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GSC 새벽 큐티 설교 <요한복음4:19-30> ==


@ 설교문중 그림 인터넷 갈무리함 




제목 : 참 예배자


[4:19-30]

(4: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4: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4: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4: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4: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4: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4: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4: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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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참 예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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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월 한달의 본문이 < 요한 복음 >입니다. 특별히 오늘 요한복음 4장에 주제는 < 예배 >입니다. 특히 올해 우리교회의 영적인 방향이 < 예배가 삶이 되고 삶이 예배가 되라>는 주제가 절묘하게 어울리는 본문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제가 특새가 끝나고 오늘 제가 설교할 본문이 무얼까 미리 찾아 보았는데요. 깜짝 놀랐습니다. 어찌 이런일이.. 어찌 이럴수가 ? 이제 2월 부터는 더 이상 생명의 삶으로 설교도 하지 않는데 이렇게 절묘한 조화가 있을수가 ? 하고 주어진 본문에 놀라웠습니다. 전문용어로 < 아다리가 잘되었다 >라고 할수 있는 본문이 바로 오늘 < 요한 복음 419-30>입니다.

 

특히 이 본문은 송목사님의 쓰신 책 < 오후 5시에 온 사람 >Chapter 2< 정오의 태양아래에서 >라는 주제의 본문이기도합니다. 오래전에 송목사님이 이 본문으로 설교를 한 것으로 기억하구요..

이 책에서 예수님께 찾아온 사마리아 여인의 상처를 말하고 있습니다. < 정오의 태양보다 따가운 눈총을 피해 나온 여인, 이 사마리아 여인은 더러운 여자가 아니라 상처받고 짓밟힌 여인, 대인기피증에 시달린 여인 >

 

그리고 이 여인에게 찾아오신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라고 말한 여인의 아픔을 이해하신 주님 >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

< 수치와 부끄러움으로 꽉 차 있던 인생, 혹여 머리카락이라도 보일까 꼭곡 숨어지야 했던 그녀가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온세상 사람에게 말할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정오의 태양에 이글거리는 시간에 찾아오신 주님은 아무것도 없는 여인에게 모든 것 그 이상을 주셨다. 주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우리 영혼의 가난과 상처를 직시하시고 어느 누구도 만나주지 않고 위로해주지 않을 것 같은 우리에게 찾아오신다. 최악의 장소, 최악의 사람, 최악의 시간이라 할지라도 하늘의 은혜를 막을수 없다. 우리가 누구이든, 어디에 있든, 때가 어떻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소망이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2015년 우리에게 주어진 묵상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 예배 >일 것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 예배자이면 예배자의 삶 >일것입니다.


특히 요한복음에 '예배'라고 하는 말, 예배드린 자, 라고 하는 말이 열 세 번나오는데 그 가운에 오늘 봉독한 요한복음 4장에 열 번이나 집중적으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예배가 무엇인가를 알고싶 으면 예배라는 단어가 등장된 그곳을 열심히 묵상하면 알 수가 있어요. 요한복음 4장만 잘 이해해도 예배가 무엇인지,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되는 것인지, 우리에게 잘 가리켜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주동안 내내 이 본문가지고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가 무엇입니까? 예배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예배자의 삶이란 어떤 것입니까? 오늘 요한 복음 4장에서 만난 우물가의 여인의 변화는 한 여인의 상처와 아픔이 치유되고 회복되고 변화된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이 여인을 예배자로 회복시키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예배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이방 땅 사마리아에 예배가 무엇인지? 말씀해주시는 장면입니다.

 

어떤 예배에 관한 책을 보다가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 예배는 하나님과 술래잡기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잡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를 잡으시도록 보이는데 숨어야합니다. 자꾸 보이 않는데 숨으면 하나님은 그냥 지나쳐 버리십니다. >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신것에 우리 자신을 숨기지않고 드러내는 것입니다. 좋은 예배자는 하나님이 찾기 좋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예배란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모시는 과정입니다.

예배란 하나님을 향한 모든 가치있는 응답입니다

(Worship is any and every worthy response to God.

 

오늘 본문은 요한복은 4장의 내용을 우리가 어떤 예배자이면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가 어떤 사람인지?을 알게해주는 정말 귀하고 중요한 본문입니다.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예배자를 찾고 있다는 것은 2가지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1) 예배자가 찾을 만큼 별로 없다. 2) 예배자를 찾을 만큼 예배를 좋아하신다

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 수록 하나님은 예배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온전히 드리는 이들에게 놀라운 이들을 경험케하시고 형통의 역사를 주신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우리안에 진정한 하나님의 얼굴이 드러나는 시점은 바로 예배할 때입니다.

그리고 우리안에 진정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시점은 바로 예배할때입니다.

그러한 참된 예배자 . 참 예배자를 하나님이 찾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이 갈릴리로 가는 도중에 사마리아 한 여인을 만납니다.

처음시작은 물한잔 주이소 에서 시작해서 마지막은 예배하라 로 끝나는

이상하고도 진진한 대화들로 되어 있는 그런 본문입니다.

 

신약성경시대의 팔레스타인 지방은 북쪽의 갈릴리와 남쪽의 유대 및 그 가운데의 사마리아로 나뉘어져 있어습니다. 이중 갈릴리는 예수님이 자랐고 또한 주로 활동하신 곳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가끔은 유월절과 같은 유대인들의 명절에 유대의 예루살렘으로 가기도 하셨습니다.


한번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유대에 와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다가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돌아가셨습니다. 사마리라를 통과하던 중 <수가>라고 불리는 한 사마리아의 도시에 이렀는데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곳이 었습니다.

거기에는 야곱의 우물이라는 한 우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여행에 지쳐 그 우물곁에 앉으셨는데 그때가 당시의 시간으로 여섯시쯤 요즘 시간으로 낮 12시쯤이었습니다. 정말 뜨거운 태양빛이 내리 쬐는 그러한 시간이었습니다.

한여인이 물을 길르러 우물가로 다가왔습니다. 예수님은 물을 달라고 하면서 그 여인과의 대화를 시작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미 먹을 것을 사로 시내에 들어간 뒤었습니다.

 

(4: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4: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4: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이제 본격적으로 이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가 시작됩니다.

저는 이 말씀을 통해서 --- 예배자는 어떤 사람인가? 집중해서 살펴보고자합니다.

 

1. 예배자는 예수님이 찾아오는 사람입니다.

예배자는 예수님을 만난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주님께 우리가 찾아오시전에 주님이 먼저 나를 찾아오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찾아오는 은혜가 있길 바랍니다.

예배자에게 주님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4: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사마리아인에게 예수님은 찾아오셨습니다.사실 성경의 역사을 이해하면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 불편한 관계였습니다. 당시 유대인은 사마리아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인은 불결한 사람, 더러운사람, 불경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마리아인은 여자였습니다. 여자를 경시하는 풍조가 있었기 때문에

여자 사마리아인 하면 정말 접근 금지 입니다.

사마리인을 유대인들은 개 취급했습니다. 개만도 못하고 -- 개보다 못하고 -- 개같은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신분상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무척 싫어했습니다. 오랜시간에 걸쳐 심각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사이에는 2가지의 문제가 존재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을 상종치 않았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거리감이었죠.


1) 예배의 정통성의 문제 : 이방신의 예배했던 사람들, 금송아지 예배자들, 배은망덕한 예배자들. 우상숭배 예배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예배를 가졌습니다.

2) 혈통의 문제 -- 이방의 잡족 출신, 혼열족,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혈통과 편견과 선입관을 버리고 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에서 주님의 놀라운 기적과 치유를 경험했던 이들은

주님이 찾아 오심을 경험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자주 모셔드려야합니다. 바로 그것이 예배입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말을 겁니다. 예수님과 대화를 시도합니다.

바로 이장면은 바로 이 여인에게 예배가 시작되는 장면입니다.

그런 여인에게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이 사마리아 땅에 오신것은 주님의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예수님께서 일부러 여기로 오셨다고 확신합니다.

 


2. 예배자는 영적인 목마름과 굶주림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예배자의 시작점은 바로 타는 목마름, 갈망, 갈증, 굶주림에서 시작됩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은 남들의 시선과 눈을 피해서 -- 우물가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물을 기르고 가는 것이 그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말할수 없는 아픔이 이었습니다. 그는 신분상 사마리아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혼을 5번이나 실패하고 거절당한 아픔과 상처와 응어리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여인에게는 자유함이 없었습니다. 사람들 만나는 것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오지 않은 정말 무더운 시간에 나왔던 것입니다.

 

실제로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낮12시는 방에 문을 닫고 -- 가게도 하지않고 -- 그냥 집에 있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그 시간에 사람의 눈을 피해서 나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그녀의 아픔과 상처와 고통 그리고 거절감이 얼마나 큰지를 말해줍니다. 그녀는 그 상처를 감추고 싶었습니다.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비난과 비아냥 거림을 견딜수 없었습니다.

 

5번의 결혼 실패는 그녀로 하여금 위축되게 만들고 자신없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실망스러운 모습이며 자신의 낮은 자존감, 의기소침함이었습니다.

마음에 한없는 빈곳이 그녀를 강타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자살충동을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이 여인의 아픔을 2가지로 요약한다면

1) 숨기고 싶은 아픈 과거가 있습니다.

2) 드러내고 싶지 않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날도 여인은 다른 때처럼 물을 길으러 우물가로 나왔습니다. 어제도 마셨고 그저께도 마셨고 한주전 한달전 아니 태어나면서부터 마셔온 물을 또 마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물론 내일도 모레도 일년후도 결국 죽을때까지 물을 마셔야 하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거기서 만난 낯선 사람이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물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자는 과거와 아픔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자가 더 잘 예배할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100살때까지 자식이 없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요셉도 형에게 버림 받은 아픔이 있었습니다.

야곱도 아버지를 속이는 아품이 있었습니다.

모세도 사람을 주이고 도망친 아픔이 있었습니다.

다윗도 밧세바를 범하는 아품이 있었습니다.

엘리야도 갈멜산대결이후에 자신을 죽여달라는 우울증에 빠지는 아품이 있었습니다.

히스기야도 자신이 죽을 병에 걸리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도 자신의 일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아픔이 있었습니다.

다니엘도 사자굴에 들어가는 아품이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의 배신을 당하는 아픔과 십자가의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다 그 아픔을 이겨내고 그 과거에 얽매이지 아니히고 하나님을 예배한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그 아픔을 딛고 예배하기로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예배자는 자신의 아픔과 숨기고 싶은 마음 대로를 가지고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이미 사마리아 여인의 아픔과 갈급함을 아셨습니다.

 

토미테니의 책 굶주린 예배자 라는 책을 보면

우리는 4가지에 굶주린자들이 되어야한다고 말합니다.


1) 하나님의 임재에 굶주린 예배자가 되어야한다.

하나님을 굶주린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 하나님께 굶주린다 는 말은 지금까지의 삶에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가 없었기 때문에 만조하지 못한다느 것을 의미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밥먹는 것이고 하나님께 밥상을 차려드리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랑에 굶주린 예배자가 되어야합니다.

3) 하나님의 영광에 굶주린 예배자가 되어야합니다.

4) 하나님의 부흥에 굶주린 예배자가 되어야합니다.



이러한 굶주림과 목마름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도록 하나님을 구하도록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만듭니다.


여인은 물을 달라고 하신 주님께서 그에게 물을 주겠다고 하시니

그녀는 놀랐습니다. “ 어디서 당신은 생수 얻겠사옵니까? ”라고 묻습니다.

(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4: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예배의 경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적인 갈급함이 채워지는 것입니다.

예배자는 목마른 자입니다. 영적인 갈망이 있는 자입니다.


영적갈망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껄덕거려야 합니다.

요엘 120절에 같은 표현이 등장하고 있는데

(1:20) 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 시내가 다 말랐고 들의 풀이 불에 탔음이니이다


토미테니는 자신의 책 하나님 당신을 갈망합니다. ”에서

하나님 그분은 타는 목마름으로 자신을 구하는 자들에게만 오신다. 마음을 깨끗이 비운후 회개의 길로 나아가라. ‘ 진정 하나님을 아는가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꺼져 버린 갈급함의 불이 다시 지펴질 것이다 -- 굶주린 자들은 빵을 찾아 헤매고 있다. 텅빈 교회 찬장에 만족하지 말고 바닥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들을 줍지 말라. 천국 오븐에서 구워진 따끈따끈한 빵을 구하라. ”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이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참예배자의 모습이 있습니다. 영적 갈망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갈급함입니다.

 

3. 예배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처음에는 물에서 시작했던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이제

물에서 남편문제로, 상처와 아픔 문제를 다루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생수를 알게됩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배의 문제로 넘어갑니다.

(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이 여인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예배의 생각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대화를 통해서 바꾸어주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가진 잘못된 예배의 생각

1.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온다 )

(4: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 모르고 예배하고 있다. (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

(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사마리아인의 마음속에는 예배에 대한 갈망 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배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의 조상들은 이 산 곧 그리심산에서 예배하였는 예루살렘에서만 참 예배를 드릴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하여야 할 것을 본래부터 주장하여왔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산에서 예배하여야 정당하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유대 사람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성전을 게르심산에 세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4: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어디서 예배해야 하느냐라는 사마리아 여인의 물음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뜻밖의 것이 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이산 도 유대인들의 예루살렘 도 참되 예배의 자리가 될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배가 장소나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신것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예배하다 는 이 예배는 예수님이 쓰시는 용어입니다.

헬라어 프로스퀴네오 라는 말인데 신 앞에 엎드려 땅에 입맞춤으로 사랑과 존경을 표현하는 행동을 가리켰습니다. 그래서 엎드려 절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께 인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척하는 것입니다.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 하나님존재,다스림,통치,소유권,주재권, 만지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그분이 온세상을 다스리 신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에게 가장 먼저 시작되는 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갔을 때 우리에게 가장 먼저 일어나는 반응도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지금 여기에 계시다는 것을 깨닫고 그분의 현존에 대한 반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기쁘게 대해는 것처럼 존경하는 분을 만나면 반갑게 맞이 하는 것 처럼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사랑과 존경속에서 그분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예배의 습관과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님은

참예배자가 무엇인지? 말씀해주십니다.


[4:23-25]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 주님을 2번이나 말씀하시 계십니다. “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른다고 말씀하십니다. ” “ 그리고 그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때가 온다

그 때가 바로 이 때라

- 예수님은 유대인의 예배는 완전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 유대인의 예배가 사마리아인의 예배보다 나은건 사실이지만 완벽하지 않았다.

첫 번째 예배는 영으로 드려야 한다. 그것이 참된 예배다

· 신령으로 드린다는 말은 우리의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외하는 것을 말합니다. 영어 성경에는 in spirit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 : 인간의 지각 인식 느낌 열망과 같은 감각이다. 우리의 내면, 마음입니다.

- 영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내면의 자아가 참여한다는 뜻이다.


두 번째 예배는 진리로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참된예배입니다.

진정으로 드린다는 말은 진리 안에서(in truth) 드린다는 말입니다.

예배하려면 진리가 무엇인지? 알아야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진리인 말씀의 기초위에서 우리는 놀라운 능력이 나타 난다.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배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다.

예배는 사랑과 기쁨의 회복이어야 한다.

 

4. 예배자는 하나님이 그토록 찾으시는 사람입니다.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 찿는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너무 귀한 것, 만나기 어려운 것 하나 하나 를 선택한다 는 뜻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귀한 보물을 잊어버렸다고 한다면 온 집안을 다 샅샅이 뒤져서라도 그것을 찿아내려 할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오늘 이 자리를 바라보시면서 응답하시고 축복하실만한 찬송, 기도, 예물을 찿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감동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들을 찾고 계십니다.

특히 우리 하나님은 하나님을 좋아하는 사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사람을 찾으실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예배를 받으실 것입니다.

· 그처럼 하나님을 좋아하는 우리를 예배자로 찾으십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예배를 연극에 비유해서 설명했습니다.

예배를 연극에 비유한다면 우리 모두는 배우이고, 하나님 만이 보시는 분, 관객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인들은 자신을 관객인 줄로 생각합니다. 그는 [예배를 보는 자]입니다.


5. 예배자는 삶이 바뀌는 경험을 개선된 나가 아니라

전혀 다른 나를 만드는 길입니다 .

 

(4: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4: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4: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4: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4: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4: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 이 여인은 이제 인생에 변화와 회복이 일어났다. 그리고 새로운 탈바꿈이 일어났습니다. 조금 개선된 나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나를 만나는 시간을 경험했습니다.

·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예배를 배웠고 참예배자가 되고 예배안에 들어갈수 있었습니다.

예배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참예배가 될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과해합니다. 주님의 보혈의 피공로가 나를 새롭게하고 나를 예배하게 하는 것입니다.

· 그녀 가져왔던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갔다.

· 물동이를 버려두가 갔다는 것은 나는 더 이상 이것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 나아갔다는 것은 예배자의 감격과 기쁨을 회복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만난 그 주님을 말하고 그 감격과 감동을 설명해주고 싶었습니다.

· 예배하면 그 예배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물동이를 버리는 것입니다. 더 이상의 수치심이나 죄책감이나 더 이상의 자괴감은 들지 않고 담대하고 당당하게 살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을 도전합니다.

우리는 내일이면 이제 영적 전쟁의 현장으로 달려갈것입니다.

그현장에서 당당하게 예배자로 사시길 바랍니다.

1. 예배자는 예수님이 찾아오는 사람입니다.

2. 예배자는 영적인 목마름과 굶주림이 있는 사람입니다.

3. 예배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4. 예배자는 하나님이 그토록 찾으시는 사람입니다.

5. 예배자는 삶이 바뀌는 경험을 개선된 나가 아니라

전혀 다른 나를 만드는 길입니다.

 

주께와 엎드려 경배드립니다.

주 계신 곳엔 기쁨 가득

무엇과도 누구와도 바꿀수 없네

예배드림이 기쁨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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