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7/01/2014 새벽묵상설교 
  • 마가복음 1:1-15
  • 예비된 목음의 시작 


 @ 설교본문중 그림은 인터넷 갈무리함 


제목 :  예비된 복음의 시작 <마가복음 1:1-15>


[1:1-15]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1: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1: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1: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1: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1:6)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1:7)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1: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1:9)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1:10)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1:12)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1:13)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1: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지난주까지 <말라기>서를 묵상하고 이제 7월부터 새로운 본문인 신약에 <마가복음>을 묵상하게 됩니다. 특히 복음서를 묵상할때면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한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 복음 >입니다.

 

우리가 흔히 < 마태복음 / 마가복음 / 누가복음 / 요한복음 >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는 이 4복음서의 원래의 이름은 < 마태가 전한 복음, 마태에 의해서 전해진 복음 >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오늘 묵상본문인 <마가복음>역시 < 마가가 전한복음, 마가에 의해서 전해진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주시면서 하나의 내용의 4개의 앵글을 갖고 있는 통일되고 다양한 복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각각의 복음서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주목하고 강조하고 전하고 있는지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 마태복음은 왕으로 오신 예수, 마가복음은 고난의 종으로 오신 예수, 누가복음은 인자이신 예수, 요한복음은 말씀(로고스)이신 예수 >에 대한 복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우리가 살펴 보게될 <마가복음>은 이러한 복음서중에서도 <오리지날 복음>이라고 할 만큼 복음서 중에서 복음에 대해서 가장 중요하고 액기스같은 것들을 간결하고 핵심적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기록연대를 보아도 4복음서보다 가장 먼저 기록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은 이 < 마가복음 >< 무엇보다 우선된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사복음서중에서 가장 짧습니다. 마태복음의 5/8정도의 분량입니다. 그래서 흔히 초신자나 성경을 처음 대한 이들에게 권하는 복음서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 마가복음의 또하나의 별명이 < 선교의 복음 >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나라에 초기 전달되어진 복음서도 바로 <마가복음>이었습니다. 일명 쪽복음이였죠.  



그리고 마가복음의 < 고난의 복음 >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마가복음 초기의 예수님의 탄생과 사역들을 간략 간략하게 생략한채 본론의 핵심을 달려가기 위해서 마치 숨가쁘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중 하나가 < , 즉시 >이라는 말이 41번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비유에 대해서 5번나오고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 사건은 15번 나옵니다

의도적으로 마가복음서는 예수님의 행적중심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행적중에서 그가 말하고 싶은 한가지 주제가 있었습니다.


마가가 말하고 싶은 본론의 핵심은 바로 < 예수의 고난, 고난받으로 오신 예수님, 십자가에 죽으러 오신 예수님 그리고 죽임당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을 보여주기 위해서 < 거두 절미 >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서에 분량중에 가장 많은 부분이 바로 예수님의 고난에 대한 대목에 사용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것을 알수 있습니다.

 

오늘 마가복음의 1장의 서막을 열면서 

마가복음 11절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이 짧은 한 구절속에서 <마가가 전한 복음>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마가가 전하고 싶었던 복음의 주제는 2가지입니다.

첫째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둘째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시작하셨다.


오늘 본문을 유심히 살펴보면 <복음>과 관련하여 사용하고 있는 4개의 단어가 있음을 주목해볼 수 있습니다.

 

바로 < 시작 / 준비 / 전파 / 믿음 >이라는 단어입니다.

복음의 시작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복음의 준비는 구약의 이사야를 비롯한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요한에 이르기까지 예언되어서 오늘 성취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의 전파는 마지막 죄사함을 받게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한 선지자인 세례요한으로부터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성령의 

세례을 받으라고 전하는 예수님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복음의 믿음은 바로 이러한 에수그리스도의 초청을 받아 들이는

 우리의 반응입니다.

 

이러한 <복음의 시작/ 복음의 준비/ 복음의 전파/ 복음의 믿음>위해서 처음 등장하고 있는 복음의 메신저, 복음의 전달자인 3사람을 주목해볼수 있습니다.


바로 < 마가와 세례요한 그리고 예수님 >입니다.

 

1/ 오늘 마가복음의 시작에서 <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고 첫 대목을 기록하고 있는 <마가요한>입니다.


오늘 마가복음을 기록하고 있는 < 마가요한 >은 누구입니까?


바로 바나바의 사촌 그 <마가 요한>, 제자들에게 집회장소를 제공했던 그 <마가요한>, 사도행전 전도여행에 그 <마가 요한>입니다.

바울의 일차전도여행에 그 전도여행을 견디지 못해 자기 집으로 돌아간 그 마가요한, 그 일 이후부터는 베드로의 곁에서 베드로의 통역자로 베드로의 비서와 같이 있었던 그 마가 요한. 바울이 마지막에 보고 싶어서 데리고 오라고 했던 그 마가요한이 맞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심지어 주께서 잡히시던 밤에 한 청년이 따라오다가 벌거벗은 채 도망쳤다고 기록하고 있는 그 청년이 바로 <마가요한>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마가요한>이 오늘 <복음의 시작>을 알리고 있습니다.


 <겁쟁이 같고 신실하지 못한 사람>은 그 부족한 마가요한의 입을 통해서 <복음서>의 첫 번째 계시가 쓰여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마가복음> 11절을 묵상하면서 놓치지 말아야할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은 복음을 감당할만한 자격이나 능력이나 커리어가 있는 사람만이 전할수 있는 복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실패하고 능력 없고 어딘가 부족하지만 다시금 회복되고 예수의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이 전할수 있는 그리고 <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는 분명한 증언 >을 할수 있는 사람이면 됩니다.

 

많은 학자들은 <가요한>이 처음 복음의 시작을 알리면서 <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고 말한 것은 그가 <베드로의 비서로써 통역자로써> 베드로의 고백을 그대로 옮겼거나아니면 그도 역시 베드로의 설교를 통역하면서 베드로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아마도 마가요한은 <베드로의 복음을 대신 적어주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 <마가복음>에서 <마가가 전한복음>은 과거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과거시제>로 쓰여있지 않고 < 현제시제 >로 쓰여있습니다. 특히 < 과거의 사건을 현재 시재로 표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목격자로써 눈으로 보고 그것을 현재의 일로 증언하고 있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복음은 무결점의 사람에게 어울리는 말씀이 아니라 실패하고 좌절하고 연약한 우리도 증언할수 있는 하나님의 계시라는 사실입니다
.

 

2/ 복음의 시작에서 신약과 구약의 복음의 다리를 잇고 있는 <세례자 요한>을 주목해서 봅니다. 우리가 흔히 세례요한은 < 세례자 요한 또는 세례를 주는자 요한 >이라고 해야 할것입니다.

공교롭게 <요한>이란 이름이 또 등장합니다. <마가요한/세례자요한>




세례자 요한의 등장은 구약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가는 말라기 31절과 이사야 403절을 인용하면서 이 예언들이 세례요한을 통해서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3: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여기서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 복음의 시작 >은 갑자기 등장한 < 예수 >를 통해서 시작된 생뚱맞은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갑작스러운 사건이나 예기치 못한 해프닝이 아닙니다


바로 구약의 선지자들로부터 <예언되고> 오늘 세례자 요한를 통해서 <예비>되었던 바로 < 준비된 시작 >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의 시작인 비로 준비된 시작이라는 것은 <예언과 예비>를 통해서 이루어진것입니다. 바로 수많은 선지자들의 예치는 소리들이 있었고 그 소리가 세례의 요한 의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이 예언을 통해서 주의 길이 예비되어졌고 세례 요한가 죄사함의 회개의 운동이 바로 예수님의 등장을 알리는 일종의 < 예고편 >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볼 것은 <복음의 시작>은 바로 <죄사함의 회개>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례요한 시대에 회개의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다른말로 복음의 전달될 마음밭이 준비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죄에 대해서 민감해지고 죄를 자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복음을 받아들이 준비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 바로 주의 길을 예비하는 방법은 한가지 이 세상 속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죄에대해서 민감해하고 

죄를 자각하기 시작하는 무브먼트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

우리의 죄에 대한 민감한 반응은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리고 회개하게하고 다시금 거듭 태어남의 증거인 <세례>받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묵상해 보아야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주의 길, 복음의 길을 예비할만한 

죄에 대한 민감함과 회개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는 교회는 얼마나 주의 길을 예비하는데 

합당한 죄사함과 회개의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3/ 복음의 시작에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전하고 믿음으로 초청하고 있는 < 예수 그리스도 >를 만납니다.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이는 일은 < 하나님 나라 >를 경험하는 일이면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믿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전하신 복음 바로 < 천국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었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원리과 통치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원리과 통치입니다.


이것은 <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때 >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인식은 < 하나님 나라 >에 대한 인식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임재와 회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임했고 아직 임하지 않은 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매일 같이 회개하고 매일같이 

복음을 다시 복음을 받아들이기 원합니다.


최근에 한국에 < 다시 복음앞에. RETURN TO THE GOSPEL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오늘 이 시대는 < 하나님의 나라 >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의 변질되었기 때문이고 복음의 세속화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서 필요한 것은 < 다시 복음앞에, 예수 다시보기 >를 해야합니다. 교회가 복음으로 세상을 압도하지 못하고 세상이 교회를 압도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알려야합니다. 죄의 심각성을 알려합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외쳐야합니다.


오늘 우리는 점점 더 복음을 외면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점점 더 복음이 변질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점점 더 복음을 들어도 변화하고 있지 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어떤 복음을 붙잡아야 할지?

무엇이 복음의 본질인지? 심각하게 생각해야합니다.


오늘 본문에 놀랍게도 14절에

(1: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요한이 잡힌후 바로 이어서 예수님이 요한이 전한 복음을 다시금 전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자신이 복음을 가져왔음을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초래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잡힌후 예수님이 전하셨다면...

예수님이 잡히고 그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성취하시고 완성하신 그후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우리도 역시 <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여기 왔으니 회개하고 예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으라 >고 외쳐야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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