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더 5:1-9>
  • 왕이 반한 그녀 왕에게 반전을 요구하다.
  • 09/09/2014 


@ 설교문 그림 인터넷 갈무리함 

2014 GSC 새벽 큐티 설교 <에스더 5: 1 - 9>


제목 : <에스더 5: 1 - 9> 왕이 반한 그녀 왕에게 반전을 요구하다




1. 제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왕좌에 앉았다가

2.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 규를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 규 끝을 만진지라

3.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하니

4. 에스더가 이르되 오늘 내가 왕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사오니 왕이 좋게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오소서 하니

5. 왕이 이르되 에스더가 말한 대로 하도록 하만을 급히 부르라 하고 이에 왕이 하만과 함께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가니라

6. 잔치의 술을 마실 때에 왕이 에스더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뇨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뇨 나라의 절반이라 할지라도 시행하겠노라 하니

7. 에스더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소청, 나의 요구가 이러하니이다

8.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고 왕이 내 소청을 허락하시며 내 요구를 시행하시기를 좋게 여기시면 내가 왕과 하만을 위하여 베푸는 잔치에 또 오소서내일은 왕의 말씀대로 하리이다 하니라

9. 그 날 하만이 마음이 기뻐 즐거이 나오더니 모르드개가 대궐 문에 있어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몸을 움직이지도 아니하는 것을 보고 매우 노하나




제목 : 왕이 반한 그녀가 왕에게 반전을 요구하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5장부터는 3번의 잔치를 중심으로 벌어진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부분부터는 <에스더서의 이야기중에서> 아주 극적인 장면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보통 TV 드라마에 어떤 극적인 장면이 나 올 때면 시청률이 몇 퍼센트 나왔다고 할 만큼 어느 한 장면이 빼 놓을 수 없는 클라이막스를 말해줍니다


오늘 에스더서 5장에 왕의 잔치에 나아가 소위 왕의 성은을 입게 되는 이러한 에스더서의 장명은 에스더서의 가장 흥미롭고 가장 시청률이 많이 나올만한 명장면이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에스더서를 드라마로 빗대어 말하면 에스더서는 흥행할만한 드라마의 3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가족 드라마>입니다. 한 유대의 소녀가 성장기와 성공기가 그려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 아픈 가족사와 민족사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방나라 페르시아에서 이름을 바꾸면서 현실에 한번 잘 살아보려고 서바이벌 해왔던 아픈 가족사가 있습니다.


둘째는 <막장 드라마>입니다. 좋은 아내와 며느리에게 나쁜 시어머니가 등장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갈등구조가 막장 같은 치열한 증오와 복수를 만들어냅니다. 에스더서에는 좋은 이야기나 교훈적인 이야기만 등장하지 않습니다. 시대의 악역을 담당하고 있는 하만의 등장과 역할은 에스더서가 막장드라마의 특징을 갖기에 충분합니다. 하만은 유대인들에게 아말렉의 후손으로 오래 원한과 미움을 갖고 있는 그런 인물입니다. 하만과 모르드개의 갈등은 서로 깊은 원한이 어떻게 드러내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셋째는 <반전드라마>입니다. 에스더서에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각 장마다 각 장면마다 나타나고 있는 반전의 사건들입니다. 반전은 상황이 바뀌는 것입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서 그 드라마의 분위기와 흘러가는 이야기를 바꿔 놓는 것입니다. 바로 이점이 에스더가 우리에게 주는 재미입니다.

 

이러한 에스더서는 <가족드라마/막장드라마/반전드라마>3가지 특징을 갖고 이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드라마를 손수 쓰고 계신 작가가 있습니다. 바로 < 여호와 하나님 >이십니다. 제가 지난번에게도 강조했지만 에스더서는 흥미로운 이야기로만 보지 말아야합니다. 에스더서를 우리에게 드라마와 같이 이야기와 같이 주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하는 일, 그리고 에스더를 통해서 만들어내는 에피소드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손과 섭리를 발견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손이 어떻게 에스더의 이야기를 새로운 이야기로 바꿔놓고 계시는지를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생명의 삶의 책에서 오늘 본문의 제목을 <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용기가 만날 때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름 괜찮은 제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조금 덧붙여서 < 하나님의 손과 사람의 손이 마주칠 때...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행동이 함께 일할 때 >라고 덧붙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에피소드의 타이틀을 이렇게 요약하고 싶습니다.

< 왕이 반한 그녀가 왕에게 반전을 요구하다 >


오늘 본문에 에피스도에게하나님이 일하시는 놀라운 일은 바로 <아하수에로 왕이 에스더에게 반했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 아하수에로 왕에게 에스더가 드라마의 반전을 일으키는 요구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


바로 이 < 반함이 반전이 되는 >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로 바뀌고 있는 소위 터닝포인트와 같은 에피소드가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된 흐름은 하만이 에스더와 모르드개 그리고 유다백성들을 멸절시키려는 <막장드라마>로 짜져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막장 드라마가 반전드라마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더의 지혜와 용기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만의 계략과 의도를 뒤집어 놓는 반전드라마의 시작이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에 51-2절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1. 제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왕좌에 앉았다가

2.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 규를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 규 끝을 만진지라


바로 어떻게 에스더가 어떻게 왕이 눈에 들고 어떻게 왕의 성은을 입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후궁중에서 수많은 궁중의 여인중에서 그렇게 눈여겨보지 않았던 에스더가 왕의 눈안에 드는 대목입니다. 왕이 에스더에게 반하는 장면입니다.

 

바로 이 잔치가 있기전에 < 유대인들은 3일동안 에스더와 함께 금식을 했습니다. > 그리고 에스더 용기를 내어 죽으면 죽으리다는 고백을 실행하는 행동을 감행합니다. 왕의 부름을 입지 않았는데오 왕궁안뜰에 들어가서 왕을 보려하는 것입니다. 그전까지 에스더는 왕의 부름을 입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4장에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전한 말속에서 에스더의 상황과 중심을 알수 있습니다.

411.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

 

4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에스더가 부름을 받지 않고 왕에게 나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죽음 각오하는 < 죽으면 죽으리라 >는 소위 < 일사각오 >의 용기를 갖기까지 쉽지 않은 고뇌와 결정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에스더의 고백과 결정은 < 하나님의 손에 자신의 생명을 거는 일이며 하나님의 손에 자신의 인생을 거는 일입니다. >

 

잠언 211절에 보면 < 왕의 마음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 > 라는 말씀있습니다. 에스더는 이러한 믿음이 있었던 것이죠..

 

용기를 내어 에스더는 왕의 부름을 입지 않았는데 왕앞에서 옷을 차려있고 왕의 안뜰로 들어 갔습니다. 이때 왕이 <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보았습니다 >




그리고 아하수에로 왕의 마음에 <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라고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의 원문을 보면 < 그 여자는 그의 눈에 은혜를 얻었다 > 라고 말합니다. 사극으로 말하면 < 성은이 망극한 상황 / 성은을 입는 상황 >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왕이 한눈에 반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실제로 오늘 이스라엘에 유대인들이 부림절을 지킬때면 마치 에스더가 예복을 입고 왕을 기다린것처럼 사람들이 화려한옷을 입고 길거리로 나와서 부림절을 축제를 합니다. 오늘날 커스텀을 입고 하베스트 페스티발을 하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부림절을 그렇게 자신이 에스더가 된 듯이 화려한 옷을 입고 잔치를 보냅니다.

 





최근에 만들어진 영화중에 300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오늘 성경의 배경의 되는 페르시아제국과 그리스 스파르타와 전쟁을 다룬 전쟁영화입니다





그런데 이 <300>이라는 영화에 주된 등장인물에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인 바로 아하수에로 >입니다. 그영화에서 묘사하고 있는 <아하수에로왕>은 아주 신적이고 신비한 존재로 묘사가 됩니다. 신적 권위를 갖고 부소불위의 권력으로 전쟁터로 나아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영화를 보면 이러한 거대제국 페르시아와 맞써서 싸우는 스파르타의 300용사를 그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전쟁영화다 보닌 피튀기는 전쟁씬이 많아서 이 영화감독은 그 장면마다 흑백으로 처리합니다. 아주 인상적인 영화죠.. 이 영화에서 아하수에로왕이 하는 대사중에 아주 인상적인 대사 한마디가 있습니다. < 나는 관대하다 But I am kind , But I am a generous god >입니다. 이 대사는 자신과 맞서 싸우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오늘 에스더 5장에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의 모습도 < 지극히 관대한 모습을 봅니다. > 그래서 페르시아의 살아있는 신적인 존재인 아하수에로왕의 <금규> <왕의 홀>을 내밀며 에스더에게 성은을 베풉니다.

 

바로 이 대목이 < 왕이 반한 그녀가 왕에게 반전을 요구하는 > 중요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은 에스더에게 < 소원을 말해봐. 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리라 >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왕이 에스더에게 반했으면 이렇게 까지 말했을 싶은 생각이들 정도 입니다. 그때 에스더는 자신이 이 자리에 나와서 이러한 놀라운 성은을 입게 되는 이유를 잊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는 자신의 민족을 살리려는 간절한 요청이 있었고 그 일을 위해 자신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는 유다민족이 있을 잊지 않았습니다.

 

바로 지혜롭게 왕의 잔치에 하만을 초대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다음 계획을 진행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오늘 이 반전 드라마의 서막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묵상할수 있을까요? 소위 이 성은이 망극한 이러한 에피소드속에서 무엇을 보아야 할까요


우리에게 이러한 적용질문들을 던져볼수 있어야합니다.


1/ 이 세상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이루시는 반전의 역사를 어떻게 기대하면 살것인가? 내 삶의 수많은 에피소드속에서 어떤 반전이 있었는가?

 

2/ 내 삶에 일어나는 소위 잘됨과 잘 풀림과 같은 하나님의 성은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어떻게 하나님의 눈으로 이해하면서 살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잊지 않고 발견하면서 살 것인가 ?

 

3/ 나는 기도하고 기대하고 기다리며 시도하는 일들이 무엇이 있는가? 하나님의 응답과 역사는 기도하는 손과 시도하는 발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어떻게 경험하고 살고 있는가?

 

4/ 오늘 우리에게 세상이 반할만한 모습이 있는가? 세상은 우리가 그들처럼 비겁할 때보다 오히려 그들에게 없는 용기와 믿음으로 반응할 때 더 매력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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