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 GSC 새벽 큐티 설교 <요한복음 5:39-47> ==



제목 : 어찌 나를 믿을수 있느냐 ?






[5:39-47]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5: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5:41)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5: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5: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하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5: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5:45)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5:46)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5: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제목 : 어찌 나를 믿을수 있느냐 ?


오늘 말씀은 제법 긴 요한복음 5장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요한복음 5장은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된 병자를 치유하시는 사건에서 시작됩니다. 이 치유는 하나의 기적인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당시에서 없었던 일종의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키는 사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치유의 사건이 바로 유대인들의 안식일에 일어난 사건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치유되고 회복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안식일을 범하는 일이 었고 또한 율법을 어기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께서는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신후에 그 사람에게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당시에 유대인들의 율법의 구체적인 세칙이 있었는데. 그 세칙에는 < 안식일에는 사람이 1km이상의 길을 걸어서는 안되며 환자가 누워 있는 침상을 운반 할 수는 있지만 환자가 누워있지 않는 침상을 운반해서는 안되도록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

바로 그러한 하지 말라야할 일들을 안식일에 하라고 명하시는 예수님이 었습니다. 그 당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던 불편한 시선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당시에 바리새인들과 유대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도대체 예수라는 자가 뭐길래? 무슨 권위로 자신이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할 일을 명하는가? 하는 곱지 않은 시선과 의문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특히 더 그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것은 바로 <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됨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찌 참람하게 이러한 말을 할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슨 근거로 무슨 이유로 감히 이런 말을 할수 있단 말인가? 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그 당시 바리새인들과 유대지도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이시다는 것과 그리고 자신 하나님의 아들되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특히 이러한 <안식일 논쟁>을 벌일때마다 그러한 자신의 존재를 변호하고 설명하셔야만 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자기 변호인 동신에 자신의 하나님됨과 하나님의 아들됨을 증거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특히 이것은 요한복음 전체의 목적이며 분위기 이기도 합니다.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임하신 예수님이 누구인지? >를 주목하고 설명하고 설교하고 있는 성경이 바로 요한 복음입니다. 4복음서중에서 아주 신학적이며 아주 기독론적인 성경이 바로 요한 복음이입니다. 그래서 요한 복음의 문체는 강화체입니다. 강화체라는 것은 설교체라는 것입니다. 어떤 구체적인 주제와 목적을 가지고 그것을 분명한 어조로 설명하고 설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요한복음입니다.

 

그러한 이유에서 오늘 요한 복음 5장의 내용에 많은 부분이 예수님이 왜? 하나님의 아들인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을 알려주마 !와 같은 형태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요한 복음 5장의 하반절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됨에 대한 증거를 4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1/ 세례요한의 증거입니다. 유대인들이 권위있다고 생각하는 인물인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어떻게 말했는지?가 첫 번째 증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증거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리스도에 대한 또 다른 증거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2/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역사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권능을 보고서 놀랐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기적과 이적이 바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입증해줍니다.


3/ 하나님께서 친히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하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변화산상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자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마지막 증거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4/ 성경 곧 구약성경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하는 증거입니다.

이것은 그당시 율법을 잘 알고 있는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아주 친숙한 증거입니다.

이마 구약의 말씀을 통해서 메시야 예수그리스도가 어떤 모습을 어떤 사역으로 어떤 존재로 오게 될지를 예언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있었지만 <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바로 이점을 오늘 분문에서 예수님께서 지적해내고 꼬집어 내고 있는 것이죠.

그당시의 유대지도자들 꽤나 율법을 연구하고 읽었다고 자부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율법을 읽고 연구해본들 < 주제 파악도 못하고 개념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5:39-40]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그 당시의 율법주의자들과 종교지도자들은 < 예수님을 알아보지도 못했고 예수님께로 오지 않았으며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하지도 믿지도 않았습니다. > 바로 이유는 무엇인지?를 문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 그들에 일침을 가합니다.

(5: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의 모습을 한탄하시며 이렇게 2번이나 말씀하십니다.

(5: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5:47)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저는 이 말씀에게 저에게 강한 도전으로 다가오는 말씀이 바로 < 어찌 나를 믿을수 있느냐?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바로 이 책망과 안타까움이 담긴 예수님의 음성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음성으로 다가와야합니다.


< 어찌 나를 믿을수 있느냐 ?>는 질문은 그당시에 율법주의자들이나 형식적인 유대종교에 머물고 있는 이들을 위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오늘 말씀을 듣고 읽고 있지만 참으로 주님을 만지못하고 살고 있는 이중적인 신앙으로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의 신앙을 향해 주신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 너는 교회를 오래다니고 성경을 그렇게 자주 접하고 대하고 직분을 받고 교회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어찌 나를 믿을수 있느냐?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 >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아침에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강한 도전은


< 정말 나를 알아보긴 하니? 정말 내 말길을 알아듣고 있는 거니 ? 아니 정말 나를 원하고 사랑하고 믿고싶기는 하는 거냐 ? >라고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율법주의자들에게 주신 말씀이지만 반대로 오늘 너무도 편한한 시선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있는 형식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말씀으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이 < 어찌 나를 믿을수 있느냐 ? > 의문을 던진 유대인들의 문제를 보아야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그러한 개념조차 없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그들의 3가지로의 문제점을 나누고 싶습니다.


1/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믿고 싶은 자기중심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이 성경에서 읽은 메시야는 그들이 지금 눈앞에서 보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수없이 읽었지만 자신들이 원하고 바라고 믿고 싶은 자기 중심적인 메시야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것입니다. 왜냐하면 뭐나 자신들이 생각하던 메시야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성경을 읽어도 고정관념과 잘못된 생각으로 사로잡혀 있기에 성경을 읽어도 참된 주님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지요.

바로 이것이 우리도 빠지기 쉬운 함정입니다. 바로 우리의 아전인수와 같은 신앙이 주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합니다.

 

2/ 본질보다는 형식에 매여 있는 껍데기 신앙입니다.

율법주의 문제는 사랑의 본질은 잃어 버린채 사랑이 없는 형식적인 종교적인 원칙만을 내세운다는 것입니다. 특히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사역을 하실때마다 논쟁의 벌렸던 주제가 안식일 논쟁입니다. ?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할 일을 합니까? 라고 하는 질문을 합니다. 그때마다 예수님은 < 그러면 안식일에 진정으로 무엇을 해야 하느냐 ? >라는 대답을 응대합니다. 그러면서 안식일에 일어날 일은 바로 치유와 회복이라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정작 해야 하는 것은 하지 않은 채 하지 말아야할 것만 찾아내서 그것에 집착하는 것이 껍데기 신앙입니다. 우리는 항상 신앙생활을 하면서 < 본질과 형식 >이라는 이 두 균형잡기를 해야합니다. 본질을 놓치면 껍데기만 남습니다. 그러난 본질을 잘 싸고 있는 껍데기만큼 온전한 것은 없습니다.

 

3/ 하나님의 영광보가 사람의 영광을 구하는 자기 자랑입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이유가와 동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신의 의로움과 거룩함을 드러내고 자랑하고자하는 자랑꺼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5:41-42]

(5:41) 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5:42)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 동기는 하나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람에게 영광을 얻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그 동기를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지적하셨죠.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도 < 어찌 나를 믿을수 있느냐 ?>는 예수님을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유대인들처럼 우리에 있는 숨어있는 < 자기중심, 껍데기 신앙, 자기 자랑 >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우리 자신에 물어보아야합니다. <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것이 너희속이 있는가? 나는 예수님이 참으로 누구신지? 알고 믿고 있는지 ? >

 

찰스 웨슬리

< 내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헐떡이며라도 그분의 이름을 말할수만 있다면 행복하리라. 그분을 모든 사람에게 전파하라. 그리고 죽음속에서 외치라. 보라. 어린양을 보라 >

 

루이스 

<당신은 선택해야만 한다. 주님은 과거에도 지금도 변함없이 하나님의 아들이든가 아니면 미친 사람 혹은 그보다 더 못한 어떤 것이든가 둘중 하나이다. 당신은 이 사람의 어리석은 말을 묵살할수 있다. 그에게 침을 뱉고 또 그를 마귀로 몰아 줄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발 아래 엎드려 주님이시며 하나님이시라고 부를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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