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찬교수 < 요한계시록 강의 1 >=

06/13/2014 금요일

LA 동부지역 연합 세미나

강의내용을 정리함 / 그림 인터넷 갈무리함














(계1:1-3, 새번역)

1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이 계시는 곧 일어나야 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천사를 보내셔서, 자기의 종 요한에게 이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습니다.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과 듣는 사람들과 그 안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그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 종말과 요한계시록 ]=




1. 종말이란 무엇인가?




- 올바른 종말론을 교회에 나누려고 연구소를 만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방법론이 중요하다. 어떻게 접근하느냐?가 중요하다. 어떤 방법이 중요한가?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요한계시록의 주제를 생각해야합니다.




- 요한계시록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처한 최악의 상황을 말하고 그속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 최악의 상황은 로마의 황제숭배와 같은 통치속에서 이러한 통치이념속에 있는 교회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가 될수 있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이다.














- 요한계시록의 또하나의 축약된 주제는 < 종말 >이라는 주제이다. 이 종말이라는 주제는 민감하기도 하고 왜곡되어 있기도 하다.




- 요한계시록은 핍박받는 교회들에 대한 목회적 당부이며 요청이다.

이 메시지는 상황은 다르지만 영적인 도전은 같은 오늘의 시대를 향한 메시지와 연결되어 있다.












- 종말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금방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입니까?




- 미국 책중에 < the last myth >라는 책에서

미국에서 모든 사람은 종말이 온다고 믿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먼저오느냐 아니면

먼저 지구온난화로 멸망할것인가의 문제이다.
















- 종말의 문제는 바로 지구 멸망과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지구멸망의 시나리오를 여러가지 데이타를 가지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 2002년 타임지에 < 요한계시록 >의 종말이 올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다수의 세계관이 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 시대에 종말을 성경적으로 올바른 이해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문제는 잘못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당히 많은 이단에 의해 유린되어기도 하고 세속적인 가치에 의해서 흔들리도 한다. 이럴때 일수로고 성경적으로 이해하는 것.. 좀더 성실하고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종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하는 요한계시록이 종말에 대해서 오해하게 만드는 것이 문제이다.




불신자들 : 종말에 대해서 끝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끝날것인데 대안이 없는데.. 쾌락주의 에 빠진다..




전통적인 교회들 : 끝이라고 생각한다. 종말을 심판으로 생각한다.




@ 성경의 구속의 역사 :

성경의 종말은 성경의 구속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창조-타락-회복의 성취&구속-회복의 완성으로 간략하게 요약할수 있다.

하나님은 이세상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끝까지 책임지신다. 하나님은 완전하신분이기에 속성그것을 완전하게 하셔야합니다.




@ 구속의 역사의 목표 : 바로 창조의 회복이다.

바로 에덴의 회복의 메시지이다. 그것을 위해서 아브라함을 부르신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 약속이 바로 아담에게 주신 약속과 연결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것은 아담에게 주신 에덴을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거대한 발걸음을 볼수 있다.




성경에서 종말이란 창조의 회복이 성취되고 완성되는 순간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에 성경적인 회복은 타락한 이세상을 회복하는 순간을 한다.

바로 그날이 그때가 바로 <에덴의 회복>을 의미한다.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초림은 에덴의 회복의 성취이고 재림은 에덴의 회복의 완성이다.




이것이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우주적인 프레임의 변화이다. 중성복수이다. 우주적인 변화이다. 새로운 아담 마지막 아담으로 오셔서 그것을 이루셨다. 이것이 바로 종말의 사건이다.




세속적인 종말은 바로 <끝>을 말합니다.

성경적인 종말은 바로 <회복>을 말합니다.

이미 종말이 시작되었고 예수님의 재림에 완성된다.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었고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는 은혜를 누리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실존이다. 그리고 완성될 소망을 갖는 것는 것이다.




1. 요한계시록에서 종말 ?




1) 여자가 아들을 낳다.: 예수님의 탄생은 종말적 사건이다.

- 구약에서 여자의 의미 :

계 12:1 큰이적 - 해/달/열두별 의 여자의 모습

창 37: 9-10 : 요셉의 꿈속에 등장한 < 해와 달과 열한 별>

해(아버지) 달(어머니) 열한 별(형들)을 의미한다.

구약역사에서 12명의 아들이 갖는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한다.




- 구약에서 아이의 의미 : 이 여자가 아들을 낳는다. 계 12: 5

바로 이 아들이 바로 예수님을 의미한다.

사 66:7-8

요한계시록에서 여자가 낳은 아들은 바로 예수님을 의미한다.




@ 예수님이 12명의 제자를 뽑을까요?

왜? 12명이어야만 할까요? 12사도를 통해서 교회가 세워졌다. 12지파의 이스라엘의 성취가 바로 교회이다.




@ 마태복음 1장 1절은 구약전체의 역사를 요약하였다.




@ 신화는 히스토리가 없지만 예수님의 탄생에는 히스토리가 있다.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속에 예수님의 탄생이 이루어졌다. 이것인 바로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다. 하나님의 역사의 결과로 간섭하고 운행하시는 손길이다.




바로 이것이 구약의 배경을 갖고 있다.

사 66:7-8

남자를 낳았으니... 그 자민(아들들)을 순산하였도다..




이것이 구약의 배경과 성취이다.

여기의 주제가 민족과 나라입니다.

고통없이 시온이 남자를 낳았다... 라고 말하면서

<남자 :단수 = 예수님>을 말한다.




ESV에 보면 < 왜냐하면 시온은 구로하는 즉시에 그 자민들을 순산하였도다 > 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들들:복수=메시아왕국의 백성들>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의 존재는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의 이유가 된다.




의문형식으로 말했지만.... 긍정적인 확신의 형태로 대답하고 있다.




- 하나님의 약속 :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시겠다. 하나님은 시아를 통해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시겠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모아주시겠다.




예수님의 탄생의 사건을 통해서 이사야가 기대하고 대망했던 종말의 사건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해준다. 메시아오심. 하나님 나라의 도래,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종말의 사건이다.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종말을 예수님의 탄생에서 시작하고 있다. 복음서의 저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집중하지만 요한계시록은 달리 보고 있다.




우리의 생각의 전환 :

바로 예수님의 탄생이 종말의 사건의 시작이다. 바로 종말의 성취를 말하고 있다.




이런것은 교회에서 시험을 봐야한다.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외우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세대가 아날로그 적이죠.. 그런데 인터넷나오는 것이 다 정확하지 않다. 때로는 아날로그적인 삶을 살 필요가 있다.




2) 반드시 속히 되어져야만 하는 것들 (1:1)




- 구약배경 : 단2:28 느부갓네살의 꿈이야기




- 우리가 종말의 말과 함께 잘못된 부분이 바로 잡아져야합니다. 종말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아야한다.




예언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

- 에언은 < 미래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 그런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 예언은 <나비>라는 단어는 대언하다는 뜻이다.

누구 앞에서 말하다 뜻이다. <프로페튜어> BEFORE는 <미리/앞에서>라는 말도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 중요하다.




- 선지자들의 예언의 출발점은 < 바로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 하나님은 구속주 하나님이시다. /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스라엘백성되게 하신 사건이 출애굽이다 / 하나님의 대한 인식이 출발점이다.




그리고 선지자들의 예언의 내용은 < 너희가 하나님을 떠났다. 그래서 심판이 필연적으로 있을 것이다. 그리고 회복이다. 돌아오라 >




여기에 미래적인 것도 있고 과거도 있다.




과거의 내용이 미래에 대한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과 관계의 지속성을 위해서 심판을 통해서 정화가 이루어져야한다. 이것이 이방인들의 심판과 다른다.




미래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밀접하게 상관관계를 이루고 있다. 바로 이것이 예언의 말씀이다.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는 예언은 협소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부족한 이해이다.

예언은 하나님의 뜻과 계속에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단순히 미래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그것만 말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은 창조에 대한 이야기가 풍부하게 나온다. 왜냐하면 종말은 창조의 회복이기때문이다.




창조의 모티브는 <생명>이고 <땅과 물>의 의미한다. 에덴적 모티브이다. 요한계시록은 창조의 모티브를 풍성히 다루고 있다.




요한계시록의 왜곡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만 하기에 상당한 왜곡이다.

너무 재림중심적으로 요한 계시록을 읽는 것은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서 종말이 왔다는 사실을 놓치기 쉽니다.




요한계시록을 균형있게 읽는 것이 중요하다.




3) 때가 가깝다.(계1:3)




- 읽은자(단수) 듣는자들/지키는자들(복수)

복이 있나니... 왜냐하면 때가 가까움이라.




- 듣고 지키는 것은 동일한 것이다. 말씀을 순종하는데 목적있다. 들음은 순종을 의미한다. 이러한 통합적인 작용이 일어나야 한다.




- 들음은 순종을 가져와야한다.

- 귀가 있는 것은 <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줄알고 순종하는 것>이다.




- 요한계시록은 호기심의 대상이다.




- 스코틀랜드 <센엔드류스 >에서 공부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말씀은 순종의 말씀이다. 교회 공동체가 처할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말하고 있다. 사회적인 정황을 배경하고 있다. 황제를 숭배하는 사회적인 정황속에서 목숨을 걸고 말씀을 순종하길 교회들에게 요청한다.




요한계시록은 목회서신과 같이 목회적인 심정으로 교회들에게 순종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황제숭배를 하면 시민들을 책임졌다. 신으로써 황제를 숭배했다. 일종의 계약관계이며 사회적인 안전망이었다. 그러나 이것을 거부하면 이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교회들은 이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것을 복이라고 말한다. 이런점에서 계시록은 오늘의 현대에 필요하다.




오늘 이 시대는 더 많은 숭배를 요구하는 시대가 되어가고있다. 계시록은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권면하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요청하고 있다.




666이냐? 베리칩? 휴거?는 하나님을 참으로 예배하지 못하고 그의 통치를 경험하지 못하도록하는 방해이다. 계시록의 말씀의 본질을 흐리는 사탄의 전략이다.




계시록은 생명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며 하나님 만을 섬기도록 순종의 반응을 보이도록 요청한다.




요한계시록의 복은 바로 < 듣고 지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때가 가깝기 때문이다.




때가 온겁니까? 안온겁니까?

때가 가깝다는 것은 < 아직 안오것이 아니라 때가 왔다는 것 >을 의미한다.






문맥을 잘 따지지 않으면 성경적인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다. 문맥을 잘 따져서 어감을 잘 따져서 들어야한다.




현대적인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문제이다.

아직 때가 가깝다는 것은 < 때가 왔다. >는 것을 의미한다.






서양적인 사고는 <감각적>이고 동양적인 사고는 <직관적>이다.

서양사고는 합리적이고 동양사고는 정서적이다.




때가 가깝다 : 히브리적 사고는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가복은 1장 15절 <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 > 성경은 같은 말을 표현을 달리해서 반복한다. 평행법이다. <때가 왔다, 하나님 나라가 왔다 >는 것을 의미한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성경에서 복음은 원래 이사야에서 사용되었다. < 복음들과 산을 넘는자 > 바로 바벨론의 해방의 컨셉니다. 바로 이것이 < 죄와 사탄의 해방 >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때 = 하나님 나라의 = 복음






역사적 출애굽사건 과 영적 출애굽 사건과 연결되어 진다.




복음이란 ? 예수믿고 구원받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다.

그 밑에는 거대한 사상적, 역사적 배경이 이다. 구약의 배경을 갖고 있다.






다니엘서에서 < 종말에 반드시 되어져야만 하는 것들 >이란 하나님의 나라이다.




요한계시록의 저자가 마가복음의 복음메시지를 들었을 가능성있다.




때가 가까운 것은 < 종말의 때가 온것을 의미한다. >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해서 이땅에 온것이다.






황제를 숭배하지 말고 하나님 만을 섬기라는 이 메시지를 듣고 지키는 것은 복이 있다. 왜냐하면 바로 하나님의 때가 왔고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가 이땅에 도래했다고 했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으면 그 나라의 맛을 보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다스림을 경험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경험하는 통로가 된다.




하나님의 통치의 원조는 바로 에덴이다.

에덴이야 말로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임했다.






하나님의 형상 : 하나님의 아이콘을 의미한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우리가 있는 곳 마다 하나님의 통치가 드러나도록 하신다. 아담과 하와에게 < 땅에 충만하라 > 바로 통치가 실행되는 방법이다.




스바여왕이 솔로몬에게 찾아온것 : 그 당시에 땅끝은 바로 에디오피라고 생각했다. 솔로몬이 이스라엘 시대의 역사의 절정을 의미한다. 그러한 가운데 스바여왕이 찾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종말적인 컨셉이 들어가 있다.




때가 가깝다는 것에 대한 오해 : 아직 때가 오지 않았고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왔다. 그래서 상주시기에 그때를 기다리라 생각한다.




황제숭배를 거부하고 예수님을 따라가는데 : 예수님의 오심으로 종말이 임했고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그 나라를 경험하는 것이다.




<결론>

종말은 바로 예수님의 오심으로 시작되었다.

요한계시록은 이미 종말이 시작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탄생의 사건으로 부터.....






예수님을 통해서 이미 종말적인 성취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물질과 명예와 같은 것들이 황제숭배와 같이 우리가 숭배하도록 유혹하고 있지만 ...

그것속에서 승리하도록..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도록...

이미 종말이 왔음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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