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라 1:1-5 ; 2:1-2>
  • 100년동안 다시 세우는 예배공동체 
  • 09/16/2014

@ 설교문 그림은 인터넷 갈무리함 


2014 GSC 새벽 큐티 설교 <에스라 1:1-5, 2:1-2>


제목 : <에스라1:1-5, 2:1-2> 다시 세우시는 예배공동체




 

[에스라11-5]

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3.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4.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머물러 살든지 그 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그 밖의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 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에 세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5.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 에스라 21-2]

1. 옛적에 바벨론  느부갓네살에게 사로잡혀 바벨론으로 갔던 자들의 자손들 중에서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 도로 돌아와 각기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간 자

2. 곧 스룹바벨 예수아 느헤미야 스라야 르엘라야와 모르드개와 빌산 미스발 비그왜 르훔 바아나 등과 함께 나온 이스라엘 백성의 명수가 이러하니





제목 : 100년동안 다시 세우시는 예배 공동체

 

지난주간까지 <에스더서>가 끝나고 이번주부터 <에스라서>본문이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에스라서의 전체적인 개관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1장과 2장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흔히 <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는 동시대의 상황을 배경으로 각기 다른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살펴볼수 있는 말씀입니다. 


< 에스더 느헤미야 에스더 >를 연대기적으로 배열한다면 < 에스라 - 에스더 - 느혜미야 >로 재배열할수 있을 것입니다.


주로 이 세가지 말씀은 이스라엘의 1,2,3차 포로귀환이 진행되었던 5세기에 일어난 사건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원래 히브리 원문 성경에는 < 에스라와 느헤미야 >가 한 권으로 책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bc 538-433년까지 약 100년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바사왕 고레스왕부터 캄비아스, 다리오, 아하수에로, 아닥사스다왕까지의 여러대의 걸친 페르시아 제국의 세속의 역사와 함께 쓰여지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주된 이야기와 사건들의 배경은 <3번에 걸친 바벨론 포로 귀환>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알다 시피 이스라엘과 유다백성들이 이방나라 <앗수르와 바벨론>에 멸망합니다.


이 멸망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앗수르 마져도 바벨론 대제국앞에 무릎을 꿇고  그 사이에서 이스라엘과 유다백성들은 3번에 걸쳐서 포로로 잡혀갑니다.

그리고 바벨론은 바사나라 곧 페르시아 대 제국에 의해서 멸망하게 됩니다. 


바벨론에서 70년의 포로생활을 한후에 3번에 걸쳐서 포로귀환이 이루어집니다. 1차귀환은 < 스룹바벨 >과 함께, 2차 귀환은 < 에스라 >와 함께, 3차 귀환은 <느헤미야>와 함께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는 3번에 걸쳐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것은 < 바벨로 유수 >라고 

말합니다.



 3번에 걸쳐서 바벨론에서 돌아온것을 < 바벨론 포로 귀환 >이라고 말합니다. 공교롭게도 3번에 걸쳐서 잡혀가고 3번에 걸쳐서 돌아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과 유다백성이 구사일생으로 70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올수 있는 것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손길과 구원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역대기서를 보면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의 예루살렘의 파괴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는 장면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끝맺고 있습니다.

 

역대하 36:21-23

21.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

22.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3. 바사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이 역대하 마지막장 마지막절은 고스란히 에스라 11-3절에 다시 반복하고 있습니다.

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2.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역대기 기자는 유대인들이 바벨론을 떠나 귀환하는 문제를 미결상태로 남겨놓은 반면에 에스라는 그 귀환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속에는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손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예레미야를 통해서 자신의 백성이 돌아올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예레미야 25:11-13

11.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1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

13. 내가 그 땅을 향하여 선언한 바 곧 예레미야가 모든 민족을 향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라

 

예레미야 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그리고 이사야 451절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돌아오는 일에 <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종 >의 역할을 바사 나라 < 고레스왕(Cyrus) >이 감당할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45:1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오늘 에스라서에 기록되어 있는 바벨론 포로 귀환의 사건은 갑자기 일어나는 행운같은 일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고 그것을 이루어가시는 구속의 역사와 성취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속의 시간표가 구속의 시간표로 바뀌는 장면입니다.


실패의 시간표가 은혜의 시간표로 바뀌는 역사입니다. 


우리는 에스라서속에 담겨있는 <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와 성취 >를 주목해서 보아야 합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속의 역사속에서 자기 백성을 끝까지 보호하시고 끝까지 자신이 하신 약속을 지키시는지를 우리는 주목해서 보아야 합니다.

 

에스라서 11절을 읽으면서

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


< 바사왕 고레스 원년에 >에는 대목은 세속의 역사적인 배경을 설명해줍니다. 그러나 <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라는 대목에서 이 세속의 역사를 도구삼아 자신의 구속의 역사를 써내려 가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손길과 계획을 주목해서 보아야합니다.

바로 이 대목이 세속사가 구속사가 바뀌는 대목입니다. 세속의 주인공이 하나님의 선한 일에 주인공이 되는 대목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상적인 시간과 일어나는 사건들 그리고 상황들>은 그냥 세상적인 시간과 사건들이 아님을 명심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알고 믿고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우리에게 <일상처럼 주어진 시간과 일어나는 사건들 그리고 상황들>을 구속의 은혜와 고백으로 바꿔내는 능력이 있어야합니다.


우리의 일상을 구속의 묵상으로 바꾸는 능력

우리의 시간을 구원의 시간으로 바꾸는 능력

우리의 상황을 구원의 감격으로 바꾸는 능력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을 구속사로 다시 써내려가는 능력입니다.

 

에스라서는 바로 그냥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일어나는 포로 귀환의 사건들만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포로 귀환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바벨론의 포로 유수의 70년의 시간, 그리고 그들이 자신에게 약속했던 그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기까지 100년의 시간을 어떻게 우리는 바라보아야 할까요?

 

먼저 우리는 왜 ?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심판을 당했나를 생각해보아야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철저하게 하나님께 버림 받는 심판의 고통을 당했던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그것은 < 그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실패한 예배공동체였습니다. 실패한 예배자들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이 자부했던 예배의 처소인 성전도 철저하게 파괴되고 맙니다.

그들이 범죄와 가증한 태도로 하나님만을 예배하지 않았습니다. 이방나라를 의지하고 이방신을 섬기고 이방사람들과 교제하는 이들이 하나님이 참을수 없는 심판을 만들게 된것입니다. 스스로 웅덩이를 판격이 되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는 바로 < 예배의 실패 >였습니다. 제사장들이 타락하고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우상을 섬겼고 가증한 일을 행했습니다. 실제로 포로로 잡혀갈때보면 대부분이 < 제사장들과 지도자들, 귀족들이었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이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러한 70년의 고통과 고난의 시간이 지나고 그들이 돌아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그들 다시 돌아오게 하셔야 했을까요?


바로 그 이유는 < 그들이 다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보기 원

하셨기 때문입니다. >


나님께서는 바사왕 고레스의 호의와 조서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약속하고 주었던 땅으로 돌아가게하십니다


그 주된 이유는 < 다시 예배공동체를 세우셔서 다시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예배자들로 세우기 위함 >이었습니다.


스룹바벨과 에스라, 느헤미야가 돌아와서 가장 먼저한 일은 바로 < 성전을 재건 >하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예배 공동체를 다시는 세우는 일입니다.


실제로 에스라1장에 보면 바사왕 고레스(키루스)< 성전 재건을 허락하고 지원하고 있습니다. > 이것은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 이방신 말둑을 섬기고 있는 바사왕이 자신의 신도 아닌 다른 나라 신을 섬기도록 허락하는 일은 가히 상상할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바사왕 고레스의 유화적인 정책과 태도를 사용하십니다. 고레스의 자비로운 통치의 이면에는 < 하나님의 감동 >이 있었습니다





오늘 에스라 1장은 분명히 그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사왕 고레스왕의 이면에 일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이 성전이 재건되고 제사가 재확립됩니다.


그리고 에스라 1장 마지막 절을 보면 놀랍겠도 빼앗겼던 성전기물들을 가지고 가게하고 성전을 건축하는 자금을 지원받게 됩니다. 어찌 이런일이 ... 세상에 이런일이... 믿거나 말거나 ...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이것 역사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에스라 2장에 언급되어 있는 포로귀환자 명단을 면밀히 보면 < 제사장들, 제사에 수종드는 자들, 그리고 성전에 허드렛일을 하는 이방족속 느디니사람들 >이 주된 사람들 42,350명이 돌아오게 됩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성전건축과 제사를 회복하시는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할 사람들 입니다.





그러한 사람중에 < 아론의 16대손, 스라야의 아들, 학사겸 제사장인 에스라 >를 통해서 그 일들을 주도하게 하십니다. 바로 에스라를 통해서 예루살렘의 성전을 재건할 뿐아니라 이스라엘 다시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공동체로 재건하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다.

이스라엡 백성의 실패는 < 예배의 실패 >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은 < 예배의 재건>에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에스라서를 통해서 주목해서 묵상해야할 것은

1/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이 기뻐하는 새성전을 다시 세우고 계시는가?

2/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예배를 받기 위해 남은 예배자들를 구원하시는가?

3/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이 원하시는 예배공동체를 세우시는가?

 

이것을 주목해서 보아합니다.

다시 세우는 성전 재건 


다시 모으시는 예배자들 


다시 일으키시는 예배공동체

이것이 에스라서를 묵상하는 핵심방향입니다.

우리는 반대로 우리는 이렇게 적용질문을 만들어 볼수 있습니다.


1/ 나에게 무너져있고 실패하고 있는 성전은 없는가?


2/ 나는 마지막까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자인가?


3/ 나의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공동체가 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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