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에게나 다른사람에게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행위”다.


이 책의 저자 쉬벨부쉬가 관심을 가진 품목들은 더욱 ‘섭취’의 사회문화적 의미가 두드러지는 것들이다. 


커피와 브랜디는 계급적으로 대립되는 기호품으로 발전해 왔다. 17세기부터 애용된 커피는 ‘정신을 말짱하게 하는 음료’이며 ‘성적 충동을 억제하는 수단’으로서 청교도주의자들의 영육(靈肉)을 위한 음료로 선언됐다. 


이는 노동과정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었다. 중세적 인간이 대부분 노천에서 일했다면 커피를 애용하는 프로테스탄트, 계급적으로 근대의 주역으로 떠오른 부르주아들은 점점 사무실에서 정신노동을 하게 됐다. 


바야흐로 커피는 “자기의 생명이나 건강보다 시간을 절약하려고 밤늦게까지 작업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에게 유익한”(18세기 자연과학자 칼 폰 린네) 효율성의 음료로서 역사적인 약제로 작용하게 된다.


< 역사 한잔 하실까요 ?> 책 , 6가지 음료와 그 역사의 뒷 이야기 


< http://bookhana.tistory.com/155 >에서 퍼옴 


Tom Standage가 지은  <A History of the World in 6 Glasses >가 원제이다.


세계사의 중심에 선 음료 6가지!
맥주, 와인, 커피, 증류주(위스키, 럼), 차(주로 홍차) 그리고 코카콜라

책을 읽으면서 맥주가 선사시대 이전부터 존재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맥주하면 독일, 네델란드 그리고 와인하면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스페인 등이 떠오르게 되는데, 
그러한 역사적 배경을 잘 설명해준다.

쉽게 이야기하면 팩스 로마시대에 로마의 영향권안에 들었던 지역에서는 와인이, 그렇지 못한 유럽지역에서는 맥주가 주종을 이루었다는 얘기이다. 

우리가 잘 아다시피 와인을 잘알기 위해서는 시간투자가 꽤 필요하다. 그리고 돈도 투자되어야 한다. 그래서 와인은 주로 상류계층이 마시는 것으로 인식되어있다. 와인에 대하여 아는체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경제적여유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열거한 6가지 음료들이 역사속에서 어떤 위치를 담당하였는지 거기에 얽힌 이야기들이 소개된다.
  

사냥과 수렵생활에서 정착 단계로 스타일이 바뀌면서 인류는 정성껏 경작한 보리나 밀 등의 곡류에서 추출한 음료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인류가 근대로 발을 내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음료는 다름 아닌 맥주였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는  최적의 기후조건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농사가 시작되었고, 인류 초창기 문명이 발생하였으며 글자가 처음 발견되고 맥주가 아주 풍부했던 곳이었다. 맥주는 최초의 위대한 문명을 정의내리는 음료였다.
<맥주, 문명의 여명기를 열다> 중에서 

기원전 1000년경,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내에서 발달되어 번성된 문화는 아직까지도 근대 서양 사상의 근간이 되고 있는 철학․정치학․과학․문학 등의 진보를 향상시켰다. 와인은 이러한 지중해 문명에서 삶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그리스 사상을 멀리 전파하도록 도와주었던 광대한 해양 무역의 근간이 되기도 했다. 알코올음료를 마시는 모든 지역에서 와인은 음료 중에서 가장 문명화되고 세련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지중해 문명의 원동력, 와인 한 잔> 중에서 

연금술 실험실에서 진행된 증류기법으로 탄생된 증류주는, 유럽의 항해가들이 전 세계에 걸쳐 식민지와 제국을 세우는 시기였던 탐험의 시대 동안에 지배적인 음료가 되었다. 브랜디, 럼, 위스키와 같은 증류주는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했으며 아주 작은 병에도 담을 수 있었기 때문에 배를 타고 항해하며 이동이 용이했다. 또한 노예를 사고파는 데 거래되는 통화(通貨)로도 사용되었으며, 특히 북아메리카의 식민지에서 인기를 얻었다. 그러한 주류들은 정치적으로 널리 이용되어 미국의 건립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식민지 시대의 필수품, 증류주> 중에서 

이성의 시대를 지배하였던 신비스럽고 화려한 음료는 바로 커피였으며, 중동에서부터 유럽 지역으로 소개되었다. 커피는 사고의 명료함을 홍보하였으며 특히 과학자, 사업가, 철학자들에게 딱 들어맞는 이상적인 음료로 전해졌다. 커피하우스는 상업적․정치적 그리고 지적인 욕구를 서로 교환하였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곳에서의 토론은 과학 학회의 설립으로 이어졌으며, 신문 창간과 금융기관의 설립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리고 특히 프랑스에서는 혁명적 사고를 할 수 있는 풍부한 근거를 제공하였다. 
<커피, 근대유럽 지식인들을 잠못들게 하다> 중에서 

유럽에서 차의 인기는 동쪽으로의 약탈무역 루트를 개척하는 데 일조했으며, 전례 없는 규모로 제국주의와 산업화를 부채질하였다. 차는 동양과 유럽인들과의 무역거래를 넓히는 초석을 제공하였고, 영국을 세계 최초의 강대국으로 만들기도 했다.  
차가 영국의 국민음료로서 인정받게 되자 차의 공급을 원활하게 유지하려는 욕망은 영국의 외교정책을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향하도록 만들었다. 그 영향으로 미국의 독립과 중국 고대문명의 경시, 그리고 인도에서의 대규모 차 생산이 가능해졌다. 
<왜 대영제국은 홍차에 열광하였는가?> 중에서 

인공으로 합성된 음료가 18세기 후반 유럽에서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소프트 음료가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그로부터 100년 후 코카콜라가 개발되면서부터였다. 원래 애틀랜타의 어느 약사에 의해 의학적 용도로 고안되었던 코카콜라는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음료가 되었으며, 미국이 강대국으로 변모하도록 도움을 준 소비자 중심 자본주의의 상징물이 되었다. 20세기 기간 동안 세계대전을 치루면서 미군들이 휴대하고 다녔던 코카콜라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음료로, 현재는 단일 글로벌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는 아이콘이 되었다. 
<미국을 꼭 닮은 음료, 코카콜라> 중에서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

(The Scandal of the Evangelical Mind

엠마오(1996)

저자 : 마크 A. 놀(Mark A. Noll) 


저자 소개> MARK A. NOLL

  • 휘튼 칼리지에서 27년간 역사, 교회사 교수
  • 2006년부터 노트르담 대학교의 역사학을 교수
  • 복음주의 운동의 역사와 관련된 주요 연구서를 출간
  • 영국의 데이비드 베빙턴, 알리스터 맥그래스와 더불어 복음주의 운동의
  • 역사에 대한 가장 탁월한 전문가로 인정
  • 2005년 2월 5일자 “TIMES” 커버 스토리에 미 정계와 종교계에 중요한
  • 영향력을 미치는 복음주의자 25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됨.
  • 저서로는 [포스트모던 세계에서의 기독교 신학과 신앙], [미국. 캐나다
  • 기독교 역사], [터닝 포인트] 등이 있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 가져야 기본적인 흐름.


1. 복음주의에 대한 역사 해석/비평서

2.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한 큰 구조

☞ 기독교 지성을 강조했던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의 노력들

☞ 근대주의의 영향으로 반응한 근본주의 시작

   (근본주의의 형성사, 18~19C가 중심)

☞ 근본주의의 이해 (신학적 3개의 큰 틀: 세대주의, 성경운동, 오순절 신학)

☞ 근본주의의 영향으로 시작한 복음주의에 미친 신학의 성향

☞ 근본주의 신학의 이해와 약점

☞ 미국 정치와 과학 속에서의 근본주의의 신학의 태도




[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 ] 

독서모임을 하면서 갖게 되는 생각들 - 신용환목사 - 

  •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 : 복음주의에 지성이 없다> 이것이 문제이다. 
  • 복음주의 지성의 걸림돌 : 
  • 대중주의 - 반 전통주의 - 이원론 - 현재의 문제를 진지하게 분석하는일이 없다. 
  • 반전통주의/ 반지성주의로 흘러가는 잘못을 만들어 내었다. 
  • 근대주의 영향으로 근본주의가 나와서 18세기-19세기에서… 신학적 3가지 틀 < 세대주의/성결운동/오순절운동>의 영향을 받음 
  • 이것이 지성을 상실하게되었다. 그래서 반지성주의적이고 반전통주의적으로 왔다. 
  • 근본주의의 신학적태도가 어떻게 미국에 영향을 미쳐왔는가?  
  • 청교도들의 특징인 지성의 존중의 경향이 잃어버렸다. 
  • 지성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서 약화시켰다. 
  • @ 고민와 의문이 없어졌다
  • @ 구원파보다 구원파적 구원론이 문제이다. 칭의에 대한 이해가 없다.
  • @ 대중주의에 대한 고민 
  • ☞ 이러한 실용주의적이고, 즉각주의적이고, 기능주의적인 상황이 결국 지성에 큰 어려움을 가져다 줌.
  • 실용주의 / 즉각주의적 / 기능주의적 
  • @ 대부흥운동의 과정에서 지성이 사라졌는가?
  • @ 시대적인 상황과 문화에서 복음주의가 실용적 기능적으로 바꼈다..
  • 개인주의-실용주의-즉각주의-기능주의적 
  • @ 부흥운동이 일어나는 시대적 정황은 어땠나?
  • 복음주의적 계몽주의 ? 통전적 신학 / 특정한 과학적 방법으로 성경에서 접근하는 방법/ 계몽주의적 방법론을 만들어..
  • 복음주의와 계몽주의 만남이 무엇을 만들어 내었나?
  • 복음주의와 미국 지성사의 만남 
  • @ 복음과 지성의 균형을 잃어버리고 쉬운 방식으로 극단을 선택하고 복음과 지성의 반성을 거부하고 복음과 지성의 찬성만 선택했다
  • 성결운동/ 오순절 /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 가현주의적 / 영지주의적인 경향 
  • @ 부흥운동과 자유주의 다른 것 같지만 같은 그림일수 있다. 
  • @ 경험된 지식…경험될수 있는 지식 / 일반화 시키는것 
  • @ 교회가 세상의 의문에 답을 주고 그 의문에 답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 교회의 문제 : 교리의 잘못된 도식화. 의문없이 답달기식 훈련, 주입식 요절암송, 개인적인 묵상, 개인적인 경건의 평가절상. 설교를 통한 




1부. 스캔들 

1. 오늘날의 스캔들 
2. 이 스캔들이 중요한 이유 

2부. 스캔들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3. 복음주의 지성의 형성: 부흥운동, 혁명, 문화적 통합 
4. 복음주의적 계몽주의 
5. 근본주의라는 지적 재앙 

3부. 스캔들의 의미 
6. 정치에 관한 성찰 
7. 과학에 관한 사고 

4부. 희망? 
8. 복음주의의 지적 부흥은 진행 중인가? 
9. 십자가라는 걸림돌 


서문>

이 책은 학문적 해설과 설교와 가설이 뒤섞인 역사에 대한 성찰이며 정보를 제공하기 보다는 행동을 촉구한다. 미국 복음주의 자들이 많은 미덕을 보여 주며 여러 부분에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생산적인 사고를 가로막는 걸림돌은 여전히 견고하게 남아 있다.


걸림돌: 행동과 결단을 강조하고 바로 지금 완전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즉각 주의와 실제 상황에 주도적으로 지지하는 대중주의, 그리고 성서적, 신학적, 윤리적 문제에 관한 한 과거보다는 현재나 자신의 판단을 우선시하는 반 전통주의, 그리고 육신적, 지상적, 물리적, 물질적 실체의 모든 양상을 섣불리 영적인 것으로 환원하는 이원론 등을 말한다.


따라서 복음주의자들은 주의를 흩어놓는 종말론적인 공상에 과민 반응하여 종말에 관한 책을구입하는데 돈을 쏟아 붙지만, 현재의 문제를 진지하 게 분석하는 일에는 지원이 인색하다.(현세적 종말론이 아닌 미래적 종말론을 살아가도록 함)


복음주의 역사에 긍정적인 신호>

첫째, 복음주의자와 로마 가톨릭 교도들 사이에 교류가 확대됨으로서 지성을 복음주의적 활용하는 일에 극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는 점.


둘째, 기독교 학문을 강화하기 위한 특별 기금 프로젝트들이 형성됨.

대학 및 교수들을 위한 연구 기금과 대학원생을 위한 장학금, 다양한 경력고 분야의 기독교학자들을 위한 세미나 등등


셋째, 기독교 철학이 계속해서 부흥한다는 점

예> 영어권의 근대철학 분야 철학자와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진지한 정통신학이 제안 되는 경우가 예외적일 정도로 높은 연구비율로 나타남


넷째, 희망을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징후는 복음주의 대학들이다. 미국 복음주의 역사적 발전 과정 때문에, 복음주의권의 고등학문 기관은 분파적인 고립지대에 빠져있었다. 고립된 순수성을 지향하는 경우였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점점 복음주의 성향의 고등학문 기관들이 ‘기독교 공동의 신념'을 추구하기 시작함.


다섯째, 복음주의 대학에서는 과학 분야에 대해서도 희망의 징조를 보임.(창조과학), 즉 경험과학으로 위장한 조야한 철학적 자연주의로 부터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진화론에 대한 전쟁이 필요했었다.


여섯째, 복음주의 지성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것은 다원주의적인 일반 대학교에서 그리스도인의 존재가 훨씬 더 많이 부각된다는 점. 일반 학과에서 지도적인 지위를 지닌 그리스도인 교수의 수가 크게 늘었다.(달라스 윌라드 같은 분)


일곱째, 출판계의 변화, 지적인 차원과 기독교적인 차원에서 의미 있는 방식으로 현대 생활의중요한 이슈를 다룬다.

이런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본질적인 이유는 복음주의자들이 신앙의 주춧돌이라고 주장하는 성서의 메시지 안에서 찾을 수 있다. 복음주의자들은 성서를 굳게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변화시키시는 사역을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는 신앙 안에는 지적 진지함, 지적 성실함,

지적 엄밀함에 대한 본원적인 소망이 존재한다




1부 . 스 캔 들

1. 오늘날의 스캔들


복음주의 지성이라고 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것, 이것이 바로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이다. 대중적인 성공반면, 진지한 지성을 잃어버렸다.

복음주의자들은 수십 개의 신학교와 대학교, 수백 개의 라디오 방송국,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수 천개의 선교단체들을 운영하지만, 단 하나의 연구 중심 대학도 운영하지 못하고, 현대 문화의 깊이 있는 학문적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정기간행물 역시 단 하나도 펴내지 못하고 있다.

복음주의 '지성'이라는 말은 신학에 국한시켜 신학의 깊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학, 정치학, 문학 비평, 문예 창작, 역사학, 철학, 언어학, 과학사, 사회 이론, 및 예술과 같은 전 영역에서그리스도인답게 사고하려는 노력, 분명한 기독교적 틀 안에서 사고하는 노력을 의미함.


복음주의의 반 지성주의>


미국의 상황 - 퓰리처상을 수상한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책 [미국의 반지성주의]는 '복음주의적성향'을 미국 반지성주의의 일차적인 원인 중 하나로 지목. "먼저 종교적인 믿음은 대개 논리나 학문으로 전파되지 않는다는 반박하기 어려운 명제로부터

시작한다. 





이로부터 (그리스도의 심판이나 역사적 증거에 관한) 믿음은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가장 잘 전파한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리고 이는 그런 사람들이 가진 지혜나 진리는 학식과 교양을 갖춘 지성인들의 지식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사실상 학식이나 교양은 믿음을 전파하는데 걸림돌이라고 까지 여겨진다. 겸손한 무지가 교양있는 지성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명제는 미국의 복음주의와 민주주의에 특히나 잘 맞아떨어졌다."


스켄들의 양상> 한 마디로 반지성주의적 복음주의의 양상이라 말할 수 있다.

세 가지 양상 : 문화적, 제도적, 신학적

⚫문화적 양상: 행동주의적, 대중주의적, 실용주의적, 공리주의적이다. 이는 당장의 시급한 책무를 매우 강조하기 때문에 폭넓고 깊이 있는 지적인 노력의 여지를 거의 허용하지 않는다.


⚫제도적 양상: 20세기에는 복음주의 언론에서 학문적인 요소들의 비중이 급감하여 거의 사라질 지경에 이르렀고, 더 심각한 것은 복음주의 고등교육계 안에서 기독교적 사고가 이루어지기어렵다는 점. (분산된 교육의 열정, 불충분한 자원, 신학교 대 칼리지, 학자의 부족


⚫신학적양상: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은 어떤 방향에서 보더라도 스캔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은 한 하위문화 전체의 역사적인 경험에서 기인한 것이며, 복음주의 교육제도로 인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선물을 업신여기는 스캔들이다.


2. 이 스캔들이 중요한 까닭


기독교의 본질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지성이 쇠약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에 문제인가?

>>> 기독교적 학문을 장려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을 성경으로 부터 찾는다.

마11:25~26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이 일을 지혜있고 똑똑한 사람들에게 감추시고, 어린아디들에게는 드러내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은혜로운 뜻입니다."

고전1:26~28 /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


고등학문이 신앙에 덫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이런 구절들의 설득력이 한층 강화되었다. 지식인의 결론은 기독교 신앙을 약화시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즉 학식의 자랑이었기 때문이다.


>>> 미국의 복음주의 문화는 반대의 극단으로 치달았다는 점


회심을 강조한 나머지 은혜안에서의 점진적인 성장을 배제하고, 창조세계에서 하나님을 묵상하는 대신 직접적인 성령의 체험에만 초점을 맞추었고, 권위있는 견해에 맞서 대중적인 지혜를 더 추구하며, 세상에는 관심(정치, 경제, 문화 윤리, 자연)을 두지 않고 천국에만 매혹되어 있으며, 초 자연적인 것에 몰두하는 반면 자연적인 것은 무시해 왔다.


<<< 기독교라는 포괄적인 실체 자체가 세상에 대한 분명한 기독교적 성찰을 요구한다는 것.기독교적 학문을 추구한다고 해서 가르치는 일을 경시하거나, 엘리트주의적으로 보통사랑들의 통찰을 무시하거나,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들만 접근 할 수 있는 예술 지상주의를 추구하자는 뜻은 아님. 기독교적 성찰이란 초자연적인 것을 배제하고 자연적인 것을 추구하며, 미래를 배제하고 현재에만 몰두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몸의 지첻ㄹ처럼 서로 의지해야 한고 미국역사에서 가차 없이 나누고 대립시켰던 요소들을 재결합시켜야 한다. 지성을 비롯한 인간 삶의 모든 영역

에서 겸손한 활동을 통해 주권적인 그리스도를 높여드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 그리스도를 섬기는 지성을 길러내는 일의 유용성에 대한 중요함의 인식


개신교에서의 선례 :

☞ 16세기 종교개혁의 시작


1)마틴 루터 :중세교회의 지성의 종말을 고할 것으로 인식되었음 그러나 마틴 루터는 1529년에 자녀의 교육을 등한시하는 부모들에 대한 반박하는 책을 쓸 것을 강조

"부모가 아니라 자기 자녀를 먹어 삼키는 비열한 돼지이며 지독한 짐승에 불과한 상스럽고 비천하며 저주받아 마땅한 부모들을 끝까지 쫓아다닐 것이다."

사람은 성서의 말씀과 그 말씀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세상의 본질 둘 모두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지성을 계발하는 일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루터는 주장. 모든 신자의 제사장직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더 강조해야 했다.


2)칼뱅: 기독교적 사고를 증진시키려는 개신교의 노력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곳은 장 칼뱅의 제네바였다. 칼뱅의 신학은 지성주의적이지는 않은 것은, 복음의 역사는 지식이 아니라, 성령이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성령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세상을 연구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믿었기에 그리스도인의 지성을 계발하여 하나님이 일하시는 영역인 삶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성령의 활동에도 꾸준한 주의를 기울였고, 젊은이들 에 대한 교육을 확대, 고급 학문을 위한 대학 설립, 신학만이 아닌, 고전어, 의학, 자연과학(정치

학과 사회학)의 학문에 대해서도 강조하였음.


3)청교도: 북미에 정착한 영국의 개신교인들 - 삶의 모든 이슈와 신앙을 별개로 보지 않음. 청교도들의 여러 놀라운 특징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한 가지는 기독교 지성을 계발하는 열정이 었다. 그들은 사회적, 교회적, 신학적 관심을 인위적으로 분리하여 별개의 범주에 넣지 않았고, 종합적이었다. 공적행위에도 종교적 의미가 있다고 보고, 종교적 행사에도 공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더 광범위한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결정 역시 교회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 행해지는 결정과 동일한 도덕적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 즉 청교도들은 삶이 영역을 구분하거나 교회 외부의 일에 대해 종교적인 판단을 하지 않으려는 것을 거부. 기독교적 틀 안에서 세상을 이해하려 할때 생겨나는 신학적 난제들을 애써 평가절하 하지 않았다. 이는 곧 지성의 총체성에 대한 노력 이었다. 이것이 청교도주의의 독특성이었다. 종교개혁 신학과 세상에 대한 포괄적인 시각을 결합 하고자 노력했던 점.


청교도들이 후대 복음주의 자들의 지성에 기여한 핵신적인 면은, 신학적인 입장뿐만 아니라 지성도, 교회에 관한 견해뿐 아니라 사회에 관한 원리도, 영성뿐만 아니라 세계관도 제시했다는 점이다.

물론 자신들이 가진 과도한 확신이 특정한 부분에 있어서는 틀린 부분이 있었다 할찌라도...


4) 청도교 지성에 영향을 준 사람들

청교도의 미학으로 존 밀턴, 존 번연, 앤 브래드스티릿, 에드워드 테일러 청교도의 정치학의 원리로는 존 윈스럽, 윌엄 브래드포드, 올리버 크롬웰 청교도의 사회이론은 여러 목회자들과 행정관들을 통해서 영향을 받았다.


노동과 기업윤리, 여가, 성과 사랑, 흔히 세속족인 삶이라 부르는 많은 다른 영역에 관한 분명한 이론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기독교 사고의 표현은 청교도의 신학과 교회론, 경건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이는 더 명시적으로 '종교적인' 범주를 뛰어 넘은 것이었다. 다시 말해 청교도들을 통해 기독교 지성의 결실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5) 일반적인 역사의 교훈

건강한 교회는 지적인 노력을 열심히 한다고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동안 교회사의 역사속에서 영광스런 순간들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성을 계발하려고 노력한 흔적들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깊이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 오래 지속되는 기독교의 영향력, 기독교적 사고에 대한 헌신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본다. 


교회사에 영향을 미친 기독교 운동들은 한결같이 가장 진지한 종합적인 차원의 사고를 발전시켜왔으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심층적이며 내적은 응답으로 부터 생겨났다. 그러나 그런 운동이 발전해 갈때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전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기독교 지성(세계관)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인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종교개혁과 수도원 운동의 사례이다. 수도원 운동은 6세기의 베네딕트 수도회, 10세기의 클루니 수도원의 수사들, 13세기의 도미니크 수도회와 프란체스고 수도회: B.C 350~1400에 이르는 동안 거의 모든 기독교적 가치를 만들었고,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하나님에 대한 진지한 묵상을 장려, 사람들이 내면을 향하도록 성서와 그리스도의 자비를 묵상했고, 선교 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왔다. 그리고 모두 주를 섬기는 행위로서 진지한 학문 탐구를 장려 했다. 경건과 지성이 서로 부딪칠 때 위험이 찾아온다.


‣ 알비파 저항운동

중세 시대의 알비파의 저항운동은 기독교 집단이 지성을 무시할 때 얼마나 쉽게 비기독교적 사고에 빠지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알비파는 도덕주의와 금욕주의에 몰두하면서 지적 활동을 원칙적으로 무시하고 배제하였다. 그들의 행위로 덜 양심적인 교인들을 정죄하고 부끄럽게 했다. 2백년 동안 프랑스 남부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나 13세기 알비 십자군과 종교재판을 통해궤멸되었고, 고대의 이단인 마니교로 경도되었다. 그 이유는 지성적 판단을 통한 신학의 체계가없기에 삼위일체와 성서에 대한 왜곡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3)청교도: 북미에 정착한 영국의 개신교인들 - 삶의 모든 이슈와 신앙을 별개로 보지 않음.청교도들의 여러 놀라운 특징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한 가지는 기독교 지성을 계발하는 열정이었다. 그들은 사회적, 교회적, 신학적 관심을 인위적으로 분리하여 별개의 범주에 넣지 않았고,종합적이었다. 공적행위에도 종교적 의미가 있다고 보고, 종교적 행사에도 공적인 의미가 있다고생각했다. 더 광범위한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결정 역시 교회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 행해지는 결정과 동일한 도덕적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 즉 청교도들은 삶이 영역을 구분하거나 교회 외부의 일에 대해 종교적인 판단을 하지 않으려는 것을 거부. 기독교적 틀 안에서 세상을 이해하려

할때 생겨나는 신학적 난제들을 애써 평가절하 하지 않았다. 이는 곧 지성의 총체성에 대한 노력이었다. 이것이 청교도주의의 독특성이었다. 종교개혁 신학과 세상에 대한 포괄적인 시각을 결합하고자 노력했던 점.

청교도들이 후대 복음주의 자들의 지성에 기여한 핵신적인 면은, 신학적인 입장뿐만 아니라 지성도,교회에 관한 견해뿐 아니라 사회에 관한 원리도, 영성뿐만 아니라 세계관도 제시했다는 점이다.

물론 자신들이 가진 과도한 확신이 특정한 부분에 있어서는 틀린 부분이 있었다 할찌라도...


4) 청도교 지성에 영향을 준 사람들

청교도의 미학으로 존 밀턴, 존 번연, 앤 브래드스티릿, 에드워드 테일러 청교도의 정치학의 원리로는 존 윈스럽, 윌엄 브래드포드, 올리버 크롬웰청교도의 사회이론은 여러 목회자들과 행정관들을 통해서 영향을 받았다.노동과 기업윤리, 여가, 성과 사랑, 흔히 세속족인 삶이라 부르는 많은 다른 영역에 관한 분명한이론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기독교 사고의 표현은 청교도의 신학과 교회론, 경건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이는 더 명시적으로 '종교적인' 범주를 뛰어 넘은 것이었다. 다시 말해 청교도들을 통해기독교 지성의 결실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5) 일반적인 역사의 교훈

건강한 교회는 지적인 노력을 열심히 한다고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동안 교회사의 역사속에서 영광스런 순간들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성을 계발하려고 노력한 흔적들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깊이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 오래 지속되는 기독교의 영향력, 기독교적 사고에 대한 헌신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본다. 교회사에 영향을 미친 기독교 운동들은 한결같이 가장 진지한 종합적인 차원의 사고를 발전시켜왔으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심층적이며 내적은 응답으로 부터 생겨났다. 그러나 그런 운동이 발전해 갈때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전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기독교 지성(세계관)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인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종교개혁과 수도원 운동의 사례이다. 수도원 운동은 6세기의 베네딕트 수도회,10세기의 클루니 수도원의 수사들, 13세기의 도미니크 수도회와 프란체스고 수도회: B.C350~1400에 이르는 동안 거의 모든 기독교적 가치를 만들었고,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하나님에대한 진지한 묵상을 장려, 사람들이 내면을 향하도록 성서와 그리스도의 자비를 묵상했고, 선교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왔다. 그리고 모두 주를 섬기는 행위로서 진지한 학문 탐구를 장려했다. 경건과 지성이 서로 부딪칠 때 위험이 찾아온다.


‣ 알비파 저항운동

중세 시대의 알비파의 저항운동은 기독교 집단이 지성을 무시할 때 얼마나 쉽게 비기독교적 사고에 빠지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알비파는 도덕주의와 금욕주의에 몰두하면서 지적 활동을 원칙적으로 무시하고 배제하였다. 그들의 행위로 덜 양심적인 교인들을 정죄하고 부끄럽게 했다. 2백년 동안 프랑스 남부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나 13세기 알비 십자군과 종교재판을 통해궤멸되었고, 고대의 이단인 마니교로 경도되었다. 그 이유는 지성적 판단을 통한 신학의 체계가 없기에 삼위일체와 성서에 대한 왜곡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 경건주의 운동 (17,18세기)

종합적으로는 경건주의는 좋은 것. 그리고 위험스러운 극단으로 치닫음.

경건주의의 핵심: 형식적이며 교의적인 엄격함으로부터 살아있는 기독교 체험으로 돌리는데 있었는데, 이는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이라는 정화운동이 끝난 후 형식주의로 굳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의적절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문제점은 믿음의 체계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지성), 신앙을삶으로만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신앙을 삶으로 만 본다는 의미는 영적인 체험에 깊이 잠기고 신앙이 심리적 차원에 몰두하게 하였고, 계시라는 객관적인 실제는 거의 무시하면서 개인적인 체험에 더 집중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반면 경건주의에서 훈련을 받았던 대표적인 인물이 임마

누엘 칸트,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였는데, 이들에게 영향을 받은 신학자들 가운데는 '의존의감정'이 기독교의 토대라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다시 말하면, 경건주의의 극단적 모습이 양분화 된 것이다. 즉 그리스도인의 영적 체험과 복음의 객관성의 극단적인 태도이다.


종교적인 삶을 극단적으로 강조하게 된 경건주의자들은 기독교적 사고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반면 감정에 몰두하였으며, 종교적 체험에 매혹된 신학적 자유주의의 발전에 크기 기여하게 되었다. 모호한 자연의 신비주의가 하나님과 세상에 대한 정통 가르침을 대체했던 19,20세기의 인본주의적 낭만주의에 발전에도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6) 진리와 지적인 이단

마니교: 이원론을 바탕으로된 사상 (빛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 같은 분리된 영역)

영지주의: 그리스도의 시대 직후 지중해 세계에서 성행했던 다양한 신비주의적 종교

가현주의: 영지주의 사상으 ㄹ교회로 끌어들인 고대의 이단





2부 스캔들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3. 복음주의 지성의 형성: 부흥운동, 혁명, 문화적 통


종교개혁기 동안 로마 카톨릭의 교리적 독단을 공격하는 것을 넘어 교육 자체를 의심하기에이르렀던 대중주의적이며 반지성주의적 운동에 대항해 고등 교육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옹호한대표적인 개신교 지도자들은 루터와 칼뱅이었다.

복음주의 유산이 종교개혁으로 부터 시작되어 영국의 청교도들을 통해 전해졌다면, 앞서 청교도들의 두드러진 특징이었던 지성을 존중하는 태도가 왜 현대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폭넓게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복음주의 역사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마이클 고브로(캐나다 복음주의 발전을 요약한 역사가)의 말대로 복음주의 운동은 부흥운동, 혁명,계몽주의라는 격변 배경가운데 만들어졌다.


첫째, 현대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은 부흥운동의 산물이다.

둘째, 우리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라는 미국적 상황으로부터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셋째, 우리는 독립전쟁의 결과로 이루어진 기독교와 미국적 가치의 문화적 통합을 계승한 사람들이다.

넷째, 20세기 초 근본주의 운동으로부터 심대한 영향 : 두 가지의 상반되는 의미를 가지는데, 기독교신앙의 본질을 이루는 무언가를 보존했지만, 동시에 지성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긍정적으로개신교의 전통적인 확신을 약화시킴.


부흥운동>

* 미국 복음주의 중심인물: 조나단 에드워즈(1차 대각성운동)

조나단 에드워즈는 복음주의 개신교의 가장 심오한 진리에 근거하여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킨.. 그래서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복음주의 지성이 될 수 있었던 인물. 그러나 그는 미국에서 복음주의 지성의 퇴락을 불러올 프로그램을 복음주의 개신교의 본질이라 여기며 열정적으로 주창했다는 비판.



조나단 에드워즈의 살아있는 믿음에 대한 학문적인 옹호


* 기독교적 사고에 미친 장기적인 영향 두 가지:

1) 부흥운동이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을 촉진했다는 점- 직접적이며, 개인적이고, 대중적인 리더십

2) 부흥운동이 교회의 전통적인 권위를 약화시켰다는 점 – 곧 개인주의적 신앙의 강화 (교회 공동체 약화)


* 조지 휫필드(18세기)의 청중을 매료시키는 달변가로 생생한 설교.

(미국 복음주의 역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

- 구체적인 (칼뱅주의)신학과 교파적 배경(성공회), 신분(성직자)등이 잊힌 후에도 한참 동안 복음주의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침.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지성에 대해 매우 활동을 대중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단순화시키겠다는 철저한 민주주의적 결단이두드러졌고, 이것이 대중적 호소력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교회 안에 포풀리즘 현상(대중주의)


* 19C의 찰스 피니, 드와이트 무디 그리고 20C에 빌리 선데이, 빌리 그레이엄, 오럴 로버츠, 지미 스웨거트 존 스토트, 마틴 로이드 존스가 그 뒤를 이음.


* 미국에 복음주의자들을 통한 대부흥은 미국 기독교 역사에 가장 위대한 이야기 중 하나이지만, 가속화된 개인주의적이고 즉각주의적인 경향이 여러 교단들을 통해 혁신적인 부흥운동의 기술로 번성하게 된다.


교회와 국가의 분리>

모든 신앙은 하나님과 개인 사이의 양심에 관한 문제이므로 정부는 어떤 수준에서도 이에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들을 채택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19세기 초 미국 복음주의자들의 독특한 점은 전례없는 수준의 종교적 자유를 누렸다는 점. 교회가 모든면에서 정부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었지만, 국교제로부터의 자유는 기독교적 사고에 역설적 결과를 초래.

미연방헌법 수정조항 제1조 "연방 위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자유로운 신앙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세금에 대한 이슈, 대통령이 기도의 날을 선포하는 것, 연방정부에서 기도로 회의를 시작하는 것, 법률로 군목을 임명하고 정부 자금으로 이들을 지원하는 것(이 의미는 군목이 특정 신앙을 갖지 못하게 하는 법률을 말한다.)


⚫부흥운동과 비국교화의 결합이 낳은 중요한 결과

긍정적인 면- 미국교회에 새로운 역동성, 대위임령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새로운 효율성, 복음을 전하는 새로운 활력

부정적인 면- 원칙보다 실용주의적인 관심이 더 우선시 됨, 교회의 요구는 새신자라는 결과였고, 신자가 없으면 교회 문을 닫아야 하기에 결과를 산출해 내는 것이, 모든 관심사(신학, 전통, 본질, 근본)를 압도. 신자들을 실용주의적 변증학과 기능주의적 신학으로 경도함.교회 성장에 가장 도움이 되는 신학은 무엇일까? 사회 안에서 교회의 대의를 가장 강력하게 펼칠 수 있는 신학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 교회의 관심이었다.


☞ 이러한 실용주의적이고, 즉각주의적이고, 기능주의적인 상황이 결국 지성에 큰 어려움을 가져다 줌.



기독교와 문화의 통합>

복음주의자들은 자신의 기독교적 신념을 미국적 이상과 잘 조화시켰기 때문에 미국 건국 초기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기독교적 신념과 미국적 이상을 무비판적으로 조화시키려 했기 때문에 복음주의자들의 공식적인 사상인 자연, 사회, 역사, 예술에 관한 사고는 미국의 초기 역사 내내 약화됨.


# 복음주의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성공적으로 미국적 이상과 보조를 같이 했는가에 대한 4가지 영역

1)공화주의 정치이론 채택 2)이를 자신들의 민주주의적 사회 이론으로 삼았으며, 3) 경제적 자유주의를 수용했고, 4) 기독교의 목적에 맞게 계몽주의를 길들였다.

1,2,3)의 설명은 생략 4) 기독교 목적에 맞는 계몽주의에 대한 조나단 에드워즈: 복음주의 지성 에드워즈의 삶의 정황: 세상, 하나님, 인간에 대한 관념이 과학이론의 획기적인 변화로 급속하게 바뀌던 시대 즉 계몽주의의 정신과 보조를 맞추며 살던 시대. 행복이 인간이 가진 최고의 목적이고, 세상을 이해하는 능력은 궁극적으로 인간 지성의 행위에 달려 있다는데 동의하며, 근본적인 실체는 움직이는 물체라고 가정하게 된 철학, 과학, 종교, 정치학과 같은 인문학의 도전에 움직임이 나타났던 시대.


조나단 에드워즈 지적 업적: 기독교적 확신에 근거하여 그가 자신의 사상의 출발점에서 부터 이런 전제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는데 있다. 움직이는 물체가 물리적 세계를 이루는 근원이라는 주장을 거부. 행복의 추구가 인간의 삶의 최고 목적이라는 생각에 맞섬. 하나님은 움직이는 물체보다 더 근원적인 실체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인간이 행복보다 더 고귀한 목적이다. 세상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인간이 지성으로 사물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에 의존한다.





4. 복음주의적 계몽주의

조나단 에드워즈 이후 몇 세대 동안 신학을 포함한 과학, 철학, 역사, 정치, 예술 에 관심을 기울인 복음주의자들이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계몽주의적 방법론을 채택하였다.

복음주의적 계몽주의적이란 그 방법론이 특정한 방식으로 객관적인 진리에 헌신하는 태도와 특정한 '과학적' 방법으로 성서에 접근하는 자세를 말한다.

이것이 요즘 말하고 있는 통전적 신학이라 볼 수 있다.


복음주의를 구한 계몽주의

미국에 강력한 복음주의적 계몽주의가 존재했던 이유는 북미의 지성사가 유럽 대륙의 지성사와 그 양상이 달라다는 점.

미국에서는 여러가지 계몽주의를 인식함 : 온건한 계몽주의(아아작 뉴톤, 존 로크), 회의적 계몽주의(루소, 윌리엄 굿윈), 혁명적 계몽주의(톰 페인), 도덕적 계몽주의(토머스 리드, 애덤스미스..) 여러 가지 성격의 복음주의적 계몽주의는 다양한 지성을 기반으로 교회와 사회 전반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치게 됨.


계몽주의와 복음주의 사상의 형성

복음주의가 계몽부이를 수용한 범의는 사회 도덕적 방향성을 결정하는 유용한 수준을 넘어 복음주의 사상에 깊이 파고듬. 고급문화의 수준에서는 그 연대가 변증론과 신학을 결정지었고 모든 주요 복음주의 집단에게는 부흥에 대한 기대감을 자아내었으며 보통사람과 엘리트 모두 에게 성서를 이해하는 틀을 제공.


변증론

과학적 합리성에 근거한 수많은 변증론이 제시.


- 신학에서도 엄격한 경험주의가 하나님, 계시,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을 정당화하기 위한 기준

- 도덕철학에서도 윤리적 확실성에 이르는 최선의 길이라 여김.

- 종교적 진리를 논증하기 위해 자연과학을 동원하는 데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침.


5. 근본주의라는 지적재앙

19세기 말, 20세기 초 복음주의 역사의 실망스러운 것 – 광범위한 문화적 맥락에서

-◼ 개신교적인 의식을 가진 미국 사회의 변화

-◼ 보수주의 복음주의 자들 안에 중요한 신학적 혁신

-◼ 외부적으로는 칼리지와 대학교의 발전, 내부적으로는 근본주의와 근대주의 간의 논쟁의 결과에 큰 영향

-◼ 성결 신학, 오순절 신학, 세대주의 신학을 폭넓게 수용한 결과로 나타난 특정 문제들


1865~1900년 사이에 급격한 변화

하버드, 존스 홉킨스, 코넬, 시카고, 스텐퍼드, 예일, 프린스턴, 컬럼비아와 같은 학교들이 교육기관을 혁신, 확장, 설립하여 전문대학원을 갖춘 종합대학으로 변화됨

학생수의 증가 1870~1900년 사이에 인구가 두배로 늘어난 반면, 대학생 수는 다섯 배 증가. 1860년에는 고등기관에 다니는 수는 1% 미만이었으나 1930년에는 12.4%로 증가 대학 이사진들이 성직자들에서 기업인으로 대체, 대학 총장은 목회자에서 경영이론과 과학의 요구에 민감한 교육가들로 영입. 신학과 정통신앙의 보존보다는 학문적 평판에 더 큰 관심,

과학적으로는 자연주의적, 철학적 실용주의 경향이 더 짙어지게 됨. 기업가와 칼리지, 학문 사이에 순환고리가 완성

자본, 사회적 진화론, 자연주의적 과학, 타협적인 개신교의 결합은 복음주의적 신념과 미국의 이상은 급속히 퇴조됨.

.- 원인: 복음주의 사상에 기초한 사회와 교육기관들이 북미의 교육을 장악하지 못한 데서 온 결과. 복음주의 기독교 공동체사 교육에 투자한 것이 아니라, 부유한 신흥 기업가들과 주 정부의 투자였다. 그래서 교회나 복음주의권의 기금망은 갈수록 약해짐.

하지만 당시 여전히 종교에 대한 강조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강조되었지만, 성공한 학교들은 새로운 발전과 타협한 학교들이었다.


근본주의

근본주의 운동은 대학교의 변화와 미국 사회전반의 변동에 대한 반응이었다.

1) 로마 카톨릭, 유대인, 불신자 및 이민자의 대거 유입으로 개신교 국가라 믿었던 미국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에 대한 두려움의 반응.

2) 갑자기 생겨나는 도시로 인해 개신교가 큰 영향을 가지고 있던 소도시와 농촌 지역이 급속히 사라지는 것에 대한 당혹.

3) 자연주의 철학의 유행에 대해 성성를 저버리는 것에 대한, 그리고 대학교 밖으로 확산되는 것에 대한 경악.

이와 같은 대중적인 우려가 근본주의가 지성에 미친 영향력은 일종의 역사적 부산물로 여겨 도될 정도였다. 그러나 부산물이라 할 지라도 근본주의가 지성에 미친 영향을 아주 심대했다.


신학적 혁신

미국 문명의 위기에 대한 근본주의적 반응과 전통적인 신앙을 수호하겠다는 근본주의자들의신학적 열정으로 나온 새로운 신학적 경향을 뜻한다.

 성결의 영성, 오순절 운동, 전천년주의적 세대주의

◼ 성결운동: 성령의 내주, 개인적 성화의 필요성 – 감리교인과 웨슬리주의자에 의해 추진

◼ 오순절 운동: 1906년 LA Azusa거리의 부흥운동은 성결운동의 많은 강조점과 분파주의적인 개신교들에 의해 더 강조점들이 결합되어 최고조에 이른다.


19세기 후반 몇 십년간 북미와 유럽 전역에서 여러 변형으로 형성된 네 가지 복음 메시지

1)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2)신유(궁극적으로 방언을 통해 명확히 나타난다고 여겼던),3) 성령세례와 충만, 4)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


◼ 세대주의: 예언 운동, 세대주의 안에(남부, 북부로 나뉨) 메인라인 교단을 떠난 북부의 복음주의자들은 전천년주의적 세대주의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미침.

세대주의의 필수조건: 1)이스라엘과 교회 사이의 엄격한 구별 2) “대개는 문자적인 해석이라 불리지만“ 이라는 ”정상적인, 혹은 명백한“ 해석이라 말하는 것이 더 접합하다고 생각

세대주의의 네 개의 발전 단계 : 즉 나아이애가라 수련회로부터 스코필드, 라이리를 거쳐


진보주의자들에 이르기 까지 네 단계의 세대주의가 존재

진보적 세대주의, 오순절 진영의 세대주의(현재의 사건을 성서적 예언의 성취로 간주하는 할 린지같은 이들의 –날짜를 지목하는-‘역사주의, 다른 변형된 형태의 시대주의. 세대주의의 영향력과 성결운동과 오순절 운동의 사조의 합류는 미국 복음주의의 전환기를 마련. 이 세 운동은 서로 비판하면서도 (방언강조, 복잡한 성서적 논증, 비판자체에 대한 거룩성 추구 의 방해) 세상과 분리된 경건이 주는 평안함과 복음 전도의 중요성, 종말에 대한 기대 등의 공통 적인 강조는 복음주의 사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됨.


● 왜 이러한 신학적(성결운동, 오순절,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혁신이 일어났을까?


★단순한 성서적 진리를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기에...

 북미의 문화적 엘리트들이 의문시했던 기독교의 특징을 강조

 교양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내재성을 강조하는 것에, 세대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역사를 초월적 으로 다스리신다는 믿음을 옹호

 문화 전반에서 기계론적인 과학에 대한 신뢰가 커지자, 오순절주의자들은 하나님이 가장 평범한 사람의 삶 속에도 침투해 들어오실 수 있다고 주장

 학문적 엘리트들이 현대의 가장 심각한 문제에 대해 실용주의적, 민주주의적, 사회과학적 해법을 제안할 때, 성결운동의 지지자들은 성령을 해답으로 제시.


● 핵심의 의미

근본주의 시대는 복음주의적 사고에 여전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데, 그것은 근본주의가 세상을 바라보는 지적 경향을 철저하게 확립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관점에서는 가현주의적이며 방법론에서는 영지주의적인 경향이 나타났다. 이 두 가지가 과거 근본주의에 대한 지적 비판의 핵심을 이룬다.


● 새롭게 떠오른 반지성주의

근본주의는 새로운 형태의 반지성주의에 빠짐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그분이 만드신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지성을 사용하려는 노력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 왜냐하면 오순절주의자 들과 성결 운동을 옹호했던 이들은 아무리 세상의 학문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실제적인 임재를 강조함으로써 정말로 필수적인 기독교의 목적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이기 위해서는 더 이상 세상에 관심을 기울여서는 안 된다는 전제에 있었다.


영국 복음주의자들이 지적으로 취약한 원인을 분석해 달라고 요청을 받은 마틴 로이드 존스는 강연을 통해 19세기 말부터 나타난 새로운 신학적 입장이 미친 영향을 강조했다.

“임박한 재림과 예언의 은사를 강조하여 학문의 필요성을 경시했던 19세기 초 신학운동의 지속적인 영향력”을 지적하면서 강력한 초자연주의 대두를 강조. 당시 미국에서는 오순절 운동과 세대주의의 복합적인 영향으로 이런 종류의 초자연주의가 나타났다. 그러나 지성과 관련한 근본주의의 가장 심각한 폐해는 단순한 반지성 주의가 아니라 근본주의 운동이 사고 행위 자체에 대한 19세기 식 전제를 더욱 강화했다는 점이다.


● 19세기의 강화

자연, 사회, 예술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는 것을 가로막는 근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19세기의 지적인 습성을 무비판적으로 채택했다는 것이다. 근본주의자들이 책임있는 지성의 가능성을 약화시킨 19세기적 다른 특징을 보면


1) 성서 구절을 신적 진리라는 완성된 그림을 얻어내기 위해 골라서 끼워맞추는 데만 필요한 퍼즐 조각처럼취급했다는 점.

2) 극단적인 ‘본질주의’, 즉 특정한 공식으로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이나 인간의 상태, 세상의 운명과 같은 모든 문제에 관한 성경적 진리의 본질을 포착해 낼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경향

3) 그에 따라 특정시대에 가장 중요해 보였던 문제를 이해하고 정의하는데 역사가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무시하는 태도

4) 이전 세대로부터 내려오는 지혜를 가볍게 무시해 버리는 교만에 가까운 자기 확신19세기 베이컨주의 과학의 객관주의적 언어가 문제가 된 것은 과학에 대한 19세기적 확신에 나타난 자기인식의 결핍이 20세기 말까지도 복음주의 신학을 대중화했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 사이에서 그대로 나타났다는데 있다. 그런 지적 성향이 신학 자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주목하기보다 그것이

다른 모든 학문을 신학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저자는 주목하고 있다.


 세상에 관한 기독교적 사고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 물음

◼ 현대 핵물리학의 난제나 의료 개혁의 복잡한 문제, 고전의 해석, 20세기 공산주의에 대한 평가,다원적인 사회에서 전통적인 법 이론의 의미, 어떻게 음악이 전통적인 도덕을 강화하는가 혹은 전복하는가에 관한 문제, 어떤 책을 문학의 전범으로 삼아야 하는가?


이상의 예들에 대한 성서와 기독교 신학과 관련한 그 공동체의 지적 성향이 순진하고, 무비판적인 가정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면, 세상에 관한 기독교적 사고를 증진하려는 그 공동체의 노력 역시 엄격한 비판의 결여를 들어낼 수 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근본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19세기 지성사에 나타난 가장 나쁜 특징이 20세기 지적 활동의 방법론적 중추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 의심스러운 신학적 지침

20세기 초의 유산이 남긴 더 심각한 어려움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연, 사회,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에 근본주의 신학이 제공한 신학적 지침과 관계가 있다. 기독교 신학 체계는 삼위일체의 본질, 성서를 통한 하나님의 자기계시, 어떻게 인간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교회는 구원의 실재에 대한 본보기가 될 수 있는가 등에 대한 주제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은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에서 실제적인 책무를 수행할 때의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 제시하기도 한다. 음악을 만들거나 즐기고, 몸을 이해하고, 환경을 돌보는 청지기 역할, 유급 노동의 목적을 규정, 과거가 어떻게 현재의 모습을 결정했는지에 관해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 제시하는 것을 포함한다.


세대주의 신학은 “승히라는 삶” 이나 “더 나은 성결의 삶”, “헌신된 삶”을 강조하는 경건과 결합하는 경우, 위의 방향을 제시할 때 특별한 문제를 야기한다. 근본주의가 조장한 지성의 성향은 이런 종류의 사고에 재앙이 되었을 뿐이다. 세대주의가 가장 지적인 형태의 근본주의 였기 때문에, 지성에 가장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 것 역시 세대주의였다. 세대주의가 강조한 초자연주의는 신앙을 방어해 냈다는 미덕에고 불구하고 세상에 적절한 관심을 기울이는 데 실패했고, 극단적인 형태의 초자연주의에는 진리를 전달할 때 일종의 영지주의적 경향을 띠었다. 그 지지자 들도 자연, 세상의 사건, 윤리, 인간 존재의 여러 다른 양상에 관한 교육을 받았지만, 이런 주제를 본격적 으로 연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세상의 상황과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성경구절을 인용했지만, 사건과 상황 자체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영지주의적 경향이라 함은, 정교한 도표와 도형을 만들고 이를 통해 성서를 분명히 설명해 낼 수 있다고 가정하면서 그것에 권위를 부여하는 태도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남을 말한다.


복음주의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만난 결과는 근본주의였다. 교리에 대한 이러한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에는 공통된 형식이 있었다. 성경, 구속, 종말에 대한 주제들에 대해 근본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시각에서 경험을 해석해 내려고 노력했고, 각각에 대해 그들은 하나님이 영감을 주신 성경의 저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이해했던 방식으로 현대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므로 근본주의자들이 성경을 방어할 때, 성경 원본의 무오성을 주장했다. 이런 개념은 오랫동안 여기저기서 제기 되어 왔지만 그 어떤 기독교 운동에서도 이 정도로 핵심적인 역학을 한 적은 없었다. 이런 믿음은 사실상 성서 저자들의 경험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하나님의 말씀이지, 성서 저자들의 삶의 경험과 문화적 배경을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지성계의 비판

근본주의 운동과 후대의 여러 복음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은 지적으로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것.

자연세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인간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왜 인간의 본성은 그런 모습인지, 문화의 축복과 위험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사실상 아무런 통찰도 산출해지 못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 가운데 어떤 것은 전적으로 옳았고 성경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믿음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갖지 못했다.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근본주의 철학, 근본주의 과학사, 근본주의 미학, 근본주의 역사학, 근본주의 소설과 시, 문학, 근본주의 법학, 근본주의 문학비평, 근본주의 사회학 같은 것이 존재할 수 없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관한 한 근본주의의 정서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 영향을 받은 복음주의 지성계 역시 변변한 결실을 맺지 못했다.


결론

근본주의 신학의 영향이 지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이 신학이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달려 있다. 그래서 저자는 결론적으로 세대주의, 성결 운동, 오순절주의의 독특한 교리가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저자는 세대주의에 반하여, 성서의 예언의 핵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속의 정서적이며 우주적인 차원을 계시하는 것이지 신자들에게 세상의 종말에 대한 완전하고 상세한 미리보고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 라고 한다.

성결신학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딸고 자신의 직업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받아들이면서 은혜 안에 자라가야지, "내려놓고 하나님이 다 하시게 해 드림으로써"는 성숙한 것이 아니다.


오순절주의에 대해,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필수 요소로서 성령으로 세계를 받으며 특별한 이적을 행하는 은사를 구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





3부 스캔들의 의미

6. 정치에 관한 성찰

미국의 복음주의적 사고의 특징은 정치학과 과학분야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데, 19세기의 정치적 사고를 왜곡시켰고, 복음주의권의 정치적 사고에 영향을 미쳤다. 어떻게 왜곡시켰고,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내용이 3부에서 다루어진다. 결론적으로는 근본주의가 복음주의적 사고에 가한 실질적인 폐해에 대한 것을 설명한다.

그러나 그 폐해를 이겨내는 복음주의의 회복능력과 성숙한 지성이 나타날 조짐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세 차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과 19세기 복음주의 사상


7. 과학에 관한 사고

19세기 복음주의자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당시의 대중적인 과학적 개념을 효과적으로 차용함. 지적인 이유보다는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이를 통해 복음주의는 과학 분야에서 의미있는 결실이 있었다.

그러나 대학교에서 과학의 높아진 위상에 기초한 공격적인 세속화가 전통적인 기독교의 관심사를 압도해 버렸다. 그래서 기독교 대학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이들은, 대개 과학 연구를 신학이나 다른 사고의 영역과 연관시키기 보다는 철저하게 분리된 지식의 영역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19세기 유산

19세기 복음주의자들은 과학을 "베이컨주의"로 이해했다. 이는 어떤 분야에서든 입증된 각각의 사실로 부터 더 일반적인 법칙을 이끌어내는 방식이 그 주제에 관련된 자료를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신념이 있었던 것이다.

베이컨주의란? (경험주의, 실험주의) 자료에서 따옴


고대․중세의 과학적 전통에 따라 행해졌던 실험들은 다음 두 가지 중 한 가지 목적을 갖고 있었다. 첫째, 이미 알려진 결론을 증명하려는 목적과, 둘째, 기존 이론들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구체적 해답을 주기 위한 목적이었다. 데까르뜨와 뉴턴이 프리즘에 의해 나타나는 빛깔을 연구했을 때 이들은 고대․중세적 전통의 연장선 위에 있었으며, 티코 브라헤 이전의 천문학자들은 행성의 궤도를 직접 관찰하지 않고 단지 달력을 만들거나 기존 이론 성립에 필요한 변수들을 계산해내기 위해 필요한 일출이나 충(衝: 태양과 어떤 행성이 지구를 사이에 두고 정반대의 위치에 오는 현상)만을 기록했다.

반면 길버트, 보일, 후크 같은 베이컨주의자들은 이미 알려진 것을 증명하거나 기존 이론을 확장하는데 필요한 세부사항을 밝히려고 실험했던 적이 없었다. 이들은 예전에는 관찰되지 않았던 상황, 때로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상황에서 자연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고자 했다. 이 때 베이컨주의자들은 대개 원자론이라 는 형이상학에 입각해서, 원자의 모양․배열․운동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실험들에 우선순위를 부여하였지만 이내 형이상학과 실험 사이의 현격한 차이를 느끼게 되었고, 그 결과 ㉠실험을 높이 평가하고 이론을 경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실험과 이론의 지위 역전 현상은 새로운 실험과학이 이전의 과학과 구별 되는 첫 번째 특징이두 번째 특징은, 베이컨 스스로 ‘사자의 꼬리를 비트는 것’과 같다고 묘사했듯이, 자연에 외적 제약을 가해서 사람의 개입이 없이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조건 속의 자연의 작용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다양한 식물과 동물, 그리고 화학물질을 공기펌프․기압계로 만든 인공적 진공 속에 투입하는 실험을 했던 사람들은바로 이런 측면을 잘 드러낸다. 세 번째 특징은 두 번째 특징으로부터 도출되는데, 바로 베이컨주의자들이

‘공기펌프’, ‘기압계’ 등의 실험도구들을 발명하고 사용했다는 점이다. 1590년 이전에는 물리과학의 기구 창고는 천문관측기구들로만 가득 차 있었지만, 이후 백 년 동안 망원경․온도계․기압계․공기펌프․전하측정기 등 수많은 신 기구들이 급속하게 도입되었다. 장인이나 연금술사가 작업 시 이용하던 화학 장치들 역시 자연연구자들에 의해 채택되기 시작한다. 기계를 채택하여 실험을 하기 시작한 베이컨주의자들은 ㉡고대․중세적 전통의 사고실험을 비판하였으며, 실험에 관한 정확․상세한 보고를 강조했다.

이러한 특징을 갖는 베이컨주의가 고전과학의 혁명에 별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일부 역사학자들의 지적은 일면 타당하다. 왜냐하면 고전과학의 혁명에 실험이 차지했던 역할은 실제로 미미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뉴턴의 프리즘 연구는, 물로 채운 유리 공을 사용했던 중세의 실험에서부터 전승되었기 때문에 베이컨주의식의 실험이 행해졌던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당시 고전과학의 혁명은 사고실험을 통해서 이뤄졌고 실험은 그 사고실험을 입증하기 위해 부수적으로 실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즉 과학혁명 기간의 고전과학 분야의 변혁은 ㉢이미 알려져 있던 것을 새롭게 보는 방법에서 기인했던 것이지, 예기치 못했던 일련의 실험적 발견들에서 기인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베이컨주의가 과학혁명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은 무의미한 것이었다고 보는 역사학자들의 시각 이면에는 고전과학만을 진정한 과학으로 여기는 선입견이 놓여 있다. 베이컨주의가 고전과학의 발달에 별 공헌을 하지 못했다고 양보하더라도, 그것은 새로운 과학 분야들의 형성을 촉진했다는 사실은 인정되어 야 한다. 데이터를 선원들의 나침반 사용 경험으로부터 얻어낸 초기의 자기 연구, 자석이 쇠를 끌어당기는 현상과 마찰된 호박(琥珀) 막대가 왕겨를 끌어당기는 현상에 대한 분석에서 시작한 전기 연구가 그 예이다.

게다가 새로운 과학 분야는 특히 ㉣신뢰도 높고 세련된 기구들을 십분 활용했다. 그 동안 철학․의학의 사고 대상이었던 열은 온도계의 발명에 의해 체계적 연구대상으로 탈바꿈한다. 이들 분야는 새로운 것이었으므로 초창기에는 ㉤일관성 있는 이론체계를 갖추지 못했던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18세기에 이르러 실험이 더욱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특정 분야로 실험이 집중되며 입자 개념 등이 실험적 연구와 결합하자 이내 이론적 체계로 발전을 이루게 된다.


다윈에 대한 대응

미국의 과학계가 유기적 진화론을 수용하게 될 까지, 다양한 신학적 입장의 개신교 지도자들이 다윈의 변이가설을 그저 나쁜 과학이라고 거부하는 데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뿐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북미에 서 다윈주의를 주도했고 미국인들이 다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가장 크게 기어여 과학자 아사 그레이는 상당히 보수적인 신학관을 견지한 회중교회 교인이었다. 그는 전통적인 신학적 입장을 고수한 하버드의Botanist였다.

1870년 미국의 과학자들이 유기적 진화론을 받아들이자 이 새로운 도전앞에 맞서게 된다.


19세기의 마지막 25년 동안 세 가지 입장을 제시

1) 보수적인 반대자들은 진화론을 일차적으로는 종교적 이유로, 즉 자신들의 성서 이해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즉각 거부.


2) 진화론과 개신교 신앙을 조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이들이 두 분류로 나뉜다.

-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진화론자들은 역사적 기독교의 교리적 틀 안에서 진화론을 인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

- 그러나 진화론을 수용한 대다수의 경우,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신학 자체도 크게 변화게 된다.


진화론을 수용하면서 신학을 재핵석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성서 고등비평에 대한 호의적인 관점을 취하고, 이전과는 달리 종교적 의식을 신뢰하면 인간의 발전에 더 확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흐름을 따른 근대주의적 개신교 진화론자들은 내재적인 신관을 옹호했고, 성서를 진화하는 종교적 의식의 표현으로 재정의했고, 유기적 진화론에서 차용한 용어로 성서에서 말하는 구속의 개념을 재규정 했다.


19세기 복음주의 과학의 '두 권의 책'

챨스 하지의 "성서 연구와 프리스턴 리뷰"라는 학술지에 조셉 클락의 '과학의 회의주의' 라는 논문이 실린다.


이 글에서 클락은 과학이 서양 문명에서 점점 중요해지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과학의 문제를 다룰 때 이중적인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 첫째, 성서를 온전히 신뢰해야 한다. 둘째, 과학자들이 성서으이 결론에 얽매이지 않은 채 자신의 학문 분야에서 사용하는 적절한 귀납적 방법에 따라 연구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예전의 성서 해석(지구가 평평하다고 가르치는 믿음과 같은)이 새로운 과학적 결론에 맞게 어떻게 수정되었는지를 지적하며, 교회가 앞으로 이런 식으로 적응해 가야 하며, 그럼에도 교회나 성서 영감의 교리에는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 주장.

이 주장에 대해 "뉴욕 옵저버"는 클락이 너무 많이 양보한다고 주장한다. 즉 클락의 주장은 위험한 지점 에까지 이른다고 주장. "과학적인 결론이 계시와 충돌하는데도 과학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계시를 제쳐놓는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가게 될까?"라는 질문을 한다.


이에 찰스 핫지는 이 논설의 질문을 고쳐 말하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가야 할 바로 그곳까지 가게 될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는 성서 무오성의 교리를 확고히 고수한 채 과학자들에게 성서의 핵심적인 가르침과 모순되는 우주론적 추론을 경계하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동시에 "성서가 과학에 의해 해석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옹호했다. 이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결론이 성서 해석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거의 자명하다고 하였다. (지구 주의로 태양이 돈다는 성서의 가르침을 과학적으로 지구가 태양 주의를 돈다는 증명과 같은)


과학에 대한 세세한 의견 차이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결론을 적용할 때 성서 해석의 영향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서 해석 역시 그 시대 최고의 과학적 성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믿었던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근본주의의 영향

근본주의가 나타난 것은 전반에도 언급되었듯이 급속한 세속화에 대한 반응으로 부터 나타난 것이다. 근본주의 과학도 동일한 원인으로 부터 시작한 것이다. 19세기 '과학'에 엄청난 권위를 부여하면서 과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학계는 그들의 연구 태도, 송영적, 하나님 지향적인 과학을 배제하기 시작한데 있다.


그래서 '창조론'이라는 것이 진화론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 과학이다. (근본주의적 창조과학) 이들은 과학연구만으로도 우주가 자기 충족적이며 완결된 성격을 갖는다는 거대한 우주론적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에 반대하는 활동을 펼쳤다. 또한 그런 과학을 위해 세금을 사용한다는 것에 대한 반대도 있었다. 그러나 근본주의자들의 분노는 충분히 타당했지만 근본주의 과학은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근본주의의 후예인 복음주의자들은 최고의 신학은 최고의 과학을 이해하고 받아들 일 수 있어야 한다는 19세기식 확신을 포기했다. 하지만 성서와 과학을 조화시티는 것이 중요하며 베이컨주의의 방법론이 모든 주제를 연구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확신은 그대로 유지했다. 근본주의 운동 자체의 충동과 20세기 초의 사회적 압력으로 인해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신학이 지닌 약점에 굴복하고 말았고, 그 결과는 과학에 나쁜 영향을 남겼다. 신학이 지닌 약점이란 그들 안에 있는 이원론적인 사상 "빛과 어둠의 세력"에 싸움이라


는 가정이다. 결국 근본주의는 '마니교'로 후퇴해 버린 것이다. 자연의 대한 일상적인 연구조차 악한 것으로 취급하는 극단적인 초자연주의로 가게 된 것을 말한다.


창조과학의 대두 올바르게 정의했을 때 창조론이라는 말은 자연 세계의 현상 안에서, 하나님의 지성을 분별하는 모든 활동에 해당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용어는 불행히도 하나님이 1만 년 혹은 그보다 더 멀지 않는 과거에 세상을 창조하셨고, 노아 시대에는 전 세계적인 홍수를 내려서, 오늘날 대부분의 과학자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론적으로 변화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지구의 지질학적 상태를 만들어 내셨다고 보는 견해만을 의미 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창조과학의 대두는 근본주의 영향을 받은 복음주의자들 안에서의 창조과학의 동향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왜 창조과학이 급부상했을까?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1) 창조론이 성서의 단순한 가르침을 구현한다는 많은 복음주의자의 직관적인 믿음때문이었다. 

2)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방 정부권력이 확대된 것도 창조론이 대중적으로 부상하는데 영향

을 미쳤다. 

3) 창조론자들은 미국의 독단적인 지식인 엘리트들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교들의 소속된 일부 학자들이 보여준 지적 제국주의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발의 일환이다. 

4) 근본주의 신양의 영행, 특히 종말론적 정서와 세대에 대한 열광이 반영

유행화 세대주의와 뒤에 대중화된 창조과학 사이에는 많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창조론을 과학적세대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다. (세대주의의 신학에 연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세대에 걸쳐 하나님이 인간의 삶을 이끄시는 방법)


창조과학이 복음주의 지성에 입힌 피해

인간의 기원, 지구의 나이, 지질학적, 생물학적 변화의 원리에 대해 명확하게 사고하는 것을 혼란스럽게만들었다는 점. 그러나 더 심각한 피해는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바라보고 우리가 본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약화시켰다는 점을 지적한다. 문제점은 자연 세계에 관한 지식에 대해 마니교적 태도를 갖게 했다는 것. 그 결과 비극은 수백만 명의 복음주의자들이 단순히 창조과학을 옹호함으로써 성경을 옹호한다고 생각했다는 것과 복음주의자들은 그런 경향때문에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19세기 찰스 핫지가 이런 시대 속에서 던진 말이 시의 적절하다.

:자연은 성서만큼 참된 하나님의 계시다. 그리고 우리는 과학에 의거해 성서를 해석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할 수 있다.“




4부 희망?

8. 복음주의적 지적 부흥은 진행 중인가?

지금까지의 내용에 대해 저자는 현대 '복음주의 사상'은 미국적 가치관과 개신교 가치관의 19세기적 종합으로부터 생겨나 근본주의와 근대주의 사이의 투쟁을 거쳐 온 지적 전제로 이해한다. 이런 역사를 감안하면 20세기 말, 21세기의 복음주의 사상의 전망은 밝지 않다는 것이다. 


(근본주의에 영향을 받은 복음주의 신학-총체적 분야를 포함한 지성-을 말한다.) - 통찰력있는 리처드 니버도이에 수긍함. 이 장에서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복음주의 지성에 생기를 불어 넣은 영향력들의 상호작용 복음주의의 정치적 성찰을 갱신하기 위한 건설적 노력들 복음주의 철학은 놀라운 발전이 성공을 거둔 반면, 복음주의 정치사상과 과학은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사실을 최근 복음주의 사상의 본질과 관련하여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 한다.


복음주의 지성의 각성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네 가지 유사한 변화가 전개 됨에 따라 복음주의적 사고가 뚜렷한 진보를 이룰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단순히 성서주의에 반해 성서의 복잡성에 관한 인식이 확대되어 갔고, 대중주의에 반대 고급 고등교육에 대한 갈망이 켜져갔고, 행동주의와 더불어 연구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타나났다.


1) 탈근본주의, 2) 메인라인 개신교의 도움, 3)이민 교회의 성숙, 4) 대서양을 너머


1)탈근본주의

근본주의의 영향을 받은 세대주의의 유산을 거부하는 젊은 설교자, 학자, 언론인들이 나타남.열등한 분리주의, 묵시론적 성서주의, 대사회적 소극성에 환멸을 느끼며, 이런 시점에 풀러 신학교와 고든 콘웰신학교의 총장이었던 헤럴드 존 오켕가는 전통적인 개신교의 정통을 고수하면서도 학문을 소중히여기로 사회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새로운 복음주의'를 주창하게 된다. 이게 큰 역할을 한 사람은그레이엄인데, 복음주의 학자들을 복음주의 운동 특유의 반지성주의로로 부터 나오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함.


2) 메인라인 개신교의 도움

근본주의자가 되지 않았던 신학적 보수주의자들과의 관계가 있다. 이들은 20세기 많은 전통적인 교회들의 신학적 근대주의 경향을 억제하려 했던 자들이었다. 근본주의와 근대주의 사이의 격렬한 갈등이 역사의배경으로 저물어 가자, 이들 신학적 보수주의자들이 복음주의자들과 교류 관계를 자연스럽게 다시 확립할수 있었다.

본보기가 될 인물들이 나타남.

예일의 케네스 스칼 라투렛: 기독교 선교 역사를 통해 탈근본주의자들과 교류

장로교 역사가 해리스 하비슨: 프린스턴에서 종교개혁과 역사학에 대한 기독교적 접근 방식에 관한 책을통해 교량 역활을 함.

C.S Lewis에 대한 관심 덕분에 성공회 목회자인 채드 왈쉬는 탈근본주의자들에게 환영받음.


3) 이민 교회의 성숙

종교개혁 전통을 강력히 고수하는 유럽출신의 개신교인들이 미국 내에 중요한 공동체를 세움.그중에 가장 큰 공동체가 루터교였다. 그리고 네덜란드계 북미개혁 교회 (윌리엄 어드먼즈 출판사)


4) 대서양을 너머

어드먼즈는 미국 복음주의 갱신과 관련한 네 번째 흐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그 노력은 1930년대부터 영국 국교회와 비국교회 교단에 속한 수많은 영국의 복음주의자들이 대학에서 영향력을 회복하려는노력에 힘을 모았다. 이 운동의 요람은 IVF(영국 기독학생회)였다. 마틴 로이드 존스, FF 브리스, 존 웬함과 같은 복음 주의자들이 단기간에 발전을 이루었다.


갱신의 징조

학문적 교류 외에, 저명한 인사들과 연구 프로젝트, 전도집회를 통한 네트웤, 마틴 로이드존스나 존 스토트같은 대학교 '선교사들'이 더 엄격한 학문적 집단안에서 헌신. 에드먼즈는 다양한 교파 전통을 가진 복음주의학자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줌. 미국 기독학생회나 로잔 세계전도위원회와 같은 기관들은여러 문화를 아우르는 복음주의권의 유대 강화. 그 결과 미국과 영국, 캐나다, 그 외 다른 지역에서 풍성한 복음주의적 지성의 네트워크가 확립됨.


1970년대 이후 부터는 당대 최고급의 지적 이슈에 대한 복음주의의 대답을 규정하며 나타낸다. 하버드의과학사, 퀸즈 대학의 역사학, UCLA의 역사학과 철학, 오타와 대학과 시카고의 일리노이 대학교의 문학,프린스턴과 버지니아의 사회학, 위시콘신의 철학과 경제학, 시라큐즈와 예일의 철학에 이런 학자들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 최근에 작고하신 USC의 달라스 윌라드를 포함...


한마디로, 근본주의-근대주의 논쟁 이후 복음주의자들의 지적 상황이 크게 개선되고 놀랍게 발전했다는 말.


정치적 성찰 : 생략

과학 : 생략




결론

현재 복음주의자들은 지난 몇 십 년간 북미에서 지행되는 기독교적 사고의 갱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특히 철학 분야에서 기독교적 사고는 '르네상스'라 할 만한 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기독교적 사고의 부흥을 이끈 지적 활력은 미국 복음주의의 역사적 자원으로 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결실한 기독교적 사고를 위해서는 미국 복음주의를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복음주의에 대한 일부지식인들의 헌신을 설명해 주는 우연적인 개인사를 제외하고는 지성을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이복음주의 전통 안에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복음주의자들도 지성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궁극적으로 최근의 역사가 아니라우리가 고백하는 종교의 본질에서 찾을 수 있다.


9. 십자가라는 걸림돌

'십자가의 스캔들'은 하나님이 인간 존재의 영역을 얼마나 진지하게 다루시는지 말해준다. 이 영역은 구속이하나님이 자신을 가장 온전하게 드러내시기로 작정하신 무대이다. 하나님이 죄인을 구속하기 위해 대가를치르실 정도로 창조 영역을 사랑하셨다면, 그 영역에서 구원을 누리는 죄인이 구속주를 예배하기 위해서는 그 영역의 실체를 헤아리려는 노력을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는가?


● 복음주의

복음주의 자들이 지성을 추구하고자 할 때 가장 시급하게 고쳐야 할 태도는 자신의 독특성, 잘못된 이분법적경향, 지적 직관주의의 유산 등과 같은 관련된 태도다.


독특성 VS 본질

미국 복음주의의 독특성 중 많은 것이 기독교의 본질에 해당하지 않는다. 독특성을 얼마나 본질에 종속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 복음주의 자들의 행동주의의 독특성

- 성서에 대한 갖는 믿음의 독특성 (문자적 해석, 과학적 접근방식, 성서 무오성의 교리에 대한 몰두, 묵시론의 세부적 항목에 대한 집착),


- 위기형 회심의 독특성- 기독교의 본질은 믿음이 시작되어 죽을 때 까지 온 삶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인데,어떤 사람들은 위기형 회심을 통해 즉, 즉각적 믿음이 완성이고, 그것으로 부터 믿음의 삶이 시작한다고 한다.


잘못된 이분법

예를 들어, 기독교 지성을 계발하려는 노력은 행동주의의 타당성을 부인하지 않지만, 행동주의 외에연구할 수 있는 여지를 허용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회심주의와 함께 평생을 걸친 영적 성장에 대해서도고민하고, 성서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면서도 다른 자료가 주는 지혜를 비판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엄격한 세대주의로 자랐던 에반젤린 패터슨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시를 쓰게 된 과정을 돌아보면서복음주의를 괴롭히는 잘못된 이율배반에 대해 이야기 한다. "나는 하나님을 최고로 높여드려야 하기때문에 다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기독교 환경에서 자라났다. 결국 나는 이런 생각을극복하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모든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지적 직관주의 – 직관을 넘어

지성을 계발하고자 한다면, 복음주의자들은 직관주의적 성향, 즉 첫인상에서 최종적인 결론을 곧바로내리는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복음 주의자들이 서로의 목소리를 더 주의 길게 들으려 한다면 더 광범위한기독교 담론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남침례교 교인들이 북미 개혁교회 교인들의말을 존중하고, 메노나이트 교인들이 은사주의들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고, 복음주의 좌파와 우파가 대화를한다면,)기독교의 전통은 다름이 아닌 신학적 통찰로 부터 사고의 원리를 발전시켜 왔다. 복음주의자들은 이런원리에 대해, 그 원리로 부터 배워야 한다.


● 복음주의 지식인

기독교의 진리 이해는 전체주의처럼 우격다짐으로 받는 인정이 아니라 자기 확신을 통해 격려를 받아야한다. 기독교는 겸손할 때 가장 잘 해내는 것 같다.(성공주의, 성장주의를 추구하며 굴림하는 태도가 아닌)겸손할 때 능력이 있다는 것은 역설이지만, 역설적인 힘을 성경은 말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박식한 반대자들 덕분에 정직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고, 기독교 변증가는 자기 만족과 권위주의라는 이중적인 위험에빠질 수 있다.


● 복음주의와 지성계 (저자의 결론)

복음주의의 가장 중요한 희망의 징조는 복음 자체에 있다. 기독교적 사고는 그리스도인을 전제한다.복음주의적 열정은 많은 경우 사고를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기독교 지성에 필수적인 요소다.이런 관점에서, 복음주의 사상에 손해를 입힌 듯 보이는 운동들(성결운동, 오순절주의, 세대주의)이부차적인 관심의 이면에 가장 중요한 것을 숨기도 있다.


과도한 초자연주의가 복음주의적 사고에 어떤 손해를 입혔든 간에, 바로 그 초자연주의 덕분에 초월에대한 자각을 생생히 유지 할 수 있었으며, 다음 세대에 의미있는 복음주의적 사고를 위한 중요한 출발점을물려 줄 수 있었다.


무분별하게 시대의 유행을 따라 구원의 기쁨을 표현함으로써 그 기쁨을 많이 손상시키긴 했지만, 구원의기쁨을 알고 있다. 어쩌면 우리도 완전히 빈손은 아닐 것이다. 복음주의가 기독교 신앙을 살아있게 하는 한,때로는 자기도 모르게 기독교적 사고의 가능성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할 수 있다. 성서에 대한 복음주의의애착이 지적이기 보다는 토템 숭배에 가까운 경우가 많을지 모른다. 그러나 성서에 대한 애착은 좋은출발점이다. 육신이 되신 하나님을 계시하는 성서를 연구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만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그리스도께서 창조하신 세상, 그분이 친히 동화되신 인류, 그분이 몸소 보여 주신 아름다움을 발견하게된다. 그러므로 성서에 대한 광범위한 읽기로부터 길은 읽기로 이동하는 것이 어렵지만 그래야 한다.


기독교적 사고의 문제는 뿌리 깊은 영적문제다.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예배하는가? 이 물음을 통해 우리는 지성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되돌아간다.


육신이 되시고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영광스러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말씀은 만물 – 자연의 모든 현상,인간이 풍성하게 상호작용하는 모든 능력, 모든 종류의 아름다움- 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된 그 말씀이기도하다. 그 말씀을 마땅히 경배하기 위해, 복음주의자들은 그리스도와 그분이 만드신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답게 생각하려고 놀겨하는 것은 자신이 창조한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 세상을 구속하기 위해 죽으시고 세상을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주되심, 매순간 세상을 지탱하시며 세상을 주관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것이 궁극적인 의미이다. 기독교 지성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지성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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