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 강의안(고통) 김병연 목사 강의안 


선택식 강의 - 바람불어도 좋아!.(고통중과 함께 사는 법) 

2014/07/02,03. 시카고 코스타

본문 : 시편78;38-39


"오직 하나님은 긍휼이시므로 죄악을 덮어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쏟아내지 아니하셨으니 그들은 육체이며 가고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임을 기억하셨음이라". 


제가 맡은 강의는 의미가 너무 강렬해서 감당하기 어려워요. 


[고통과 함께 사는 법]. 


너무 주제가 선명해서 강의 들어오고 싶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래도 많이 들어오셨네요. 실제는 저는 제 자신이 병에 걸린 것이 아니고 아내가 병에 걸렸기 때문에 엄격하게 말해서 제가 환자와 살고는 있지만 제 자신의 고통이 아닐 수 있어요. 본인이 겪는 고통과 고통을 겪는 사람을 돌보는 것 사이는 다르지요. 환자를 돌보다 보니 어느새 10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내가 견딘것이 아니고 시간이 나를 이곳까지 데려왔다. 


그래서 난 고난이 축복이다는 말을 싫어한다. 이런 말들이 고난 받기 전에는 그러려러니 했지만 실상 고통에 들어가니 정말 싫었다. 누가 고통을 축복이라고 할까요? 고통을 위장된 축복이라고 하면 아픔은 사라져요. 축복을 받기 위해서 고통을 참으시겠어요. 다시 말하지만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 


오죽했으면 인생을 생로병사라고 했을까. 인생자체가 늙고, 병들고, 죽음이라고 했다. 이런 과정 자체를 사람들은 고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들이 다 겪는 일들이니까.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걸리지 않은 병에 걸리고, 사고를 당하고, 아픔을 겪는 것을 고난이라고 한다. 인생의 과정 자체가 연약함인데 병들지 않을 수 있을까. 감당할만한 질병은 호들갑을 떨지 않으면서 고칠수 없는 암을 만나면 엄청난 좌절을 겪는다.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이 있을까. 바람은 늘 분다. 공기의 흐름인 바람이 늘불지만 사람들은 이 바람을 인생의 고통, 불현듯 찾아오는 고난을 바람이 분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을 바람이라고 한다. 바람이 늘 불듯이 하나님의 임재가 끊어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바람이 보이지 않듯이 하나님도 보이지 않게 역사하신다. 성경은 하나님의 임재를 바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래서 인생에 부는 고통의 바람은 싫지만 그 고난의 바람을 타고 오시는 하나님은 좋다고 표현한 말이다. 


A.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선생님의 시에서 따온 표현이다. 

흔들리며 피는 꽃이다.

 인생을 꽃을 피우기 위해서 다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어야 한다. 

여러분은 하나의 꽃입니다. 이 꽃은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고 바람에 꺾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상해도 꽃은 피는 것이죠. 


제가 너무 낭만적으로 아픔에 대하여 접근하고 있지요. 그러나 실상은 아니어요. 저의 삶을 봐도 마찬가지여요. 아내는 두번에 걸쳐서 큰 고통을 겪고 있어요. 한번은 뇌경색으로 쓰러졌고요. 두번째는 화상을 입어서 다리를 잃었어요. 


1) 내일이 닫힐 때 - 다이어리/느림/미래에서 오늘로.


아내가 아프고 난 후에 제 삶의 가장 큰 변화는 다이어리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정이 필요없었다. 언제나 똑 같은 일들로 가득찼으니까. 일정을 세울 필요가 없다!. 

삶이 느려졌다. 혼자서 빨리가던 길도, 이제는 천천히 아내를 생각하며 가야했다. 환자를 태우고 달릴 수 있는 일상은 없다. 내 삶의 무게중심을 뒤로 당겼다. 

일정도, 속도도 없으니 당연히 삶의 시제가 현재로 옮겨왔다. 이전에는 미래를 위해서 준비하던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아내를 돌보는 것이 대부분이다. 오늘을 사는 것이 삶이 되었다. 


2) 가시에 꽃이 핀다 - 사고의 전환/하나님이 가시다


고난은 생각하게 만든다. 환자는 다 신학자가 된다고 했다. 생각하게 된다. 고난은 삶을 보는 눈을 아주 근원부터 따지게 만든다. 왜?라는 질문을 달고 산다. 질병의 원인과 과정을 따진다. 습관적으로 남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생각하며 따진다. 

가시와 장미꽃은 한몸이다. 사람들은 이 둘을 분리하려고 한다. 불가능하다. 삶을 보는 눈이 열렸다. 하나님이 만들었다. 붙여 두셨다. 과정으로 이해를 해야 한다. 

시지어 하나님이 인생을 찌르시는 분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꽃만 주시지도 않고 가시도 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삶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3) 상한 갈대처럼 - 약해짐/슬픈 일상/


뇌경색을 입고 4년, 그리고 다시 화상을 입었다. 다리를 잃었다. 존재의 모습은 자꾸 일그러지고 상해서 깨진다. 아내의 체형이 변했다. 도저히 보기 어렵다. 

그러나 살아있다. 숨쉰다. 호습이 생명이다. 몸이 아니다. 약하고 부셔지기 쉬운 몸이 아니라 생명은 호흡을 통하여 수명을 잇는다. 능력을구할 일들이 없다. 환자도, 의사도 약을 먹이라고 권면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보호자들의 판단으로 거부하였다. 


연약함을 수용하면 눈물, 슬픔이 찾아온다. 슬픔은 도저히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일들속에서는 잘 안 나타난다. 약함은 인간이 수용하는 방법이 눈물이다. 아무것고 할 수 없는 적막감이 몰려온다. 


도종환 선생님은 이 시를 다 같이 읽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B. 천천히 함께 걷는 길


아픔이 제게 준 가장 큰 변화는 인간에 대한 이해이다. 고통을 통하여 나의 숨은 인격이 드러났다. 나의 분노, 외로움, ...등 은밀한 것들을 드러나게 하였다. 


4) 나도 인간입니다-성적인 유혹/친밀함에 대한 욕구


목회자에게 금기사항이 있다. 성적인 유혹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사람일거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목사님은 그렇게 해주지 않기를 바란다. 유혹 자체를 인정하지만 그 유혹에 걸려넘어지지 말기를 바란다. 


부부의 그리움은 성적인 연합이다. 성적인 연합은 부부만 누릴 수 있다. 수없이 잦은 자위행위를 하며 지나간다. 이 시간동안 나는 나를 이해하였다. 죄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정죄라는 것을. 

그러나 이 욕구가 바로 나를 새롭게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하였다. 친밀함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졌다. 


5) 좀 울게 내버려다오- 감사라는 폭력/자연스러움/ 


자원하지 않는, 아픔이 끝나지 않은 사람에게 감사는 폭력이다. 감사를 함으로 하나님을 조종하려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다. 그것도 비교해서 감사한다. 비교할 때 나보다 못한 사람하고 비교해서 감사한다. 이런 감사는 다 조건적인 감사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울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소연하게 하고, 불평하고, 하소연 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이것을 거세하는 신앙은 믿음이 아니라 인간성을 파괴하는 괴물이다. 

난 아직도 사건자체를 감사하지는 못한다. 사건이 주는 의미는 감사한다. 


6) 돈없어도 살아요-간병비/공급하심/나눔


아내를 간병하면서 들어간 돈은 무려 3억 5천만원이 넘었다. 하나님은 매달 채워주셨다. 그러나 최근에 경제사정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10년동안 채워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여기까지 아내를 돌볼 수 있었다. 

간병비를 잘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환자를 돌보는데 가장 안정되어야 하는 것은 집이다. 그러나 나는 집이 가장 불안정하다. 전세금 이자내기도 바쁘다. 

나에게 필요를 채워주시지만 하나님은 동시에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돕게 하게 하신다. 우리의 인생은 마치 파이프와 같다. 은혜를 흘려보내는 통로이다. 이동침대를 교환하게 하였다. 도서비를 후원하게 하였다.


C. 그날까지 


7) 임마누엘-항상 함께 하심/아내의 언어를 배움


질병속에 가장 어려운 것은 함께 머무는 것이다. 변화지 않는 상황을 견디는 것이다. 사실 아내를 돌보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아내와 함께 있는 것이다. 아내가 움직이지 못하기에 움직이는 남편이 곁에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건강한 욕심많은 남편이 그자리에 머무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아내를 움직이기로 했다. 아내를 데리고 커피숍에 간다. 아내의 친구를 만나러 간다. 대학교 때 가르쳐준 선생님들을 만나러 간다. 아내와 함께 할 수 있는 장비를 만들고 공간을 만들었다. 이렇게 하자 아내는 환자에서 관계를 맺는 인간이 되었다. 아내의 언어를 배운 것이다. 


8)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언약/죽음에 대한 그리움/신실하게 진실하게


삶은 언약이다. 하나님과 언약이고 배우자와 언약이고 교회와 언약이다. 이 언약을 결혼할 때는 잘 몰랐다. 그러나 여기에 엘리자베스 악트마이어 가 쓴 언약의 의미가 있다. 


나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당신과 함께할 것입니다. 당신이 내일 소경이 된다고 할찌라도 나는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당신이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서로 싸우며 화낼 때가 있지만 금방화해 하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아무러 희망이 없는 것 같을 때, 당신을 이해하고 관계를 정상으로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결혼생활이 지루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을 때, 관계를 개선할 수 있음을 믿고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는 말씀이 주는 고달픔이 싫었다. 성적인 면에서도 순결하고 정서적인 면에서 순결하도록 요구하였다. 


9) 하나님의 전능-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전능/십자가의 능력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당할 때 사실은 하나님의 성품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 '없는 것도 있게 만드시는 하나님'. 소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믿음 때문에 더 고통을 당한다. 하나님이 고쳐주시면 되는데 안고치신다. 능력있는 분이 치료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고통 가운데로 임하신다는 것이다. 십자가가 그것이다. 내게 있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전능하심은 만물을 만드시는 창조의 순간과 만물을 회복시키는 마지막 부활의 날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내가 사는 동안의 전능하심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능력의 의미에서 전능하심이 아니고 십자가 사랑의 전능하심이다. 고통당하는 죄인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죽으시는 사랑의 전능이다. 고치지 않아도 이 사랑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다.


D. 끝내는 말(Concluding Remark)


고통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품는 것이 삶이다. 품는다고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일상을 살아간다. 이 일상의 삶에 가장 잘 적응하는 사람들은 어른들이 아니고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지금을 살아가는 지혜자들이다. 어른들은 간병을 걱정할 때 아이들은 엄마의 침대로 장난감 놀리듯이 논다. 


고통중에 생명이 있다. 아픔을 느끼는 것도 생명이 있어서다. 고통을 통해서 생명의 질김을, 삶의 고단함을, 그리고 현재의 중요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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