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가복음 13:1-13>
  • 무너질 성전을 마주하고 앉았을때 
  • 08/09/2014 새벽묵상 설교  


  • 설교문의 본문 그림은 인터넷 갈무리함 

 2014 GSC 새벽 큐티 설교 <마가복음 13: 1 - 13> 

제목 : <마가복음 13: 1 - 13> 무너질 성전을 마주하고 앉았을때






[ 마가복음 13장 1절 - 13절 ]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3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조용히 묻되 

4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7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8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9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10 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12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13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제목 : 무너질 성전을 마주하고 앉았을 때  


오늘 말씀의 제목을 < 무너질 성전을 마주하고 앉았을 때 >라고 서정적으로 정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을 그렇게 서정적이거나 그렇게 아름다워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 마가복음 13장은 소위 < 소묵시 >라고 불리울 만큼 마지막때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 배경이 바로 < 예루살렘이며 성전 >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 예언 >이라기 보다는 < 선언 >입니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명령형으로 이러한 상황과 일들이 일어날 때 우리가 어떻게 주의해야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조심해야 하는지 경고하고 권면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오늘 이 마가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의 당부는 3가지입니다. 

< 주의해야 하라. 두려워하지 마라. 조심하라 >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과 제자들의 질문과 대답이 있었던 공간적 배경은 바로 < 성전이 바라보이는 감람산 >이었습니다. 이 감람산이라는 곳은 <성전으로 지나가는 일종의 톨게이트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특히 감람산은 성전을 훤히 다 보이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가복음 11장-12장에 <예루살렘>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유월절을 지키기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in & out>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그토록 사모하고 존중하는 < 성전 >을 보았습니다. 화려한 장식과 웅장한 돌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이 주는 영적인 상징들을 느꼈습니다. 이스라엘에 그리고 예루살렘 여전히 건재해 있는 성전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 그들의 신앙심을 깊어져갔습니다. 


유대인의 신앙의 중심에는 < 성전 > 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흔히 유대인의 신앙을 < 성전 신앙 >이라고 말합니다. 


오늘도 예루살렘에 방문해보면 여전히 무너지 성전의 한 벽면인 통곡의 벽앞에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그 벽돌 사이에 자신에 기도의 소원을 적어서 꼿아 놓고 있는 유대인들을 봅니다. 그만큼 유대인들에게 성전이 주는 상징성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토록 숭상하고 바라보았던 <예루살렘 성전> 무너질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고대 문헌인 < 유대전쟁사 >나 <요세푸스>의 기록을 보면 성전의 기초돌 하나의 길이가 무려 45규빗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 만큼 성전의 웅장함 그 자체였습니다. 성전의 존재 자체만으로 유대인들의 마음을 압도할만한 경외감을 주었습니다. 




제자들은 이 대단하고 큰 건물에 대해 관심이 있었습니다. 

< 이 돌들이 어떠하면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


그러나 예수님은 <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라고 되묻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역사적으로 AD70년에 있을 <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을 선언하셨습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 성전의 돌들의 웅장함에 도취되어 있었습니다. 오직 성전을 사모하고 바라보는 신앙을 가진것이죠 >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은 < 성전의 돌들은 무너질것이면 새로운 성전이 세워진것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바로 우리 자신이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으로 휘장이 찢어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새롭고 산길이 열리는 것. 모두다 제사장이 되고 모두다 성전이 되는 그일을 꿈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옛성전을 무너져야하고 새성전이 우리의 마음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성전의 모퉁이 돌이 되시고 산돌이 되십니다. > 


성경은 분명히 이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로이 지어질 성전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몸이 곧 성전인 것도 말씀하시며 손으로 지은 성전을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의 이 예수님의 성전파괴의 선언은 < 옛 성전의 유효기간이 만료 되었음, Expire >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예수님의 선언을 들었던 제자들은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종종 제자들이 그들의 예상과 기대를 깨뜨려버리시는 예수님의 말씀의 놀라고 당황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나와서 감람산에 도착하여 앉아서 멀리보이는 성전을 바라보고 앉았을 것입니다. 그때 다시 제자들은 2가지 질문을 합니다. 


< 그렇다면... 예수님... 그럼 말씀하신 그 일이 언제 일어나며 어떤 징조가 있습니까 ? >라고 묻습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여전히 종말적인 징조에 관심이 있습니다. 일종의 < 종말에 대한 호기심 >입니다


사실 누구나 < 종말에 대한 호기심 > 있습니다. 종말이 언제인지? 종말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 사인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 종말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종말에 대한 각성 > 이었습니다. 제자들의 관심과 질문은 종말이 언제인지? 그 징조가 무엇인지? 관심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과 대답은 < 우리가 종말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 >에 대한 요청이며 경고 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강조점은 종말의 일어날 난리와 재난과 지진과 핍박에 대한 것들에 대해서 말씀하셨지만 그것 보다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러한 당연히 오게될 종말의 일에 대해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행동할것인가? 어떻게 살것인가?가가 더 중요한 것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저는 오늘 말씀에 대해서 종말에 대한 우리의 각성이 무엇인가?

 종말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해서 3가지로 주목해보았습니다. 


1/ 우리 앞에 놓여있는 세상의 미래는 어떻게 될것인가?

2/ 우리가 당하게 될 세상의 미혹은 무엇인가?

3/ 우리가 마주하고 서야할 세상의 미움에 대해 무엇을 할수 있수 있는가?


<세상의 미래 / 세상의 미혹 / 세상의 미움 >이라는 이 3가지의 도전앞에 우리는 서있습니다. 


1/ 우리 앞에 놓여있는 세상의 미래는 어떻게 될것인가?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이 세상의 살아오면서 세상의 뉴스를 보면서 이 세상이 안전하다고 느끼십니까?아니면 여전히 불안하다고 느끼십니까? 네 이 세상의 미래는 여전히 불안합니다. 세상에서 들려오는 뉴스의 대부분은 분쟁과 갈등 그리고 전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제 뉴스에도 미국이 이라크 반군의 거점을 공격했다는 뉴스입니다. 사실 최근에 이라크에선 반군들이 일어나서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고 다른 것에 대해 무자비한 공격과 살상을 가합니다. 


어제 CNN 뉴스에 이슬람극단주의자들이 이라크 최대의 기독교도시인 카라코쉬를 점령하여 도망가지못한 모든 기독교인들을 죽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산으로 도망간  가족은 물과 음식이 없어 죽어가고...이들은 심지어 기독교가정의 아이들까지 목베어 죽이는 등의 잔혹 행위를 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긴장관계를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냥 평안히 날라가던 비행기가 미사일에 격추됩니다. 





여전히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치열한 미사일공격과 서로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상자들이 나고 서로에 대한 복수가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심각하게 퍼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을 우리가 어떻게 대할까요? 

우리는 이세상의 미래는 단 한번도 조용하고 평안하고 안전했던적이 없습니다. 계속 갈등과 반목이 계속되고 전쟁과 난리가 일어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이 세상의 미래 역시 그렇게 안전하지 않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이 선언은 실제로 유대의 고대 역사를 보면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이 일어나고 재난이 계속되었습니다. 


로마의 네로황제가 죽은 이후에 일년 사이에 세왕이 서로 죽이고 죽고 하는 일드리 일어났습니다. 


AD 36년에 파르티아 전쟁, 헤롯 안디바와 나바테아의 왕 아레타ㅡ 전쟁과 같은 극심한 혼란의 정국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AD61년에 소아시아의 지진, 폼페이 지진, 예루살렘의 지진과 같은 실제로 있었던 대형 재난들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 이런 일들이 반드시 일어나야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먼저 반드시 전파되어야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앞에 놓여있는 세상의 미래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불안한 세상의 미래는 우리는 < 주의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은 멈추지 않고 계속 전해져야합니다 > 이것이 예수님의 요청입니다. 


2/ 우리가 당하게 될 세상의 미혹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놓여 있는 쉽지 않는 세상의 미래는 우리의 신앙과 믿음을 미혹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우리의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리게 만듭니다. 세상의 불안과 공포는 우리의 믿음 견고하게도 하지만 우리의 믿음을 흔들리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이 세상의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교사들이 우리의 마음을 미혹합니다. 

 이 세상의 쾌락과 즐거움이 우리의 마음을 미혹합니다.  

 이 세상의 불안과 두려움이 우리의 마음을 미혹합니다. 


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6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이 세상의 미래는 우리를 미혹합니다. 우리는 가만 두지 않습니다. 


우리가 교회 다닌다고 해서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우리가 교회 만 다닌다고 해서 우리의 믿음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습니다. 

불안한 세상의 미래는 절대 우리의 믿음의 안전을 확보해 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안전은 진리의 복음과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우리가 미혹되지 않으는 방법은 < 서서 진리의 띠를 띠는 것입니다. > 

그리고 < 주의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조심하면서 당당히 우리앞에 놓여 있는 

신앙의 도전들앞에서 서서 말할수 있어야합니다. >


3/ 우리가 마주하고 서야할 세상의 미움에 대해 무엇을 할수 있수 있는가?


마지막날 우리가 당할 일들은 세상의 공회앞에서 잡혀서 세상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믿음이 거짓된 것이 아님을 증언하는 일입니다. 


세상의 불안한 미래는 우리의 믿음을 미혹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미혹은 우리를 미워합니다. 세상의 미움이 남아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장차 공회에 잡혀서 심문을 받을 것을 선언하십니다다. 세상의 미움을 사서 애매히 고난받는 일들이 일어 납니다. 

그런데 이러한 세상의 미움을 사는 일은 바로 복음을 다시 전할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잡혀서 고난당할 때 바로 그떄가 믿음과 복음을 증거하고 증언하는 기회가 됩니다. 


최근에 한국에 위안부 할머니 두분이 미 국방부에 고위 관료들앞에서 일제의 만행을 증언했다고 하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대단한 일이죠. 그 할머니들의 증언이 얼마나 미국방부의 정책을 바꾸지는 모르지만 그 할머니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놓여있는 사명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의 복음과 능력을 증언하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증인이며 증언자가 되어야합니다. 더 나아가 < 증거자 >가 되어야합니다. 


예수님의 이 종말이 언제인지? 종말의 징조가 무엇인지? 관심을 갖는 제자들이 < 종말에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바로 복음의 증인으로 복음의 증언자로 그리고 증거자로 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앞에 놓여있는 세상의 미래와 세상의 미혹과 세상의 미움에 대한 우리의 대책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것은 우리의 힘을 할수 없고 오직 성령으로 가능합니다. 

11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12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13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게 주어지 놀라운 은혜는 < 우리가 세상의 미움앞에 당당하게 서기만 하면 성령의 말이 말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끝까지 견디면 우리에게 구원이 주어집니다. > 


한국에 지금 교황이 방문하다고 날리입니다. 

프란시스코 교황이 그동안 좋은 이미지와 소박한 삶의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이 되었습니다. 그의 행동과 말이 그의 삶의 내용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의 미움이 아니라 사랑을 받고 있음을 봅니다. 


왜 사람들이 교황을 숭배할까요? 

바로 교황에게서 자신들에게 없는 신적인 권위와 사랑을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왜? 기독교안에 이런 사람이 없을까? 생각해 봅니다. 

세상이 미워하기는 커녕 할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바로 그것은 세상의 앞에 자신의 믿음과 신앙을 당당하게 보여줄 삶의 인격과 내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과 신앙은 알고 믿었지만 삶의 내용물이 없는 것이죠. 그냥 형식적이 종교적인 모양만 가진채 사람들의 감동시킬 그 어떤 것도 없는 이죠..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최소한 세상이 우리의 삶의 내용과 예수님 닮은 인격을 부러워하게는 만들어야합니다. 그것 때문에 어떤 이들은 더 미워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어떤 이들은 그것 때문에 우리를 향한 영적인 호기심과 애정를 갖게 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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