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권별 연구를 시작하면서


1. 신약의 서신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왜? 갈라디아서 인가?


2. 바울의 삶과 메시지 그리고 복음


3. 갈라디아서의 배경과 주제 그리고 메시지


4. 갈라디아서 1~2은혜의 복음(이신칭의)을 변호함


5. 갈라디아서 3~4은혜의 복음(이신칭의)을 설명함


6. 갈라디아서 5~6은혜의 복음(이신칭의)을 적용함

       율법과 복음, 율법과 은혜




갈라디아서 권별 성경 연구 참고도서


  • 바울의 사역과 메시지(크리스챤다이제스트/리처드 론지네커)

  • 갈라디아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성서유니온/권연경)

  • 성서지리와 역사적 관점으로 본 사도바울(쿰란/이영철)

  • 문법적 역사적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본 신약주석(쿰란/송영목)

  • 이야기 갈라디아서(생명의말씀사/진에드워드)

  • 자유에 이르는 길 오직 한길 갈라디아서 강해(아가페/존스토트)

  • 복음서와 사도행전(성서유니온/데이빗웬함)

  • 바울 성령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좋은씨앗/고든피)

  • 성경핸드북(생명의말씀사)

  • 신약개론(은성/D.A카슨)

  • 서신서와 요한계시록(성서유니온/하워드마샬)

  • 갈라디아서(성서유니온/그랜트오스본)

  • 50일에 끝내는 성경통독(낵서스/신현주)

  • 필립얀시의 별미 성경여행(요단/필립얀시)

  • 성경교사를 위한 성경핸드북(성서유니온/스티븐밀러)

  • 손에 잡히는 넬슨 성경개관 (토마스넬슨출판사/김창환)

  • 성경을 여는 40가지 질문(CLC/로버트 플러머)

  • 어 그거 아니네 (쿰란/이진희)

  •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고든피/성서유니온)

  • 책별로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고든피/성서유니온)

  • 반더발 성경연구(반더발/솔로몬)

  • 성경파노라마, 성경익스프레스(테리홀/큐장)




1 . 신약의 서신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왜? 갈라디아서 인가?


A. 신약의 서신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1. 서신서란 무엇인가?1

1) 신약성경의 두 가지 서신

신약성경에서 ‘ 바울 서신 ’과 ‘ 공동 서신 ’ 두 가지 서신이 있다.

아래와 같이 더 세분하는데, 책이름을 직접 적어 보면서 기억과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1) 바울 서신(13권: 히브리서 포함 14권) - 수신자가 책이름

§ 교리서신 - (로 ) ( 고 ) (고 ) (갈 )

§ 옥중서신 - (에 ) (빌 ) (골 ) (빌 )

§ 일반서신 - (데 )(데 ) ( 히 : 작가미상)

§ 목회서신 - (디 )(디 ) (디 )


(2) 공동서신 (7권: 공동 수신하는 회람용) - 발신자(저자)가 책이름

§ (야 )(베 )(베 )

§ (요 )(요 )(요 )

§ (유 )


2) 서신과 초대교회


바울서신은 13권(갈-딛)이며, 히브리서(저자미상)을 포함하여 14권으로 보기도 한다. 바울서신은 수신자가 책이름이 되었고, 공동서신은 발신자가 책이름이 되었다. 서신은 교회생활과 신앙 발전에 좋은 가르침이 되었다.

사도들은 신약성경에 들어 있는 서신들 외에는 다른 서신들을 많이 썼지만 분실되거나 정경화 작업 속에서 제외되기도 했다.


바울서신은 신약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서신이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고전 5:9, 고후3:2-4, 골4:16) 우리가 바울에 대하여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가 남긴 서신 덕분으로 이 서신들을 통하여 초대교회의 본받을 점이나 문제점을 볼 수 있으며 바울의 위대한 심령까지 만날 수 있다.


어떻게 편지가 계시가 될수 있는가 ?


(1) 바울의 서신들을 베드로는 ‘성경’(Scripture)이라고 부른다.

§ (벧후 3: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2) 바울은 자신이 처음에 서신을 보내지 않은 교회들에게도 그의 서신을 복사하여 읽게 하라고 요구다. 모든 서신은 초대 교회에 회람용으로 사용되어졌다


(골 4:16)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3) 고린도 전서에서 바울을 고린도에 있는 신자들에게만 말하지 않고 “ 우리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라고 말하고 있다.

§ (고전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4) 게다가 신약 서신의 저자들은 권위를 가지고 서신을 쓰고 있다.

§ (고전 4:4-5)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 (고전 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5) 그들의 가르침을 임시적 제안이 아닌 ‘ 성도가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유3장)로서 제시하고 있다. 빌레몬서나 디모데 서신과 같이 개인에게 보낸 서신에서 조차도 교회가 이 개인적인 서신의 교훈을 듣고유의하도록 의도되었다는 임시를 둔다.


§ (딤전 6: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 (딤후 4:22)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3) 신약시대의 서신의 표준양식

어떤 서신을 보든지 보내는 사람의 이름, 받은 사람의 이름 그리고 인사가 나온다. 인사는 주로 하나님께 감사하거나 안부를 묻는 것이다. 그리고 서신의 끝 부분은 작별인사로 끝나지만 때로는 개인적인 내용이 길게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표준 양식을 벗어나 경우에는 특별한 이유들이 있다. 예를 들어 < 갈라디아서 >를 보면 처음부터 강한 어조로 비판하는데 갈라디아 교인들이 거짓교사에게 속아 있기에 책망의 뜻을 표현한 것이다.


서신서의 구조

구조적인 면에서 고대서신은 현대 서신 또는 이메일과 매우 흡사하다.


(1) 신약의 서신들은 대개 발신자와 수신자를 밝히는 것으로 시작된다.

§ (갈 1:1-2)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

러 교회들에게


(2) 그러한 인사말 다음에 대개 감사의 말2)과 또는 기도가 뒤 따른다.

§ (고전 1:3-8)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되어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3) 우리는 서신의 서두에서 소개되는 생각들이 종종 나중에 중요한 주제로 재등장하게 되는 것을 주목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갈라디아서 1장 1절에 바울의 의도는 나중에 언급할 바울의 사도직의 정당성에 대한 도전을 받고 있음을 예측하게 한다. 바울의 갈라디아서의 경우는 갈라디아인들이 복음을 저버린것 때문에 사도는 감사를 생각할수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4) 서신의 목적

(1) 제자들을 만들기 위한 서신 


서신은 새로 입교한 교인들을 ‘ 제자의 길 ’로 인도한다. 이를 위해 저자들은 신입 교인들에게 예수님을 본받고. 저자를 본받거나, 교회의 지도자들을 본받고 돌아보아야할 다른 기독교인들의 본이 될 것을 권면한다. 기독교인들은 죄된 삶에서 돌이켜 그리스도의 합당한 삶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 (롬 15:5) 이제 인내와 위로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 (벧전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

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 (빌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 (벧전 5: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 (롬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2)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서신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답변의 글이다. 특히 고린도교회에 관한 내용에서 이런 의도가 드러나며,< 고린도전서 >에만 보아도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이 나온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3-18절에는 그리스도 재림 이전에 죽은 신자들의 운명에 대해서 언급한다.


(3) 추천서나 도움 호소, 해명을 위한 서신

바울서신은 순회전도자들을 추천하고(롬16:1-2,고전16:10-11,고후3:1-2), 재정적인 도움을 호소하고(고전16:1-4,고후8-9장), 여행계획을 밝히고(롬15:22-29,고전16:5-9), 오해를 해명하기 위해(고전5:9-11, 고후1:12-2:4) 쓰였다. 한편 저자들이 교회 있지 않을 때에 교인들의 신앙심을 북돋우기 위해 그리고 수신

자들과의 돈독한 관계를 위한 서신도 있다.


§ 개인이 교회에 보내 서신( 대부분 바울선시들, 요삼)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보낸 서신(딤전후, 딛, 요1,2,3)

§ 몇몇 교회에 보낸 회람서신(갈, 엡, 약, 벧전후, 유)


§ 서신처럼 한 지역에 다른 지역으로 보냈지만 발신자를 적지 않는 등, 편지의 핵심적인 특징들이 빠진 문서(히,요일)












(골 4:16)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

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3) 고린도 전서에서 바울을 고린도에 있는 신자들에게만 말하지 않고 “ 우리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

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라고 말하고 있다.

§ (고전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

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4) 게다가 신약 서신의 저자들은 권위를 가지고 서신을 쓰고 있다.

§ (고전 4:4-5)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 (고전 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5) 그들의 가르침을 임시적 제안이 아닌 ‘ 성도가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유3장)로서 제시하고 있다. 빌레

몬서나 디모데 서신과 같이 개인에게 보낸 서신에서 조차도 교회가 이 개인적인 서신의 교훈을 듣고

유의하도록 의도되었다는 임시를 둔다.

§ (딤전 6: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 (딤후 4:22)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3) 신약시대의 서신의 표준양식

어떤 서신을 보든지 보내는 사람의 이름, 받은 사람의 이름 그리고 인사가 나온다. 인사는 주로 하나님께 감사하

거나 안부를 묻는 것이다. 그리고 서신의 끝 부분은 작별인사로 끝나지만 때로는 개인적인 내용이 길게 나오

기도 한다. 이러한 표준 양식을 벗어나 경우에는 특별한 이유들이 있다. 예를 들어 < 갈라디아서 >를 보면 처음부

터 강한 어조로 비판하는데 갈라디아 교인들이 거짓교사에게 속아 있기에 책망의 뜻을 표현한 것이다.

서신서의 구조

구조적인 면에서 고대서신은 현대 서신 또는 이메일과 매우 흡사하다.

(1) 신약의 서신들은 대개 발신자와 수신자를 밝히는 것으로 시작된다.

§ (갈 1:1-2)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

러 교회들에게

(2) 그러한 인사말 다음에 대개 감사의 말2)과 또는 기도가 뒤 따른다.

§ (고전 1:3-8)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 예

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   <갈라디아서 3:10-18>  법보다 약속입니다.
  • 율법은 인간적 성취를 요구한다. 그러나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일에 대한 믿음을 요구한다. 율법은 요구사항을 만들고 우리에게 복종을 요구한다. 하지만 복음은 약속을 제시하고 우리에게 믿음을 요청한다. - 존스토트 -


[3:10-18]

(3: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3: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3: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3: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3:15) 형제들아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도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3:16)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3:17)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기하지 못하고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3:18)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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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간에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로 잠간 쉬었던 < 갈라디아서 >를 다시 묵상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서신중에서 가장 앞선 기록인 갈라디아서는 초기 사도바울의 복음의 열정과 그의 뜨거움을 옅 볼수 있는 서신입니다.

 

 갈라디아 지역에 있는 복음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이상 어리석게 너희가 유대의 전통이나 할례나 율법에 매여 있지 말고 복음이 주는 참된 자유를 맛보고 그렇게 담대하게 살아가기를 도전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전체의 6장을 3부분으로 나누어서 복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1-2장은 < 은혜의 복음을 변호함

3-4장은 < 은혜의 복음을 설명함 >

 5-6장은 < 은혜의 복음을 적용함 >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3장은 사도바울이 < 은혜의 복음을 설명함에 있어서 모세의 율법보다 먼저 있었던 아브라함의 믿음, 아브라함의 의롭게 여김을 가지고 복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방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그 이방에서 복음을 받아들고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계속 고민스럽게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우선인가? 아니면 유대인이 되는 것이 먼저인가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중요 한가 ? 아니면 유대인으로 사는 것이 중요한가 ? 였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도 율법을 버릴 수가 없었고 그 율법을 버리는 것이 그들에게 상당히 위험한 결정이었습니다. 심지어 유대에서 가만히 들어온 거짓 교사들이 그들의 마음을 충동질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면서 율법을 지켜야한다고 율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그들에게 찾아오는 것이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은혜의 복음을 설명하면서 모세의 율법보다 먼저 있었던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가지고 옵니.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게 여겨진바 된 것은 그에게 율법의 행위로 있어서 되어진 것이 아니라 < 그가 믿는 믿음 때문이라 >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 율법은 죄를 다루기 위한 것이지 의를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율법은 아브라함보다 훨씬 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훨씬 뒤에 만들어진 율법이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보다 먼저일수가 없다는 것이 바울의 핵심적인 논리입니다. 그래서 율법보다 우선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기능은 죄를 드러내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세상에서 구별된 의식과 질서를 따르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율법의 궁극적인 기능은 죄를 지으면 초래하게 되는 심각한 저주가 무엇인지?를 알리고 경고하는 데 있습니다. 결코 율법을 행함으로 의를 이루거나 믿음을 갖지는 못합니다. 그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율법입니다


오로지 율법의 기능은 < 믿음을 돕기 위한 것 >입니다.


율법은 인간적 성취를 요구한다. 그러나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일에 대한 믿음을 요구한다. 율법은 요구사항을 만들고 우리에게 복종을 요구한다. 하지만 복음은 약속을 제시하고 우리에게 믿음을 요청한다. - 존스토트 -



율법은 정의의 법정이지만 복음은 은혜의 보좌이다. - 조지 스윈녹 -

 

오늘 본문에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3: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그 율법의 저주를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대신 담당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어져야할 율법의 저주를 속량하셨습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감당해할 율법의 저주가 없어진 샘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율법으로 의롭게 되는 길를 따르지 않고 우리를 위해서 율법을 완성하시고 율법의 저주에게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이 열렸음을 알아야합니다.

 

우리에게 놓여있는 2가지 루트(ROUTE)가 있습니다.

율법을 다 지키며 의롭게 되고 그렇게 사는 루트가 있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고 그렇게 사는 루트가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율법을 통해 의롭 되는 사람이 없으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사람은 있습니다. 바로 그것을 아브라함의 믿음과 의롭게 여김이 보여주었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율법의 저주를 뒤집어 쓰시고 죽으신 예수님이 그 새롭고 산길을 여셨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저주아래 묶어 놓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덕분으로 예수님의 덕택에 그 율법에서 빠져나와서 그 은혜와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놀라운 주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묵상하며 도전 받는 것은

우리의 믿음은 율법보다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의롭게 됨은 율법의 행위보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참된 복은 율법안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3가지 사실이 우리의 복음의 참다운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덕분에게 우리에게 주어져야할 율법의 저주가 치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이 우리도 약속을 유업을 받은 아브라함의 자녀와 복을 누리는 자들로 우리를 끼워주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십자가 사건은 율법아래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주를 감당하는 사건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서 저주를 받으신 것이다. 이 방법으로 우리를 되찾아 왔습니다. 율법의 저주를 끊기 위해서 그분이 스스로 저주를 받는바가 되고 저주를 받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다는 것은 그렇게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저주를 담당하고 뒤집어쓰시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를 진다고 말할 때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박힌다고 말할 때 그 의 의미는 율법의 저주를 다 담당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죄를 뒤집어 쓰고 많은 이들의 유익을 위해서 살아야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저주받으심이 오늘 우리에게 복받음으로 이어집니다. 구약성경에서 < 저주와 복 >은 항상 대조를 이루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됩니다. 오늘 사도 바울도 우리에게 예수님안에서 이루어진 < 저주와 복 >에대한 분명한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각각 하나님의 약속과 계명에 대한 순종이 복을 위한 필요조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갈라디아 교회에게는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에 대한 순종이 아니라 나무에 달려 저주가 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구원(이신칭의)의 차원의 복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9-10절의 복과 저주의 현재적 특성은 구원의 차원이라기보다는 현재적인 삶과 관련된 복과 저주의 차원을 말한다.

 

우리에게 <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게 되는 > 놀라운 일들이 주어졌습니다.


(3: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3: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율법의 저주가 아브라함으로 복으로 바뀌는 그 과정속에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복을 누리고 있음을 확증해주시는 것이 바로 <성령의 약속>입니다.

 

성령께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을 개런티<guarantee>해주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약속의 복을 워런티<Warrantee>해주십니다.

 

이것이 오늘 예수 그리스도을 믿고 성령님을 받아들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복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율법보다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의롭게 됨은 율법의 행위보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참된 복은 율법안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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