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

(The Scandal of the Evangelical Mind

엠마오(1996)

저자 : 마크 A. 놀(Mark A. Noll) 


저자 소개> MARK A. NOLL

  • 휘튼 칼리지에서 27년간 역사, 교회사 교수
  • 2006년부터 노트르담 대학교의 역사학을 교수
  • 복음주의 운동의 역사와 관련된 주요 연구서를 출간
  • 영국의 데이비드 베빙턴, 알리스터 맥그래스와 더불어 복음주의 운동의
  • 역사에 대한 가장 탁월한 전문가로 인정
  • 2005년 2월 5일자 “TIMES” 커버 스토리에 미 정계와 종교계에 중요한
  • 영향력을 미치는 복음주의자 25명 중 한 명으로 선정됨.
  • 저서로는 [포스트모던 세계에서의 기독교 신학과 신앙], [미국. 캐나다
  • 기독교 역사], [터닝 포인트] 등이 있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 가져야 기본적인 흐름.


1. 복음주의에 대한 역사 해석/비평서

2.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한 큰 구조

☞ 기독교 지성을 강조했던 종교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의 노력들

☞ 근대주의의 영향으로 반응한 근본주의 시작

   (근본주의의 형성사, 18~19C가 중심)

☞ 근본주의의 이해 (신학적 3개의 큰 틀: 세대주의, 성경운동, 오순절 신학)

☞ 근본주의의 영향으로 시작한 복음주의에 미친 신학의 성향

☞ 근본주의 신학의 이해와 약점

☞ 미국 정치와 과학 속에서의 근본주의의 신학의 태도




[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 ] 

독서모임을 하면서 갖게 되는 생각들 - 신용환목사 - 

  •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 : 복음주의에 지성이 없다> 이것이 문제이다. 
  • 복음주의 지성의 걸림돌 : 
  • 대중주의 - 반 전통주의 - 이원론 - 현재의 문제를 진지하게 분석하는일이 없다. 
  • 반전통주의/ 반지성주의로 흘러가는 잘못을 만들어 내었다. 
  • 근대주의 영향으로 근본주의가 나와서 18세기-19세기에서… 신학적 3가지 틀 < 세대주의/성결운동/오순절운동>의 영향을 받음 
  • 이것이 지성을 상실하게되었다. 그래서 반지성주의적이고 반전통주의적으로 왔다. 
  • 근본주의의 신학적태도가 어떻게 미국에 영향을 미쳐왔는가?  
  • 청교도들의 특징인 지성의 존중의 경향이 잃어버렸다. 
  • 지성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서 약화시켰다. 
  • @ 고민와 의문이 없어졌다
  • @ 구원파보다 구원파적 구원론이 문제이다. 칭의에 대한 이해가 없다.
  • @ 대중주의에 대한 고민 
  • ☞ 이러한 실용주의적이고, 즉각주의적이고, 기능주의적인 상황이 결국 지성에 큰 어려움을 가져다 줌.
  • 실용주의 / 즉각주의적 / 기능주의적 
  • @ 대부흥운동의 과정에서 지성이 사라졌는가?
  • @ 시대적인 상황과 문화에서 복음주의가 실용적 기능적으로 바꼈다..
  • 개인주의-실용주의-즉각주의-기능주의적 
  • @ 부흥운동이 일어나는 시대적 정황은 어땠나?
  • 복음주의적 계몽주의 ? 통전적 신학 / 특정한 과학적 방법으로 성경에서 접근하는 방법/ 계몽주의적 방법론을 만들어..
  • 복음주의와 계몽주의 만남이 무엇을 만들어 내었나?
  • 복음주의와 미국 지성사의 만남 
  • @ 복음과 지성의 균형을 잃어버리고 쉬운 방식으로 극단을 선택하고 복음과 지성의 반성을 거부하고 복음과 지성의 찬성만 선택했다
  • 성결운동/ 오순절 /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 가현주의적 / 영지주의적인 경향 
  • @ 부흥운동과 자유주의 다른 것 같지만 같은 그림일수 있다. 
  • @ 경험된 지식…경험될수 있는 지식 / 일반화 시키는것 
  • @ 교회가 세상의 의문에 답을 주고 그 의문에 답이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 교회의 문제 : 교리의 잘못된 도식화. 의문없이 답달기식 훈련, 주입식 요절암송, 개인적인 묵상, 개인적인 경건의 평가절상. 설교를 통한 




1부. 스캔들 

1. 오늘날의 스캔들 
2. 이 스캔들이 중요한 이유 

2부. 스캔들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3. 복음주의 지성의 형성: 부흥운동, 혁명, 문화적 통합 
4. 복음주의적 계몽주의 
5. 근본주의라는 지적 재앙 

3부. 스캔들의 의미 
6. 정치에 관한 성찰 
7. 과학에 관한 사고 

4부. 희망? 
8. 복음주의의 지적 부흥은 진행 중인가? 
9. 십자가라는 걸림돌 


서문>

이 책은 학문적 해설과 설교와 가설이 뒤섞인 역사에 대한 성찰이며 정보를 제공하기 보다는 행동을 촉구한다. 미국 복음주의 자들이 많은 미덕을 보여 주며 여러 부분에서 성공을 거두었지만, 생산적인 사고를 가로막는 걸림돌은 여전히 견고하게 남아 있다.


걸림돌: 행동과 결단을 강조하고 바로 지금 완전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즉각 주의와 실제 상황에 주도적으로 지지하는 대중주의, 그리고 성서적, 신학적, 윤리적 문제에 관한 한 과거보다는 현재나 자신의 판단을 우선시하는 반 전통주의, 그리고 육신적, 지상적, 물리적, 물질적 실체의 모든 양상을 섣불리 영적인 것으로 환원하는 이원론 등을 말한다.


따라서 복음주의자들은 주의를 흩어놓는 종말론적인 공상에 과민 반응하여 종말에 관한 책을구입하는데 돈을 쏟아 붙지만, 현재의 문제를 진지하 게 분석하는 일에는 지원이 인색하다.(현세적 종말론이 아닌 미래적 종말론을 살아가도록 함)


복음주의 역사에 긍정적인 신호>

첫째, 복음주의자와 로마 가톨릭 교도들 사이에 교류가 확대됨으로서 지성을 복음주의적 활용하는 일에 극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는 점.


둘째, 기독교 학문을 강화하기 위한 특별 기금 프로젝트들이 형성됨.

대학 및 교수들을 위한 연구 기금과 대학원생을 위한 장학금, 다양한 경력고 분야의 기독교학자들을 위한 세미나 등등


셋째, 기독교 철학이 계속해서 부흥한다는 점

예> 영어권의 근대철학 분야 철학자와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진지한 정통신학이 제안 되는 경우가 예외적일 정도로 높은 연구비율로 나타남


넷째, 희망을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징후는 복음주의 대학들이다. 미국 복음주의 역사적 발전 과정 때문에, 복음주의권의 고등학문 기관은 분파적인 고립지대에 빠져있었다. 고립된 순수성을 지향하는 경우였다. 그러나 지난 반세기 동안 점점 복음주의 성향의 고등학문 기관들이 ‘기독교 공동의 신념'을 추구하기 시작함.


다섯째, 복음주의 대학에서는 과학 분야에 대해서도 희망의 징조를 보임.(창조과학), 즉 경험과학으로 위장한 조야한 철학적 자연주의로 부터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진화론에 대한 전쟁이 필요했었다.


여섯째, 복음주의 지성의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것은 다원주의적인 일반 대학교에서 그리스도인의 존재가 훨씬 더 많이 부각된다는 점. 일반 학과에서 지도적인 지위를 지닌 그리스도인 교수의 수가 크게 늘었다.(달라스 윌라드 같은 분)


일곱째, 출판계의 변화, 지적인 차원과 기독교적인 차원에서 의미 있는 방식으로 현대 생활의중요한 이슈를 다룬다.

이런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본질적인 이유는 복음주의자들이 신앙의 주춧돌이라고 주장하는 성서의 메시지 안에서 찾을 수 있다. 복음주의자들은 성서를 굳게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변화시키시는 사역을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는 신앙 안에는 지적 진지함, 지적 성실함,

지적 엄밀함에 대한 본원적인 소망이 존재한다




1부 . 스 캔 들

1. 오늘날의 스캔들


복음주의 지성이라고 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것, 이것이 바로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이다. 대중적인 성공반면, 진지한 지성을 잃어버렸다.

복음주의자들은 수십 개의 신학교와 대학교, 수백 개의 라디오 방송국,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수 천개의 선교단체들을 운영하지만, 단 하나의 연구 중심 대학도 운영하지 못하고, 현대 문화의 깊이 있는 학문적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정기간행물 역시 단 하나도 펴내지 못하고 있다.

복음주의 '지성'이라는 말은 신학에 국한시켜 신학의 깊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학, 정치학, 문학 비평, 문예 창작, 역사학, 철학, 언어학, 과학사, 사회 이론, 및 예술과 같은 전 영역에서그리스도인답게 사고하려는 노력, 분명한 기독교적 틀 안에서 사고하는 노력을 의미함.


복음주의의 반 지성주의>


미국의 상황 - 퓰리처상을 수상한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책 [미국의 반지성주의]는 '복음주의적성향'을 미국 반지성주의의 일차적인 원인 중 하나로 지목. "먼저 종교적인 믿음은 대개 논리나 학문으로 전파되지 않는다는 반박하기 어려운 명제로부터

시작한다. 





이로부터 (그리스도의 심판이나 역사적 증거에 관한) 믿음은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가장 잘 전파한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리고 이는 그런 사람들이 가진 지혜나 진리는 학식과 교양을 갖춘 지성인들의 지식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사실상 학식이나 교양은 믿음을 전파하는데 걸림돌이라고 까지 여겨진다. 겸손한 무지가 교양있는 지성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명제는 미국의 복음주의와 민주주의에 특히나 잘 맞아떨어졌다."


스켄들의 양상> 한 마디로 반지성주의적 복음주의의 양상이라 말할 수 있다.

세 가지 양상 : 문화적, 제도적, 신학적

⚫문화적 양상: 행동주의적, 대중주의적, 실용주의적, 공리주의적이다. 이는 당장의 시급한 책무를 매우 강조하기 때문에 폭넓고 깊이 있는 지적인 노력의 여지를 거의 허용하지 않는다.


⚫제도적 양상: 20세기에는 복음주의 언론에서 학문적인 요소들의 비중이 급감하여 거의 사라질 지경에 이르렀고, 더 심각한 것은 복음주의 고등교육계 안에서 기독교적 사고가 이루어지기어렵다는 점. (분산된 교육의 열정, 불충분한 자원, 신학교 대 칼리지, 학자의 부족


⚫신학적양상: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은 어떤 방향에서 보더라도 스캔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은 한 하위문화 전체의 역사적인 경험에서 기인한 것이며, 복음주의 교육제도로 인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선물을 업신여기는 스캔들이다.


2. 이 스캔들이 중요한 까닭


기독교의 본질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지성이 쇠약해지는 것은 무엇 때문에 문제인가?

>>> 기독교적 학문을 장려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을 성경으로 부터 찾는다.

마11:25~26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이 일을 지혜있고 똑똑한 사람들에게 감추시고, 어린아디들에게는 드러내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은혜로운 뜻입니다."

고전1:26~28 /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


고등학문이 신앙에 덫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이런 구절들의 설득력이 한층 강화되었다. 지식인의 결론은 기독교 신앙을 약화시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즉 학식의 자랑이었기 때문이다.


>>> 미국의 복음주의 문화는 반대의 극단으로 치달았다는 점


회심을 강조한 나머지 은혜안에서의 점진적인 성장을 배제하고, 창조세계에서 하나님을 묵상하는 대신 직접적인 성령의 체험에만 초점을 맞추었고, 권위있는 견해에 맞서 대중적인 지혜를 더 추구하며, 세상에는 관심(정치, 경제, 문화 윤리, 자연)을 두지 않고 천국에만 매혹되어 있으며, 초 자연적인 것에 몰두하는 반면 자연적인 것은 무시해 왔다.


<<< 기독교라는 포괄적인 실체 자체가 세상에 대한 분명한 기독교적 성찰을 요구한다는 것.기독교적 학문을 추구한다고 해서 가르치는 일을 경시하거나, 엘리트주의적으로 보통사랑들의 통찰을 무시하거나, 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들만 접근 할 수 있는 예술 지상주의를 추구하자는 뜻은 아님. 기독교적 성찰이란 초자연적인 것을 배제하고 자연적인 것을 추구하며, 미래를 배제하고 현재에만 몰두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몸의 지첻ㄹ처럼 서로 의지해야 한고 미국역사에서 가차 없이 나누고 대립시켰던 요소들을 재결합시켜야 한다. 지성을 비롯한 인간 삶의 모든 영역

에서 겸손한 활동을 통해 주권적인 그리스도를 높여드릴 수 있음을 인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 그리스도를 섬기는 지성을 길러내는 일의 유용성에 대한 중요함의 인식


개신교에서의 선례 :

☞ 16세기 종교개혁의 시작


1)마틴 루터 :중세교회의 지성의 종말을 고할 것으로 인식되었음 그러나 마틴 루터는 1529년에 자녀의 교육을 등한시하는 부모들에 대한 반박하는 책을 쓸 것을 강조

"부모가 아니라 자기 자녀를 먹어 삼키는 비열한 돼지이며 지독한 짐승에 불과한 상스럽고 비천하며 저주받아 마땅한 부모들을 끝까지 쫓아다닐 것이다."

사람은 성서의 말씀과 그 말씀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세상의 본질 둘 모두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지성을 계발하는 일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루터는 주장. 모든 신자의 제사장직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더 강조해야 했다.


2)칼뱅: 기독교적 사고를 증진시키려는 개신교의 노력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곳은 장 칼뱅의 제네바였다. 칼뱅의 신학은 지성주의적이지는 않은 것은, 복음의 역사는 지식이 아니라, 성령이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성령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세상을 연구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믿었기에 그리스도인의 지성을 계발하여 하나님이 일하시는 영역인 삶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성령의 활동에도 꾸준한 주의를 기울였고, 젊은이들 에 대한 교육을 확대, 고급 학문을 위한 대학 설립, 신학만이 아닌, 고전어, 의학, 자연과학(정치

학과 사회학)의 학문에 대해서도 강조하였음.


3)청교도: 북미에 정착한 영국의 개신교인들 - 삶의 모든 이슈와 신앙을 별개로 보지 않음. 청교도들의 여러 놀라운 특징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한 가지는 기독교 지성을 계발하는 열정이 었다. 그들은 사회적, 교회적, 신학적 관심을 인위적으로 분리하여 별개의 범주에 넣지 않았고, 종합적이었다. 공적행위에도 종교적 의미가 있다고 보고, 종교적 행사에도 공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더 광범위한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결정 역시 교회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 행해지는 결정과 동일한 도덕적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 즉 청교도들은 삶이 영역을 구분하거나 교회 외부의 일에 대해 종교적인 판단을 하지 않으려는 것을 거부. 기독교적 틀 안에서 세상을 이해하려 할때 생겨나는 신학적 난제들을 애써 평가절하 하지 않았다. 이는 곧 지성의 총체성에 대한 노력 이었다. 이것이 청교도주의의 독특성이었다. 종교개혁 신학과 세상에 대한 포괄적인 시각을 결합 하고자 노력했던 점.


청교도들이 후대 복음주의 자들의 지성에 기여한 핵신적인 면은, 신학적인 입장뿐만 아니라 지성도, 교회에 관한 견해뿐 아니라 사회에 관한 원리도, 영성뿐만 아니라 세계관도 제시했다는 점이다.

물론 자신들이 가진 과도한 확신이 특정한 부분에 있어서는 틀린 부분이 있었다 할찌라도...


4) 청도교 지성에 영향을 준 사람들

청교도의 미학으로 존 밀턴, 존 번연, 앤 브래드스티릿, 에드워드 테일러 청교도의 정치학의 원리로는 존 윈스럽, 윌엄 브래드포드, 올리버 크롬웰 청교도의 사회이론은 여러 목회자들과 행정관들을 통해서 영향을 받았다.


노동과 기업윤리, 여가, 성과 사랑, 흔히 세속족인 삶이라 부르는 많은 다른 영역에 관한 분명한 이론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기독교 사고의 표현은 청교도의 신학과 교회론, 경건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이는 더 명시적으로 '종교적인' 범주를 뛰어 넘은 것이었다. 다시 말해 청교도들을 통해 기독교 지성의 결실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5) 일반적인 역사의 교훈

건강한 교회는 지적인 노력을 열심히 한다고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동안 교회사의 역사속에서 영광스런 순간들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성을 계발하려고 노력한 흔적들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깊이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 오래 지속되는 기독교의 영향력, 기독교적 사고에 대한 헌신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본다. 


교회사에 영향을 미친 기독교 운동들은 한결같이 가장 진지한 종합적인 차원의 사고를 발전시켜왔으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심층적이며 내적은 응답으로 부터 생겨났다. 그러나 그런 운동이 발전해 갈때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전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기독교 지성(세계관)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인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종교개혁과 수도원 운동의 사례이다. 수도원 운동은 6세기의 베네딕트 수도회, 10세기의 클루니 수도원의 수사들, 13세기의 도미니크 수도회와 프란체스고 수도회: B.C 350~1400에 이르는 동안 거의 모든 기독교적 가치를 만들었고,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하나님에 대한 진지한 묵상을 장려, 사람들이 내면을 향하도록 성서와 그리스도의 자비를 묵상했고, 선교 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왔다. 그리고 모두 주를 섬기는 행위로서 진지한 학문 탐구를 장려 했다. 경건과 지성이 서로 부딪칠 때 위험이 찾아온다.


‣ 알비파 저항운동

중세 시대의 알비파의 저항운동은 기독교 집단이 지성을 무시할 때 얼마나 쉽게 비기독교적 사고에 빠지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알비파는 도덕주의와 금욕주의에 몰두하면서 지적 활동을 원칙적으로 무시하고 배제하였다. 그들의 행위로 덜 양심적인 교인들을 정죄하고 부끄럽게 했다. 2백년 동안 프랑스 남부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나 13세기 알비 십자군과 종교재판을 통해궤멸되었고, 고대의 이단인 마니교로 경도되었다. 그 이유는 지성적 판단을 통한 신학의 체계가없기에 삼위일체와 성서에 대한 왜곡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3)청교도: 북미에 정착한 영국의 개신교인들 - 삶의 모든 이슈와 신앙을 별개로 보지 않음.청교도들의 여러 놀라운 특징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한 가지는 기독교 지성을 계발하는 열정이었다. 그들은 사회적, 교회적, 신학적 관심을 인위적으로 분리하여 별개의 범주에 넣지 않았고,종합적이었다. 공적행위에도 종교적 의미가 있다고 보고, 종교적 행사에도 공적인 의미가 있다고생각했다. 더 광범위한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결정 역시 교회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 행해지는 결정과 동일한 도덕적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 즉 청교도들은 삶이 영역을 구분하거나 교회 외부의 일에 대해 종교적인 판단을 하지 않으려는 것을 거부. 기독교적 틀 안에서 세상을 이해하려

할때 생겨나는 신학적 난제들을 애써 평가절하 하지 않았다. 이는 곧 지성의 총체성에 대한 노력이었다. 이것이 청교도주의의 독특성이었다. 종교개혁 신학과 세상에 대한 포괄적인 시각을 결합하고자 노력했던 점.

청교도들이 후대 복음주의 자들의 지성에 기여한 핵신적인 면은, 신학적인 입장뿐만 아니라 지성도,교회에 관한 견해뿐 아니라 사회에 관한 원리도, 영성뿐만 아니라 세계관도 제시했다는 점이다.

물론 자신들이 가진 과도한 확신이 특정한 부분에 있어서는 틀린 부분이 있었다 할찌라도...


4) 청도교 지성에 영향을 준 사람들

청교도의 미학으로 존 밀턴, 존 번연, 앤 브래드스티릿, 에드워드 테일러 청교도의 정치학의 원리로는 존 윈스럽, 윌엄 브래드포드, 올리버 크롬웰청교도의 사회이론은 여러 목회자들과 행정관들을 통해서 영향을 받았다.노동과 기업윤리, 여가, 성과 사랑, 흔히 세속족인 삶이라 부르는 많은 다른 영역에 관한 분명한이론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기독교 사고의 표현은 청교도의 신학과 교회론, 경건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이는 더 명시적으로 '종교적인' 범주를 뛰어 넘은 것이었다. 다시 말해 청교도들을 통해기독교 지성의 결실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5) 일반적인 역사의 교훈

건강한 교회는 지적인 노력을 열심히 한다고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동안 교회사의 역사속에서 영광스런 순간들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성을 계발하려고 노력한 흔적들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깊이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 오래 지속되는 기독교의 영향력, 기독교적 사고에 대한 헌신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본다. 교회사에 영향을 미친 기독교 운동들은 한결같이 가장 진지한 종합적인 차원의 사고를 발전시켜왔으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심층적이며 내적은 응답으로 부터 생겨났다. 그러나 그런 운동이 발전해 갈때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전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기독교 지성(세계관)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인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종교개혁과 수도원 운동의 사례이다. 수도원 운동은 6세기의 베네딕트 수도회,10세기의 클루니 수도원의 수사들, 13세기의 도미니크 수도회와 프란체스고 수도회: B.C350~1400에 이르는 동안 거의 모든 기독교적 가치를 만들었고,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하나님에대한 진지한 묵상을 장려, 사람들이 내면을 향하도록 성서와 그리스도의 자비를 묵상했고, 선교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왔다. 그리고 모두 주를 섬기는 행위로서 진지한 학문 탐구를 장려했다. 경건과 지성이 서로 부딪칠 때 위험이 찾아온다.


‣ 알비파 저항운동

중세 시대의 알비파의 저항운동은 기독교 집단이 지성을 무시할 때 얼마나 쉽게 비기독교적 사고에 빠지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알비파는 도덕주의와 금욕주의에 몰두하면서 지적 활동을 원칙적으로 무시하고 배제하였다. 그들의 행위로 덜 양심적인 교인들을 정죄하고 부끄럽게 했다. 2백년 동안 프랑스 남부의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나 13세기 알비 십자군과 종교재판을 통해궤멸되었고, 고대의 이단인 마니교로 경도되었다. 그 이유는 지성적 판단을 통한 신학의 체계가 없기에 삼위일체와 성서에 대한 왜곡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 경건주의 운동 (17,18세기)

종합적으로는 경건주의는 좋은 것. 그리고 위험스러운 극단으로 치닫음.

경건주의의 핵심: 형식적이며 교의적인 엄격함으로부터 살아있는 기독교 체험으로 돌리는데 있었는데, 이는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이라는 정화운동이 끝난 후 형식주의로 굳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시의적절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문제점은 믿음의 체계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지성), 신앙을삶으로만 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신앙을 삶으로 만 본다는 의미는 영적인 체험에 깊이 잠기고 신앙이 심리적 차원에 몰두하게 하였고, 계시라는 객관적인 실제는 거의 무시하면서 개인적인 체험에 더 집중하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반면 경건주의에서 훈련을 받았던 대표적인 인물이 임마

누엘 칸트,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였는데, 이들에게 영향을 받은 신학자들 가운데는 '의존의감정'이 기독교의 토대라고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다시 말하면, 경건주의의 극단적 모습이 양분화 된 것이다. 즉 그리스도인의 영적 체험과 복음의 객관성의 극단적인 태도이다.


종교적인 삶을 극단적으로 강조하게 된 경건주의자들은 기독교적 사고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반면 감정에 몰두하였으며, 종교적 체험에 매혹된 신학적 자유주의의 발전에 크기 기여하게 되었다. 모호한 자연의 신비주의가 하나님과 세상에 대한 정통 가르침을 대체했던 19,20세기의 인본주의적 낭만주의에 발전에도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6) 진리와 지적인 이단

마니교: 이원론을 바탕으로된 사상 (빛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 같은 분리된 영역)

영지주의: 그리스도의 시대 직후 지중해 세계에서 성행했던 다양한 신비주의적 종교

가현주의: 영지주의 사상으 ㄹ교회로 끌어들인 고대의 이단





2부 스캔들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3. 복음주의 지성의 형성: 부흥운동, 혁명, 문화적 통


종교개혁기 동안 로마 카톨릭의 교리적 독단을 공격하는 것을 넘어 교육 자체를 의심하기에이르렀던 대중주의적이며 반지성주의적 운동에 대항해 고등 교육의 절대적인 필요성을 옹호한대표적인 개신교 지도자들은 루터와 칼뱅이었다.

복음주의 유산이 종교개혁으로 부터 시작되어 영국의 청교도들을 통해 전해졌다면, 앞서 청교도들의 두드러진 특징이었던 지성을 존중하는 태도가 왜 현대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폭넓게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복음주의 역사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마이클 고브로(캐나다 복음주의 발전을 요약한 역사가)의 말대로 복음주의 운동은 부흥운동, 혁명,계몽주의라는 격변 배경가운데 만들어졌다.


첫째, 현대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은 부흥운동의 산물이다.

둘째, 우리는 교회와 국가의 분리라는 미국적 상황으로부터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다.

셋째, 우리는 독립전쟁의 결과로 이루어진 기독교와 미국적 가치의 문화적 통합을 계승한 사람들이다.

넷째, 20세기 초 근본주의 운동으로부터 심대한 영향 : 두 가지의 상반되는 의미를 가지는데, 기독교신앙의 본질을 이루는 무언가를 보존했지만, 동시에 지성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긍정적으로개신교의 전통적인 확신을 약화시킴.


부흥운동>

* 미국 복음주의 중심인물: 조나단 에드워즈(1차 대각성운동)

조나단 에드워즈는 복음주의 개신교의 가장 심오한 진리에 근거하여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킨.. 그래서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복음주의 지성이 될 수 있었던 인물. 그러나 그는 미국에서 복음주의 지성의 퇴락을 불러올 프로그램을 복음주의 개신교의 본질이라 여기며 열정적으로 주창했다는 비판.



조나단 에드워즈의 살아있는 믿음에 대한 학문적인 옹호


* 기독교적 사고에 미친 장기적인 영향 두 가지:

1) 부흥운동이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을 촉진했다는 점- 직접적이며, 개인적이고, 대중적인 리더십

2) 부흥운동이 교회의 전통적인 권위를 약화시켰다는 점 – 곧 개인주의적 신앙의 강화 (교회 공동체 약화)


* 조지 휫필드(18세기)의 청중을 매료시키는 달변가로 생생한 설교.

(미국 복음주의 역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

- 구체적인 (칼뱅주의)신학과 교파적 배경(성공회), 신분(성직자)등이 잊힌 후에도 한참 동안 복음주의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침.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까닭은 지성에 대해 매우 활동을 대중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말은 곧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단순화시키겠다는 철저한 민주주의적 결단이두드러졌고, 이것이 대중적 호소력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교회 안에 포풀리즘 현상(대중주의)


* 19C의 찰스 피니, 드와이트 무디 그리고 20C에 빌리 선데이, 빌리 그레이엄, 오럴 로버츠, 지미 스웨거트 존 스토트, 마틴 로이드 존스가 그 뒤를 이음.


* 미국에 복음주의자들을 통한 대부흥은 미국 기독교 역사에 가장 위대한 이야기 중 하나이지만, 가속화된 개인주의적이고 즉각주의적인 경향이 여러 교단들을 통해 혁신적인 부흥운동의 기술로 번성하게 된다.


교회와 국가의 분리>

모든 신앙은 하나님과 개인 사이의 양심에 관한 문제이므로 정부는 어떤 수준에서도 이에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들을 채택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19세기 초 미국 복음주의자들의 독특한 점은 전례없는 수준의 종교적 자유를 누렸다는 점. 교회가 모든면에서 정부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었지만, 국교제로부터의 자유는 기독교적 사고에 역설적 결과를 초래.

미연방헌법 수정조항 제1조 "연방 위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자유로운 신앙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세금에 대한 이슈, 대통령이 기도의 날을 선포하는 것, 연방정부에서 기도로 회의를 시작하는 것, 법률로 군목을 임명하고 정부 자금으로 이들을 지원하는 것(이 의미는 군목이 특정 신앙을 갖지 못하게 하는 법률을 말한다.)


⚫부흥운동과 비국교화의 결합이 낳은 중요한 결과

긍정적인 면- 미국교회에 새로운 역동성, 대위임령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새로운 효율성, 복음을 전하는 새로운 활력

부정적인 면- 원칙보다 실용주의적인 관심이 더 우선시 됨, 교회의 요구는 새신자라는 결과였고, 신자가 없으면 교회 문을 닫아야 하기에 결과를 산출해 내는 것이, 모든 관심사(신학, 전통, 본질, 근본)를 압도. 신자들을 실용주의적 변증학과 기능주의적 신학으로 경도함.교회 성장에 가장 도움이 되는 신학은 무엇일까? 사회 안에서 교회의 대의를 가장 강력하게 펼칠 수 있는 신학이 무엇일까? 하는 것이 교회의 관심이었다.


☞ 이러한 실용주의적이고, 즉각주의적이고, 기능주의적인 상황이 결국 지성에 큰 어려움을 가져다 줌.



기독교와 문화의 통합>

복음주의자들은 자신의 기독교적 신념을 미국적 이상과 잘 조화시켰기 때문에 미국 건국 초기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기독교적 신념과 미국적 이상을 무비판적으로 조화시키려 했기 때문에 복음주의자들의 공식적인 사상인 자연, 사회, 역사, 예술에 관한 사고는 미국의 초기 역사 내내 약화됨.


# 복음주의자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성공적으로 미국적 이상과 보조를 같이 했는가에 대한 4가지 영역

1)공화주의 정치이론 채택 2)이를 자신들의 민주주의적 사회 이론으로 삼았으며, 3) 경제적 자유주의를 수용했고, 4) 기독교의 목적에 맞게 계몽주의를 길들였다.

1,2,3)의 설명은 생략 4) 기독교 목적에 맞는 계몽주의에 대한 조나단 에드워즈: 복음주의 지성 에드워즈의 삶의 정황: 세상, 하나님, 인간에 대한 관념이 과학이론의 획기적인 변화로 급속하게 바뀌던 시대 즉 계몽주의의 정신과 보조를 맞추며 살던 시대. 행복이 인간이 가진 최고의 목적이고, 세상을 이해하는 능력은 궁극적으로 인간 지성의 행위에 달려 있다는데 동의하며, 근본적인 실체는 움직이는 물체라고 가정하게 된 철학, 과학, 종교, 정치학과 같은 인문학의 도전에 움직임이 나타났던 시대.


조나단 에드워즈 지적 업적: 기독교적 확신에 근거하여 그가 자신의 사상의 출발점에서 부터 이런 전제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는데 있다. 움직이는 물체가 물리적 세계를 이루는 근원이라는 주장을 거부. 행복의 추구가 인간의 삶의 최고 목적이라는 생각에 맞섬. 하나님은 움직이는 물체보다 더 근원적인 실체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인간이 행복보다 더 고귀한 목적이다. 세상에 대한 인간의 이해는 인간이 지성으로 사물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뜻에 의존한다.





4. 복음주의적 계몽주의

조나단 에드워즈 이후 몇 세대 동안 신학을 포함한 과학, 철학, 역사, 정치, 예술 에 관심을 기울인 복음주의자들이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계몽주의적 방법론을 채택하였다.

복음주의적 계몽주의적이란 그 방법론이 특정한 방식으로 객관적인 진리에 헌신하는 태도와 특정한 '과학적' 방법으로 성서에 접근하는 자세를 말한다.

이것이 요즘 말하고 있는 통전적 신학이라 볼 수 있다.


복음주의를 구한 계몽주의

미국에 강력한 복음주의적 계몽주의가 존재했던 이유는 북미의 지성사가 유럽 대륙의 지성사와 그 양상이 달라다는 점.

미국에서는 여러가지 계몽주의를 인식함 : 온건한 계몽주의(아아작 뉴톤, 존 로크), 회의적 계몽주의(루소, 윌리엄 굿윈), 혁명적 계몽주의(톰 페인), 도덕적 계몽주의(토머스 리드, 애덤스미스..) 여러 가지 성격의 복음주의적 계몽주의는 다양한 지성을 기반으로 교회와 사회 전반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치게 됨.


계몽주의와 복음주의 사상의 형성

복음주의가 계몽부이를 수용한 범의는 사회 도덕적 방향성을 결정하는 유용한 수준을 넘어 복음주의 사상에 깊이 파고듬. 고급문화의 수준에서는 그 연대가 변증론과 신학을 결정지었고 모든 주요 복음주의 집단에게는 부흥에 대한 기대감을 자아내었으며 보통사람과 엘리트 모두 에게 성서를 이해하는 틀을 제공.


변증론

과학적 합리성에 근거한 수많은 변증론이 제시.


- 신학에서도 엄격한 경험주의가 하나님, 계시,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을 정당화하기 위한 기준

- 도덕철학에서도 윤리적 확실성에 이르는 최선의 길이라 여김.

- 종교적 진리를 논증하기 위해 자연과학을 동원하는 데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침.


5. 근본주의라는 지적재앙

19세기 말, 20세기 초 복음주의 역사의 실망스러운 것 – 광범위한 문화적 맥락에서

-◼ 개신교적인 의식을 가진 미국 사회의 변화

-◼ 보수주의 복음주의 자들 안에 중요한 신학적 혁신

-◼ 외부적으로는 칼리지와 대학교의 발전, 내부적으로는 근본주의와 근대주의 간의 논쟁의 결과에 큰 영향

-◼ 성결 신학, 오순절 신학, 세대주의 신학을 폭넓게 수용한 결과로 나타난 특정 문제들


1865~1900년 사이에 급격한 변화

하버드, 존스 홉킨스, 코넬, 시카고, 스텐퍼드, 예일, 프린스턴, 컬럼비아와 같은 학교들이 교육기관을 혁신, 확장, 설립하여 전문대학원을 갖춘 종합대학으로 변화됨

학생수의 증가 1870~1900년 사이에 인구가 두배로 늘어난 반면, 대학생 수는 다섯 배 증가. 1860년에는 고등기관에 다니는 수는 1% 미만이었으나 1930년에는 12.4%로 증가 대학 이사진들이 성직자들에서 기업인으로 대체, 대학 총장은 목회자에서 경영이론과 과학의 요구에 민감한 교육가들로 영입. 신학과 정통신앙의 보존보다는 학문적 평판에 더 큰 관심,

과학적으로는 자연주의적, 철학적 실용주의 경향이 더 짙어지게 됨. 기업가와 칼리지, 학문 사이에 순환고리가 완성

자본, 사회적 진화론, 자연주의적 과학, 타협적인 개신교의 결합은 복음주의적 신념과 미국의 이상은 급속히 퇴조됨.

.- 원인: 복음주의 사상에 기초한 사회와 교육기관들이 북미의 교육을 장악하지 못한 데서 온 결과. 복음주의 기독교 공동체사 교육에 투자한 것이 아니라, 부유한 신흥 기업가들과 주 정부의 투자였다. 그래서 교회나 복음주의권의 기금망은 갈수록 약해짐.

하지만 당시 여전히 종교에 대한 강조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강조되었지만, 성공한 학교들은 새로운 발전과 타협한 학교들이었다.


근본주의

근본주의 운동은 대학교의 변화와 미국 사회전반의 변동에 대한 반응이었다.

1) 로마 카톨릭, 유대인, 불신자 및 이민자의 대거 유입으로 개신교 국가라 믿었던 미국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에 대한 두려움의 반응.

2) 갑자기 생겨나는 도시로 인해 개신교가 큰 영향을 가지고 있던 소도시와 농촌 지역이 급속히 사라지는 것에 대한 당혹.

3) 자연주의 철학의 유행에 대해 성성를 저버리는 것에 대한, 그리고 대학교 밖으로 확산되는 것에 대한 경악.

이와 같은 대중적인 우려가 근본주의가 지성에 미친 영향력은 일종의 역사적 부산물로 여겨 도될 정도였다. 그러나 부산물이라 할 지라도 근본주의가 지성에 미친 영향을 아주 심대했다.


신학적 혁신

미국 문명의 위기에 대한 근본주의적 반응과 전통적인 신앙을 수호하겠다는 근본주의자들의신학적 열정으로 나온 새로운 신학적 경향을 뜻한다.

 성결의 영성, 오순절 운동, 전천년주의적 세대주의

◼ 성결운동: 성령의 내주, 개인적 성화의 필요성 – 감리교인과 웨슬리주의자에 의해 추진

◼ 오순절 운동: 1906년 LA Azusa거리의 부흥운동은 성결운동의 많은 강조점과 분파주의적인 개신교들에 의해 더 강조점들이 결합되어 최고조에 이른다.


19세기 후반 몇 십년간 북미와 유럽 전역에서 여러 변형으로 형성된 네 가지 복음 메시지

1)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 2)신유(궁극적으로 방언을 통해 명확히 나타난다고 여겼던),3) 성령세례와 충만, 4)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


◼ 세대주의: 예언 운동, 세대주의 안에(남부, 북부로 나뉨) 메인라인 교단을 떠난 북부의 복음주의자들은 전천년주의적 세대주의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미침.

세대주의의 필수조건: 1)이스라엘과 교회 사이의 엄격한 구별 2) “대개는 문자적인 해석이라 불리지만“ 이라는 ”정상적인, 혹은 명백한“ 해석이라 말하는 것이 더 접합하다고 생각

세대주의의 네 개의 발전 단계 : 즉 나아이애가라 수련회로부터 스코필드, 라이리를 거쳐


진보주의자들에 이르기 까지 네 단계의 세대주의가 존재

진보적 세대주의, 오순절 진영의 세대주의(현재의 사건을 성서적 예언의 성취로 간주하는 할 린지같은 이들의 –날짜를 지목하는-‘역사주의, 다른 변형된 형태의 시대주의. 세대주의의 영향력과 성결운동과 오순절 운동의 사조의 합류는 미국 복음주의의 전환기를 마련. 이 세 운동은 서로 비판하면서도 (방언강조, 복잡한 성서적 논증, 비판자체에 대한 거룩성 추구 의 방해) 세상과 분리된 경건이 주는 평안함과 복음 전도의 중요성, 종말에 대한 기대 등의 공통 적인 강조는 복음주의 사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됨.


● 왜 이러한 신학적(성결운동, 오순절,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혁신이 일어났을까?


★단순한 성서적 진리를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기에...

 북미의 문화적 엘리트들이 의문시했던 기독교의 특징을 강조

 교양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내재성을 강조하는 것에, 세대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역사를 초월적 으로 다스리신다는 믿음을 옹호

 문화 전반에서 기계론적인 과학에 대한 신뢰가 커지자, 오순절주의자들은 하나님이 가장 평범한 사람의 삶 속에도 침투해 들어오실 수 있다고 주장

 학문적 엘리트들이 현대의 가장 심각한 문제에 대해 실용주의적, 민주주의적, 사회과학적 해법을 제안할 때, 성결운동의 지지자들은 성령을 해답으로 제시.


● 핵심의 의미

근본주의 시대는 복음주의적 사고에 여전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데, 그것은 근본주의가 세상을 바라보는 지적 경향을 철저하게 확립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관점에서는 가현주의적이며 방법론에서는 영지주의적인 경향이 나타났다. 이 두 가지가 과거 근본주의에 대한 지적 비판의 핵심을 이룬다.


● 새롭게 떠오른 반지성주의

근본주의는 새로운 형태의 반지성주의에 빠짐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그분이 만드신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지성을 사용하려는 노력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 왜냐하면 오순절주의자 들과 성결 운동을 옹호했던 이들은 아무리 세상의 학문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실제적인 임재를 강조함으로써 정말로 필수적인 기독교의 목적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목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이기 위해서는 더 이상 세상에 관심을 기울여서는 안 된다는 전제에 있었다.


영국 복음주의자들이 지적으로 취약한 원인을 분석해 달라고 요청을 받은 마틴 로이드 존스는 강연을 통해 19세기 말부터 나타난 새로운 신학적 입장이 미친 영향을 강조했다.

“임박한 재림과 예언의 은사를 강조하여 학문의 필요성을 경시했던 19세기 초 신학운동의 지속적인 영향력”을 지적하면서 강력한 초자연주의 대두를 강조. 당시 미국에서는 오순절 운동과 세대주의의 복합적인 영향으로 이런 종류의 초자연주의가 나타났다. 그러나 지성과 관련한 근본주의의 가장 심각한 폐해는 단순한 반지성 주의가 아니라 근본주의 운동이 사고 행위 자체에 대한 19세기 식 전제를 더욱 강화했다는 점이다.


● 19세기의 강화

자연, 사회, 예술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발견하는 것을 가로막는 근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19세기의 지적인 습성을 무비판적으로 채택했다는 것이다. 근본주의자들이 책임있는 지성의 가능성을 약화시킨 19세기적 다른 특징을 보면


1) 성서 구절을 신적 진리라는 완성된 그림을 얻어내기 위해 골라서 끼워맞추는 데만 필요한 퍼즐 조각처럼취급했다는 점.

2) 극단적인 ‘본질주의’, 즉 특정한 공식으로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이나 인간의 상태, 세상의 운명과 같은 모든 문제에 관한 성경적 진리의 본질을 포착해 낼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경향

3) 그에 따라 특정시대에 가장 중요해 보였던 문제를 이해하고 정의하는데 역사가 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무시하는 태도

4) 이전 세대로부터 내려오는 지혜를 가볍게 무시해 버리는 교만에 가까운 자기 확신19세기 베이컨주의 과학의 객관주의적 언어가 문제가 된 것은 과학에 대한 19세기적 확신에 나타난 자기인식의 결핍이 20세기 말까지도 복음주의 신학을 대중화했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들 사이에서 그대로 나타났다는데 있다. 그런 지적 성향이 신학 자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주목하기보다 그것이

다른 모든 학문을 신학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저자는 주목하고 있다.


 세상에 관한 기독교적 사고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 물음

◼ 현대 핵물리학의 난제나 의료 개혁의 복잡한 문제, 고전의 해석, 20세기 공산주의에 대한 평가,다원적인 사회에서 전통적인 법 이론의 의미, 어떻게 음악이 전통적인 도덕을 강화하는가 혹은 전복하는가에 관한 문제, 어떤 책을 문학의 전범으로 삼아야 하는가?


이상의 예들에 대한 성서와 기독교 신학과 관련한 그 공동체의 지적 성향이 순진하고, 무비판적인 가정에 의해 규정되어 있다면, 세상에 관한 기독교적 사고를 증진하려는 그 공동체의 노력 역시 엄격한 비판의 결여를 들어낼 수 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근본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19세기 지성사에 나타난 가장 나쁜 특징이 20세기 지적 활동의 방법론적 중추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 의심스러운 신학적 지침

20세기 초의 유산이 남긴 더 심각한 어려움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연, 사회,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에 근본주의 신학이 제공한 신학적 지침과 관계가 있다. 기독교 신학 체계는 삼위일체의 본질, 성서를 통한 하나님의 자기계시, 어떻게 인간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교회는 구원의 실재에 대한 본보기가 될 수 있는가 등에 대한 주제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은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에서 실제적인 책무를 수행할 때의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 제시하기도 한다. 음악을 만들거나 즐기고, 몸을 이해하고, 환경을 돌보는 청지기 역할, 유급 노동의 목적을 규정, 과거가 어떻게 현재의 모습을 결정했는지에 관해 올바른 방향이 무엇인지 제시하는 것을 포함한다.


세대주의 신학은 “승히라는 삶” 이나 “더 나은 성결의 삶”, “헌신된 삶”을 강조하는 경건과 결합하는 경우, 위의 방향을 제시할 때 특별한 문제를 야기한다. 근본주의가 조장한 지성의 성향은 이런 종류의 사고에 재앙이 되었을 뿐이다. 세대주의가 가장 지적인 형태의 근본주의 였기 때문에, 지성에 가장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 것 역시 세대주의였다. 세대주의가 강조한 초자연주의는 신앙을 방어해 냈다는 미덕에고 불구하고 세상에 적절한 관심을 기울이는 데 실패했고, 극단적인 형태의 초자연주의에는 진리를 전달할 때 일종의 영지주의적 경향을 띠었다. 그 지지자 들도 자연, 세상의 사건, 윤리, 인간 존재의 여러 다른 양상에 관한 교육을 받았지만, 이런 주제를 본격적 으로 연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세상의 상황과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 성경구절을 인용했지만, 사건과 상황 자체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영지주의적 경향이라 함은, 정교한 도표와 도형을 만들고 이를 통해 성서를 분명히 설명해 낼 수 있다고 가정하면서 그것에 권위를 부여하는 태도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남을 말한다.


복음주의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만난 결과는 근본주의였다. 교리에 대한 이러한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에는 공통된 형식이 있었다. 성경, 구속, 종말에 대한 주제들에 대해 근본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시각에서 경험을 해석해 내려고 노력했고, 각각에 대해 그들은 하나님이 영감을 주신 성경의 저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이해했던 방식으로 현대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므로 근본주의자들이 성경을 방어할 때, 성경 원본의 무오성을 주장했다. 이런 개념은 오랫동안 여기저기서 제기 되어 왔지만 그 어떤 기독교 운동에서도 이 정도로 핵심적인 역학을 한 적은 없었다. 이런 믿음은 사실상 성서 저자들의 경험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하나님의 말씀이지, 성서 저자들의 삶의 경험과 문화적 배경을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지성계의 비판

근본주의 운동과 후대의 여러 복음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은 지적으로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것.

자연세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인간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왜 인간의 본성은 그런 모습인지, 문화의 축복과 위험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사실상 아무런 통찰도 산출해지 못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 가운데 어떤 것은 전적으로 옳았고 성경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믿음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갖지 못했다. 단적으로 표현한다면, 근본주의 철학, 근본주의 과학사, 근본주의 미학, 근본주의 역사학, 근본주의 소설과 시, 문학, 근본주의 법학, 근본주의 문학비평, 근본주의 사회학 같은 것이 존재할 수 없었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관한 한 근본주의의 정서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 영향을 받은 복음주의 지성계 역시 변변한 결실을 맺지 못했다.


결론

근본주의 신학의 영향이 지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이 신학이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달려 있다. 그래서 저자는 결론적으로 세대주의, 성결 운동, 오순절주의의 독특한 교리가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저자는 세대주의에 반하여, 성서의 예언의 핵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속의 정서적이며 우주적인 차원을 계시하는 것이지 신자들에게 세상의 종말에 대한 완전하고 상세한 미리보고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 라고 한다.

성결신학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딸고 자신의 직업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받아들이면서 은혜 안에 자라가야지, "내려놓고 하나님이 다 하시게 해 드림으로써"는 성숙한 것이 아니다.


오순절주의에 대해,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필수 요소로서 성령으로 세계를 받으며 특별한 이적을 행하는 은사를 구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





3부 스캔들의 의미

6. 정치에 관한 성찰

미국의 복음주의적 사고의 특징은 정치학과 과학분야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데, 19세기의 정치적 사고를 왜곡시켰고, 복음주의권의 정치적 사고에 영향을 미쳤다. 어떻게 왜곡시켰고,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내용이 3부에서 다루어진다. 결론적으로는 근본주의가 복음주의적 사고에 가한 실질적인 폐해에 대한 것을 설명한다.

그러나 그 폐해를 이겨내는 복음주의의 회복능력과 성숙한 지성이 나타날 조짐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세 차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과 19세기 복음주의 사상


7. 과학에 관한 사고

19세기 복음주의자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당시의 대중적인 과학적 개념을 효과적으로 차용함. 지적인 이유보다는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 이를 통해 복음주의는 과학 분야에서 의미있는 결실이 있었다.

그러나 대학교에서 과학의 높아진 위상에 기초한 공격적인 세속화가 전통적인 기독교의 관심사를 압도해 버렸다. 그래서 기독교 대학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이들은, 대개 과학 연구를 신학이나 다른 사고의 영역과 연관시키기 보다는 철저하게 분리된 지식의 영역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19세기 유산

19세기 복음주의자들은 과학을 "베이컨주의"로 이해했다. 이는 어떤 분야에서든 입증된 각각의 사실로 부터 더 일반적인 법칙을 이끌어내는 방식이 그 주제에 관련된 자료를 이해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신념이 있었던 것이다.

베이컨주의란? (경험주의, 실험주의) 자료에서 따옴


고대․중세의 과학적 전통에 따라 행해졌던 실험들은 다음 두 가지 중 한 가지 목적을 갖고 있었다. 첫째, 이미 알려진 결론을 증명하려는 목적과, 둘째, 기존 이론들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구체적 해답을 주기 위한 목적이었다. 데까르뜨와 뉴턴이 프리즘에 의해 나타나는 빛깔을 연구했을 때 이들은 고대․중세적 전통의 연장선 위에 있었으며, 티코 브라헤 이전의 천문학자들은 행성의 궤도를 직접 관찰하지 않고 단지 달력을 만들거나 기존 이론 성립에 필요한 변수들을 계산해내기 위해 필요한 일출이나 충(衝: 태양과 어떤 행성이 지구를 사이에 두고 정반대의 위치에 오는 현상)만을 기록했다.

반면 길버트, 보일, 후크 같은 베이컨주의자들은 이미 알려진 것을 증명하거나 기존 이론을 확장하는데 필요한 세부사항을 밝히려고 실험했던 적이 없었다. 이들은 예전에는 관찰되지 않았던 상황, 때로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상황에서 자연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고자 했다. 이 때 베이컨주의자들은 대개 원자론이라 는 형이상학에 입각해서, 원자의 모양․배열․운동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실험들에 우선순위를 부여하였지만 이내 형이상학과 실험 사이의 현격한 차이를 느끼게 되었고, 그 결과 ㉠실험을 높이 평가하고 이론을 경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실험과 이론의 지위 역전 현상은 새로운 실험과학이 이전의 과학과 구별 되는 첫 번째 특징이두 번째 특징은, 베이컨 스스로 ‘사자의 꼬리를 비트는 것’과 같다고 묘사했듯이, 자연에 외적 제약을 가해서 사람의 개입이 없이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조건 속의 자연의 작용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다양한 식물과 동물, 그리고 화학물질을 공기펌프․기압계로 만든 인공적 진공 속에 투입하는 실험을 했던 사람들은바로 이런 측면을 잘 드러낸다. 세 번째 특징은 두 번째 특징으로부터 도출되는데, 바로 베이컨주의자들이

‘공기펌프’, ‘기압계’ 등의 실험도구들을 발명하고 사용했다는 점이다. 1590년 이전에는 물리과학의 기구 창고는 천문관측기구들로만 가득 차 있었지만, 이후 백 년 동안 망원경․온도계․기압계․공기펌프․전하측정기 등 수많은 신 기구들이 급속하게 도입되었다. 장인이나 연금술사가 작업 시 이용하던 화학 장치들 역시 자연연구자들에 의해 채택되기 시작한다. 기계를 채택하여 실험을 하기 시작한 베이컨주의자들은 ㉡고대․중세적 전통의 사고실험을 비판하였으며, 실험에 관한 정확․상세한 보고를 강조했다.

이러한 특징을 갖는 베이컨주의가 고전과학의 혁명에 별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일부 역사학자들의 지적은 일면 타당하다. 왜냐하면 고전과학의 혁명에 실험이 차지했던 역할은 실제로 미미했기 때문이다. 일례로 뉴턴의 프리즘 연구는, 물로 채운 유리 공을 사용했던 중세의 실험에서부터 전승되었기 때문에 베이컨주의식의 실험이 행해졌던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당시 고전과학의 혁명은 사고실험을 통해서 이뤄졌고 실험은 그 사고실험을 입증하기 위해 부수적으로 실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즉 과학혁명 기간의 고전과학 분야의 변혁은 ㉢이미 알려져 있던 것을 새롭게 보는 방법에서 기인했던 것이지, 예기치 못했던 일련의 실험적 발견들에서 기인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베이컨주의가 과학혁명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은 무의미한 것이었다고 보는 역사학자들의 시각 이면에는 고전과학만을 진정한 과학으로 여기는 선입견이 놓여 있다. 베이컨주의가 고전과학의 발달에 별 공헌을 하지 못했다고 양보하더라도, 그것은 새로운 과학 분야들의 형성을 촉진했다는 사실은 인정되어 야 한다. 데이터를 선원들의 나침반 사용 경험으로부터 얻어낸 초기의 자기 연구, 자석이 쇠를 끌어당기는 현상과 마찰된 호박(琥珀) 막대가 왕겨를 끌어당기는 현상에 대한 분석에서 시작한 전기 연구가 그 예이다.

게다가 새로운 과학 분야는 특히 ㉣신뢰도 높고 세련된 기구들을 십분 활용했다. 그 동안 철학․의학의 사고 대상이었던 열은 온도계의 발명에 의해 체계적 연구대상으로 탈바꿈한다. 이들 분야는 새로운 것이었으므로 초창기에는 ㉤일관성 있는 이론체계를 갖추지 못했던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18세기에 이르러 실험이 더욱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특정 분야로 실험이 집중되며 입자 개념 등이 실험적 연구와 결합하자 이내 이론적 체계로 발전을 이루게 된다.


다윈에 대한 대응

미국의 과학계가 유기적 진화론을 수용하게 될 까지, 다양한 신학적 입장의 개신교 지도자들이 다윈의 변이가설을 그저 나쁜 과학이라고 거부하는 데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뿐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북미에 서 다윈주의를 주도했고 미국인들이 다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가장 크게 기어여 과학자 아사 그레이는 상당히 보수적인 신학관을 견지한 회중교회 교인이었다. 그는 전통적인 신학적 입장을 고수한 하버드의Botanist였다.

1870년 미국의 과학자들이 유기적 진화론을 받아들이자 이 새로운 도전앞에 맞서게 된다.


19세기의 마지막 25년 동안 세 가지 입장을 제시

1) 보수적인 반대자들은 진화론을 일차적으로는 종교적 이유로, 즉 자신들의 성서 이해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즉각 거부.


2) 진화론과 개신교 신앙을 조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 이들이 두 분류로 나뉜다.

-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진화론자들은 역사적 기독교의 교리적 틀 안에서 진화론을 인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

- 그러나 진화론을 수용한 대다수의 경우,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신학 자체도 크게 변화게 된다.


진화론을 수용하면서 신학을 재핵석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성서 고등비평에 대한 호의적인 관점을 취하고, 이전과는 달리 종교적 의식을 신뢰하면 인간의 발전에 더 확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흐름을 따른 근대주의적 개신교 진화론자들은 내재적인 신관을 옹호했고, 성서를 진화하는 종교적 의식의 표현으로 재정의했고, 유기적 진화론에서 차용한 용어로 성서에서 말하는 구속의 개념을 재규정 했다.


19세기 복음주의 과학의 '두 권의 책'

챨스 하지의 "성서 연구와 프리스턴 리뷰"라는 학술지에 조셉 클락의 '과학의 회의주의' 라는 논문이 실린다.


이 글에서 클락은 과학이 서양 문명에서 점점 중요해지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과학의 문제를 다룰 때 이중적인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 첫째, 성서를 온전히 신뢰해야 한다. 둘째, 과학자들이 성서으이 결론에 얽매이지 않은 채 자신의 학문 분야에서 사용하는 적절한 귀납적 방법에 따라 연구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예전의 성서 해석(지구가 평평하다고 가르치는 믿음과 같은)이 새로운 과학적 결론에 맞게 어떻게 수정되었는지를 지적하며, 교회가 앞으로 이런 식으로 적응해 가야 하며, 그럼에도 교회나 성서 영감의 교리에는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 주장.

이 주장에 대해 "뉴욕 옵저버"는 클락이 너무 많이 양보한다고 주장한다. 즉 클락의 주장은 위험한 지점 에까지 이른다고 주장. "과학적인 결론이 계시와 충돌하는데도 과학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계시를 제쳐놓는다면 우리는 어디까지 가게 될까?"라는 질문을 한다.


이에 찰스 핫지는 이 논설의 질문을 고쳐 말하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가야 할 바로 그곳까지 가게 될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는 성서 무오성의 교리를 확고히 고수한 채 과학자들에게 성서의 핵심적인 가르침과 모순되는 우주론적 추론을 경계하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동시에 "성서가 과학에 의해 해석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옹호했다. 이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결론이 성서 해석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거의 자명하다고 하였다. (지구 주의로 태양이 돈다는 성서의 가르침을 과학적으로 지구가 태양 주의를 돈다는 증명과 같은)


과학에 대한 세세한 의견 차이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결론을 적용할 때 성서 해석의 영향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서 해석 역시 그 시대 최고의 과학적 성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믿었던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근본주의의 영향

근본주의가 나타난 것은 전반에도 언급되었듯이 급속한 세속화에 대한 반응으로 부터 나타난 것이다. 근본주의 과학도 동일한 원인으로 부터 시작한 것이다. 19세기 '과학'에 엄청난 권위를 부여하면서 과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학계는 그들의 연구 태도, 송영적, 하나님 지향적인 과학을 배제하기 시작한데 있다.


그래서 '창조론'이라는 것이 진화론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 과학이다. (근본주의적 창조과학) 이들은 과학연구만으로도 우주가 자기 충족적이며 완결된 성격을 갖는다는 거대한 우주론적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에 반대하는 활동을 펼쳤다. 또한 그런 과학을 위해 세금을 사용한다는 것에 대한 반대도 있었다. 그러나 근본주의자들의 분노는 충분히 타당했지만 근본주의 과학은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근본주의의 후예인 복음주의자들은 최고의 신학은 최고의 과학을 이해하고 받아들 일 수 있어야 한다는 19세기식 확신을 포기했다. 하지만 성서와 과학을 조화시티는 것이 중요하며 베이컨주의의 방법론이 모든 주제를 연구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확신은 그대로 유지했다. 근본주의 운동 자체의 충동과 20세기 초의 사회적 압력으로 인해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신학이 지닌 약점에 굴복하고 말았고, 그 결과는 과학에 나쁜 영향을 남겼다. 신학이 지닌 약점이란 그들 안에 있는 이원론적인 사상 "빛과 어둠의 세력"에 싸움이라


는 가정이다. 결국 근본주의는 '마니교'로 후퇴해 버린 것이다. 자연의 대한 일상적인 연구조차 악한 것으로 취급하는 극단적인 초자연주의로 가게 된 것을 말한다.


창조과학의 대두 올바르게 정의했을 때 창조론이라는 말은 자연 세계의 현상 안에서, 하나님의 지성을 분별하는 모든 활동에 해당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용어는 불행히도 하나님이 1만 년 혹은 그보다 더 멀지 않는 과거에 세상을 창조하셨고, 노아 시대에는 전 세계적인 홍수를 내려서, 오늘날 대부분의 과학자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론적으로 변화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지구의 지질학적 상태를 만들어 내셨다고 보는 견해만을 의미 하게 되었다.


이 책에서 창조과학의 대두는 근본주의 영향을 받은 복음주의자들 안에서의 창조과학의 동향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왜 창조과학이 급부상했을까?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1) 창조론이 성서의 단순한 가르침을 구현한다는 많은 복음주의자의 직관적인 믿음때문이었다. 

2)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방 정부권력이 확대된 것도 창조론이 대중적으로 부상하는데 영향

을 미쳤다. 

3) 창조론자들은 미국의 독단적인 지식인 엘리트들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학교들의 소속된 일부 학자들이 보여준 지적 제국주의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발의 일환이다. 

4) 근본주의 신양의 영행, 특히 종말론적 정서와 세대에 대한 열광이 반영

유행화 세대주의와 뒤에 대중화된 창조과학 사이에는 많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창조론을 과학적세대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다. (세대주의의 신학에 연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세대에 걸쳐 하나님이 인간의 삶을 이끄시는 방법)


창조과학이 복음주의 지성에 입힌 피해

인간의 기원, 지구의 나이, 지질학적, 생물학적 변화의 원리에 대해 명확하게 사고하는 것을 혼란스럽게만들었다는 점. 그러나 더 심각한 피해는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바라보고 우리가 본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약화시켰다는 점을 지적한다. 문제점은 자연 세계에 관한 지식에 대해 마니교적 태도를 갖게 했다는 것. 그 결과 비극은 수백만 명의 복음주의자들이 단순히 창조과학을 옹호함으로써 성경을 옹호한다고 생각했다는 것과 복음주의자들은 그런 경향때문에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19세기 찰스 핫지가 이런 시대 속에서 던진 말이 시의 적절하다.

:자연은 성서만큼 참된 하나님의 계시다. 그리고 우리는 과학에 의거해 성서를 해석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할 수 있다.“




4부 희망?

8. 복음주의적 지적 부흥은 진행 중인가?

지금까지의 내용에 대해 저자는 현대 '복음주의 사상'은 미국적 가치관과 개신교 가치관의 19세기적 종합으로부터 생겨나 근본주의와 근대주의 사이의 투쟁을 거쳐 온 지적 전제로 이해한다. 이런 역사를 감안하면 20세기 말, 21세기의 복음주의 사상의 전망은 밝지 않다는 것이다. 


(근본주의에 영향을 받은 복음주의 신학-총체적 분야를 포함한 지성-을 말한다.) - 통찰력있는 리처드 니버도이에 수긍함. 이 장에서는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복음주의 지성에 생기를 불어 넣은 영향력들의 상호작용 복음주의의 정치적 성찰을 갱신하기 위한 건설적 노력들 복음주의 철학은 놀라운 발전이 성공을 거둔 반면, 복음주의 정치사상과 과학은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는 사실을 최근 복음주의 사상의 본질과 관련하여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 한다.


복음주의 지성의 각성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네 가지 유사한 변화가 전개 됨에 따라 복음주의적 사고가 뚜렷한 진보를 이룰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단순히 성서주의에 반해 성서의 복잡성에 관한 인식이 확대되어 갔고, 대중주의에 반대 고급 고등교육에 대한 갈망이 켜져갔고, 행동주의와 더불어 연구를 존중하는 분위기가 타나났다.


1) 탈근본주의, 2) 메인라인 개신교의 도움, 3)이민 교회의 성숙, 4) 대서양을 너머


1)탈근본주의

근본주의의 영향을 받은 세대주의의 유산을 거부하는 젊은 설교자, 학자, 언론인들이 나타남.열등한 분리주의, 묵시론적 성서주의, 대사회적 소극성에 환멸을 느끼며, 이런 시점에 풀러 신학교와 고든 콘웰신학교의 총장이었던 헤럴드 존 오켕가는 전통적인 개신교의 정통을 고수하면서도 학문을 소중히여기로 사회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새로운 복음주의'를 주창하게 된다. 이게 큰 역할을 한 사람은그레이엄인데, 복음주의 학자들을 복음주의 운동 특유의 반지성주의로로 부터 나오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함.


2) 메인라인 개신교의 도움

근본주의자가 되지 않았던 신학적 보수주의자들과의 관계가 있다. 이들은 20세기 많은 전통적인 교회들의 신학적 근대주의 경향을 억제하려 했던 자들이었다. 근본주의와 근대주의 사이의 격렬한 갈등이 역사의배경으로 저물어 가자, 이들 신학적 보수주의자들이 복음주의자들과 교류 관계를 자연스럽게 다시 확립할수 있었다.

본보기가 될 인물들이 나타남.

예일의 케네스 스칼 라투렛: 기독교 선교 역사를 통해 탈근본주의자들과 교류

장로교 역사가 해리스 하비슨: 프린스턴에서 종교개혁과 역사학에 대한 기독교적 접근 방식에 관한 책을통해 교량 역활을 함.

C.S Lewis에 대한 관심 덕분에 성공회 목회자인 채드 왈쉬는 탈근본주의자들에게 환영받음.


3) 이민 교회의 성숙

종교개혁 전통을 강력히 고수하는 유럽출신의 개신교인들이 미국 내에 중요한 공동체를 세움.그중에 가장 큰 공동체가 루터교였다. 그리고 네덜란드계 북미개혁 교회 (윌리엄 어드먼즈 출판사)


4) 대서양을 너머

어드먼즈는 미국 복음주의 갱신과 관련한 네 번째 흐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그 노력은 1930년대부터 영국 국교회와 비국교회 교단에 속한 수많은 영국의 복음주의자들이 대학에서 영향력을 회복하려는노력에 힘을 모았다. 이 운동의 요람은 IVF(영국 기독학생회)였다. 마틴 로이드 존스, FF 브리스, 존 웬함과 같은 복음 주의자들이 단기간에 발전을 이루었다.


갱신의 징조

학문적 교류 외에, 저명한 인사들과 연구 프로젝트, 전도집회를 통한 네트웤, 마틴 로이드존스나 존 스토트같은 대학교 '선교사들'이 더 엄격한 학문적 집단안에서 헌신. 에드먼즈는 다양한 교파 전통을 가진 복음주의학자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줌. 미국 기독학생회나 로잔 세계전도위원회와 같은 기관들은여러 문화를 아우르는 복음주의권의 유대 강화. 그 결과 미국과 영국, 캐나다, 그 외 다른 지역에서 풍성한 복음주의적 지성의 네트워크가 확립됨.


1970년대 이후 부터는 당대 최고급의 지적 이슈에 대한 복음주의의 대답을 규정하며 나타낸다. 하버드의과학사, 퀸즈 대학의 역사학, UCLA의 역사학과 철학, 오타와 대학과 시카고의 일리노이 대학교의 문학,프린스턴과 버지니아의 사회학, 위시콘신의 철학과 경제학, 시라큐즈와 예일의 철학에 이런 학자들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 최근에 작고하신 USC의 달라스 윌라드를 포함...


한마디로, 근본주의-근대주의 논쟁 이후 복음주의자들의 지적 상황이 크게 개선되고 놀랍게 발전했다는 말.


정치적 성찰 : 생략

과학 : 생략




결론

현재 복음주의자들은 지난 몇 십 년간 북미에서 지행되는 기독교적 사고의 갱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특히 철학 분야에서 기독교적 사고는 '르네상스'라 할 만한 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기독교적 사고의 부흥을 이끈 지적 활력은 미국 복음주의의 역사적 자원으로 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결실한 기독교적 사고를 위해서는 미국 복음주의를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복음주의에 대한 일부지식인들의 헌신을 설명해 주는 우연적인 개인사를 제외하고는 지성을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이복음주의 전통 안에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복음주의자들도 지성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은, 궁극적으로 최근의 역사가 아니라우리가 고백하는 종교의 본질에서 찾을 수 있다.


9. 십자가라는 걸림돌

'십자가의 스캔들'은 하나님이 인간 존재의 영역을 얼마나 진지하게 다루시는지 말해준다. 이 영역은 구속이하나님이 자신을 가장 온전하게 드러내시기로 작정하신 무대이다. 하나님이 죄인을 구속하기 위해 대가를치르실 정도로 창조 영역을 사랑하셨다면, 그 영역에서 구원을 누리는 죄인이 구속주를 예배하기 위해서는 그 영역의 실체를 헤아리려는 노력을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는가?


● 복음주의

복음주의 자들이 지성을 추구하고자 할 때 가장 시급하게 고쳐야 할 태도는 자신의 독특성, 잘못된 이분법적경향, 지적 직관주의의 유산 등과 같은 관련된 태도다.


독특성 VS 본질

미국 복음주의의 독특성 중 많은 것이 기독교의 본질에 해당하지 않는다. 독특성을 얼마나 본질에 종속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 복음주의 자들의 행동주의의 독특성

- 성서에 대한 갖는 믿음의 독특성 (문자적 해석, 과학적 접근방식, 성서 무오성의 교리에 대한 몰두, 묵시론의 세부적 항목에 대한 집착),


- 위기형 회심의 독특성- 기독교의 본질은 믿음이 시작되어 죽을 때 까지 온 삶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인데,어떤 사람들은 위기형 회심을 통해 즉, 즉각적 믿음이 완성이고, 그것으로 부터 믿음의 삶이 시작한다고 한다.


잘못된 이분법

예를 들어, 기독교 지성을 계발하려는 노력은 행동주의의 타당성을 부인하지 않지만, 행동주의 외에연구할 수 있는 여지를 허용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회심주의와 함께 평생을 걸친 영적 성장에 대해서도고민하고, 성서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면서도 다른 자료가 주는 지혜를 비판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엄격한 세대주의로 자랐던 에반젤린 패터슨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시를 쓰게 된 과정을 돌아보면서복음주의를 괴롭히는 잘못된 이율배반에 대해 이야기 한다. "나는 하나님을 최고로 높여드려야 하기때문에 다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기독교 환경에서 자라났다. 결국 나는 이런 생각을극복하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모든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지적 직관주의 – 직관을 넘어

지성을 계발하고자 한다면, 복음주의자들은 직관주의적 성향, 즉 첫인상에서 최종적인 결론을 곧바로내리는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 복음 주의자들이 서로의 목소리를 더 주의 길게 들으려 한다면 더 광범위한기독교 담론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남침례교 교인들이 북미 개혁교회 교인들의말을 존중하고, 메노나이트 교인들이 은사주의들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고, 복음주의 좌파와 우파가 대화를한다면,)기독교의 전통은 다름이 아닌 신학적 통찰로 부터 사고의 원리를 발전시켜 왔다. 복음주의자들은 이런원리에 대해, 그 원리로 부터 배워야 한다.


● 복음주의 지식인

기독교의 진리 이해는 전체주의처럼 우격다짐으로 받는 인정이 아니라 자기 확신을 통해 격려를 받아야한다. 기독교는 겸손할 때 가장 잘 해내는 것 같다.(성공주의, 성장주의를 추구하며 굴림하는 태도가 아닌)겸손할 때 능력이 있다는 것은 역설이지만, 역설적인 힘을 성경은 말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박식한 반대자들 덕분에 정직한 대화를 이어갈 수 있고, 기독교 변증가는 자기 만족과 권위주의라는 이중적인 위험에빠질 수 있다.


● 복음주의와 지성계 (저자의 결론)

복음주의의 가장 중요한 희망의 징조는 복음 자체에 있다. 기독교적 사고는 그리스도인을 전제한다.복음주의적 열정은 많은 경우 사고를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기독교 지성에 필수적인 요소다.이런 관점에서, 복음주의 사상에 손해를 입힌 듯 보이는 운동들(성결운동, 오순절주의, 세대주의)이부차적인 관심의 이면에 가장 중요한 것을 숨기도 있다.


과도한 초자연주의가 복음주의적 사고에 어떤 손해를 입혔든 간에, 바로 그 초자연주의 덕분에 초월에대한 자각을 생생히 유지 할 수 있었으며, 다음 세대에 의미있는 복음주의적 사고를 위한 중요한 출발점을물려 줄 수 있었다.


무분별하게 시대의 유행을 따라 구원의 기쁨을 표현함으로써 그 기쁨을 많이 손상시키긴 했지만, 구원의기쁨을 알고 있다. 어쩌면 우리도 완전히 빈손은 아닐 것이다. 복음주의가 기독교 신앙을 살아있게 하는 한,때로는 자기도 모르게 기독교적 사고의 가능성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할 수 있다. 성서에 대한 복음주의의애착이 지적이기 보다는 토템 숭배에 가까운 경우가 많을지 모른다. 그러나 성서에 대한 애착은 좋은출발점이다. 육신이 되신 하나님을 계시하는 성서를 연구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만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그리스도께서 창조하신 세상, 그분이 친히 동화되신 인류, 그분이 몸소 보여 주신 아름다움을 발견하게된다. 그러므로 성서에 대한 광범위한 읽기로부터 길은 읽기로 이동하는 것이 어렵지만 그래야 한다.


기독교적 사고의 문제는 뿌리 깊은 영적문제다.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예배하는가? 이 물음을 통해 우리는 지성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되돌아간다.


육신이 되시고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영광스러운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말씀은 만물 – 자연의 모든 현상,인간이 풍성하게 상호작용하는 모든 능력, 모든 종류의 아름다움- 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된 그 말씀이기도하다. 그 말씀을 마땅히 경배하기 위해, 복음주의자들은 그리스도와 그분이 만드신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답게 생각하려고 놀겨하는 것은 자신이 창조한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 세상을 구속하기 위해 죽으시고 세상을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주되심, 매순간 세상을 지탱하시며 세상을 주관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것이 궁극적인 의미이다. 기독교 지성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지성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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