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 GSC 새벽 큐티 설교 <고전 6:1-13> ==



제목 : <고전6:1-13> 알지 못하느냐




 

바이블타임 본문 < 고전 5-8> 본문 중에서

 

[고전 6:1-11]

(고전 6: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고전 6: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고전 6: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고전 6: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고전 6: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고전 6:6)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고전 6: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고전 6:8)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고전 6: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고전 6: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전 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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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함께 묵상하고 있는 고린도 교회는 많은 이슈들과 문제들을 앉고 있는 교회 였습니다. 바울을 고린도교회를 바라보면서 그리고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고린도 교회에 대한 소문을 들으면서 고린도교회가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떤 것을 바로 잡아야 하는지? 분명하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아주 영적이면서 아주 세속화된 교회 였습니다.

고린도교회는 경제적으로 부유하였지만 영적으로 가난한 교회였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아주 지적이면서 아주 율법적인 교회였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아주 신앙적이면서 아주 비도덕적인 교회였습니다.

고린도교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였지만

속으로 심각하게 병든 교회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고린도교회에 대해서 분명한 어조로 그리고 단호한 말로 교회의 문제들에 대해서 편지하고 있습니다




리가 함께 읽고 있는 고린도전서의 각 장마다 고린도교회가 갖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사도바울의 진단과 처방이 나오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의 각 장을 넘길때면 오늘은 어떤 문제를 고린도교회가 꾸지람과 책망을 듣게 되나는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고린도전서를 설교하는 것이 설교자에 부담이 되는 본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책망을 전해야한다는 부담이지요. 그리고 또한 이 책망이 곧 저와 오늘의 교회를 향한 책망이기에 더 뜨끔하고 마음 한컨이 아려옵니다.


다른 여러 서신서들에서 사도바울은 성도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면서 교회안에 있는 교리적인 논쟁들 그리고 거짓교사들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는 조금은 조심스럽고 걱정스러운 어조로 서신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를 향한 편지해서 사도바울을 안타까움과 선한 분노가 담겨 있음을 보게 되지요.

 

이것 역시 세속에 물들지 않고 복음과 믿음을 지키기를 바라는 목회자의 애정. 목자의 심정 그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에서 나오는 동기에서 출발한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의 진리에 견고하게 서서 어떠한 헛된 것들.. 어떠한 불의한 것들이...어떤한 죄악된 것들이 주님의 교회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강하게 경계하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불의한 것에 병들고 오염되는 것에 대한 심한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는 것 지요...

 

그래서 고린도 전서의 각장에는 사도바울의 < 성도들과 교회에 대한 책망과 죄의 대한 지적, 잘못되어가는 일에 대한 교정, 자신과 복음에 대한 오해에 대한 해명 >이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강하고 센 어조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6장에 사도바울의 안타까움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있는 문구가 있다면 그것은 < 알지 못하느냐 > 라는 말입니다. 말은 고린도전서에 6번이나 등장하고 있습니다. 3/9/15/16/19/ 에 등장합니다.


(고전 6: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 일이랴

(고전 6: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이미 알고 있고 이미 배운 바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책망하고 있는 것죠.

 

<알지못하느냐?>라는 말속에 바울의 답답하고 안타까움 심경이 담겨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주 자신의 마음을 < 알지못하느냐 ? > 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고린도전서의 전체의 분위기와 바울을 심정을 알수 있는 물음과 외침이 바로 <알지못하느냐>라는 말 한마디속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5: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9:13)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오늘 고린도전서 6장에 사도 바울이 다루고 있는 교회의 이슈는 무엇입니까 ?

바로 <송사>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송사는 세상법정에 교회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들. 교인들끼리 일어난 사소한 문제들을 세상법정에 가져가서 판단 받는 일에 대한 사도바울의 책망과 권면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고린도 교회안에서 일어난 교인들끼리 일어난 사소한 문제들을 교회안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그것을 세상법정까지 가져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사도바울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일어나고 있는 이 이슈가 오늘 현대교회.. 오늘날 지금 여기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교회들에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문제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최근에 교계뉴스나 기독신문을 펼치면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기사역시 <교회안에 분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랑의교회 차압/두레교회 김진홍목사/삼일교회>


들 교회들의 세상법정 소송이야기는 교인의 가십거리가 될 뿐아니라 세상속에서 교회의 부끄러움이 되고 있는 것이 참으로 통탄하고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한마디로 세상에 이런일이...”라고 말할만한 일이 고린도교회안에서도 있었고 지금 오늘 이민교회... 한국교회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이것이 현실이며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의 고린도교회 당신의 문화적인 배경을 생각해보면... 아마도 고린도 교회안에서 일어난 소송의 문제는 아마도 교인들끼리 <금전거래에서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많은 학자들의 이 소송의 원인이 < 형사상의 문제라기보다는 민사상의 문제에서 >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교인들끼리 버러진 억울한 금전적 손해에 대해서 세상법정으로 가져 간 것입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소송을 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교회안에 지휘가 높고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영향력이있는 이들이 그러한 소송의 주도적인 역할 했을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그 당시 로마법제도에 의하면 법정은 빈민들이나 심지어는 평민들도 쉽게 갈만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사실상 세상법정에서 판결을 받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로마 통치하에 고린도에서 보통 법정은 < 아고라 >라고 불리는 시장의 중심부에 있었습니다. 그기에 판사가 앉아서 재판을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제국의 사회 규범에 따르면 오직 부자와 권력자들만이 상대방을 법정에 세울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추측해본다면.. 고린도교회에 일어난 소송의 문제는 교회안에서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고 경제적으로 부요한 사람이 교회안에 약하고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어떤 금전적인 것을 빌려주었는데 그것을 받지 못하니까


지위가 높은 교인이 자신에게 손해를 끼친 지위가 낮은 교인을 <시장 한가운데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세워서 재판을 받게 한 것>이라는 추측을 할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일에 대해서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불의한 일이며 이것은 세상에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누가 누구를 판단할수 있느냐 ? 라고 말합니다.

사랑과 용서의 복음을 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리고 누가 누구를 판단할수 있느냐

그리고 교회안에서 이 문제를 판단하고 해결할 수 없느냐

라고 하는 요청을 합니다.


교회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세상법정에.. 세상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판단 받게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사도바울이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아마다 이런 심정으로 고린도전서 6장을 기록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교회안에 사랑과 용납이 어디 있으며... 도대체 교회안에서 용서와 화해가 어디있느냐.. 정말 부끄러워서 눈을 들 수가 없도다.. 도대체 세상이 이런일이 어디 있으며.. 세상에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일이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다니.. 기가차서 말이 안나온다... 정말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수가 없다.


(고전 6:4) 그런즉 너희가 세상 사건이 있을 때에 교회에서 경히 여김을 받는 자들을 세우느냐

(고전 6: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그리고 사도바울의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한마디를 덧붙입니다.


너희 장차 주님의 오셔서 재림하는 날에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너희가 세상을 판단하고 천사를 판단할 것이지...

너희 형제를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안에서 한 형제가 서로를 판단하여 세상의 법정까지 가는 그일을 어리석고 불의한 일이며 세상앞에 부끄러운 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스스로 허물을 만드는 일이며 이미 분명한 허물이 되고 있다고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 6:5)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 하여 이 말을 하노니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고전 6:6) 형제가 형제와 더불어 고발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고전 6:7) 너희가 피차 고발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뚜렷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고전 6:8)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이러한 문제 생길 때 가져야할 자세를 말해줍니다.

<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안에서 성도간에 < 판단과 비난 >의 이슈는 항상 도사리고 있습니. 

이것은 어쩔수 없는 연약함이 우리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 우리는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이 바르고 옳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느낌과 감정 그리고 판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자신의 시각으로 그 사람을 바라봅니다.


이러한 마음과 생각은 우리의 거짓되고 부패한 죄성/습성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이것은 범죄한 아담의 본성이며 범죄한 가인의 생각입니다. 아담은 하와를 판단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판단했습니다. 가인은 아벨을 판단하고 하나님을 판단했습니다.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는 연약함입니다.


종종 연약한 사람들중에는 자신이 재판관되고 자신이 수사반장이 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잘 잘못을 따지고 반드시 바로잡고 반드시 이기고 말겠다는 세상적인 마음에 휩싸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와 용납.. 용서와 화해라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정신이 없이 여전히 세상적인 거짓된 동기와 불순한 동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도 사도바울도 우리에게는 분명히 권하고 있습니다. 판단하지 말라.. 그리고 오히려 손해보기를 자처하라.. 말씀하십니다.


고린도교회에 일어난 이 소송의 문제는 교회의 하나됨을 깨뜨립니.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분열시킵니다. 바울이 그것을 알기에 다시금 이 문제를 언급하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고전 6: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는 주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안에서 새롭게하심을 날마다 경험하는 사람입니다. 내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성령의 씻으심과 거룩케하심과 의롭하심의 우리가 가장 큰 위로입니다. 이것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용납하고 사랑하고 포용하는 에너지가 됩니다. 사람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판단이 더 중요합니다.

 


@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은 심판을 생각하고 있다.

원래 로댕은 지옥의 문이라는 작품에 생각하는 사람을 많은 사람들의 모습속에 한 모습으로 만들어 넣었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할까요?


전날밤에 옷을 어디에 두었는지 고민하고 있을리는 없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분리된 영원한 심판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랑과 받은 용납만 생각해본다면... 우리는 어떤 사랑과 용납을 다른 사람에게 하는지 알수 있습니다.

 

그 사랑이 식어지고 그 용납받음을 기억하지 못하니까? 교회안에 다툼이 있고 판단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죠..

 

부족한 사람이 있다면 세워서 온전케하고 때로는 기다려주고 배려하고

지적보다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사람을 더 세워갑니다. 이것인 사랑과 용납받은 사람이 해야하는 노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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