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나를 붙잡아요!(코스타 저녁설교 -1)

2014년 7월 2일 오전 6:06

우리는 그리스도의 능력이다!. 

고린도 후서4;7절. 2014/07/02. 시카고 코스타.


고통스러운 삶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읽게 하셨어요. 삶이 힘들때 하나님 말씀이 얼마나 순전지를 깨달았어요. 이전에는 제가 원하는 것들을 많이 넣었지요. 그 래서 순도가 낮았어요. 그냥 어떻게 보면 내 말이어요. 내 말을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서 했어요. 그러나 고통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했어요. 


1. 말씀이 나를 붙잡아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립보2;13절). 여기에 소원이 나오면 사람들은 다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삽입해요. 저에게는 아내가 일어나는 것이죠. 

그러나 이 구절 앞 구절에서 그 소원이 뭔지 알려줘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시는 기쁜 뜻, 우리 마음에 주시는 소원은 구원의 완성을 향한 갈망이죠. 구원의 완성!.

제가 얼마나 소원 소망이라는 단어를 집착하며 살폈는지 보셔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니라"(로마서5;3-4). 

여기에 환란을 다 견디고 이루어지는 소망이 뭘까요. 로마서는 우리에게 원수였던 우리가 십자가로 말미암아 화목함을 얻은 것처럼 하나님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구약성경도 마찬가지여요. 믿음의 명문가문이라고 하면 아브라함을 들어요. 저는 아무리 봐도 아브라함이 믿음의 명문가문으로 형통이라는 것을 찾지 못하겠어요. 아브라함은 불임의 아내를 만나서 자식 얻는데 몇년 걸렸어요. 25년!. 너무 길지 않아요. 이삭은 결혼해서 몇년 20년. 이런 불임의 명문 가문이네요. 손자얻는데 25년 20년 걸리면 며느리 쫓아낼 시어머니들 많아요. "너 때문에 우리집 대가 끊어졌다"며. 

야곱은 속이는 사람이어요, 속은 사람이어요. 뭘 그렇게 속였어요. 팥죽은 거래를 잘하거지요. 형이 멍청한 것이죠. 아버지에게 축복받을 때 형의 이름을 받았지요. 그리고 라반을 속였어요, 속았어요. 속았지요. 11명의 자식들에게 속았어요, 속였어요. 속았어요. 그러면 야곱은 속은 사람이어요, 속인 사람이어요. 속이고 속은 사람이죠. 속은 것이 더 많지요. 

다윗이 고백하지요.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119;72).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붙잡아 주었어요.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혼잡게 하지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읽어세요. 그러면 하나님은 말씀으로 날 붙잡아 주셨어요. 삶을 붙잡으려고 하지마세요. 말씀을 붙잡아요.




네가 주라!(코스타저녁설교-2)....나머지는 나중에 올려요

2014년 7월 2일 오전 6:08

2. "네가 주라"


저의 삶을 보면 아내가 건강할 때보다 아내가 아플 때 가장 풍성한 삶을 살고 있어요. 하나님의 공급하심이 얼마나 많은지. 넘쳐나요. 그러나 동시에 주라고도 하셔요. 나도 어려운데. 


저는 이사를 해야했어요. 8천만원에 40만원 월세 아파트로요. 돈 5천이 모자랐어요. 어느 형제가 오더니만 "간사님, 뭘 도와드릴까요?"라요 말해요. 

저도 물었지요. "너는 누군데 나를 도우려고 하냐". 형제가 자기 아버지 소개를 해요 . 한해 매출이 천억대에 이르는 제약회사를 운영하다고.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응, 가게가 좀 되나보네". 

"간사님, 그것은 가게라고 하지 않고 기업이라고 해요. 아 기업!.

이사를 하려는데 돈이 3천 모자란다. 그때 저는 5천이 모자랐습니다. 형제가 그자리에서 3천만원 수표 세장을 주는 거여요. 제가 필요한 돈은 5천이어요. 3천만원을 받았을 때 감사가 먼저 나왔을 까요, 아쉬움이 먼저였을까요?. 


이사를 하고 2년을 살았어요. 주인이 전화를 했어요. "목사님, 시세가로 받아야겠습니다". 두려웠습니다. 아내가 한방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사를 가면 안되요. 아이들 친구도 지금 사는 곳에 다 있어서요.

"얼만데요". 2억5천이요. 

제가 준비는 해보겠지만 2억5천은 안됩니다 라고 정직하게 대답을 드렸어요. 열심히 빚을 내고 준비했습니다. 1억6천을 마련했습니다. 

"저 주인어른, 1억6천밖에 안됩니다". 

"그래요, 목사님. 그냥 1억6천에 계약해요" 

"나머지는요". 없는데 어떡해요. 


2년전에 제가 결심을 했습니다. 이 사랑의 빚을 갚기로. 오래된 아파트를 리모델링해줘야겠다. 우리 성도들이 저를 바보라고 했습니다. "세입자가 왜 리모델링을 하냐"고. 제가 웃으면 말했습니다. 그분이 나에게 10년동안 후원한 액수가 얼마냐. 

작년 크리스마스 때 집을 다 수리했습니다. 싱크대만 남겨두고, 주인을 초청해서 크리스마스 축하파티를 열었습니다. 불신자들과 신자들서 몇몇 불러서.

지난달 실직자가 된 청년이 한명왔어요. 뭐 준비하려고 하니?. 10월에 취직시험이요. 그동안 뭘 먹고 사냐?. .... 

한달 생활비가 얼마니. 30만원이요. 그러면 내가 그때까지 30만원을 주마. 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길 바란다. 이 청년은 매주 이틀을 우리 자녀들을 돌봐줘요. 참 감사하지요. 

힘들 때 하나님은 저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붙여주셨어요. 그게 사랑이지요.





십자가 능력, 보배(코스타강의 -2)

2014년 7월 3일 오전 6:49

2. 말씀이 나를 붙잡아요!


고통스러운 삶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하게 읽게 하셨어요. 삶이 힘들때 하나님 말씀이 얼마나 순전지를 깨달았어요. 이전에는 제가 원하는 것들을 많이 넣었지요. 그 래서 순도가 낮았어요. 그냥 어떻게 보면 내 말이어요. 내 말을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서 했어요. 그러나 고통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했어요.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립보2;13절). 여기에 소원이 나오면 사람들은 다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삽입해요. 저에게는 아내가 일어나는 것이죠. 

그러나 이 구절 앞 구절에서 그 소원이 뭔지 알려줘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시는 기쁜 뜻, 우리 마음에 주시는 소원은 구원의 완성을 향한 갈망이죠. 구원의 완성!.

제가 얼마나 소원 소망이라는 단어를 집착하며 살폈는지 보셔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니라"(로마서5;3-4). 

여기에 환란을 다 견디고 이루어지는 소망이 뭘까요. 로마서는 우리에게 원수였던 우리가 십자가로 말미암아 화목함을 얻은 것처럼 하나님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도 그중에 하나여요.

"우리가 이 보배를 질 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힌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4;7)


하나님의 말씀이 저를 붙잡아 주었어요. 질그릇이 보배를 담아요, 보배가 질그릇을 담아요. 보배를 담은 것은 질그릇이지만 우리가 보배를 지키는 것이 아니어요. 보배가 중심이어요. 

하나님은 말씀으로 날 붙잡아 주셨어요. 삶을 붙잡으려고 하지마세요. 말씀을 붙잡아요.





십자가 능력, 보배(-3. 코스타 강의)

2014년 7월 3일 오전 6:50

난 너에게 아들줬다!.(Did not spare my son)


2013년 사순절 때, 십자가를 묵상하다가 이렇게 탄식을 했다. "나 너무 힘들어요. 좀 상황을 바꾸어줘요. 낫게 하시든지, 아니면 데려가든지". 

이런 곤란한 질문을 하면 하나님을 대답을 안하시더라. 우리가 어려운 질문을 하면 하나님은 침묵하는 경향이 있으시더라구요. 그러나 그날은 제가 말씀좀 해봐요 이렇게 소리쳤어요. 정말 말씀하시더라구요. 말씀을 생각나게 해요. 


그런데 느닷없이 마음속에서 로마서 8;31-39절 본문이 떠올랐어요. 특히 롬8;32절에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겠느냐". 이본문이 떠올랐어요. 속으로 참 하나님 싱겁다는 생각을 했어요. 힘들다는데 아들줬다 이게 답이 되요. 나 힘들다고 말하는데 나는 아들 줬다는 대화가 뜽금없잖아요. 

셋째날 아침이었어요. 출근해서 어제의 기도를 계속하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어요. "너 아들까지 준 사람에게 뭘 더 달라는 거냐"라는 내적인 음성이 들리더라구요. 내가 너를 사랑해서 내 아들까지 줬는데 너 나에게 또 달라고. 

그래서 그 본문을 읽었어요. 그리고는 놀랐어요. 아들과 함께 받을 것이 환란과, 곤고와 핍박과 기근과 박해와 적신이나 위험까지도 들어 있어요. 이런 것이 찾아와도 그 사랑에서 끊어지지 않는데요. 좋은 상황을 언급한 것이 아니라 아주 나쁜 상황을 언급하고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야기 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가장 귀한 선물을 첫번째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첫번째 선물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입니다. 이것보다 더 귀한 선물은 없습니다. 그제서야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요. 제게 힘없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어요. "아들 줬는데 뭘 더 달라는거야".


아들이 귀해요. 아들이!. 그러나 삶에서 아들보다 더 귀한 것을 찾는 우리들이어요. 십자가 보다 더 귀한 것이 우상이지요. 여러분의 꿈보다 아들이 귀해요.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잘 드러냈습니다. 확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너무 자주 하나님의 사랑을 기도응답으로 확정합니다. 이런 잘못된 기준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합니다. 

기도응답은 될수 도 있고 안될 수도 있어요.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정하는 기준은 아닙니다. 그것은 가변적인 사랑이지요. 


불변의 사랑은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전,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아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4. 너, 나만 사랑해라(You shoud only love me)


아내를 돌보던 어느날 "하나님, 내 꿈의 끝이 여기여요. 아내만 돌보다가 끝나는 인생인가요". 엉엉 울었어요. 하염없이 울었어요. 아빠는 절대 아이들 앞에서 안울어요. 몰래 울지요. 그러니 제가 묻는 "내 꿈이 여기가 끝이냐"는 질문은 피를 토하는 격문이지요. 며칠 뒤에 차를 몰고 아내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이 물었어요. 


"너, 나보다 더 사랑하는 꿈이 뭐냐?".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큰 꿈이 있냐?". 하나님이 가끔 하시는 질문은 너무도 당혹스러워서 대답을 못해요. 저게에 큰 충격을 주었어요. 


"없는데요". 이제는 내가 침묵할 차례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한참을 울고 있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너 나만 사랑해". 

나는 인생이 얽울해서 꿈 이야기 하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사랑만 해라! 고 하셨어요. 

"병년아, 너만 너의 인생에 대하여 꿈을 꾸는 것이 아니란다. 나도 너에게 꿈을 꾼단다. 단, 내 꿈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준단다".


그제서야 이 말씀이 열렸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자의 특징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어요. 사랑하는 자에게 그렇다는 것이죠. 


사랑이 고난을 이기게 하고 고난속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지요. 고난은 이해할 수 업슨 불합리함이지만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있어요. 우리의 삶은 그분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사랑의 고백으로 일상을 바라보세요. 너무 멀리 보려고 하지 마셔요. 보이지도 않아요. 너무 큰 꿈을 꾸려고 하지마셔요. 큰 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셔요. 그러면 하나님이 꿈을 주셔요. 


아이들에게 꿈을 가르치세요. 하나님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세요?. 저희 가정과 교회는 매일 성경으로 묵상을 해요. 그날의 매일성경 묵상적용점이 가정, 교회, 나라의 지도자 이름을 적고 기도제목을 적으시요 였어요. 

우리 아들이 가정-우리아빠-잘하고 있다, 교회-김병년목사-잘하고 있다, 우리나라-박근혜대통령-기도가 많이 필요하다. 얼마나 경건합니까?.


어느 토요일 아침이어요. 일어나라고 하니가. 아들만 일어나요. 

"아빠, 우리집에는 왜 남자만 일을해?. 가슴아픈 질문이지요. 

"그래, 우리 도망갈까". 

엄마는?. 아들이 심각하게 물어요. 

"버릴 수있는거야". 


쓸데없는 소리하지마요. 엄마의 남편은 아빠고, 아빠의 아내는 엄마예요. 죽을 때까지 엄마돌봐요. 

아들이 부부가 무엇인지알고 있어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요.




십자가 능력, 보배(-4. 코스타 강의)

2014년 7월 3일 오전 6:51

'내가 수치를 당하리라' (에스겔24:16).


에스겔이 말씀을 받는 날 하나님이 말씀하셔요. "에스겔아, 너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번 쳐서 빼앗으리리 너는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말며 죽은 자를 위하셔 슬퍼하지 말고 조용히 탄식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지 말고 사람이 초상집에서 먹는 음식물을 먹지 말라".

말씀을 전하고 돌아오니 아내가 죽어요. 하나님이 말씀하셔요. 초상집을 만들지 말라.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설명하십니다. 왜 초상집을 만들지 말라는지. 


저도 물었어요. 왜요. 

병년아 너 아내가 아파서 아프지?. 네라고 저는 대답을 드렸어요. 

그러면 내 아내는 누구냐?. 예, 하나님의 아내요. 교회지요. 

그러면 아내로부터 버림받은 나를 위해서 울어주는 사람은 없냐?. 


"내 성소는 너희 세력의 영광이요 너희 눈의 기쁨이요 너희 마음에 아낌이 되거니와 내가 더럽힐 것이며 너희의 버려둔 자녀를 같에 엎드러지게 할지라".(겔24;21). 


하나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히며, 하나님이 자기의 자녀들을 버려둘 것이라고 하셨다. 한마디로 수치를 당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5년째 공영방송 어느 프로그램에서 출연을 요청받고 있어요. 저와 같은 사람을 초청해줘서 고맙지요. "왜 저를 불러요". 담당피디가 교체될 때마다 묻지요. 그러면 동일한 대답을 들어요. "한국교회가 어렵고, 큰 교회들이 어쩌고 저쩌고....". 일단은 큰 교회도 큰교회지만 작은 교회도 마찬가지이지요. 마지막으로 담당피디들이 하는 말이 있어요. "한국교회의 이미지를 조그 바꿀 수 있습니다"고 하셔요. 

그러면 저의 답은 이것입니다. 교회의 이미지로 방송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인의 변화된 삶으로 바뀝니다. 제가 출연하면 저의 이름이 유명해지고, 제가 쓴 책이 조금 더 나가고, 우리교회로 떠돌아다니는 성도들 몇몇이 오겠지요. 그게 끝이랍니다. 

저의 대답은 동일합니다. 왜 제가 거절하는 줄 아셔요. "지금은 수치를 당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부흥을 부르짖을 때가 아니고 자기 눈을 찌르고 자기 자녀들을 더럽히는 하나님의 자기 수치를 견딜 때입니다. 

지금은 능력의 하나님이 아니라 수치의 복음을 들고 서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어느날 하나님이 이 수치를 다 거두어주시는 날, 우리는 웃을 것입니다. 교회의 삶도, 가정의 삶도 거룩함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에게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함이라". 우리가 주인공이 아니어요. 그분, 십자가가 주인공, 능력이어요. 


사랑하세요. 그러나 주인이 되지는 마세요. 

가족을 사랑하세요. 그러나 주인은 되지 마셔요. 

세상을 사랑하셔요. 그러나 주인 노릇하지 마세요.

교회를 사랑하세요. 그러나 주인노릇하진 마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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