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라 3:1-13>
  • 감격의 시대 : 다시 세우는 예배 




  • @ 설교문 그림은 인터넷 갈무리함  




2014 GSC 새벽 큐티 설교 <에스라 3:1-13>


제목 : <에스라 3:1-13> 감격의 시대 : 다시 세우시는 예배



[에스라31-13]

1. 이스라엘 자손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일제히예루살렘에 모인지라

2.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의 형제제사장들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들이 다 일어나 이스라엘 하나님의제단을 만들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번제를 그 위에서 드리려 할새

3.무리가 모든 나라백성을 두려워하여 제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서 아침 저녁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4. 기록된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매일 정수대로 날마다 드리고

5. 그 후에는 항상 드리는 번제와 초하루와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의 번제와 사람이 여호와께 기쁘게 드리는 예물을 드리되

6. 일곱째 달 초하루부터 비로소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으나 그 때에 여호와의 성전 지대는 미처 놓지 못한지라

7. 이에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또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기름을 주고 바사왕 고레스의 명령대로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해변까지 운송하게 하였더라

8.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이른 지 이 년 둘째 달에 스알디엘의 아들스룹바벨과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다른 형제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사로잡혔다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자들이 공사를 시작하고 이십 세 이상의 레위 사람들을 세워 여호와의 성전 공사를 감독하게 하매

9. 이에 예수아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형제들과 갓미엘과 그의 아들들과 유다 자손과 헤나닷 자손과 그의 형제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 일꾼들을 감독하니라

10. 건축자가 여호와의 성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자손 레위 사람들은 제금을 들고 서서 이스라엘 왕다윗의 규례대로 여호와를 찬송하되

 11. 찬양으로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12.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13.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


 

제목 : 감격의 시대 : 다시 세우는 예배

 

오늘 본문은 이제 본격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온 본연의 목적인 <성전 재건의 준비>가 시작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 에스라서의 기록과 말씀의 내용을 후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떻게 유대인들이 이 에스라서를 읽었을까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아마도 유대인들은 이 에스라서를 읽고 이방나라 페르시아로부터 돌아온 유대민족과 그들이 이루어낸 대 역사 성전재건의 사건이 그들에게는 < 감격 >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에스라서에 성전재건의 기록들과 역사들은 유대인들에게는 < 감격의 시대 >을 알게하는 그런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오늘의 에스라 3장의 장면을 보아도 얼마나 감격적인 일인지 옅볼수 있습니다.


이방나라에 잡혀가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민족이 모두다 없어질 위기에 처했었습니다. 흔적도 없이 나라가 사라졌고 그들이 살던 땅도 빼앗겼습니다. 그들의 영적인 자존심이요 핵심가치였던 성전마처 처참하게 느부갓네살의 손에 의해서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에게 성전이 무너졌다는 것은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게임오버, 디엔드 >를 알리는 신호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마지막희망마져 사라지고 그들의 눈앞에 무너진 성전은 < 자신들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듯한 절망감 >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하나님이 그들에게 약속하여 주신 약속에 땅에 살수 없도록 포로로 잡혀갑니다. 심지어 그들이 이름조차도 바벨론식 이름으로 바꿔야만했습니다


어제 2장의 본문에 보면 그들의 족보도 모른 사람들이 많았고 심지어 제사장들의 가문조차도 그들의 이름이나 뿌리를 밝히지 못하고 불분명해서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는데 제외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그들이 포로로 잡혀간 70년의 세월은 < 잊혀진 세월 잃어버린 시간 >이었습니다. 페르시아의 식민지의 백성으로 살아야 했고 그들의 정체성을 상실했던 < 정체성의 위기요, 상실의 시대 >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 감격의 시대 >가 도래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도움과 선한 손길로 그들은 이방땅 페르시아에서 기적같이 돌아오고 됩니다. 그러고 7월이 되었습니다.


최근의 국제 뉴스중에서 가장 뜨거운 뉴스가 < 스코틀랜드 >의 독립투표에 관한 뉴스일것입니다. 아마도 오늘 오전이면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 연방에서 독립하느냐? 마느냐?가 투표로 결정됩니다. 실제로 잉글랜드는 < 엥글로 색슨족 >입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는 < 캘트족 >입니다. 같은 나라이지만 실제로는 민족이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스코틀랜드는 영국으로 독립을 원했습니다. 서로 다른 민족이기 때문이죠. 아마도 스코틀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으로 결정하게 되면 정말 < 감격적인 환희 >가 거리에 넘쳐 날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에 에스라 3장에서 돌아온 이스라엘백성들은 드디어 7월을 맞이합니다. 7월은 <일곱째달><다스리월>로써 유대인들이 1년중에 종교적으로 가장 거룩한 날로 여기고 있습니다. 71일은 나팔절, 710일은 속죄일, 722일은 초막절입니다. 아마도 제사장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이러한 거룩한 달을 맞아서 먼저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도록 결심을 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서 정착한 기간은 3개월동안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인 바벨론에서 팔레스틴까지 돌아오는 거리가 1.440킬로( 마일)미터 정도인데 그당시로는 걸어서와야 하기에 약 4개월 정도가 걸립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제 제사를 드리는 때가 9-10월 정도라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겨울철이 지난 봄경에 바벨론을 출발해서 4개월 정도 여행을 한 끝에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일제히 모여서 제사를 드리고 초막절을 지킨 것은 그들이 돌아온진 얼마되지 않아서 일것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토로 돌아온 뒤 약 3개월 후일것입니다.


 

그 기간을 보내는 동안 어쩌면 조심스러운 시간을 보냅니다. 새롭게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 집도 짓고 밭도 일구고 일단 먹고 살 일들을 했겠죠.. 그러다가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릅니다.

 

에스라 31- 2절에

1. 이스라엘 자손이 각자의 성읍에 살았더니 일곱째 달에 이르러 일제히예루살렘에 모인지라

2.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와 그의 형제제사장들과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그의 형제들이 다 일어나 이스라엘 하나님의 제단을 만들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한 대로 번제를 그 위에서 드리려 할새

 

3개월이 지난후에 각자의 성읍에서 살던 이들이 일제히 예루살렘으로 모입니다. 그 중심에는 < 제사장들인 예수아와 스룹바벨, 그의 형제들 > 있습니다.

어느 정도 먹고 살수 있을 말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여 단을 쌓고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고 모세의 율법대로 초막절을 지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와 3개월이 흐른 시점이 초막절을 지키는 시점과 맞았습니다. 오늘의 달력으로 말하면 9-10월즘이 되겠죠.


조금 재미있게 표현하면 < 바벨론에서 돌아온 후 3개월, 10월의 어느 멋진날에 제사를 드리고 단을 쌓습니다. >


다윗 집안의 출신인 스룹바벨은 앞쪽으로 나서게 됩니다. 대제사장 예수아(여호수아)와 함께 그는 제단을 그 본래 있던 자리에 다시 세울 책임을 맡습니다. 놀랍게도 솔로몬의 시대에 솔로몬의 성전이 완성되고 봉헌될때가 때가 바로 10월의 어느날 초막절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우리교회 설립주년도 10월 이네요..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 감격의 시대 >를 보내고 있습니다

다시금 회복되고는 제단을 바라보면서

다시 드려지는 제사의 향기를 맡으면서

다시 지켜지는 은혜의 절기를 지키면서

그리고 다신 기초가 놓아지고 있는 임재의 성전을 바라보면서

예배가 회복되어지는 감격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는 감격만은 있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자신의 땅을 돌와왔지만 그땅을 차지하고 있는 < 사마리아 사람들 >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에스라 33-4

3.무리가 모든 나라백성을 두려워하여 제단을 그 터에 세우고 그 위에서 아침 저녁으로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며

4. 기록된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켜 번제를 매일 정수대로 날마다 드리고

5. 그 후에는 항상 드리는 번제와 초하루와 여호와의 모든 거룩한 절기의 번제와 사람이 여호와께 기쁘게 드리는 예물을 드리되

6. 일곱째 달 초하루부터 비로소 여호와께 번제를 드렸으나 그 때에 여호와의 성전 지대는 미처 놓지 못한지라

 

그러나 그 두려움도 내려놓고 하나님께 제단을 세우고 번제를 드리며 규례대로 초막절을 지키면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감격과 환희는 우리의 삶에서 드리는 예배의 현장에서 결정됩니다

예배의 퀄리티가 우리의 삶의 퀄리티이면 우리의 감격의 퀄리티입니다.


오늘 본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행위를 4가지 동사로 요약할수 있습니다. < 세우고 - 드리고 - 지키고 - 드리는 >것을 요약됩니다.


먼저 우리의 삶에 무너진 잊혀진 제단을 세우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합니다. 그것이 개인적인 예배의 제단일수도 있고 공동체의 성전이 될수 있습니다. 예배하는 행위는 우리안에 무져있던 예배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 여호와의 유월절 >이라는 찬양에 보면 마지막 가사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 내안에 무너졌던 모든 예배 다 살아나리라. >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안에 무너졌던 모든 예배가 다 살아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냥 무너진 상태로 내버려두고 있습니까

아님 죽었고 무너졌던 예배를 다시 살리도록 몸부림 치고 있습니까?

 

두 번째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과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는 번제를 드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4-5절에 < 번재를 매일 정수대로 날마다 드리고 그후에는 항상 드리는 번제와 ...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마음에 와닿는 메시지는 번제를 드리는 자세입니다. < 매일... 날마다.. 항상 .. > 실제로 이스라엘백성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모세의 율법대로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번제는 <매일 항상 날마다 드리는 우리의 예배>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경험을 매일 같이 날마다 그리고 항상 경험하는 것이 참다운 예배자의 삶입니다. 우리의 삶의 매일 항상 날마다 감격의 시대를 만들어 내는 방법은 우리의 일상속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을 위한 < 매일의 예배의 감격 >을 경험하게 될것입니다.


이런말이 있죠 < 에브리데이 해피데이 > 우리의 삶의 에브리데이 해피데이가 되는 것은 바로 < 내 삶에서 매일 예배가 드려지고 있고 예배를 경험하고 있을 때 > 가능합니다.

 

세 번째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때를 지켜서 하나님을 기쁘게해 드리는 것이 있어야합니다. 이스라엘의 절기와 그들이 드리는 예물의 중심에는 < 하나님의 기쁨 위하여 >라는 의미가 항상 따라 다닙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때, 하나님의 기쁨이 드리는 예물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자주 이렇게 노래 부르죠

<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



바꾸어서 말하면서 <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지지 못하면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못합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의 절기와 예물은 자신이 < 하나님 만을 기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쁨되기 원합니다 >라고 하는 표현이었습니다.


항상 예배의 중심에는 < 나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에 주목>행합니다. 내가 받을 은혜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실 은혜에 대한 기대가 먼저입니다. 내가 받고 싶은 말씀보다 하나님께서 주실 말씀에 대한 기쁨이 먼저입니다.

항상 우리의 신앙에 감격이 상실될때는 예배가 나중심을 바뀌어 있을때입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70년의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와서 그들안에 가장 먼저 회복되기 원하셨던 마음은 < 예배의 감격>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예배의 감격을 회복하는 시대가 바로 에스라의 시대였으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적에 바로 그러한 감격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어떻게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찬양하면 소리치면 울면 웃으면 즐거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는지가 나옵니다.

에스라 311-13

 11. 찬양으로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이르되 주는 지극히 선하시므로 그의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성전 기초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

12.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나이 많은 족장들은 첫 성전을 보았으므로 이제 이 성전의 기초가 놓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으나 여러 사람은기쁨으로 크게 함성을 지르니

13. 백성이 크게 외치는 소리가 멀리 들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를 백성들이 분간하지 못하였더라

 

얼마나 기쁘고 감격적이었는지? 큰소리로 노래하고 큰소리로 통곡하고 큰소리로 함성을 지르고 큰소리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가 그 도시를 가득채웠습니다. 바로 < 감동과 감격의 도가니 deep emotion>가 된것이죠.


다 표현할수 없고 다 주체할수 없는 기쁨이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아네 있음을 봅니다.

 

그 사랑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사랑 얼마나 날 부요케하는지

그 사랑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그 사랑 얼마나 나를 감격하게 하는지

 

우리는 이것을 주목해서 보아합니다.


1/ 무엇이 나를 감격하게 하고 기쁨게 하는가?

 


2/ 나는 매일 날마다 항상 예배에 성공하고 있는가?

 


3/ 나를 주체할수 없게 만드는 예배는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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