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GSC새벽 큐티 설교 


제목 : <18:17-23>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18:17-33]

(18: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18:18)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공의와 정의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18:20)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18:21)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18:22)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18:23)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18:24)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18: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18:2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18:27)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18:28) 오십 의인 중에 오 명이 부족하다면 그 오 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온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사십오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18:29) 아브라함이 또 아뢰어 이르되 거기서 사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사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18:30)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삼십 명을 찾으면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18:31)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내가 감히 내 주께 아뢰나이다 거기서 이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이십 명으로 말미암아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18:32)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18:3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제목 : <18:20-33>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오늘 함께 묵상하는 본문의 내용은 흔히 < 아브라함의 신앙과 믿음을 옅볼수 있는 있는 < 소돔과 고모라 땅을 위한 중보기도 >의 내용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 하나님과 마치 거래()를 하는 것과 같은 아브라함과 여호와 하나님과의 대화의 내용을 볼수 있습니다.


흔히들 오늘의 이본문의 내용을 아브라함의 신앙과 중보 기도를 배우고 묵상하는 본문으로 이해하고 묵상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뜨려야할 몇가지 중요한 핵심 메시지와 오해하고 있는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강조하지만 놓치고 있는 핵심메시지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18장에는 하나님의 사자와 여호와 하나님의 현현,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2명의 하나님의 사자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두 곳을 방문합니다.



첫째는 아브라함의 방문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믿고 믿음의 걸음을 걸어온 의로운 아브라함을 방문합니다. 


둘째는 소돔과 고모라땅의 방문입니다. 불의한 세상에서 불의한 삶을 살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러 방문합니다.


(18:1)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아브라함이 거주하고 있었던 곳은 < 마르레 >라는 사람이 거주하는 곳이었습니다

훗날 그곳이 지명이 < 마르레 > 되었습니다

이곳은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정착한 정착지였습니다.


이곳은 조카 롯에게 <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 >해서 

그 방향을 결정하고 얻은 땅입니다.

 

(13: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아브라함은 마므레로부터 신임을 얻었을 뿐만아니라 아브라함이 마므레에게 듣든한 후원자로 보였기기 때문에 계속 그 땅에 같이 살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이 땅은 훗날 < 헤브론 >이 됩니다. 아브라함의 당시에는 마므레는 정말 볼품없는 상수리 수풀과 나무나 우거지 산지였습니다.


이러한 척박한 땅에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삶을 정착하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곳 마므레는 아브라함의 삶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곳입니다.


< 강하다 >는 뜻을 가지고 있는 < 마므레 >는 아브라함에게서 아주 의미는 있는 곳이 바로 이곳에 다시금 < 아내 사라가 노년에 아들을 낳을 것이다 >라고 하는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받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방문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특별한 중보기도를 드리는 곳이 됩니다.


훗날 아브라함은 바로 이곳에서 자신의 아내 사라를 장례를 위해 막벨라굴을 산곳도 바로 이 마므레라는 지역입니다.

 

바로 < 헤브론의 마므레 >는 아브라함에게 이민이후에 처음으로 정착하고 처음으로 자신의 삶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그런 곳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의 말씀을 따라 이제는 그 누구도 아브라함에게 땅을 내놓으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땅이 한평도 없었고, 그래서 그 땅을 가나안 족속들에게 빌혀서 정착하고 있었을 지라도 땅 소유자 이상으로 견고한 거주자가 되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 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소위 자기 고향을 떠나 이민 떠나 제대로 집한칸 마련한 추억들이 있으실것입니다. 처음 미국와서 살기 시작했던 조그마한 콘도를 기억할것입니다.

처음 아이들을 미국학교에 입학시키던 동네를 기억할것입니다.

처음 나의 비즈니스를 열던 그런 가게를 기억할것입니다.


바로 아브라함에게 < 마므레 >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을데 무엇가 시작해야 했던 그곳,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이제 서서히 무언가가 보이지 시작하는 그런 약속이 보이고 약속이 이루어지는 곳이 었습니다.

 

바로 그런곳에서 다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그에게 찾아오셨고 그를 만나 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창세기 18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여호와와 여호와 앞에 서있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미쳐 몰랐던 우리가 미쳐 깨닫지 못했던 3가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찾아오시는 여호와 하나님과 여호와를 환영하는 아브라함

 

마르레에 거주하던 어느날 아브라함은 한낮인 낮이 뜨거운 오정즈음에 장막 어귀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낯선 사람이 셋이 맞은편에서 오는 것을 봅니다. 바로 이들은 아브라함을 찾아오고 계시는 여호와의 사자. 바로 여호와의 현현 이었습니다. 그들을 향해 아브라함은 그들을 알아보고 장막문으로 달려가 영접하고 몸을 땅에 굽혀 경배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18:3)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직접 찾아왔을까요?

그 이유는 2가지 목적이 었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브라함이 약속의 자녀인 아들 이삭을 낳을 것이라는 것과 둘째 불의한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할 것이다 것이었습니다.

(18:1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마치 사람과 사람이 대화하고 의논하듯이 어떤 중대한 일을 위해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상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우리 옅볼수 있는 것은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 친근히 대하고 친밀하게 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동안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과 어떻게 사귀어 왔는지?을 옅볼수 있는 대목이니다.


(41:8)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자신을 숨기지 않으시고 드러내시고 자신의 계획을 말씀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과 그 하나님을 대하는 아브라함의 태도는 영적인 친밀함의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바로 이 모습은 아브라함이 얼마나 < 의로운 사람 >인가?을 보여줍니다.

 

성경에서 <>의 개념은 율법이거나 도덕적인 용어가 아닙니다. <>의 개념은 관계적인 용어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 의롭다 >는 말은 < 정의롭다. 법없이도 살수 있는 삶 >을 말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는 하나님과 친밀하고 깊은 관계를 맺는 일을 의미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땅에서 찾았던 <의인> 역시 바로 그런 율법적으로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의가 아니라 하나님과 진정한 관계를 맺고 있는 <>를 가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흔희 아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하는 그 의인 역시 <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 >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사람이 바로 믿음으로 살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친근히 친밀히 사귀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묵상할수 있습니다.

 

오늘 18장에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 의인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공의와 정의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바른 관계를 맺기에 실패하고 있는 불의한 소돔과 고모라는 멸하시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 의로운 아브라함에 대한 약속 >< 불의한 소돔과 고모라땅에 멸망 >은 서로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의로운 약속의 백성이라도 하나님과 관계 맺는 의로움에 실패하면 버림받을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경고하는 이중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오늘 본문 창세기 18장을 묵상하면서 놓치지 말아야 중요한 메시지 있습니다.

 

2/ 기다리시는 여호와와 기도하는 아브라함

오늘 본문에서 소돔과 고모라 땅을 위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살펴보기전에 우리가 정말 놓치지 말아야할 묵상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그것은 22절입니다. 바로 이 22절이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의 방향을 결정하게 합니다.

(18:22)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여기서 기록된 <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 라는 번역은 오리지날 텍스트인 히브리 맛소라 사본의 성경과는 다른 번역입니다. 원래 성경은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앞에 여전히 서 있었더니 > 라고 쓰여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라는 말과 < 여호와 께서 아브라함에 여전히 서 있었더니 >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되십니다. < 그대로 서있는 > 주어가 다름에 따라서 그 의미는 전혀 달라집니다.

 

원래 성경은 <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앞에 여전히 서있었더니 >라고 쓰여져있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왜 ? 이렇게 바뀌었을까요? 바로 구약의 서기관들이 성경을 필사하면서 이 부분이 올 때 어떻게 <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앞에 서있을수 있는가? >해서 좀더 경건한 언어로 바꿔 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기도의 주체가 사람이 되어 버린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께 소돔과 고모라를 중보 기도하기 위해서 서있는 모습을 보여집니다. 사실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하나가지를 놓치게 되었습니다.

 

<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앞에 여전히 서있었더니 >라는 말이 주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기도를 기다리셨다 >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기도하기까지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십니다.

반드시 우리의 기도이전에 하나님의 미리아심과 기다림이 있습니.

 

그래서 중보기도의 4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기다림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우리가 중보기도하기까지 기다리셨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둘째는 기도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환영하고 인정하듯이 그분과 친밀하 사귀고 그분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의 요청과 원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기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손이 일하시도록 기대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기회입니다 기도는 기다림과 기대를 가지고 기회를 붙잡는것입니다. 하나님과 사귀는 기회, 하나님과 마는 기회입니다.


바로 중보기도의 3중주 < 기다림 / 기도 / 기대 /기회>입니다.

 

아브라함의 소돔과 고모라를 의인을 요청하는 중보기도이전에는 <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앞에서 서서 아브라함의 기도를 기다리시는 기다림 > 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중보기도를 하도록 그 앞에 머물러 서 계셨던 것을 알수 있습니다. 창조주이신 그분은 자존심을 다 버리고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소돔 성에 남아 있을 의인을 위한 중보기도를 하기를 바라면서 피조물 앞에 서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중보기도를 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중심은 < 우리의 기도를 기다리는 하나님을 먼저 묵상하는 일 >입니다. 흔히 아브라함이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중보한것처럼 우리고 의인을 구하는 기도를 합시다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마치 중보기도를 처음으로 시작한 이가 < 아브라함 >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중보기도를 제안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은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탁월한 영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마치 의인 50/45/40/30/20/10명 까지 마치 거래하듯이 기도해도 여호와 하나님이 하나도 기분나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아브라함의 기도의 응답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6번이 이랬더 저랬다 하는 것처럼 보이는 기도를 해도 하나님의 신실하게 응답하시고 아브라함에 기회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오늘 본문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것은 < 아브라함의 중보기도앞에 하나님의 기다림 > 있다는 사실입니다.


< 여호와가 아브라함앞에서 서서 > 기다리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중보기도의 출발입니다. 먼저 여호왁 나의 앞에 서있는 것을 보는 것 그리고 그분이 무엇을 원하시는 지를 아는 것. 그리고 나 자신이 여호와 앞에 서서 그분의 중심과 심정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중보기도자의 마음입니다. 바로 그것이 친밀한 사귐의 기도입니다.

 

3/ 들으시는 여호와와 요청하는 아브라함

 

우리는 오늘 불의한 소돔과 고모라를 아브라함을 방문하지 않고 바로 가서 그 땅을 멸할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그땅을 멸하시기를 주저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먼저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인규를 구원할 그 인물을 낳을 이삭을 낳을 것을 먼저 예고하십니다. 그 다음에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실행하러 떠나십니다. 그 사이에 아브라함의 중보기도가 있고 그사이에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계십니다.

비록 아브라함의 간절한 요청과 기도에 불구하고 그의 기도는 실패로 돌아갑니다. 소돔과 고모라 땅은 그곳에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되는 것은 아브라함과 아무 관계도 없는 일어었습니다. 그의 조타 롯의 가족이 그곳에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구해주리고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그렇게 매달리면서 기도할 이유하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마치 그 일이 자기 일이거나 한 것처럼 매달리며 기도를 했습니다.

노아는 온 세상을 홍수로 멸절시키겠다고 하는 통보를 받고도 하나님앞에서 아브라함처럼 중보의 기도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방주 만드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그리고 그 방주에 자기의 가족만 올라 탔습니다. 이런면에서 아브라함을 노아와 대조가 됩니다.


노아는 자기가 해야할 일만 하고 그 이상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가 해야할 일상을 했습니다.

 

중보기도는 자기가 해야할 기도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많은 부담감으로 더많은 책임감으로 그 이상의 일들과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노아는 자기백성의 심판앞에서 구원을 위해서 방주를 지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소돔과 고모라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과 하나님 사이에 결렬된 틈 사이에서 기도했습니다.


(106:23)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리라 하셨으나 그가 택하신 모세가 그 어려움 가운데에서 그의 앞에 서서 그의 노를 돌이켜 멸하시지 아니하게 하였도다

 

예수님은 요한복은 17장에 하나님의 자녀들과 아버지가 하나되 하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

 

아브라함의 기도는 타락한 세상과 시대를 위한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세상에서 신앙이 변질된 롯과 롯의 가족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가 의인 10명을 구하는 기도에서 그친 이유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중보기도하면서 10명선에 그친 문화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랍비들의 전승에 의하면 노아가 홍수에서 구원받은 사람이 8명이었습니다. 그래서 8명보다 조금 많은 10명으로 멈추었고 그리고 10명이라는 숫자는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공동체나 잔치나 축체의 최소 숫자였습니다. 모든 모임이든지 10명이 모여야 그 유대인의 공동체로 인정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열처녀 비유고 바로 10명의 숫자가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이미 소돔과 고모라에는 적어도 의인 10명은 살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롯과 그의 아내 그리고 4명의 딸들과 4명의 사위들이었습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그들을 감안해서 10명의 의인을 구하는 기도에서 멈췄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주 전략적으로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이러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듣습니다. 하나님이 들으시고 아브라함이 요청하는 그러한 기도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2가지의 반응과 만남을 봅니다.

아브라함을 찾아오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알아보고 환영하는 아브라함

아브라함앞에서 서서 아브라함의 중보기도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하나님앞에서 서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아브라함

아브라함을 이야기와 요청을 들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진심을 알고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이들의 문제를 품고 기도하는 아브라함

 

이러한 두 개의 만남이 얼마나 놀라운 사귐과 관계를 이루는지 봅니다.

오늘 우리 자신에게 묻습니다

나는 얼마나 자주 하나님이 내 앞에서 서서 나의 기도를 기다리시는 것을 보는가

나는 얼마나 자주는 나의 문제가 아닌 다른 이들의 문제를 품고 기도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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