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길위에서 하나님 나라를 답하다.(마태복음 7:13-21)



 [마 7:13-21]

(마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마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 7: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

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마 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마7:18) 좋은나무가나쁜열매를맺을수없고못된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마 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마 7: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

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오늘 함께 살펴보게 될 말씀의 제목은 “ 세상의 길위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답 하다 ”라는 조금 책 제목같은 타이들을 붙여보았습니다. 조금더 오늘 설교의 제 목을 풀어서 말하면 “ 세상의 길위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는 길을 답하다 라는 제목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에 가는 길을 아시는지요?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에 머무는 방법을 아시는지요?


오늘 본문은 하나님 나라의 선포인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마지막 대목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기록된 <예수님의 가르침, 예수 님의 어록>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에도 마태복음과 비슷한 예수님의 산상수훈 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산상수훈이라는 말뜻은 < 산위에서 전하신 빼어난 말씀 >이란 뜻입니다. 또 이 것을 < 산상 보훈 >이라고 말하는데 그 뜻은 < 산위에서 전하신 보배로운 말씀 >이라는 듯입니다. 그만큼 빼어나고 보배로운 말씀입니다.


이 산상수훈은 < 예수님이 자신이 누구이며 ? 자신이 어디에 속한 존재인지? 자신이 어떤 것을 위해 오셨는지? >를 분명히 말씀하고 있는 동시에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말하는 소위 제자라고 자청하는 이들에서 <“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 이 어디에 속한 존재인지? 자신이 어떤 것을 위해 살아야하는지? ”>을 예수님 께서 요청하고 도전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요약하면.. 예수님이 누구인지와 나를 따르는 제자는 어떠해야하는지?를 말씀 해주고 있습니다.


이 산상수훈은 주님을 따르겠다고 결정한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며 이땅 의 나라가 아닌 하나님 나라에 소속된 사람이어 야하는 것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와 소속을 분명히 하는 예수님의 제자라면 그 하나님 나라 의 원리과 법칙을 따라서 그것을 근거로 살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죠.


예수님은 자신이 가야하는 십자가의 길과 여정을 가는 도중에서 자신을 보기 위해 자신을 따르기 위해 찾아온 무리들을 보시고 잠시 멈추시고 가버나움 근처 의 조그마한 언덕에 올라가 앉으시고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셨습니다.


가시던 세상의 그 길을 멈추시고 세상의 그 길위에서 예수님에게 온 무리과 그 리고 제자라고 자청하는 이들을 바라보시고 < 하나님 나라를 답하셨습니다. >

산상수훈이 시작하는 처음에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마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마 5: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이 말씀을 듣는 이들 중에는 예수님을 그냥 보러온 예수님을 궁금해 하는<무리 : 오크로스>도 있었고, 스스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결정하고 따라온 예수님의 제자들과 제법 율법을 알고 유대적인 지식이나 있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이 어떻 게 하는가? 의심의 눈빛을 주시하면서 뭔가 얻을게 있는가 싶어 찾아온 < 제자 : 마데테스 >도 있었습니다.


이들 모두다 가던 길을 멈추시고 자신들에게 놀랍고 권위있는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스펄전은 “그는 왕답게 말씀하셨다” 고 썼습니다. “왕적 확신” 또는 “주권”을

가지고그렇게하신것입니다.존칼빈은 “이상하고뭐라형언할수없고이례

적인 위엄이 사람들의 마음을 그에게 이끌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무리들과 제자들에게 한번도 들어보지 못하는 새로운 말 씀이였고 그들의 가슴에 강력한 도전과 권위로 들려왔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실수 있었던 근거는 “ 예수님은 자신 누구이며.. 어디에 소속한 존재인지.. 무 엇을 하러 여기에 있는지 ? ” 분명히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종종 우리의 믿음과 신앙이 흐리멍텅해질 때가 있습니다. 분명하고 선명하지 않 을 때 있습니다. 그렇때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 너는 누구니? 너는 어디소속이니? 너는 무엇하고 있니 ? ”

제가 대학생때에 선교 한국에 가서 도전받은 어떤 선교사님의 설교중에 아직도 잊지 못하는 3가지 구호가 있습니다.


“ 예수 생명 , 예수 소명, 예수 사명 ” 3가지 어명이 있다는 거였습니다. 


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 생명을 받아 누리고 전하는 어명 !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 소명을 받고 즐거워해야하는 어명 !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 사명을 받고 그대로 행해야는 어명 !


그때 그 선교사님들이 예수 믿는 척하면서 흐리멍텅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이 흐릿해질 때면..왜?? 예수 믿는지 흐릿해질때면 다시 소리쳐라 ! 제발


오늘 이 산상수훈은 우리가 이 세상의 길위에서 이 세상의 길을 가는 동안 우 리가 무엇을 분명히 붙잡고 어떤 기준과 가치로 선택하고 반응하고 살아야하는 지 분명히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 세상의 길위에서 하나님 나라가는 길.. 하나님 나라을 경험하면 사는 디렉션을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산상수훈 설교의 마지막 설교입니다. 예수님의 이 설교 는 그 당시 유대인들이 들었던 수많은 서기관들과 율법사들의 메시지와 다른 메 시지였습니다. 이 산상수훈은 유대인들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삶을 살아야한다고 도전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따르고 자기의 방식에 익숙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들에게 예수님의 이 도전은 놀라움과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태복음 7장 마지막절에 이 산상 수훈 설교에 대한 유대인 들의 반응을 기록하고 있는데..


(마 7: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마 7:29)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여기서 <놀라다>라는 의미의 헬라어 의미는 강력합니다. < 경악을 금치 못 하다 >라는 말로 번역할수 있습니다. 충격을 받았다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무언가 방망이에 얻어 맞은 듯 어안이 벙벙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알고 있는 율법을 다시금 해석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 성된 우리의 삶의 방식,원리,태도가 무엇인지?를 도전하고 있습니다. 지금 은 우리가 이땅에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맞추어진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도전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산상에서 이루어진 천상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원리과 기준을 따른다고 말하고 자기 의와 거짓된 교훈만 가득하고 하나님 나라와는 전혀 상관없이 살고 있는 율법주의자들에게 일침 을 가면서 너무 쉬우면서 너무 어려운 하나님나라와 연결되어 사는 삶이 무 엇인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안에 천국복음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되는 채 널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도 예수님도 자신의 복음 선포의 첫 마디가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천국 복음을 받아들이면 우리안 에는 주체할수 없을 정도의 회개가 일어납니다. 나 자신을 주님 앞에 쏟아놓고 엎드리면 자신의 무익하고 자신 의 부정함을 고백합니다. 자신 안에 있는 죄를 낫낫히 고백하는 이들이 일 어납니다. 참된 복음을 우리를 회개의 자리로 인도합니다. 그리고 참으로 회개하는 이들에게 세상에서 경험할수 없는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됩니 다

.

참된 복음은 참된 회개를 만듭니다.

참된 회개는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치열하게 싸웁니다.

참되 거룩함은 우리안에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게 합니다.


오늘 우리가 진정으로 복음 안에 있다면 날마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내안 에 임했음을 경험해야합니다. 그래서 내 삶이 하나님 나라와 동기화가 되는 경험을 해야합니다. 참다운 영성은 우리의 내면의 세계과 하나님 나라가 동 기화 되는 것입니다. 같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오늘의 삶이 싱크로나이즈(synchronize), 연결되는 커 넥팅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연아 선수가 이번에 동계올림픽때 <아디오스 노니노>라는 음악에 맞쳐서 점프를 하고 연기를 하고 스케이트를 했습니다.<아디오스 노니노>라는 뜻은 < 안녕 아버지 >라는 뜻입니다. 이 노래는 작곡가 피아졸라가 돌아가신 아 버지를 추모하며 만든 곡입니다. 그 애절한 작곡에 맞춰서 애절하게 마치 자신이 아버지를 추모하듯이 그래서 연기를 했습니다. 음악과 연기가 하나 가되는 동기화되는 순간입니다. 얼마나 김연아의 연기가 아름다웠습니까? 조금 아쉬운 것은 금메달을 못딴것과..요즘 애인 생겨서 서운하긴 하지만...





오늘 예수님의 이 산상수훈은 하나님 나라의 삶이 오늘 이세상의 삶과 어떻 게 연결되어서 우리의 삶에서 동기화 되어야하는지 분명히 말씀해주고 있습 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의 마지막의 말씀을 전하면서 우리에게 2가지의 하 나님 나라의 방식을 답하고 있습니다.


1/ 쉽지 않고 수월하지 않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선택하라.


[ 마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쉽지 않은 선택을 요구합니다. 우리에게 놓여있는 2 개의 문이 있고 2개의 길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인데 크고 그 길이 넓습니다. 그리고 들어 가는 자가 많습니다. 넓다는 말의 헬라어 ‘유리 코로스’는 ‘육체적으로 즐 겁다, 편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찾는 이가 많다고 하였습니다. 넓다는 것은 가기가 쉽고 수월하고 익숙하다는 것을 의미입니다. 어느 누구나 다 가는 문이요 길이라는 것입니다. 찾기도 쉽고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들어갈수 있는 문이요 길입니다.

둘째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인데 좁고 그 길이 협착합니다.


<좁다>는 말은 <스테노스>는 “ 고통과 가난함이 있는 상태 ”를 의미합니 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은 때로 고통이 있는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협착하다’는 말은 <들리보>라는 말은 < 고난, 압박감, 어려움, 불편 함>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찾는 이가 적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무언가의 용기있는 결정과 선택이 없이는 잘 보이지도 않고 잘 찾기도 쉽지 않는 문이요 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좁은 문, 좁은 길에 익숙해져 있는 사 람이어야 한다고 도전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에 생명이 있기 때문이죠.


예수님은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들어가 라(에이셀다테)’란 명령은 2인칭 복수 부정과거 명령형인데, 이것은 단회 성을 나타냅니다. 즉 좁은 문에 이어진 좁은 길은 걷는 것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지만, 좁은 문을 선택하여 들어가는 것은 단회적 (單回的)인 일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선택하고 영접하는 순간 우 리는 구원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문은 우리에게 좁은 길 로 인도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예수 생명을 갖는다는 것은 우리게 쉽지 않은 선 택과 걸음을 요구합니다. 좁은 문을 선택하고 좁은 길을 걷기를 요청합 니다. 이 세상의 선택은 항상 넓은 문을 선택하고 모두다 다 가는 넓은 길을 걸어가기를 요청합니다.


좁은 문 좁은 길을 선택하는 사람은 미전도족속으로 선교를 결정한 선교 사나 특별한 고통스러운 삶을 선택하는 삶에게만 주어지는 삶이 아닙니 다. 하나님 나라의 길이 어디인지? 궁금한 모든 사람에게 요청하고 있습 니다. 생명을 갈망하는 모든 이들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과 같은 구절이 담겨있는..

(눅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서 힘쓰라고 하는 말은 < 아고니스 조마이 >라는 말입니다. 영어에 <Agony>라고 하는 단어가 이 말과 같은 것인데 이 말은 <고통, 고민, 괴로움, 고투> 라는 뜻입니다. 바로 예수를 믿고 주님이 보여주신 길인 좁은 길 좁은 길을 선택하며 사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뉴욕 중심가에 가면 <브로드웨이>가 있습니다. < 브로드웨이 > 이름 그 자체가 넓은 길이죠.. 누구든지 뉴욕에 가면 브로드웨이를 한번 찾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걸어 다니기도 하고 드라이브도 합니다.




맨하탄에서 시작해서 허드슨 강을 중심으로 알바니까지 이어지는 굉장 한 길입니다. 장장 200km가 넘는 길입니다. 아마 세계에서 가장 긴 길 이요, 넓은 길 중에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보지는 않았습니다. 미국에 있으면서 꼭 한번은 가보고는 싶습니다.

거기에는 세계 금융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월스트리트 가가 있습 니다. 그길은 돈을 창출하고 돈을 소비합니다. 그리고 유명한 대학도 있 습니다. 그뿐 아니라 사람들이 특별히 그 브로드웨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42번 가에 있는 소위 '타임스 스케어' 때문입니다. 또한 그 길에는 문화 와 예술이 있고 화려한 불빛이 있습니다. 그 길에는 음란하고 퇴폐문화 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즐거움, 쾌락, 인생의 재미를 맛보려고 그 곳을 찾는 사람은 술과 여자, 마약과 도박 같은 것들로 세월 가는 줄 모 르고 즐기고 놀 수 있는 곳이 바로 타임스케어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 이 몰립니다. 그야말로 향락의 거리입니다.


뉴욕 맨하튼의 브로드웨이는 원웨이 (일방통행)길입니다. 그러나 그길에 는 거기에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가는길도 보이 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멸망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브로드웨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그곳을 즐겁게 걷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고 거룩한 제사장이라는 것을 잊은 채 그 브로드웨이 위에 있길 원합니 다.


그러나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요청합니다.

< 좁은길에서 서서 좁은 문 으로 들어가라 >

그것이 우리를 참다운 예수 생명으로 인도한다라고 말 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삶의 태도는 <생명>을 주목하고 생명을 겨냥한 삶이어야합니다. <예수생명>GPS가 우리를 인도하는데로 살아야합니다. 다수가 주는 안정감에 만족하는 삶이 아니라. 소수일지라도 그것이 예수 생명이 인도하는 길이라면 그 문으로 들어가고 그 길에 서야합니다.


예수 생명을 위해서라면 나의 불편함과 고통을 감수살수 있는 결단과 선 택을 요청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 묻겠습니다.

예수님 믿으니 좋으신가요? 싫으신가요?

예수님 믿으니 기쁘신가요? 슬프신가요?

예수님 믿으니 편안하신가요? 불편하신가요?

예수를 잘 믿으면 믿을수록 이상하게도 내 삶이 불편해집니다. 이전에 내가 하던 방식대로 살수가 없습니다.

이전에 내가 부리던 감정대로 살수가 없습니다.

이전에 내가 좋아하던 것을 포기하게 됩니다.

이전에 내사 사랑했던 것을 싫어지게 됩니다.


예수 믿으면 계속 불편해집니다. 이것이 천국복음의 불편한 진실입니다. 우리가 천국복음에 노출될수록 내 삶의 색깔 내 마음의 색깔이 바뀝니 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적인 결단과 그 이후에 지 속되어야 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된 자로서의 삶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2/ 열매로 하나님의 나라 소속임을 증명하라.


[마 7:16-19]

(마 7: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

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마 7: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마 7: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마 7: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

니라


< 좋은 나무에 아름다운 열매가 맺습니다. >

좋은 열매는 자기가 어떤 좋은 나무에서 왔는지? 증명해 줍니다.

열매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열매는 나무의 실존입니다.

우리의 소속이 하나님 나라에 속하고 하나님 나라의 공급을 받고 하나 님 나라에 영향을 받고 있다면.. 우리가 마치 나무에 열매가 붙어있는 것처럼 서로 연결되어서 열매를 보고 나무의 상태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열매로 하나님 나라를 증명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우리 를 심으셨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열매를 맺어야하는 것이 마땅합 니다.


예수님은 길을 가시다고 열매없이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를 보셨습니 다. 그때 그 열매 없음을 저주하셨습니다.


(마 21: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예수님이 가장 싫어 하는 우리의 모습은 < 열매없음 >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누릴 것은 다 누리면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존재 를 중명할 어떤 열매도 맺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만큼 주님께 책망받을 만 것이 어디있겠습니까?


우리는 < 열매없음 >에 머물러 있지말고

< 열매맺음 >으로 증명하는 삶이 필요한 것이죠..


(요15:6 )너희가나를택한것이아니요,내가너희를택하여세웠나 니 이는 너 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함이


작은 한알의 겨자씨도 열매를 맺는데 하물며 그보다 더큰 생명의 씨앗 을 받은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를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얼마나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사람임을 증명하고 입 증해내는 내 삶의 열매 맺음이 있은가?


여전히 주님 ! 하나님 나라의 혜택은 누리고 있는데... 열매가 없네요..

유대 땅에가면 유대인들이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나무가 있습니다.


< 소돔 사과 >라는 것인데.. 그 나무의 열매는 정말 보기 좋고 탐스럽게 생겼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열매를 따면 < 퍽 > 하는 소리와 함께 터지 는데 그 열매 안에는 공기와 먼지만 날리고 먹지 못하는 씨들만 가득합니다. 어떤 열매의 과즙도 단맛도 내지 못하는 그냥 공갈빵과 같은 그런 열매가 있습니다. 얼마나 기분 나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의 의의 나무로 이 땅에 심으셨습니다.


(사 61:3)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보혈과 피 값으로 우리를 이땅에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보기 위해서 심으셨지만.. 아무것도 맺지 못하고 있다면 얼마나 하나님으로썬 당황스러운 일이겠습니까?


바로 찍어서 불어 던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이 번제단 불쏘시게로 사용했던 나무가 < 열매 맺지못한 무화과 나무 >였습니다. 유대인든 과감하게 열매맺지 못한 무화과 나무를 잘라버렸습니다. 왜냐 하면 다른 열매 맺는 나무들이 먹을 물을 소비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미국과 한국에 많은 교회와 목회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다할 존경할 만한 교회와 목회자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신뢰도가 추락했습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고 천국복음을 받았다고 자부 하지만 어떤 열매 맺음도 없었습니다. 최근에 기윤실에 조사한 여론조사 에서 기독교가 신뢰할만하다 생각하는 사람이 10명 2명 20%정도 밖에 안된다는 심각한 통계를 보았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라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세 상은 교회와 성도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고 있는가에 관심이 있습 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같이 살고 있지만 예수쟁이 저들은 우리하고는


다른 뭔가가 있을 거야? 다른 특별한 삶의 모습이 있을거야? 하는 막연 한 기대를 갖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여지없이 그것이 무너 지고 맙니다. 속된말로 니나 내나.. 멍멍이나 소나 다 똑같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마 7: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기독교에서 목회자중에서 열매가 있는 신앙의 본을 사람을 꼽으라면 < 고 한경직 목사님>을 꼽습니다. 신사참배를 한 과오도 있으신 분이지만 그의 말년에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회개하며 자신의 삶의 마무리하며 아름다운 퇴장을 보여준 분입니다. 인품과 영성이 많은 목회자들의 롤모 델이 되기도 한 분이죠.. 고 한경직 목사님께서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남기 유언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없다. 땅 한 평, 집 한켠이 없다. 내 이름으로 있는 재 산이 있다면 그것은 공적인 것이다. 내가 너희들에게 남기는 것은 없지 만 너희들을 위해 늘 기도하고 있다."

”내가 길을 가면서 꽃씨를 뿌리면 지나간 길에 많은 꽃이 핀다. 또 꽃이 피면 열매도 맺힐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나가는 길에 혹 좋지 못한 씨 를 뿌리면 잡초가 날 뿐이다. 그러니까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좋은 씨 를 많이 뿌리라...”


< 이 세상 살아갈 때 좋은 씨를 많이 뿌려라 > 귀한 도전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 는 생명을 바라고 보고 그 문을 그 길을 지나고 있습니다. 


좁은 문이 좋 은 문이 되기란 쉽지 않습니다. <ᄇ>과<ᄒ>의 차이지만 ...


좋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삶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어떤 존재이면 어떤 삶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면 우리는 열매 맺기를 힘써야합니다.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는 동안 계속 제 입에 머물고 있는 찬양 하나 있 었습니다. < 새347장(통367장) '십자가를 내가 지고' >입니다.


이 찬송은 스코트랜드의 헨리 라이트 목사가 지은 찬양입니다. 스코트랜 드 켈소(Kelso) 부근의 한 작은 어촌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거 친 뱃사람이었습니다. 가난하고 비천한 가정에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잃 고 고아원에서 심각한 가난과 싸우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에 서도 영시 부문으로 최우수상을 세번이나 받았으면 탁월한 문학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의사가 되려고 하였으나 허약한 체질이 원인이 되어 포기하고 21살에 영국 국교회 목사가 되어 어릴적 고향같은 조그마한 어 촌 브릭스 햄에서 23년을 목회하였습니다. 어촌마을 교회에서 목회를 하 는동안 우락부락하고 몰상식하며 부도덕하고 난폭한 뱃사람들 사이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연약한 그에게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욕과 악담으로 도전해 오는 그들에게 계속 미소를 지어야 했고, 아픈 몸으로 건장한 그들을 수종들어야 했습니다.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십자 가 가요 좁은 길이었습니다. 그는 찬송시에서 고백합니다.


2절에...'주도 욕을 당했으니 나도 욕을 당하리 세상 친구 간사하되 예수 진실하도다 예수 나를 사랑하사 빛난 얼굴 뵈시면 원수들이 미워하나 염 려할것 없도다'

처음에 그는 욕도 많이 당했습니다. 무뚝뚝한 어부들로부터 조소와 비 난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도 욕을 당하였는데 자기가 욕을 당하는 것 쯤은 당연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세상 친구들은 이기적이고 간사하고 위로받은 길이 없으나 사랑 많으신 신실하신 예수님 빛난 얼굴 뵈시니 원수들이 미워하나 염려할것 하나 없었습니다.


3절에 ... '내가 핍박 당할 때에 주의 품에 안기고 세상 고초 당할수록 많은 위로 받겠네 주가 주신 기쁨외에 기뻐할것 무어냐 주가 나를 사랑 하니 기뻐할것 뿐이라'


세상에서 핍박당해도 우리는 주님의 품으로 피할 수 있고 세상에서 당 하는 고초가 크면 클수록 하늘의 위로도 크고 이토록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기쁨이 넘치니 어찌 아니 기쁘랴!



우리가 이 세상의 길을 걸어가면서 하나님 나라의 길 가는 삶은 바로 이 찬 송의 가사와 같은 삶. 이 찬송의 가사와 같은 은혜를 경험하며 사는 것입니 다.

우리 모두다 반드시 주님 앞에 설 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우리에게 물으실겁니다.


“ 너는 어느 문으로 어느길로 왔느냐 ? ”

“ 니가 갈가지온 그리고 보여준 열매는 뭐지 ? ”

“ 예! 주님 ! 저는 좋은 길 좁은문으로 왔구요.. 주님 여기 제가 가져온 열매입니다. ” 라고 말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것이 이 세상의 길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우리의 답입니다. 아멘 !


[ 기도와 도전 ] ========================================



우리는 지금까지 어느길 어느 문으로 가는 것을 즐거워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에게 어떤 열매맺음이 있었습니다. 

브로드웨이로 행했던 우리의 삶의 회개하고 열매없음을 통회합시다. !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하나님나라의 속한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의 방법대로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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