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서 웃어야 한다”




15초만 박장대소해도 몸에 좋은 호르몬이 분비되어서 치매가 예방되고 수명이 연장된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잘 웃는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나누고 싶은 생각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나누면 배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웃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가두는 마음을 가져 영혼이 자유롭지 못하다.


요즈음 여기저기서 어렵다고들 아우성이지만 그럼에도 호황을 누리는 기업이 있다. 경영에 웃음을 도입한 펀(fun)경영을 하거나 펀 리더들이 경영하는 기업들이다. 어떤 기업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신나게 춤출 수 있도록 DDR을 설치하는가 하면 사원들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경영주의 노력이 행복윤활유가 되어 사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있다.








 

가능하다면 깊은 대화를 나누심이 어떨까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나누는 대화에 깊이의 차이가 있을까요? 

더 깊은 대화, 덜 깊은 대화가 있을까요? 

있다면 얼마나 깊은 대화가 있을까요? 

우리는 보통 어느 수준의 대화를 나누며 살고 있는 걸까요?


 쟌 파월(John Powell)은 그의 저서 “Why Am I Afraid to Tell You Who I Am? 당신에게 내가 누구인가를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이유, Argus Commmunications, 1969, pp.54-62)“에서 대화의 깊이를 다섯 등급으로 나누어 말하고 있습니다:


 제5급 대화는 표면층의 대화로서 일상적인 수준의 인사말을 가리킵니다.


 “안녕하세요? 네! 별 일 없으세요? 네! 안녕히 가세요. 네! 또 봐요. 네“ 하는 정도의 대화죠. 물론 우리의 대화는 이 표면층의 5급 대화부터 시작이 되는 것이죠. 시작이 잘 풀리면 다음 대화로 한 단계 더 깊어질 수 있는 겁니다. 살다가 보면 인사말 정도의 대화조차 나누지 않고 지낼 수도 있습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죠. 대인관계의 친밀성을 누리지 못하고 사는 것이 되니까요.


 제4급 대화는 사실 보고적인 수준의 대화를 의미합니다.

 “내일은 날씨가 덥겠답니다. 아마 섭씨 30도가 넘겠다나 봐요. 오늘은 오후에 한때 소나기가 내린답니다“ 하는 대화죠. 어떤 일에 대한 사실 혹은 정보를 교환하는 대화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대화는 대개 단답형이고 간단히 끝나게 되기가 쉽습니다.


 제3급 대화는 의견교환적인 대화를 가리킵니다. 

“내일 날씨가 덥겠다니 땀 깨나 흘리겠군요. 오늘 오후에 소나기가 내린다면 우산을 준비해야 되겠네요“ 하는 대화입니다. 어떤 일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대화를 뜻합니다.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들어보는 대화는 좀더 마음이 열린 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2급 대화는 감정교환적인 대화를 뜻합니다. 

기쁨, 즐거움, 슬픔, 괴로움, 분노, 사랑, 섭섭함 등의 다양한 감정을 공감하는 대화죠. 물론 한 편이 다른 편에게 자신의 감정을 일방적으로 쏟아 놓는 것은 대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이 그러한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공감할 때 비로소 대화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나 지금 화가 나 있어요.“

 “화가 나시다뇨?“

 “당신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잖아요?“

 “무슨 약속 말씀입니까?“

 “생각 안 나세요?“

 “글쎄요.“

 “아니, 오늘이 무슨 날이죠?“

 “아 - , 미안해요. 오늘이 우리 아들 음악회 하는 날인데 내가 그만 깜빡 잊고 이렇게 늦게 왔으니. 여보, 당신 화가 난 걸 알겠어요. 어서 서두릅시다.“

 

 이처럼 어느 한 편이 표현한 감정을 공감하고 그에 따른 정직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감정이 통하는 대화라고 할 수 있죠. 만일 표현된 감정을 부인하거나 반박하거나 무관심하게 대하면 그 감정은 증폭되어 스트레스가 더 많이 쌓이게 되겠죠.



 제1급 대화는 속마음 교환적인 대화입니다. 


마음 속에 간직한 미래의 꿈이나 계획, 소망, 부끄러운 일, 고민거리, 문제들까지도 스스럼 없이 나누는 대화죠. 이러한 대화를 가장 깊은 속 깊은 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 신뢰하는 관계라야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사생활의 비밀을 지켜 줄 것을 서로 확신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누어지는 대화가 바로 1급대화인 것이죠. 이러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자리에서 1급대화를 일 주일에 30분 이상 나누시는 분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습니다. 손을 드신 분들이 10분의 1도 채 못 되었습니다. 대개가 인사말과 사실보고적인 대화 정도에서 머물고 있었습니다. 편안하게 의견교환을 하는 대화를 하는 사람들도 많지는 않았습니다. 감정교환적인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더 적었습니다.


 여러분의 대화 수준은 어떻습니까? 1급대화까지 나누며 살고 계십니까?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이 자기는 손님 중에 연애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부부인지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 구별이 간다고 하시더군요. 부부도 결혼생활을 얼마나 오래 했는지, 서로 사이가 좋은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간대요. 연애하는 사람들은 아기자기한 대화를 친근하게 나누는데, 결혼한 부부는 별로 말이 없이 식사만 한대나 봐요. 네, 여러분 자신의 경우는 어떠신지요? 나이 들수록 더욱 속 깊은 대화를 나누며 살아보지 않으실래요? 가능하다면 깊은 대화를 나누심이 어떨까요? 자, 오늘도 좋은 하루 만드시기 바랍니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1년 8월호)



염색

                                         ㅡ 나영자 시인 

 

주님으로 푹 물이들면 좋겠습니다

 

물감이 천에 물을 들이듯

주님으로 제가 물이 들면 좋겠습니다

 

가르치는것과 사는것 따로있고

아는 것과 행하는 것 따로 있으며

깨달음과 실천이 따로가 아니라

 

주님의 삶이 

내몸에 배어버려서

그냥 사는것이

예수님을 닮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

 

주님의 말씀 줄줄 외우지 못해도

조리있게 진리를 변증하지 못해도

 

그냥 사는것이

말씀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주님으로

푹 물이 들어 버리면 

참 좋겠습니다.




어려움을 주신 신께 감사해야 한단다.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나 자세는
문제를 그저 어렵게만 보지 말고
헤쳐 나가야 할 도전쯤으로 받아들이는 거야.
물론 그렇게 여겨도 여전히 장애물인 것은
변함이 없겠지만 긍정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을 거야.
그러니 매 순간 우리가 어려움을 겪도록 한
신의 섭리에 감사해야 한단다.”
- ‘어린왕자, 두 번째 이야기’에서

“어려움에 감사하라고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이어집니다.
“그럼, 왜냐하면 그런 태도나 자세가 널 성장시켜서
완벽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해주거든.
만약 우리 삶에 놓인 장애물을 이렇게 호의적으로 바라보면
그것들에 대해 불평하면서 허비하는 시간의 낭비도 줄이고,
더 알찬 삶을 살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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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부족해야 꽃이 핀다.

“물이 부족해야 땅속에 있는 물을 찾기 위해서
뿌리가 안간힘을 다해 뻗어갑니다.
그래야 꽃도 피지요.
화초가 꽃을 피우는 이유가 종자를 번식하기 위함인데
물이 부족해서 위기를 느껴야 종자를 번식할 생각을 하는 것이지요.”
- 김용태, ‘야해야 청춘’에서

산세비에리아를 분갈이하려고 화원에 갔을 때 주인이
“화초에 물을 많이 주면 뿌리가 자라지 못합니다”라며
들려준 이야기랍니다.


결핍이 창조를 낳는다는 것은 자연과 인간사의 이치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편함을 싫어하고 편안함을 추구합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이 드문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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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과 늙음을 구별하는 법



믿음이 있으면 젊은 것이고, 의혹이 있으면 늙은 것이다.
자신감이 있으면 젊은 것이고, 두려워하면 늙은 것이다.
희망이 있다면 젊은 것이고, 절망한다면 늙은 것이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을 만들지만,
사라진 열정은 영혼에 주름을 만들다.
- 가오위엔, ‘승풍파랑’에서

철강왕 카네기와 맥아더 장군 사무실 벽에 걸려있던 내용이라고 합니다.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라는 시에도 유사한 내용이 나옵니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합니다.
젊음과 늙음은 나이와 육체가 아닌,
열정과 희망, 호기심과 도전에 의해 구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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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방할 때 기뻐하고 칭찬할 때 슬퍼하라.

우리들의 적이 때로는 친한 벗보다 유익할 경우가 있다.
친구는 언제나 우리들의 실수를 묵인해 주지만,
적은 항상 우리의 죄를 들추어내며
우리를 긴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코 적의 비판을 가벼이 여기지 말라.
- 톨스토이

톨스토이는 ‘남들이 자신을 비방하고 욕설할 때 기뻐하고,
칭찬할 때 슬퍼하라. 비난은 그를 공손함으로 이끌어주며
스스로의 해독제가 되어준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명심보감에 나오는
‘나의 장점만 말하는 사람은 나를 해치는 사람이고,
나의 단점을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나의 스승이다.’라는 구절과
궤를 같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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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안녕과 안전 그리고 안심 (시4: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시4:8)



내가 편히 눕거나 잠드는 것도, 주님께서 나를 평안히 쉬게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시4:8, 새번역)

우리가 확보해여할 안녕과 안전 그리고 안심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자주 묻습니다. 

안녕하세요? 안전하시죠? 안심하세요?

우리는 어떻게 대답하고 있나요.. 

나의 안녕과 안전 그리고 안심을 확보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내가 미국에 사는것이 안전할까요?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안전할까요? 


몇일전에  집에 있는 책장에 책이 떨어지고 책장이 쓰러졌습니다.

책장이 쓰러진 이유는 벽에 책장이 견고하게 붙어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냥 서있는 것만으로 안전할거라고 견고할거라고 생각했지만 

벽에 책장은 반드시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벽에 책장을 부치는 작업을 했습니다. 



그때 깨닫는 묵상...

나는 견고하게 붙어 있어야 될 것이 무엇인가? 

주님 안에 붙어있지 않으면 

나는 살수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영혼의 피난처 주님은 나의 도움이 있습니다 주님은 나의 능력이 됩니다. 

주님은 나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주님밖에 나의 도움이 없습니다

내 마음이 진동하고 흔들릴때 

주님께로 피난처로 삼고 주님께로 나아가야합니다


막흔들리는 내 마음에 문을 박차고

가장 안전한 피난처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견고함에 내 삶을 붙어있어야합니다. 

그것 만큼 가장 훌륭한 안전은 없습니다. 

주님께 붙어있어야 산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시4:8)

내가 편히 눕거나 잠드는 것도, 주님께서 나를 평안히 쉬게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시4:8, 새번역)


지극히 높으신 주님 안에 거하는 자


지극히 높으신 주님 안에 거하는 자


그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라


그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라


주는 나의 피난처가 되시며
주는 나의 능력이 되시네


주님 계신 곳에 나 거하리라


주는 나의 하나님 주 나의 하나님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살려면 달아나십시오(Run for your life)




다음은 미국 맨하탄 타임즈 스퀘어 교회의 목사인 카터 콘론(Cater Conlon)의 “살려면 달아나십시오(Run for your life)”라는 설교의 일부이다. 이 설교는 2001년 9.11 테러가 뉴욕에서 발생한 닷새 후에 선포되었던 말씀으로 거짓된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나 설교자로부터 멀리 달아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제 설교를 이전에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던 것처럼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우리의 목숨을 바쳐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주일학교 소풍에 오는 것처럼 와 있는 곳이 아닙니다. 또한 계속적으로 좋은 시간 보내자고 초대하는 곳도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영혼을 두고 하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입니다.


... 저는 사람들이 무너져 내리는 쌍둥이 빌딩에서부터 도망쳐 나올 때 뉴욕의 경찰관들이 했던 말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경찰관들과 소방관들은 사람들을 향하여 “살려면 달아나십시오(Run for your life)”라고 외쳤습니다.


... 그렇습니다. 여러분 살려면 빨리 달아나십시오.
달아나십시오! 오로지 성공과 번영에만 초점을 맞추는 복음으로부터! 
달아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단지 개인적 이득을 위해 사용하는 이들로부터!
달아나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이들로부터! 
달아나십시오! 오직 자아계발에만 초점을 맞추는 복음들로부터! 
달아나십시오! 예수님이 아니라 인간이 영광을 받는 교회들로부터!
달아나십시오! 예수님의 몸 된 교회여, 달아나십시오! 거기서 나오십시오! 부정한 것들을 만지지 마십시오!


성경이 없는 교회들로부터 달아나십시오. 그들의 신학엔 십자가가 없습니다. 말씀을 상고하는 것도 없습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에 대해선 언급도 안합니다. 그런 교회들은 부정한 교회들입니다. 그러니 거기서부터 달아나십시오!
달아나십시오! 죄를 지어도 편안한 교회들로부터. 하나님의 집에 와서 여러분 삶에 죄를 품고 있는데도 그것을 깨닫게 하지 못하는 교회라면 그것은 마귀들의 식탁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하나님의 강단을 사용하는 정치적 성향을 지닌 사람들로 채워진 강단들로부터 달아나십시오! 


달아나십시오! 민족과 관습 사이에 분열을 외치는 이들로부터 달아나십시오! 
달아나십시오! 거기서 나오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자들입니다. 
달아나십시오! 불경하고 발작적인 운동들과 끝없이 공허한 예언을 일삼는 자들로부터!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시여, 살려면 달아나십시오!
달아나십시오! 서서 이야기와 농담을 일삼는 설교자들로부터!
죽을힘을 다하여 달아나십시오!
달아나십시오! 제발 달아나십시오! 어서 속히 달아나십시오!

회개란 한문으로 '뉘우칠 회(悔)' '고칠 개(改)'입니다. 



고칠 개(改, gǎi)는 뱀 사(巳)와 칠 복(攵)이 합쳐진 형태로 뱀과 같은 파충류를 막대기로 때려죽이며 사악한 기운을 없애고 주위 환경을 바꿔가는 데에서 '고치다, 개선하다'는 의미가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뉘우치기만 하는 것은 반 회개에 불과합니다.

뉘우치고 고칠 것을 고치고 끊을 것을 끓을 때 온전한 회개가 되는 것입

니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겉으로 신앙생활을 할지라도 

자기 영혼을 그리스도께 절대 내 맡기깆 않으며 

성령의 역사와 말씀의 명령에도 결코 고분 고분하게 순종하지 않는다. 


회개한 사람의 심령에는 한마디로 그리스도께서 거하신다.

회개한 사람의 삶은 그를 위해 친히 목숨을 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삶이다. 

그렇다. 회개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계신 그리스도꼐서 사시는 것이다. 


리차드 백서터 / 회개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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