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C 새벽큐티설교 <출애굽기 40:34-38>




[40:34-38]

(40:34)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40: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40:36)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40:37)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40:38)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제목 : <출40:34-38>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우리 신앙생활은 한마디로 <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 Experiencing God/ Knowing and Doing the will of God :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길>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 하나님을 알아가는 모험>이요

< 하나님을 경험하는 믿음의 행진 >이라고 말합니다.

 

헨리 블랙가비가 쓴 <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 이라는 책에

하루하루 예수님이 하라고 하시는 일을 다 하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p.19) 


우리가 하나님이 어디서 일하시는지 보고 찾아서 그분의 뜻에 동참해야 한다(p.26), 

당신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곳에서 하나님과 합류하기 위해 당신의 삶을 조정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이런 친밀한 관계에 들어가면, 당신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방법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고...p.2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하실 것인지 보여주실 때까지 기다리든지, 우리 주위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고 계신지 찾아서 그분이 하고 계신 일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p.49) 


하나님은 자신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계시하신다. 그 계시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라는 초청이다 (p.41) ”

 


오늘 본문으로 마지막으로 출애굽기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됩니다


우리는 출애굽기를 통해서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들에게 자신을 보여주시고 그들을 이끄시고 인도하시고 그분의 뜻과 계획가운데서 하나님의 구원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는 일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사건이나 그들이 광야로 나아가는 것은 한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바로 <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400년 애굽의 종 되었던 곳에서 한사람 모세의 부르심으로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셨습니다.... 홍해를 건너고 마라와 엘림을 지나 하나님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하심을 따라 시내산에서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 십계명의 두돌판을 받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곳에서 자기 만을 위한 금송아지를 만들게 됩니다.

 

금송아지 사건으로 크게 홍역을 치르고 난 후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식과 방법을 가르쳐주시기 위해 성막을 짓도록 하셨고 그 성막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그들 가운게 거하시고. 그들 가운데 임하시는지 그리고 그들을 인도하시는지?를 보여주기 원하셨습니다.




이 성막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성막은 주는 의미는 3가지로 하나님을 경험하는 법을 알려줍니다.

 

1/ 동거 : 성막은 하나님이 우리 중에 거하심을 의미합니다. ( 동거하심 )

우리중에 사시는 하나님. 우리중에 거주하시는 하나님.


성막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쉬칸(mishikan)>은 출25-40장에서 49회 나오는데, 그 문자적 의미는 거주지, ‘거주하다는 의미의 동사 <샤칸(shakan)>에서 유래되었다.



거하다”, “거주하다”(dwell)는 의미의 히브리어 동사는 샤켄”(shaken), 또는 샤칸”(shakan)으로 바로 여기서 쉐키나(Shekinah, 하나님의 현현)’는 단어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임재를 나타냅니다.

 

그래서 성막은 모든 지파들의 텐트 한 가운데.. 

모든 위치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이 머물고 거주하는 동안 잘 보이는 위치에 하나님의 거주의 텐트는 그들 중에 거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같이 동거하시고 살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물어 보아야합니다.

하나님이 내안에 살고 계신가? 하나님이 우리안에 거하고 계신가?

신약시대에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의 마음의 성소에 거하십니다.

주님이 내안에 내가 주안에 있는 그 놀라운 비밀이 오늘 우리의 예배의 자리에

우리의 삶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요일 4: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우리의 예배의 태도의 가장 첫 출발은 < 하나님이 우리안에 거하게 하시는 것 >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나와 함께 살면... 우리는 그 함께사는 사람을 의식하고 그 사람을 배려하고 그 사람은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안에 거하시면 우리는 그분을 의식하고 그분을 생각하고 그분의 기분과 마음을 살피게 되죠..

우리는 흔히 하나님이 우리안에 거하신다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그분을 무심히.. 그분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 세상의 흐름에는 무던하게 하나님의 마음에는 예민하게 반응하는 삶 > 그것이 예배의 삶의 태도입니다.

 

2/ 동행 : 성막은 하나님이 우리 중에 임하심을 의미합니다.(임재하심)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두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임재의 구름이 그 회막을 덮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했다.


[40:34-35]

(40:34)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40: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임재의 장면은 < 덮으심과 충만케 하심 >입니다.

구름이 주는 이미는 뭔가? 신령한 느낌을 주는 효과와 같습니다. 마치 산신령이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이나.. 뽕하고 나타날 때 생기는 그런 정도의 구름이 아니었습니다. 그 구름은 그중에 있는 수많은 장막들.. 수많은 텐트중에서 하나님의 성막에서 피어 올랐고 그 위에 머물러 있었으면 그곳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 구름은 하나님의 존재를 느낄 만큼 경이로운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가나안땅으로 안내해주었던 더위를 막아주고 그들을 인도해주던 그 구름이 이제는 그들이 인도하는 구름으로 경이롭게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13: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13:22)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성경이 말하고 있는 구름은 < 회막문 >앞에서 피어오르는 것이었습니다.

(33:10)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12:5)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로부터 강림하사 장막 문에 서시고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는지라 그 두 사람이 나아가매

 

그들이 인도하여 그들을 앞서서 있던 그 구름이 이제는 그들의 예배의 처소, 하나님의 만남의 장막인 성막 문앞에 머물러 서 있고 그곳을 덮으며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의도을 느끼게 하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은 구름이라는 효과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위를 피하게 하는 그런 정도의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을 하나님의 임재의 자리로 초청하시고 그들이 자신의 삶이 어딘가로 인도되어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구름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과 함께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바로 같이 동행하심을 의미하며 인도하심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인도하시는 것에

마음이 가시나요? 아니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마음이 가시나요?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먼저인가요? 아니면 예배받으시는 하나님이 먼저인가요?


그들을 인도했던 구름기둥도 역시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드러나기에 충분했지만 그 것보다 하나님은 성막에 가득한 구름을 보여주고 <회막문앞에 서있는 구름>을 보여주심으로... 인도하심보다 그들 가운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지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임하셔서 그들을 덮으시고 그들을 충만케하시는 것..

종종 출애굽기를 보면 < 장막. 성막. 회막 >이라는 단어가 다르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성막”(26:30), “회막”(27:32, 29:4), “성소”(25:8), “증거막”(1:50), “법막”(대하24:6), “여호와의 전”(삼상1:9), “시은소라고도 합니다.


<장막>이란 이름은 보통 천막을 가리키는 것으로, 아마도 모세 자신이 공적으로 사용하던 그 천막에 적용되었을 것이고, <회막>은 여호와와 그 백성이 공적으로 교제하던 정규장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 막 위에 있던 하나님의 임재의 표적(구름기둥)에 의해 처음으로 구별되었던 것으로 나타납니다.(33:7 이하). 


회막은 하나님이 만나시는 장소를 뜻합니다. 그래서 이제 성막이 바로 회막이 된것이죠.. 바로 이 임재의 구름이 그곳에 머물고 있으므로... 그래서 성막이 지어진 이후로는 바로 회막이 곧 성막이 된것입니다.


회막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헬 모에드(ohel moed)>는 출25-40장에서 32번 나오는데, 그 의미는 만남의 장막이란 뜻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과 대화의 장소를 의미합니다


성막과 회막이 전승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매회 분명하게 구별되어 사용된 것은 아니며, 종종 동의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임재의 구름이 내게 머물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다스림이 시작됩니다.

인도의 구름이 임재와 영광의 구름으로 바뀌는 것을 보는 삶

주의 임재로 나를 덮으소서.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주의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가득채워 졌습니다.

<영광>이라는 단어 < 가보드 > 뜻은 무거움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머물며 하나님의 영광으로 채워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고 있다는 단어가 < 쉐키나 >라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것이 < 이가봇 >입니다. 우리의 삶이 쉐키나의 삶인지? 아니면 이가봇의 삶인지?우리에게 물어보아야합니다.

 

주의 임재가 나를 덮으시고 주의 영광으로 내안에 가득 채우소서.

그리고 주여 나를 인도하소서.

 

3. 동역: 성막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시작점입니다. (인도하심)

오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의 길을 걸아갈 때 이제 영적 시그널을 보여주시는 곳이 바로 이 성막 곧 회막이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40:36-38]

(40:36)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40:37)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40:38)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마치 자동차들이 스그널 사인에 반응하여 움직이는 것처럼

그들의 삶이 인도 되어질때는 그들이 시선이 성막을 향해 있어야 함을 알수 있습니다. 성막위에 피어오르는 구름을 보고 그들이 행로를 결정하고 그것에 그들의 걸음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들에게 주신 의도는 그들이 예배중심의 삶, 하나님의 임재중심의 삶을 살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그들이 시선히 항상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를 주목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중심으로 모이도록 하는 것이죠...

 

우리의 삶의 영적 시그널은 바로 우리의 예배의 처소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예배의 어떠한가? 우리의 예배가 내 삶을 인도하기에 충분한가?

우리에게 물어야 합니다.


인도하심을 받는 것보다 우선되는 것은 예배하는 것입니다.


구름기둥아래 더위를 피하는 것보다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부른 것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신뢰하는 예배입니다.

개는 주인이 먹이를 줄 때 주인이 들고 있는 먹이를 든 손에 주목합니다.

그러나 아기는 자기에게 젖을 주는 엄마의 시선에 주목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선입니까? 하나님의 손입니까?


성막은 하나님의 마음과 시선이 머무는 곳이기에..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의도적으로 그곳에 마음을 두고 그곳에 시선을 두기를 원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도입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안에 거하게 하시는 것?

하나님의 임재가 우리를 덮고.. 하나님의 영광이 채워지는 것?

우리의 시선이 항상 하나님을 예배하는 처소를 주목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는 출발점입니다.

 

< 묵상하는 질문 >------------------

1/ 나는 내안에 하나님이 살고 있는가?

2/ 나는 매일 하나님의 임재가 나를 덮고 채우고 있는가?

3/ 나는 나의 예배가 나의 인도하심을 받는 출발점인가?

나는 나의 시선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주목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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