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가복음 6:45 - 56> 
  • 당황스러운 일 당연한 믿음 
  • 07/17/2014 새벽큐티 설교 

@ 설교문의 그림 인터넷 갈무리함

2014 GSC 새벽 큐티 설교 <마가복음 6:45 - 56>


제목 : <마가복음 6: 45 - 56> 당황스러운 일 당연한 믿음


[6:45-56]

(6:4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6: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6: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6: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6:49)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6:50)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6:51)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6: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6:53)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

(6:54)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신 줄을 알고

(6:55)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 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다는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째로 메고 나아오니

(6:56)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제목 : 당황스러운 일과 당연한 믿음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 오병이어 /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5천명을 먹인 놀라운 사건이후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모습과 제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일명 < 오병이어 그 이후 >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 오병이어 >라는 놀라운 이적과 사건이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먼저 배를 타고 < 건너편 벳새다 >로 보내십니다. 여기서 < 건너편 벳새다 >라는 표현은 정확한 번역은 아닙니다. <건너편 벳새다>가 아닌 < 벳새다 건너편으로>라고 번역해야합니다.

 

벳새다는 갈릴리 호수의 북동쪽 해안 지역에 있고 그 < 벳새다 건너편으로 >간곳은 오늘 본문은 < 게나사렛 땅 >으로 가셨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갈릴리 호수의 북서쪽에 있는 가버나움을 포함한 넓은 지역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예수님은 너무다도 파격적이고 놀라운 < 오병이어 >의 일이 일어난 훈에 먼저 제자들을 그 자리에서 떠나도록 보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조용히 산으로 올라가 기도하십니다.


(6:46)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볼수 있는 의문이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그렇게 급히 서둘 듯이 제자들을 먼저 보내야했을까

왜 예수님은 오병이어 사건이 있은 이후에 서둘러서 아니면 

마치 사역을 잠시 멈추듯이 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셔야만 했을까?


오늘 이 짧은 2구절속에 담겨있는 의미들을 묵상해봅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해볼수 있는 것은 이 < 오병이어 > 사건은 그것을 눈으로 목격했던 사람들에게나 그리고 그 사건을 실행하는데 사용되었던 제자들에게나 어떤 의미였을까?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 오병이어 > 사건은 그것으로 눈으로 목격한 사람들에게나 제자들에게나 가히 상상할수 없는 놀라움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일들이 들이 눈앞에 벌어졌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믿음으로만 상상할수 있고 이해될수 있는 일들이 보았습니다.

믿기지 않을수 있는 파격적이고 획기적인 사건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나 제자들이 한번도 보지 못한 방식으로 그들 오천명을 먹이셨고 심지어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의 <한끼 식사>를 해결해주셨습니다. 


그리고도 12광주리가 남았습니다. 그것을 보았고 그것을 생생하게 목격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이 오병이어 사건은 그 이적을 행하신 예수님이나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사람들의 환호과 관심을 받기에 충분한 사건이었습니다


사건은 순쉽간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퍼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도 보았고 예수님이 무엇을 할수 있는지도 보았습니다.

 

늘 먹을 것에 굶주려 있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값이 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예수님께 찾아오는 것이었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면 빵한조각 얻어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이 < 오병이어 >의 기적에 도취될수 있는 제자들에게 먼저 배를 태워 보내십니다. 그리고 자신은 <기도의 자리>로 들어가십니다.

 

저는 이 대목을 묵상하면서 <? 예수님은 기도하러 가셔야만 했을까? >을 생각하면서 본문에는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예수님의 탁월하신 중심과 동기를 옅볼수 있습니다.

 

<오병이어>사건이후에 사역의 영광을 자기가 취하지 않으시고 사역의 결과에 도취되어 있지 않고 사람의 인기와 환호를 즐기지 않으시는 예수님. 어떤 놀라운 사역의 결과가 있든지 간에 자신의 개인적인 기도의 자리로 나아감으로 그 본질을 놓치 않으시려는 예수님의 이면의 중심을 한번 옅볼수 있습니다.


항상 예수님의 사역의 시작도 사역의 마무리도 <기도>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어떤 사역적인 전환점을 이루어질 때마다 < 기도하러 가신 예수님. 기도하셔야만 했던 예수님 >에 대해서 간결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배워야하는 예수님의 기도생활의 모범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러한 짤막한 < 오병이어 그후>를 기록한 후에 오늘 본문 2가지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밤사경 곧 새벽 3시즈음에 파도치는 바다 위를 걸어 오시는 사건과 아무데나 예수님께서 들어가시는 마을이나 도시나 촌에서 예수님은 옷가에 손을 대기만 해도 나음을 입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여 묵상할수 있는 대목은 예수님을 유령으로 보고 두려워서 당황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하시는 예수님은 음성과 어쩌면 의도적으로 제자들의 심정으로 기록하고 있는 52절의 말씀입니다.

 

(6: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배를 타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에서 3가지로 당황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들은 예상치 못한 파도가 일고 있는 상황에... 예상치 못하게 물위를 걸오시는 유령같이 보이는 예수님의 모습에.. 그리고 예수님이 오셔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파도를 잠잠케 하시는 능력에 당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당황하셨습니다. 무엇에 당황하셨느냐 ?

그 놀라운 오병이어 사건을 경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놀라운 일을 잊어 버리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해져 있는 <제자들의 마음과 믿음>에 당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한국에 게그프로그램에서 유행했던 유행어가 있습니다.

< 당황하지 않고.. 00 하면서 끝 >이라는 용어입니다. 한번 들어 보셨는지요?

개그콘서트라는 프로그램에 < 깐죽거리 잔혹사 >라는 코너에서 <조윤호>라는 신인 게그맨이 나와서 잠깐 나와서 하는 행동과 대사가 흥미롭고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 당황하지 않고... 무엇을 해서.. 모든 상황을 끝낸다 >는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제자들의 반응을 기록하고 있는데 < 놀랐다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로 < 당황 >하고 있다는 것이죠..

 




http://www.youtube.com/watch?v=4hl-mmplS0o


제자들은 그들을 위협하는 파도에 그리고 그들에게 유령처럼 보이며 다가오는 예수님의 모습에 그리고 그 일을 한번에 잠재우시는 예수님은 능력에 당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놀라운 오병이어 사건이후에 배를 타고 건너면서도 예수님을 찾지도 예수님을 부르지 않고 있는 믿음없이 무디어 있는 제자들의 마음의 상태에 당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하며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이것 하나는 알기를 원하셨을 것입니다.


< 당황스러운 일이 예수님과 함께하면 당연한 일이 된다

   당황하지 안하고 예수님을 찾으며 기도로 끝 ! >

예수님은 오병이어 사건이후에 사람들의 놀라운 반응에 당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일후에 당황하지 않고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로 그일을 끝내고 계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파도에 당황했고 예수님에 당황했고 그들이 예수님 때문에 해결되지만 여전히 어떤 기도도 어떤 예수님을 믿는 믿음도 없었습니다. 그냥 당황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당황스러운 일이 생길 때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고 그일을 끝내고 계십니까? 너무나도 아쉬운 것은 < 우리의 삶에 당황스러운일이 생길 때 우리가 믿음으로 보고 듣고 깨달은 믿음의 방식대로 살지 않고 우리가 익숙하게 살아왔던 보고 듣고 믿는 자기 방식대로 살게 됩니다. >

 

<도루묵같은 신앙>입니다.

오늘 마가복음 52절에 이러한 제자들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6:52)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그런데 이러한 제자들의 믿음과는 반대로 게네사렛 동네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그들이 오병이어 사건을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거기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그냥 예수의 소문만으로도 <예수님의 능력 행하심을 믿었습니다.>

 

봐도 잊어버리고 확신하지 못하고 못 믿는 당황스러운 믿음

보지 않고 기억하고 확신하고 믿는 당연한 믿음

이러한 대조적인 믿음을 봅니다.

[6:53-56]

(6:53)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

(6:54) 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신 줄을 알고

(6:55) 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 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다는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째로 메고 나아오니

(6:56)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

건너편 게네사렛 땅에서는 예수신 줄 <알아 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어디 계신 줄을 <찾아 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예수님이 어디계신지도 찾지도 않고 예수님의 도움을 간구하지 않은 제자들의 모습

그동안 그들 곁에 계시고 예수님이 그들 곁에 함께하시는데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잊어버리고 마음이 둔해져 있는 제자들의 모습

바로 당황스러움에 머물러 있는 제자들의 믿음입니다.

제자들은 주님께 놀랐다. 그래서 주님을 따랐다.

제자들은 주님을 잊었다. 그래서 주님을 못 알아봤다.

제자들은 주님을 진정으로 몰랐다. 그래서 주님을 부인했다.

 

우리가 당하는 당황스러운 일을 어떻게 당연한 믿음의 반응으로 바꿔낼 것인가?가 바로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제자임을 증명하는 일입니다. 주님의 제자는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수님을 찾고 예수님께 간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예수님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기도하면서 그 당황스러운 일을 끝낼수 있는 당황하지 않는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바로 그것에 주님이 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모잘것없는 < 주님이 내 옷자락만 만져주시기만 하면... >이라는 이 믿음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 당연한 믿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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