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무엘상 23:15-39] 좋은 친구가 있나요
  • Main Idea : 다들 나에게서 나갈때 내게로 들어오는 사람이다. 요나단은 바로 다윗에게 그런 친구이다. 우리에게 그런 좋은 친구가 있는가?


[설교음성 파일 ]

https://soundcloud.com/yonghwan-shin/2014-03-25-1


[삼상 23:15-29]

(삼상 23:15) 다윗이 사울이 자기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그가 십 광야 수풀에 있었더니

(삼상 23:16)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삼상 23:17)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

(삼상 23:18) 두 사람이 여호와 앞에서 언약하고 다윗은 수풀에 머물고 요나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삼상 23:19) 그 때에 십 사람들이 기브아에 이르러 사울에게 나아와 이르되 다윗이 우리와 함께 광야 남쪽 하길라 산 수풀 요새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삼상 23:20) 그러하온즉 왕은 내려오시기를 원하시는 대로 내려오소서 그를 왕의 손에 넘길 것이 우리의 의무니이다 하니

(삼상 23:21) 사울이 이르되 너희가 나를 긍휼히 여겼으니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삼상 23:22) 어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그는 심히 지혜롭게 행동한다 하나니 너희는 가서 더 자세히 살펴서 그가 어디에 숨었으며 누가 거기서 그를 보았는지 알아보고

(삼상 23:23) 그가 숨어 있는 모든 곳을 정탐하고 실상을 내게 보고하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리니 그가 이 땅에 있으면 유다 몇 천 명 중에서라도 그를 찾아내리라 하더라

(삼상 23:24) 그들이 일어나 사울보다 먼저 십으로 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광야 남쪽 마온 광야 아라바에 있더니

(삼상 23:25)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찾으러 온 것을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매 이에 다윗이 바위로 내려가 마온 황무지에 있더니 사울이 듣고 마온 황무지로 다윗을 따라가서는

(삼상 23:26) 사울이 산 이쪽으로 가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산 저쪽으로 가며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급히 피하려 하였으니 이는 사울과 그의 사람들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에워싸고 잡으려 함이었더라

(삼상 23:27) 전령이 사울에게 와서 이르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들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삼상 23:28) 이에 사울이 다윗 뒤쫓기를 그치고 돌아와 블레셋 사람들을 치러 갔으므로 그 곳을 셀라하마느곳이라 칭하니라

(삼상 23:29) 다윗이 거기서 올라가서 엔게디 요새에 머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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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된 다윗의 도망과 사울의 추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울은 다윗을 찾기 위해서 매일같이 그를 찾아 나섭니다. 오늘 본문 앞절인 14절에 보면 


(삼상 23:14)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사울이 다윗을 찾는 일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도움속에서 다윗은 여러번의 위기와 고비를 넘기고 있습니다. 처음의 도망칠때만해도 사람을 의지했던 다윗은 이제는 여러 위기를 경험하면서 하나님께 순간 순간 물으면 그의 걸음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비로 사울에게 쫓기는 신세이지만 오히려 자신을 따르는 600명의 사람들을 붙여주며 심지어 블레셋에 곤경에 처한 그일라 사람을 도와주게 됩니다. 


 자기 코가 석자인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서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붙이리라 ” 

다윗은 그일라를 구원해주는 놀라운 사건을 경험한 후에 다시 사울을 피해 도망을 칩니다. < 십 황무지 수풀에 머물게 됩니다. > 


 다윗에서 십 황무지 수풀은 < 자신의 몸을 피할 은신처 >였습니다. 그때 다윗은 자신의 친구인 요나단과 마지막 조우를 하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 이 본문에서 다윗에게 찾아온 요나단이 어떤 친구인가?에 주목하고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좋은 친구가 있으신가요? 여러분이 생각할 때 좋은 친구는 어떤 사람인가? 좋은 친구의 조건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려합니다. 


 젊은 남자와 여자가 나이가 들면 꼭 필요한 것 순위를 매겼는데 

 여자는 <재산/친구/건강/애견/남편> 남자는 <건강/아내/재산/취미/친구> 

 더 나이가 들면 여자는 <딸/돈/건강/친구/찜질방> 

 남자는<마무라/아내/애들엄마/집사람/와이프>  라고 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중에 하나가 < 친구 관계 >입니다. 


친구란 어떤 사람인가? 정의를 내려보면.. 어떤 사람은 이런 인상적인 정의를 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 사람들이 나에게서 다 나갈 때 나에게로 들어오는 사람이다 ”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참으로 인상적인 말이지요


오늘 본문에 요나단은 다윗에게 그런 친구였습니다. 사람들이 다 다윗에게서 멀어질 때 다윗을 향해서 걸어 들어오는 그런 친구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숨기기위해서 < 십 황무지 수풀 >에 숨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 있었던 요나단은 다윗에게 찾아들어옵니다. 자신의 아버지가 다윗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윗이 자신이 아버지를 이어 왕이 되는 자리에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를 아는 그가 어떻게 그렇게 다윗에게 걸어들어 올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다윗와 요나단의 깊은 우정과 친구관계에서 설명할수 있었습니다. 이 친구관계는 그저 사이좋은 그런 좋은 친구관계를 벗어나 그 두사람 사이에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실하게 이해하고자하는 순종과 신실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오직 그들안에 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의 동기만이 있었습니다. 


 다윗와 요나단은 서로 그렇게 신실한 관계를 만들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중심을 이어주고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순수한 마음의 작용이 그들을 친구로 묶어 주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분노와 질투로 억울한 도망자 신세가 되었지만 자신을 붙들고 계신 하나님의 손길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요나단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마음에 쌓아두지 않았습니다. 요나단의 애매한 어려움을 이해하고 오히려 요나단과 사울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의 진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이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떠나 다윗에게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더 이상의 이해관계나 욕심을 갖기보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드렸습니다. 오히려 애매히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쫓기고 있는 다윗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흔히 아무리 좋은 관계라도 <이해관계>가 얽히면 그 관계가 지속되기가 쉽지않습니다. <이해관계란 이익과 손해, 이득과 손실을 따지는 관계입니다.> 그렇게 좋던 관계도 그렇게 잘 지내던 관계도 자신이 손해보거나 억울한 일이 생기면 쉽게 그 관계가 흐트러집니다. 그래서 서로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서로에게 분노의 마음을 품지고... 어쩔수 없는 어려움입니다. 


 모든 사람은 예외없이 이러한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손해보지 않으려하고 자신이 억울하게 사람들에게 당하는 것이 싫습니다. 그래서 어떻해서든지 자신이 손해보는 쪽보다는 이득을 얻는 쪽으로 머리를 굴리고 계산을 합니다. 


 그러한 좋은 인간관계은 < 이득과 손해를 따지는 이해관계 >가 아니라 < 서로의 입장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또다른 이해해주는 관계 >를 만들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그 입장이 되어지고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헤아리고 살피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 바보는 적이 없다. 그리고  친구가 많다. > 왜 그럴까요? 바보는 <이해관계>를 만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보는 모든 사람을 수용하고 인정하게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나보다 훨씬 똑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종종 친구가 많은 사람들이 부럽습니다. 그래서 친구가 많은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을 보면 어떤 사람인가를 보았습니다. 딱 2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 첫째는 먼저가 많이 말하기보다는 듣는 사람이다. 둘째는 상대방을 인정해주고 격려하는 사람이다. >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친구가 있습니까? 이해관계를 따지는 친구가 있습니까? 아니면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친구가 있습니까? 


부부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부관계는 영혼의 친구입니다. 서로의 사랑과 이해가 필요한 관계입니다. 너무 따지지 않는 것입니다. 종종 부부싸움을 할때는 남편은 아내의 감정에 집중하지 않고 문제가 일어난 사실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 범인 찾기 >를 합니다. 한사람은 도망자가 되고 한사람은 추격자가 됩니다. 사생결단하면서 도망치고 추격하고 그런 관계를 만듧니다. 

사울과 다윗의 관계는 도망치고 추격하는 그런 관계였다면 다윗와 요나단의 관계는 숨어있지만 조용히 다가오는 관계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다윗와 요나단의 이 관계속에서 좋은 친구의 조건을 3가지로 묵상해보았습니다. 


1/ 좋은 친구는 아무도 찾는이 없을 내게 찾아오는 친구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나단은 자신의 아버지 사울의 눈을 피해서 다윗을 찾아갑니다. 

(삼상 23:16)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요나단이 다윗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며 용기입니다. 좋은 관계는 먼저 다가서는 그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자신은 가만히 있고 좋은 사람이 나에게 다가오길 기다립니다. 그러면 결코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없습니다. 좋은 관계는 먼저 내가 좋은 사람으로 다가가는 일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에게 내가 찾아가는 그일이 바로 가장 좋은 관계를 만듭니다. 


2/ 좋은 친구는 힘을 잃었을 때 나를 격려해주시는 친구입니다. 

요나단이 다윗에게 찾아와 한일은 무엇입니까? 바로 도망자로 숨어있는 다윗에게 용기를 잃지 않기를.. 그리고 글에게 힘과 격려를 불러 넣습니다. 

(삼상 23:16)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이 말은 < 그가 하나님 안에서 그의 손을 강하게 했다 >는 뜻입니다. 

(삼상 23:17) 곧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


요나단은 다윗의 손을 붙잡고 말했을 것입니다. < 친구가 하나님손의 너를 붙잡고 있다 두려워말라. 결코 내 아버지가 너를 해하지 못할 것이다 > 

 좋은 친구의 조건은 < 격려 >입니다. 우리는 우리자신에게 물어야합니다. <나는 어떤 격려의 사람인가? 나는 격려하고 있는가? 격려받고 있는가? > 


항상 문제만 지적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항상 격려하는 사람인가?
최근에 제가 즐겨하는 말중에 < 이게 문제야.. 이번 문제는.. .. 문제는 문제는... > 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회의를 하거나 말을 할 때 < 문제야 ... 문제는 >이라는 말을 빼보고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해보았더니.. 훨씬 말이 부드러워졌고 제 입에서 오히려 격려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격려는 문제를 지적하는 일을 멈추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구나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맘에 들지 않으면 격려할수 없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을 바꿔놓으면 격려할수 있는 것입니다. 


3/ 좋은 친구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 알아주는 친구입니다. 

요나단은 알고 있었습니다. 

(삼상 23:17) 내 아버지 사울의 손이 네게 미치지 못할 것이요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하니라

쉽지 않은 요나단의 고백입니다.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을 때 요나단은 분명한 확신을 갖고 다윗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요나단의 그냥 대세를 읽은 처세가 아니없습니다. 요나단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약속과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쉽지않은 고백과 인정을 하게 한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의 인정하는 것에 인색할 때가 많습니다. 나보다 나은것이나 나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우월의식이나 때로는 열등감에서 쌓여서 좋은 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서로 알아가주는 것이 좋은 관계의 원리입니다. 인정할 때 기쁨으로 인정해주는 것 그것이 좋은 관계의 출발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오늘 어떤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주변에 어떤 사람과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까?


좋은 친구는 아무도 찾는이 없을 때 내가 다가오는 사람이며 내가 찾아가는 사람입니다. 좋은 친구는 내가 힘을 잃었을 때 내게 격려해주는 사람이면 내가 격려해야할 사람입니다. 그리고 좋은 친구는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을 때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면 나도 그러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는 이해관계를 뛰어넘은 영적인 은혜관계. 서로 이해하는 관계였습니다. 이 둘의 관계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신실한 하나님의 약속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면서 나는 어떤 관계를 맺고 살고 있는지 돌아보는 하루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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