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6:1-15>   선으로 악을 이기라

다시 사울과 다윗 이야기의 배경과 무대는 십 광야 십 황무지 >로 돌아옵니다너무도 놀랍게도 앞에서 사무엘상 24장의 배경과 상황이 그대도 재현되고 있는 장면이 바로 오늘 사무엘상 26장 십 광야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사무엘상 26:1-15>  선으로 악을 이기라


[삼상 26:1-12]

(삼상 26:1) 십 사람이 기브아에 와서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 산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매

(삼상 26:2) 사울이 일어나 십 광야에서 다윗을 찾으려고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과 함께 십 광야로 내려가서

(삼상 26:3) 사울이 광야 앞 하길라 산 길 가에 진 치니라 다윗이 광야에 있더니 사울이 자기를 따라 광야로 들어옴을 알고

(삼상 26:4) 이에 다윗이 정탐꾼을 보내어 사울이 과연 이른 줄 알고

(삼상 26:5) 다윗이 일어나 사울이 진 친 곳에 이르러 사울과 넬의 아들 군사령관 아브넬이 머무는 곳을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에 누웠고 백성은 그를 둘러 진 쳤더라

(삼상 26:6) 이에 다윗이 헷 사람 아히멜렉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의 아우 아비새에게 물어 이르되 누가 나와 더불어 진영에 내려가서 사울에게 이르겠느냐 하니 아비새가 이르되 내가 함께 가겠나이다

(삼상 26:7)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아브넬과 백성들은 그를 둘러 누웠는지라

(삼상 26:8)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니

(삼상 26:9)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삼상 26:10)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삼상 26:11)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삼상 26:12) 다윗이 사울의 머리 곁에서 창과 물병을 가지고 떠나가되 아무도 보거나 눈치 채지 못하고 깨어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으므로 그들이 다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더라

 

=======================


잠시 나발과 아비가엘의 이야기가 나온후에 다시 사울과 다윗의 추격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시 사울과 다윗 이야기의 배경과 무대는 < 십 광야 / 십 황무지 >로 돌아옵니다. 너무도 놀랍게도 앞에서 사무엘상 24장의 배경과 상황이 그대도 재현되고 있는 장면이 바로 오늘 사무엘상 26장 십 광야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사울이 3천명과 함께 다윗을 찾으러 십 광야로 내려가 진을 칩니다. 다윗이 도움을 주었던 십 사람들이 다윗의 있는 곳을 알려줌으로 다시 사울과 다윗의 추격전으로 이어집니다.


사무엘상의 마지막 대목은 두사람의 대조적인 행동인 두드러지게 드러납니다.

어떻 해서든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이 받은 은혜를 잊은 채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사울의 모습과 어떻해서든지 사울의 자리를 지켜주려고 은혜를 베풀면서 도망을 치고 있는 다윗의 모습을 봅니다.

 

사울과 다윗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다루는 방식이 달랐습니다.

사울은 은혜를 잊어 버렸고 다윗은 은혜를 기억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감정과 원함에 매여 있었고 다윗은 자신의 감정과 원함에 매여 있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주변의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오직 자신의 마음에 민감하게 행동했고, 다윗은 자신의 주변의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마음에 민감하게 행동했습니다.


사무엘상 24장에 사울은 십 황무지 동굴속에서 다윗에서 죽을 뻔한 일을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이 예치못한 곳에서 자신이 미명하게 죽을 뻔 일을 불행중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것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또 한번의 회개의 기회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다윗에서 어떤 은혜를 입었는지? 그리고 그 배후에 하나님이 자신에게 어떤 회복의 기회를 주고 계시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당한 굴욕감과 모욕감 그리고 주변사람에게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는지에 대한 수치심에 쌓여서 다윗을 죽이려는 그 추격전에 다시금 나서게 된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자신의 감정과 마음이 거기에 매이는 것을 주의해야합니다. 


종종 사람과 사람사이에 원수 맺는 일을 보면 그렇게 큰 문제에서 일어나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사소하고 작은 일들 속에서 서운함을 만들어내고 그 속에서 사탄마귀가 틈을 타고 계속 그 마음에 매여서 사람에 대한 원수 맺는 것이 생깁니다.

그래서 오해하고 원망하고 미워하고 욕합니다. 정작 어떤 큰 사건이 서로에게 원수 맺게하는 일보다는 사소한 감정들이 사소한 상황들이 관계 속에서 원수 맺는 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의 상태와 상황을 민감하게 다시보게 하십니다.

내 마음안에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

내 마음에 숨어있는 잘못된 동기는 무엇인지?

내 마음에 무엇이 나를 거기에 메이게 하는지?를 살피도록 하십니다.

 

사울과 다윗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이러한 민감함의 차이였습니다.

성령님은 오늘 우리로 하여금 각각의 처한 상황과 관계속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마음을 들여다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안에 말씀하십니다.

니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어떤 중심으로 무엇하려 하느냐

성령님에 민감한 사람은 사람의 소리에 치우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관심과 관점에 집중합니다.

 

사울과 다윗 둘다 위기가 있었습니다.

위기라는 말은 < 위험한 기회 >라는 말입니다. 사울은 다윗에게 죽을 뻔한 위험한 기회를 계속적으로 <복수와 원수맺음>으로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에게 죽을 뻔한 위험한 기회를 계속적으로 <은혜와 긍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은혜 받은 기회를 은혜 베풀기회로 바꿔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울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은혜 받은 기회를 은혜 베풀 기회로 바꿔놓고 있는 것이 다윗의 선택입니다.

 

다윗이 자신을 따르는 아비새와 함께 밤에 사울에게도 나아갑니다

그때 사울은 진 가운데에 누어서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었습니다.


그때 같이 간 아비새가 말합니다. < 하나님께서 오늘날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나로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가 또 다시 다윗에게 왔습니다. 사울왕을 죽이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 할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때 다윗의 반응과 말을 보십시오.

(삼상 26:9)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삼상 26:10)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삼상 26:11)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이 다윗의 고백 속에 담겨있는 중심은 무엇일까요? 3가지 중심이 있습니다.

1) 원수는 내가 갚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갚는 것이다.


2) 왕는 내가 스스로 그 자리를 차지는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시는 것이다.


3) 내가 원하는 것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있을 때 

     항상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에 선택해야한다.


여기서 다윗의 탁월함을 나오는 것이죠.. 오늘 상황과 관련된 로마서 말씀에

[12:18-21]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12: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12: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바로 다윗의 모습이 바로 < 선으로 악을 이기는 장면 >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서 가져나온 물건중에 < >이 있습니다. 이 창은 사울이 다윗을 수없이 죽이려했던 그 무기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울이 다윗을 해하려 할때는 이 <>이 등장합니다.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온 다윗은 그를 위하여 수금을 타고 있을 때 사울은 그를 창으로 죽이려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이기고 돌아와 사울을 위하여 수금을 탈 때에도 그를 창으로 찔러 죽이려 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의 억울함을 호소하자 사울이 화가 나서 요나단을 죽이려고 던진것도 창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했던 그 창으로 사울을 죽일수 있었습니다. 보란 듯이 세상에 웃음이 될수 있도록 자신을 죽이려고 겨누었던 그 창으로 사울을 죽일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창을 그렇게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사울에게서 그 창을 가져오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사울에게서 그 창을 치워버립니다. 다윗의 이 행동은 사울에게서 악한 동기와 행동을 가져가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사울에게서 그 창은 <악한 마음>을 상징하는 물건입니다. 그러난 다윗은 사울에게서 그 창을 가져 나옴으로 사울의 <악한 마음>을 가져 오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놀랍게도 성경에 보면 그 사건 이후로 사울의 모습은 다윗을 더 이상 위협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감정속에 있는 그릇된 에너지가 내 삶의 에너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분노와 원망과 미움을 나의 삶의 에너지로 삼지 말아야합니다. 사울하면 어떻하면 내가 받은 이 수모와 원한을 되갚아줄까? 하지 않으면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악을 선으로 이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지난주 심각한 지진이 났습니다


한 며칠 동안은 잠을 잘 때면 지진이 또 날까 겁이 났습니다. 조금만 흔들려도 잠기 깨곤했습니다. 지진으로 물건들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고 얼마나 지진이 위력적인지도 경험했습니다.


그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 ! 저 물건이 언제 저기 올라가 있었지? ! 내가 깨질 물건을 저기에 올려 놓았네 ... 이제 저걸 내려놓아야지 ! >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진으로 물건이 떨어지고 깨지고 상한 경험을 하고서는 우리 집안에서 넘어지고 깨지고 흔들릴 만한 것들을 찾아 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내려놓게 되었지요. 참다운 내려놓음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마음 안에도 지진같이 조금만 흔들어도 깨어질 것들이 많습니다. 계속 내 마음을 무너지게 하고 나를 넘어지게 하고 나를 상하게 하는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어느 순간에 나도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올려놓은 그런 분노, 원망, 상처, 미움, 원수맺음과 같은 마음들이 있지는 않습니까?


언젠 가는 그것들이 내 마음을 안에서 떨어져 내 마음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내 마음이 엉망이 되기(mess up) 전에 그것을 바로 잡는 것이 필요합니다.

 

< 사랑을 베푸는 자에게 있어서 사랑이 실패로 끝난다 하더라도

 사랑은 역시 최선의 길이다. > 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다윗의 행동은 우리에게 끝까지 놓지 말아야할 마음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은 은혜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그 선한 마음을 부여잡고 그대로 행동하고 그대로 선택하면 사는 것입니다. 나의 인간적인 욕심과 감정을 부여잡지 않고 원수를 원수 갚음으로 매듭짓지 않고 조용히 사울의 창을 가져옴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모습을 부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이 원수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은혜 베풀기회로 삼는

그런 탁월한 삶의 내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수는 내가 갚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갚으신다. 그리고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대로 행동하면 하나님의 뜻은 만드신 이룬다는 이 하나님께 대한 강력한 신뢰가 다윗을 이스라엘의 두 번째왕으로 세우고 계십니다.

 

리차드 램브란트의 이야기입니다. 

이집트에 주둔한 적이 있었던 한 영국 상사가 자신에 관한 이런 이야기입니다.


내가 있던 부대에 예수를 믿는 민간인이 하나 있었는데, 우리들이 그 사람을 되게 못살게 굴었습니다. 비가 몹시 내리던 어느 날 밤 그는 지쳐서 들어와서는 잠자리에 들기 전 기도를 하려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나는 진흙이 잔뜩 묻은 내 장화를 그 사람의 머리 위에 올려놓았지만, 그는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장화가 깨끗이 닦여져서 내 침대 옆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것이 나에 대한 그의 보답이었고, 그 대답이 내 마음을 녹였습니다.나는 그 날 구원받았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