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엘상 23:1-15] 은혜로운 추격전  
  • Main Idea : 다윗을 도망과 사울의 추격은 은혜롭지 않은 추격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하십니다. 다윗에게는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지만 하나님은 그 추격전을 은혜로운 시간으로 바꿔 놓으십니다.  


[설교음성파일]

https://soundcloud.com/yonghwan-shin/2014-03-26/s-5pnCD


[삼상 24:1-15]

(삼상 24:1)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더이다 하니

(삼상 24:2)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새

(삼상 24:3)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삼상 24:4)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삼상 24:5)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삼상 24: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삼상 24:7)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삼상 24:8) 그 후에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가 사울의 뒤에서 외쳐 이르되 내 주 왕이여 하매 사울이 돌아보는지라 다윗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삼상 24:9)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삼상 24:10)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넘기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어떤 사람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하지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 하였나이다

(삼상 24:11) 내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 자락만 베었은즉 내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오늘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삼상 24:12)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삼상 24:13)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삼상 24:14)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의 뒤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삼상 24:15)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심판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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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울과 다윗의 추격전은 계속이어지고 있습니다. 어제 읽은 본문 사무엘상 23장의 마지막절에 다윗이 도움의 주었던 십 사람들의 배신과 사울의 그릇된 확신속에서 다윗은 사면초과에 몰리게 됩니다. 절대 절명의 위기의 몰리게 된 다윗은 더 이상의 갈곳도 없는 막다른 곳에 몰리게 됩니다. 그리고 사울의 군사들에게 애워싸이게 되죠. 그때 마다 하나님이 일을 행하십니다.


 바로 블레셋이 침노했다는 소식에 급히 사울은 자신의 걸음을 바꿔야만 했던 참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사울은 다시 다윗을 쫓게 됩니다. 

(삼상 24:1)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더이다 하니

(삼상 24:2)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새


다시 잠시 멈추었던 사울의 추격전을 시작됩니다. 엔게디 광야에서 그리고 엔게디동굴에서 있는 다윗을 찾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바로 오늘 말씀의 장면입니다. 


오늘 본문의 장면부터 상황의 뒤바뀌게 됩니다. 사울이 다윗의 목숨을 살려준 것이 아니라 다윗의 사울의 목숨을 살려주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납니다. 


 사무엘상을 통해서 사울과 다윗의 추격전을 살며보면 예상치 못한 반전의 연속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가장 긴장감있게 만들고 가장 통쾌한 순간은 바로 예상치 못한 반전의 시나리오를 볼 때 아주 흥미진진함을 느낍니다. 


 오늘 사울과 다윗의 추격전 이야기가 우리에게 많은 드라마틱한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반전이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의 차이에서 일어납니다. 


 사울도 처음에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완악하고 거짓된 마음을 하나님의 함께하심과는 점점 멀어지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말로는 < 하나님이 다윗을 나의 손에 붙이셨다. 여호와의 복인 너희에게 있기를 원한다 >라고 그럴듯하게 꾸미고 있지만 정작 사울에게서 하나님의 함께하심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가 사울에게 쫓기면서 도망자신세를 지나는 동안 그의 마음에 더큰 확신이로 찾아온 것이 바로 < 하나님의 함께하심 >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안에 있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에 확신이 있었기에 그 순간순간의 위기를 넘길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경험할때마다 하나님의 공급하심, 하나님의 보호하심,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래서 비록 도망자의 삶이었지만 하나님의 손을 경험하는 은혜도 더해갔습니다. 


사울에게서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떠나는 것은 더 이상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는 그의 삶에 반전을 일으킵니다.  

다윗에게서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머무는 것은 그의 삶의 상황을 뒤집어 놓는 반전을 일으킵니다. 


 추격자 사울은 삼천명을 병사를 거리고 다윗을 찾으러 엔게디 광야에 이릅니다. 그 엔게디 광야에는 석회굴들이 많은 산이며 거기있는 어떤 굴들은 수백명 혹은 수천명 들어갈수 있는 큰 굴들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3절에 재미난 것은 

(삼상 24:3)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사울이 굴에 이들어간 이유를 < 뒤를 보러 들어가니라 > 여기서 이 표현은 < 그 발을 가리운다 >는 의미인데 일종의 < 용변을 보거나 잠을 자려고 >라는 의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용변을 보러들어갔다니 다윗에 죽음을 맞을번한 변을 당하게 됩니다.> 


용변을 보러갔다 이 변을 당하여 변사로 발견될 뻔한....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진것입니다. < 이런 변이 있나 > 


 다윗에게서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기회가 옵니다. 

그렇게 다윗을 추격하던 사울이 이러한 어이없는 상황에서 다윗에게 치욕스러운 일을 당하게 됩니다. 다윗에게 옷자락을 배임으로 < 자신의 목숨이 다윗의 손에 >이었음을 경험하는 것.. < 다윗의 긍휼로 목숨을 연명하게 된 이 어처구니 없는 경험 > 바로 사울의 굴욕사건 그 자체 였을 것입니다. 


 사울이 다윗에게 죽임을 당할번한 위기는 사무엘상 26장에 한번더 나옵니다. 그때에는 사울의 창과 물병만 가져옵니다. 사무엘서 기자는 의도적으로 다윗이 사울의 목숨을 살려주는 비슷한 사건을 2번이나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당혹스러운 이야기들의 반복을 문학적인 용어로 < 더플 플롯 >이라고합니다. 하나의 이야기속에서 두 개의 이야기 줄기가 뒤엉켜있는 기법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어떤이들인 사무엘상 24장과 26장은 같은 이야기라고 말하기도하고 어떤 이들은 다른 이야기를 말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두배경도 비슷한 지역에서 벌어진 일고 이야기 구조도 아주 흡사합니다. 어찌되었든 사무엘서기자는 사무엘상 24장과 26장이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사울을 죽이지 않은 다윗의 마음과 중심입니다. 

(삼상 24:4)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다윗의 사람들은 다윗에게 말합니다. 이 상황을 완전히 뒤바꿔놓을 기회가 왔음을 말합니다. < 네 생각에 좋은대 그에게 행하라. 바로 오늘 그날입니다. >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의 말대로 하지 않습니다. <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었습니다. > 사울을 죽이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다음 구절입니다. 

(삼상 24:5)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고 사울의 옷자락을 벤 것은 그에게 긍휼을 베푼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에게 선의를 베푼 증거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왜? 그 일 하나만으로 < 다윗의 마음이 찔렸을까요? > 


많은 해석자들은 다윗의 이 행동에는 그의 숨은 동기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 대목은 단순히 사울의 옷자락을 자름으로 그에게 내가 긍휼을 베풀어주었다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 이 왕권을 사울로부터 빼앗고 싶은 그의 숨은 속마음. 역심을 옅볼 수 있는 장면 >이라는 것입니다. 


왕의 옷은 고대 근동에서 왕권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사울의 옷자락을 벤 것은 그의 인격에 손을 댐과 같았고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왕을 대적하여 손을 드는 일이었습니다. 


왕의 옷자락을 자락을 자리는 행위는 그의 마음에 숨은 < 역심 >이 있음을 들통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내면의 있는 욕심과 역심을 알게 된것이죠..


그리고 사울왕에서 호소합니다. 

[삼상 24:9-10]

(삼상 24:9)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삼상 24:10)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넘기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어떤 사람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하지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 하였나이다


(삼상 24:12)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삼상 24:15)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심판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이것은 다윗의 애절한 호소이며 그의 중심의 고백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익숙한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하나님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울은 익숙한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와 함께했지만 하나님과 함께하는 일에서 실패했습니다. 다윗은 편안한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하나님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사소한 판단과 사소한 결정도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로 이러한 차이가 결정적인 반전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의 모든 인간적인 판단은 유보한채 자신의 유리한 상황조차도 내려놓은채 

오직 하나님의 판단과 결정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중심에만 집중하고 있는 다윗의 모습을 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우리는 우리의 삶에 우리가 유익한 상황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하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혹시 우리는 우리가 유익 한쪽으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유익한 쪽으로 결정하고 선택해야하는 사람임이 잊지 말아야합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았어야 하는 절호의 찬스가 온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이 아니면 멈출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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