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C 새벽큐티설교 <여호수아 7:1-12>



[7:1-12]

(7:1)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7:2)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쪽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7:3)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

(7:4) 백성 중 삼천 명쯤 그리로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

(7:5) 아이 사람이 그들을 삼십육 명쯤 쳐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가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7:6)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7:7)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쪽을 만족하게 여겨 거주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이다

(7:8) 주여 이스라엘이 그의 원수들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7:9) 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7:10)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7:11)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

(7:12)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원수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그들도 온전히 바친 것이 됨이라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 7:1-12> 아간의 함정

 

우리는 여호수아서를 통해서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의 주리라 약속한 가나안땅을 어떻게 정복하며 어떻게 나누는지를 보게 됩니다


여호수아서는 <전쟁과 정복의 기록>이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전쟁의 기록속에서 놓치지 말아야할 중요한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전쟁을 누구 주도하고 있으면 이 전쟁의 주인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출애굽한 1세대 이스라엘백성들이 40년광야시대를 지나오면서 철저하게 그들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인도과 도움을 받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출애굽 2세대들을 중심으로하는 요단강넘어 약속의 땅 시대를 들어서면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훈련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것은 < 자신의 힘과 노력이 치우는 자신의 전쟁이 아닌 전적으로 여호와의 힘과 능력으로 치루는 여호와의 전쟁 >을 경험케하는 것이 었습니다.

 

바로 그 대표적인 전쟁이 < 여리고 전쟁 >이있고 < 아이성 전쟁 > 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소위 전쟁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너무나도 전쟁같지 않은 전쟁을 치룬 여호수아 6장에 < 여리고 전쟁 >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이 전쟁은 그동안 경험했고 알아왔던 상상이상의 전쟁이었으면 어떤 칼과 창이나 전쟁무기나 전략이 사용되지 않는 한번도 해본적도 경험해보지 않은 전쟁을 치르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냥 전쟁이라고 보다는 < 여리고 기적 >이라고 할 큼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7장 이후에 < 아이성 전쟁 >을 치루어야 했습니다. 이 아이성은 여리고에 비하면 너무나도 쉬운 전쟁같았습니다. 능히 자신들의 힘만으로 거든히 이길수 있는 전쟁같았습니다. 오늘 본문 3절에 < 아이성을 정탐한 이들의 보고 >를 보면 그러한 중심을 옅볼수 있습니다.

 

(7:3)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

 

여기서 <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라는 히브리어 원뜻은 < 귀찮게 / 피곤하게 하지 말자 . 너무 누워서 떡먹기같고 가소롭다 >는 의미입니다. 얼마큼 아이성을 쉽게 생각했는지 알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이 여리고성 전쟁의 대승과 아이성 전쟁의 패배에서 < 아간의 범죄 >가 있습니다. 그 결과 < 아골골짜기의 대 참극 >이 일어나죠.

 

오늘 본문의 내용은 우리가 너무도 잘아는 내용입니다. 여리고성 전쟁과 아이성의 패배 사이에 있는 < 아간의 범죄 >, 이것은 인간의 탐욕과 거짓된 마음이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을 순종치 않은 이들의 결과가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샘플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고 연구하다가 재미있는 것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아이성 아간 아골골짜기>3이름들에는 묘한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3이름의 뜻입니다.

 

<아이>라는 히브리어 뜻은 < 폐허, 페허 무더기 >라는 뜻입니다.

<아간>라는 히브리어 뜻은 <괴롭히는자, 근심과 투통거리>라는 뜻입니다.

<아골>이라는 히브리어 뜻은 < 근심, 괴로움, 소란 >이라는 뜻입니다.

마치 워드플레이를 하듯이 이 3단어는 묘한 연결고리를 갖습니다.

 



모잘 것 없는 폐허같은 <아이성>을 정복하려 했지만 괴롭히는자의 <아간>으로 인해 결국 근심과 괴로움의 <아골>을 경험하게 되는 것... 바로 이것인 하나님이 없는 인생들의 한 모습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이아침에 < 아이-아간-아골 >사이에 머물수 있는 우리의 삶에서 빠지기 쉬운 <아간의 함정>에 대해서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1 아간의 함정 > 이 전쟁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것이 잊어버리는 함정입니다.

 

철저하게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정복전쟁은 여호와하나님이 주도하십니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백성이 해야할 반응은 전적인 의존이며 전적인 순종뿐이었습니다. 출애굽의 시대를 끝내고 이제 요단을 건너 가나안의 시대를 여신분은 여호와 하나님이 이십니다. <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신분도. 내가 지시할 땅에 들어가도록 길을 여신분도, 내가 지시할 땅을 나누어주신분도 > 여호와 하나님이 이십니다.

 

가나안땅의 첫성인 여리고성을 승리하고 그 승리에 도취된 이스라엘 백성중에서 < 아간 >은 출애굽 2세대의 젊은 지도자였습니다. 아간은 이스라엘 민족의 12지파 중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유대지파에 속한 명문 세라 족속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마 아간은 여호수아 대장군 당시 유대 지파를 진두에서 지휘하고 있었던 정치적 지도자로서 장로라는 직분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유다 지파 백성들을 하나님 말씀대로 이끌어 가야 할 책임 있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여리성 전쟁이후에 여호와의 전쟁에 대한 감사보다는 자신이 이 전쟁을 치룬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가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리고성 전쟁 도중 자신의 마음에 든 물건 몇 개를 훔쳐 사유화했습니다.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 200세겔과 50세겔 나가는 금덩이 하나를 몰래 훔쳐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 장소에 감춘 것입니다.

 

그는 이 전쟁의 주인이 자신인것처럼 착각하는 함정에 빠졌습니다.


2 아간의 함정 > 이 전쟁의 목적은 땅의 정복보다 땅의 거룩에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장을 찾는다면 < 온전히 바치 물건 >이라는 말입니다. 이 것은 1절에 211, 12절에 2, 13절에 215절에 계속해서 쓰여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8번이나 마치 의도적으로 강조하면서 쓰여지고 있습니다.

 

바로 < 온전히 바친 물건 > 이라는 단어 < 헤렘 >의 뜻은 < 하나님께 완전히 바쳐진 것, 인간이 건드리면 저주받는 것, 멸망받는 것 >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 제사의 용어 >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을 <헤렘 /온전히 바친 물건 >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관점 하나. 이 가나안 정복전쟁은 세상적인 전쟁과는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그것은 < 이 전쟁은 하나님께 드리는 일종의 제사 >입니다. 그래서 모든 주도권이 전쟁을 치루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머무시고 거주할땅을 새롭게 하시고 성결케하십니다.

 

(7:12)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원수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그들도 온전히 바친 것이 됨이라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7:13)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거룩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희 가운데에 온전히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너희가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가운데에서 제하기까지는 네 원수들 앞에 능히 맞서지

 

이러한 <헤렘/여호와께 온전히 바쳐진것>이기 때문에 그 물건을 마음대로 다루지 말하고 말씀하십니다.

(6:18)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그리고 < 헤렘의 규정 > 때문에 안타깝게도 범죄하고 타락한 가나안 족속을 철저하게 쫓아 내시고 멸하십니다.

가나안 민족을 하나님께 헤렘으로 드린다는 것은 그들을 진멸한다는 의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해했다고 보입니다. 즉 가나안 사람들을 온전히 진멸해야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져야할 '헤렘'이었기 때문이라는 '헤렘 율법'을 따른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가나안 백성에 대한 진멸 부분은 너무 잔인해보여서 믿지 않는 이들이 늘 비판적으로 질문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23:33) 그들이 네 땅에 머무르지 못할 것은 그들이 너를 내게 범죄하게 할까 두려움이라 네가 그 신들을 섬기면 그것이 너의 올무가 되리라

(18:25)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주민을 토하여 내느니라

(9:5)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바로 아간은 이 < 헤렘 >을 어긴것이었습니다. 아간의 마음의 숨은 동기속에는 < 하나님께 온전치 바쳐것>에 대한 관심보다는 < 내가 마땅이 받아야 할 것 >에 대한 함정에 빠진것입니다.

 

3 아간의 함정 > 하나님의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범죄한 인간이 빠지기 쉬운 아담과 하와의 함정이면서 오늘 우리의 함정이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우리의 모든 중심과 생각과 행동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너무도 자주 잊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과 방법으로 살려하지 않고 자기 목적과 방법으로 살아갈려고 합니다. 결국 그 노력은 아이성의 패배와 같은 어이없고 어처구니 없는 패배를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이상황에 대한 여호수아의 재미있는 표현이 나옵니다.

(7:5) 아이 사람이 그들을 삼십육 명쯤 쳐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가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이 표현은 어디서 많이 본 표현입니다.

(2: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이는 가나안 백성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려워할 때 쓰였던 똑같은 표현입니다. 분위기가 완전히 역전된 상황을 잘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상황과 감정은 한순간에 이렇게 역전될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뒤집기 한편의 명수>입니다. 우리는 명심해야합니다.

 

어제의 승리가 오늘의 승리를 보장해주시지 않습니다. 어제의 잘됨이 오늘의 잘됨을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의 삶의 주인되신 우리의 삶의 이유된 하나님만이 우리의 삶을 보장해주십니다.

 

우리의 사소한 마음도 우리의 사소한 행동도 하나님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아간의 실패한 것은 바로 그 마음을 잊어 버린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가문이 아간 한사람의 탐심과 불순한 동기로 인해서 <아골골짜기>의 처참한 죽음의 결과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7:26) 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그러나 성경은 다시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러한 < 아간의 이름을 딴 아골골짜기 같은 인생 >라고 다시금 회복의 기회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2: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190718일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700명이 모임 사람들 가운데서 길선주 장로가 고백했던 그 고백을 기억합니다. < 나는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실수 없었습니다. 1년 전에 내 친구 중 한 사람이 임종시에 나를 자기 집으로 불러 말하기를 길장로, 나는 이제 세상을 떠나지만 내 집 살림을 돌보아 주시오. 내 아내는 무능하니까 말입니다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내가 잘 돌보아 드릴테니 염려 말라고 나는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그 미망인의 재산을 관리하던 중 미화 100불 상당의 금액을 나는 사취했던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 해 온 것입니다. 내일 아침에 그 돈 전액을 그 미망인에게로 돌려드리겠습니다. > 이 회개의 고백이 부흥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같이 아간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고백해야 합니다. < 주는 저는 아간같은 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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