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6/06/2014 GSC 새벽큐티설교
  • 사무엘하 18장 16절-23절 
  • 다윗의 슬픈 가족사 
  • 기드론 골짜기 잔혹사

 @ 본문의 그림은 설교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인터넷에서 갈무리함


[삼하 18:16-23]

(삼하 18:16) 요압이 나팔을 불어 백성들에게 그치게 하니 그들이 이스라엘을 추격하지 아니하고 돌아오니라

(삼하 18:17) 그들이 압살롬을 옮겨다가 수풀 가운데 큰 구멍에 그를 던지고 그 위에 매우 큰 돌무더기를 쌓으니라 온 이스라엘 무리가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니라

(삼하 18:18)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마련하여 세웠으니 이는 그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내게 없다고 말하였음이더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을 기념하여 그 비석에 이름을 붙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그것을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

(삼하 18:19)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빨리 왕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왕의 원수 갚아 주신 소식을 전하게 하소서

(삼하 18:20) 요압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오늘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지 말고 다른 날에 전할 것이니라 왕의 아들이 죽었나니 네가 오늘 소식을 전하지 못하리라 하고

(삼하 18:21) 요압이 구스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본 것을 왕께 아뢰라 하매 구스 사람이 요압에게 절하고 달음질하여 가니

(삼하 18:22)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가 다시 요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아무쪼록 내가 또한 구스 사람의 뒤를 따라 달려가게 하소서 하니 요압이 이르되 내 아들아 너는 왜 달려가려 하느냐 이 소식으로 말미암아서는 너는 상을 받지 못하리라 하되

(삼하 18:23) 그가 한사코 달려가겠노라 하는지라 요압이 이르되 그리하라 하니 아히마아스가 들길로 달음질하여 구스 사람보다 앞질러가니라




기드론 골짜기 잔혹사 <다윗의 슬픈 가족사 >


 오늘 사무엘하에서 등장하고 있는 다윗왕의 이야기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의 합한자라고 칭함받는 다윗왕의 삶에서 어울리 않을 것 같은 < 다윗 왕가의 뼈아프고 슬픈 가족사 >의 한 에피소드를 보고 있습니다.윗왕의 아들들의 반목 그리고 압살롬의 반역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왕의 권력을 찬탈>하고자 하는 허망한 노력과 시도들을 보게됩니다. 


다윗왕의 슬픈 가족사를 통해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찾을 수 있으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가정은 찾기 힘듭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은 될수 있으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가가 되긴 쉽지 않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가정사를 보기가 드뭅니다. 


저는 오늘 아버지의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서 일어난 < 압살롬의 난 >이 그 아비의 군대와 군대 장군에 의해서 재압당하고 허망한 죽음을 맞은 이 사건에 대해서 이름 하길 < 기드론 골짜기 잔혹사 >라고 별칭을 붙이고 싶습니다. 


< 기드론 골짜기 >는 감람산과 예루살렘 사이들 흐르고 유대광야를 지나 사해로 흘러 가는 데 이 기드론 시내를 사이로 왕권을 둘러싼 반역과 도망 그리고 추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치 한국에서 서울 양재동 양재IC근처를  < 말죽거리하고 하듯이 > 이 기드론 시내는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지배하기 위해 지나가야하는 통로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압살롬의 구덩이 돌무덤이 이 < 기드론 시내 > 근처 에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오늘 이스라엘에 가면서 그곳에 조그마한 탑을 하나 세워놓고 < 압살롬의 기념비 >라고 만들어 놓았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삼하 18:18)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마련하여 세웠으니 이는 그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내게 없다고 말하였음이더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을 기념하여 그 비석에 이름을 붙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그것을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




 저는 이 < 기드론 골짜기 > 가 다윗의 이스라엘의 왕으로 있으면서 수없이 겪었던 왕위 쟁탈싸움에서 지나왔던 그런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기드론 시내를 오가며 때로는 도망자로 때로는 추격자로 그의 삶의 여정이 만들어 졌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기드론 시내에서 그렇게 빛나는 외모와 자랑할 만한 머리카락을 가졌던 누구나 <왕제감>이라고 생각했던 압살롬의 허망한 죽을 봅니다. 그리고 이 기드론 시내에서 다윗의 가정의 슬픈 가족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봅니다. 



 오늘 본문은 죽은 압살롬이 구덩이에 던져지고 그위에 돌무더기가 쌓이는 허망하는 죽음을 기록하고 있고, 내일 본문은 그 압살롬의 죽음에 대해서 비통하게 울부 지는 한 아비의 허망하는 울부짖을 살펴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평화가 머물러야할 다윗왕의 가정에 이토록 슬픈 가정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무엇때문 일까요? 


압살롬의 이름에는 < 샬롬 >이라는 의미의 <평화>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압샬롬>의 뜻은 < 내 아버지는 평화이시다 >라는 뜻입니다. 



그런점에서는 그 이름을 지어준 다윗은 끝까지 아들 압살롬의 반역과 악한 동기에도 불구하고 그를 용납하고 품었습니다. 어쩌면 그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의 진심었을 것입니다. 


더 이상의 아픈 가정사를 남기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압살롬의 군대를 재압하러간 군대장군에게 < "나를 위하여 젊은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하라(삼하 18:5)." 내 아들 압살롬 만은 너그러이 대우해서 살려달라 >고 요청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 이름을 갖고 있는 아들 압살롬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끝까지 반역의 길을 걷지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그러나 어떻게 됩니다. 처음에 반역하여 그술의 망명객으로 도망간 압살롬을 아버지 다윗과 화해시키려 애썼던 장수 요압의 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합니다. 어쩌며 요압은 한번 정도는 압살롬의 왕제감이기에 기회를 주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충실한 신하였던 요압의 판단은 < 더 이상은 안된다 >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나뭇가에 머리카락이 걸려 매달려 있는 압살롬을 처참하게 죽이고 맙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의 슬픈 가정사. 이 기드론 시내에 일어난 잔혹사에 대해서 어떻게 묵상해볼 수 있을까요? 여기 우리는 압살롬의 그릇된 동기로 시작된 그의 허망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보야 합니다.


원래 압살롬에 자신이 <3남 1녀>의 자식이 있었습니다. 

(삼하 14:27) 압살롬이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았는데 딸의 이름은 다말이라 그는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더라

그러나 아름다운 아비에 아름다운 자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데려가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이름이 기억되기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이미 <기념비>를 만들어 놓은 상태였습니다. 


 비록 자신이 이름이 후대에 기리 기리 기념되기 위해서 기념비를 미리 만들어 놓았지만 그것은 화려하고 웅장한 무덤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허망하고 초라한 초라한 돌무더기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의 죽음 조차도 전쟁에서 장렬하게 싸웠던 장수의 멋진 죽음이 아니다 도망가다 나뭇가지에 머리카락이 걸려 죽임 당한 < 어이없고 어처구니 >없는 <코메디같은 죽음>것을 기억되고 있는 이 사실만이 남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오늘 이 압살롬의 코메디 같은 죽음을 보면서 그의 허망한 무덤과 쓸데없어 보이는 기념비를 보며서 < 우리의 죽음이 어떤 죽음올 기억되며 어떤 기념비를 세울것인가 >를 생각해야합니다. 


오늘 날짜가 6월 6일입니다. 한국에서는 <현충일>입니다. 

이날이면 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순국선열들 호국영영들을 기념합니다. 그래서 동작동 국립묘지에 참배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 나라를 위해 싸우다 목숨을 버린 애국열사와 국군장병들 >을 생각하면 그들의 넋을 기리는 행사들을 합니다. 이런 국립 현충원에 세겨진 이름들은 참으로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이름이 됩니다.


 그러나 오늘 압살롬의 기념비가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 다윗 가정의 슬픈 가족사 >의  기념비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그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고 

그 사람의 죽음의 명예로움을 생각합니다. 

When a person dies, the name still remains 

The person's face will be reminded

The person's death will be a honored monument memorial


한 사람의 죽음은 삶의 끝인 동시에 

그 사람의 삶의 내용을 평가하는 시간입니다

When a person dies it is the end, and also,

 it is the time to judge that person's life.


제가 어떤 글을 보다가 압살롬의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쓴 글을 보았습니다. 


압살롬이 죽고 나니 비석 하나 남았습니다.

압살롬. 자기만을 위하여 < 살롬 >  이름 값도 못하고

명예롭지 못한 이름만 남기고 갔습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주위 사람들의 불편함은 모르고 평화도 만들지못하고

욕심만 채우려 해도 채울 수 없음을....


압살롬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압살롬의 죽음이 

어리석은 죽음이라고 생각한 4가지 이유를 정리해보았습니다.  


첫째는 압살롬은 아버지가 지어준 <샬롬>이라는 

         이름 값도 못하고 죽은 사람입니다. 


둘째는 압살롬은 빛나는 외모 수려한 머리카락을 선물로 받은 

          인물값도 못하고 죽은 사람입니다.


셋째는 압살롬은 다윗왕의 아들의 자리를 부여받고 자신이 세운 기념비석에도 

          어울리지 않은 자리 값도 못하고 죽은 사람입니다. 


넷째는 압살롬은 끝까지 참고 용납해준 아버지 다윗의 사랑도 모른채 

          사랑 값도 못하고 죽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죽음이 어리석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 이름값 / 인물값 / 자리값 / 사랑값 > 이 네가지 우리가 죽은 이후에 평가되는 덕목들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더 붙인다면 < 은혜값 >라고 할수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값 하고 살아는가? > 물어 보아야 합니다. 

< 오늘날은 나는 어떤 값을 하고 사는 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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