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도와 약함1 (김도현교수)  
< 십자가의 도 (고전 1:18-30) >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하이델 베르크 교리문답의 제 1조항이 생각납니다. 


하이델베르크 제 1조 항

우리의 위로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 회개는 골방에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자리에서 가던길를 돌이키는 것이다. 메타노이라 (μετάνοια)라는 말은 익숙하게 가는 

삶의 자리에서 돌이키는것. 돌아서는 것을 말한다.


< 아모스 8장 11절 - 14절 >
11 그 날이 온다. 나 주 하나님이 하는 말이다. 내가 이 땅에 기근을 보내겠다. 사람들이 배고파 하겠지만, 그것은 밥이 없어서 겪는 배고픔이 아니다. 사람들이 목말라 하겠지만, 그것은 물이 없어서 겪는 목마름이 아니다. 주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서, 사람들이 굶주리고 목말라 할 것이다.
12 그 때에는 사람들이 주의 말씀을 찾으려고 이 바다에서 저 바다로 헤매고, 북쪽에서 동쪽으로 떠돌아다녀도, 그 말씀을 찾지 못할 것이다.
13 그 날에는 아름다운 처녀들과 젊은 총각들이 목이 말라서 지쳐 쓰러질 것이다.
14 사마리아의 부끄러운 우상을 의지하고 맹세하는 자들, '단아, 너의 신이 살아 있다', '브엘세바야, 너의 신이 살아 있다' 하고 맹세하는 자들은 쓰러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암8:11-14, 새번역)

•오늘 시대의 문제는 < 긍정의 복음 / 풍요신학 >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 본훼퍼는 독일교회의 심각한 문제를 지적하면서 " 독일교회는 값싼은혜를 구하는 것이 문제이다 "라고 지적했다. 긍정의 복음이 독일교회를 망쳤다. 
독일사회는 무기력함에 빠졌있었고 독일 교회는 값싼은혜만 구했다. 

  • 값싼은혜 : 감정에 호소한 은혜 / 축복을 외침 / 사람들이 듣기원하는 말씀 /

                      세상에 즐길것이 많다. 그것을 즐기기 위한 복음이 외쳤다. 




우리는 이러한 독일교회의 지나온 실패와 문제를 
오늘 우리 이민교회와 한국교회에서 그대로 보고 있다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우리는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용도가 무엇인가?

고민하고 다시 묵상해야할 때이다. 


십자가의 용도는 죄사함에 받는것로 끝나지 않고 
그것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말해준다.


•십자가의 도는 < 십자가의 원리 >를 말한다. 

고전 1:18 :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는 어리석은 것이다.

•영적인 비법이란? 좋은 삶을 누리는 것. 향상된 삶의 원리 ( 고린도교회의 원함) 이라고 생각한다. 

• 고린교회 교인들은 십자가는 구원받는 용도로 끝났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지혜로 삶이 향상되는 것으로 원했다. 이것이 그들을 잘못된 십자가와 값싼은혜와 같은 것을 만들어 냈다. 

•구원 문제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의 구원이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것과 구원과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다.

•십자가는 계속 우리에 필요한 나의 밖에 일어난 사실이며 
내 안에 일어나는 경험이다.

•이사야서 29장 인용 : 유다에 대한 메시지

<이사야 29:13-14절>
13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고, 입술로는 나를 영화롭게 하지만, 그 마음으로는 나를 멀리하고 있다. 그들이 나를 경외한다는 말은, 다만, 들은 말을 흉내내는 것일 뿐이다.
14 그러므로 내가 다시 한 번 놀랍고 기이한 일로 이 백성을 놀라게 할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들에게서 지혜가 없어지고, 총명한 사람들에게서 총명이 사라질 것이다. (사29:13-14, 새번역)


하나님을 믿었더니 ..... 좋은 일 있을수 있다
그래서 나도 믿으면 그렇게 되나요? 라고 많이들 생각한다. 

우리가 결과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 문제이다.
현상이나 결과가 있을 때 믿는 것은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이상한 성공신학  / 풍요신학 / 기복신학 / 천박한 자본주의 / 긍정신학


십자가의 진리는 모순적인 것이다. 

이성적이고 설득력있는 진리가 아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 인간의 영광의 신학 >에 대한 항거에서 시작되었다. 



  • 잘못된 사실 : 하나님만 믿으면 모든것이 잘 될것이다
                         잘되는 사람만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이 < 권력, 탐욕, 이기적, 욕심쟁이 >로 만들어 버렸다. 



    십자가의 신학을 회복함으로 약함의 신학을 바로 세워야 한다. 

    교회가 약한자와의 연대가 아니라 강한자와 연대를 계속하고 있다.
    교회가 힘없는 이들 가까이 있지 않고 교회가 힘있는 이들과 더 친밀하다.

    교회가 세상적인 성공에 주목할때 문제가 생긴다.


  • 이라크에 있는 그리스도인에게 요청한 무슬림들의 타협은 < 다른 모든 종교행위는 해도 되지만 예수를 하나님으로 부르지 마라 >고 요청했다. 
  • 여기에서 이라크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실패가 있었다. 
무슬림들이 기독교인들을 우습게 여기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들은 자신들의 믿음으로 인하여 목숨을 내어놓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믿는 것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자들이 없다고 믿는 것이다.

  • 세상과 타협을 한 교회 vs 세상의 핍박을 받는  교회


    우리는 이 시점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 다시금 고민해보아야 한다. 
  • 고난의 경험들이 말씀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 설교중에 언급한 내용에 참고 할 사항 >

  • 본회퍼는 많은 독일 교회가 나치 정권을 지지하고 나서자 진정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쫓는 제자의 삶을 회복해야 한다는 고백교회(the confessing Church)를 동료들과 함께 설립하고 나치정권에 대항운동을 주도하였다. 그 후 런던에서 2년간 목회하고 되돌아와 목사들을 양성하는 지하 신학교에서 산상설교를 중심으로 신약성경을 강의하였다.그의 강의는 청중들에게 숨이 막힐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는데 그때에 “값싼 은혜, 값비싼 은혜”를 설명하였던 것이다. 그 강의안 자필원고를 중심하여「제자도」(Discipleship)라는 책이 나왔고 한국어 번역판은 독일어 원제 “Nachfolge” (직역하면, ‘뒤따름’, ‘following after’)에서 영감을 얻어「나를 따르라」란 책으로 출간되었다.이 책은 제목이 말하듯이 제자를 부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청에 “단순한 순종”(simple obedience)으로 살아갈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 값싼 은혜 : 본회퍼는『제자도』에서 복음에 대한 이해와 순종 여부가 복음을 “값싼 은혜(cheap grace)”로, 또는 “값비싼 은혜(costly grace)”로 만들 수 있다고 하였다. 값싼 은혜와 값비싼 은혜를 본훼퍼는 개혁자 마틴 루터(M. Luther)의 신학에서부터 출발한다. 루터가 말하는 “오직 은혜로(Sola Gratia)”라는 주장은 전제가 아니라 결론이라는 것이다.

  • 값싼 은혜는 싸구려 상품 같은 은혜이며, 싸구려 죄의 용서, 싸구려 위로, 싸구려 성만찬입니다. 교회의 무진장한 창고에서 생각도 없이, 끝도 없이 경박한 손으로 털어내는 은혜입니다. 가격도, 경비도 없는 은혜입니다. … 값싼 은혜는 교리, 원리, 체제로서의 은혜입니다. 일반적인 진리로서 죄의 용서이며, 기독교적인 신론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값싼 은혜는 회개 없이도 죄를 용서하는 설교요, 공동체 훈련도 없이 베푸는 세례요, 죄의 고백도 없이 참여하는 성만찬이요, 인격적인 참회 없는 면죄의 확인입니다. 순종 없는 은혜, 십자가 없는 은혜, 살아 계시고 인간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은혜, 이것이 값싼 은혜입니다. 값비싼 은혜는 끊임없이 찾아야 할 복음이며, 기도해야 할 은사이며, 두드려야 할 문입니다. 은혜가 값비싼 까닭은 은혜가 우리를 제자의 길로 부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은혜인 까닭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값비싼 까닭은 인간에게 생명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은혜인 까닭은 인간에게 생명을 선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값비싼 까닭은 죄를 저주하기 때문이요, 그것이 은혜인 까닭은 죄인을 의롭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값비싼 까닭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하나님에게도 값비쌌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의 생명을 희생했기 때문입니다.

    -Nachfolge, 29-31(『나를 따르라』, 24-26)

  • 루터의 십자가 신학 :
    이것은 루터자신이 말한 것으로서 “십자가 신학”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는 말이다. 이것은 사변적인 것이 아니고 실존적인 것이며, 루터가 죽는 순간까지도 붙잡았던 좌우명이다.
    그럼 왜 루터는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라고 말한 것일까? 당시 중세는 한 마디로 영광의 신학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영광의 신학은 중세 교회를 대표하는 신학이다. 영광의 신학은 스콜라주의적 사색과 신비주의적 경건을 가지고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신학이다. 그러므로 인간 의지를 신앙보다 더 소중히 여기며, 공적을 앞세운다. 또 존재의 유비를 일삼아 신학을 논한다. 하나님을 직접 만나려고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다.
    루터도 사실은 영광의 신학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려고 한 사람이다. 루터 전기에 있어서 여러 가지 이론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루터가 로마에서 빌라도의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 올라갈 때마다, ‘Pater Noster`을 암송하면서 계단마다 입을 맞추었다고 한다. 이것은 그가 연옥에서 영혼이 구출되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계속하였다고 한다. 드디어 마지막 계단을 올라 선 루터는 더 큰 실망감을 가졌다는 일설이 있다. 지원용, 「말틴 루터」(서울: 컨콜디아사, 1987), pp. 61-64.
    고행을 통해서, 업적을 통해서, 성자들의 공로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한 루터는 더 큰 좌절감만을 가지고 온 것이다.
    그러나 영광의 신학 아래서 고민하던 루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의롭게 하시는 은총을 발견하였으며, 그 십자가에서 역설 가운데 숨어계신 하나님을 별견하였다. 그러므로 루터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십자가이다.
    따라서 루터에 표현에 따르면 “오직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며, 십자가가 모든 것을 시험하는 것이다.” 바로 그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간접적으로, 다시 말해 인성과 고난과 연약함의 역설 가운데 계시하셨다. 즉 고난과 연약함 가운데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셨다.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Crux sola est nostra theologia)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